1954년작입니다.
아무래도 영화가 촬영된 시기가 시기인지라 재난 영화라고 하기에는 긴장감이나 전개가 몹시 느슨합니다.
요즘 헐리웃의 화끈한 액션에 길들여져서 그렇겠지요? 나름대로 당시에는 최고의 재난 영화였을테니까요.
그것도 무려 항공기 사고. 호놀룰루에서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장거리 비행에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비상착륙이라고 번역된 제목이 무색할 정도로 비행기는 엔진 한 개가 불탄 상태에서도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무사히 착륙하더군요.
나름 공중 탈출 액션이나 해상 구조 액션등을 기대했던 저는 좀 실망...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대사도 좀 많이 오글 거려요.. (오글오글)

하지만 재미있는 구경거리들도 있었습니다.
조종사고 승무원이고 승객이고 어쩜 저렇게 비행기안에서 줄창 담배들을 피워대는지 이런 장면들은 지금 보면 좀 이색적입니다.
하긴 저도 흡연이 가능한 비행기를 딱 한 번 타 본 적이 있었어요. 1998년 동경에서 시드니로 가던 일본항공편이었죠.
당시 전 세계의 메이저 항공사들은 이미 기내 흡연을 완전히 금지하는 정책을 실시중이었는데
흡연에 관대한 일본이라 일본항공은 거의 마지막까지 흡연 정책을 유지했었지요.

샌프란시스코까지 날아가는 프로펠러기 DC-4 (위키피디아 참조) 의 실내는 널찍했습니다.
승객도 몇 명 없어서 더욱 널찍...꽉꽉 채워가는  B747을 타야하는 저로서는 그들이 몹시 부러워 보였습니다.
물론 작은 여객기에 일등석 이등석 따위는 없지요. 
그 정도의 비행 구간에도 조종사가 세 명이나 되더군요. 그리고 교대로 조종을 합니다.
조종실 옆에는 조종사가 쉴 수 있도록 침대도 있고 통신실도 있었어요.
당시에는 조종사외에 항법사가 별도로 탑승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통신사인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좌표 계산등을 하더라고요.
아 맞어, 저 때는 지금처럼 자동 항법장치가 없었지. 
열 두어명쯤 되는 승객을 위해 승무원만 자그마치 다섯 명 (조종사 세 명, 항법사 한 명, 그리고 써비스 승무원 한 명)
저 시대의 비행기표는 무진장 비쌌겠지요?

한국인 캐릭터가 한 명 나오는데 이름이 "도로시 첸" 입니다.
이상한 건 실제로 저 배역을 했던 배우는 한국인이었다는 거예요.
저는 원래 스크립트에서 저 배역은 중국인이었는데 한국인으로 교체되었다는데에 한 표 던집니다.
1954년임을 감안할 때에 한국전쟁의 영향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배우를 구하고보니 한국인이었기 때문에 바꿨을 수도 있고요.
그런데 왜 그 배우는 한국 성씨엔 "첸"이 없다고 말하지 않았을까요?
아님 제작자이 그 사실을 알고도 그냥 무시했던 것일까요?
당시에 그런 잘못된 지식에 기반한 영화를 만들었다고 해도 그걸로 불평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겠지만  저는 영화를 볼 때면 그런 것들이 좀 거슬려요.
도로시가 한국어로 말하는 장면은 "한국 속담에 이런 게 있다..어쩌고" 하는데
제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속담이었습니다. 원래 중국인이었던 캐릭터를 급히 한국인으로 바꾸었다는데에 더욱 확신이 갑니다. 

엔진 사고가 난 이후에도 한 시간을 넘게 지루하게 이야기 전개를 이어가더군요.
러닝 타임이 무려 두 시간 반.
그래도 당시의 여객기 내부를 들여다보는 재미는 제법 쏠쏠했습니다.
조난 신호를 받아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연결해주는 선박 내부의 널찍한 통신실과 콜린스 무전기들을 보는 재미도 있고요.
무전기들이 냉장고만합니다. 

흥미진진하기로 따지면  환상특급 영화판의 세 번째 에피소드가 이 영화보다는 훨씬 낫습니다만
이 영화는 옛날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시대상을 보여주죠. 나름 즐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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