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인기없는 주제에 대해 길고 사진 많은 글을 쓰는 밀덕질입니다.



 아시다시피 비행기는 이륙속도라는 게 있고, 그 속도에 도달하지 않으면 공중으로 떠오를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지상에서 열심히 달려서 그 속도에 도달해야 하고 그러려면 평평하고 곧은 활주로가 필수적이죠. 그런데 전쟁이 나면 활주로에 적군이 열심히 폭탄을 떨어뜨리기 때문에, 비행기를 띄운다는 일이 좀 힘들어지게 됩니다.




xfy-1 pogo.jpg




 물론 수직이착륙기라면 상관없는 문제입니다. 회전익 항공기(헬기)가 있기는 하지만 연료 많이 퍼먹고 느리다는 단점도 있기 떄문에, 이착륙이 가능한 고정익 수직이착륙기를 만들고 싶은 사람들이 많았죠. 일례로 위에 나온 XFY-1 포고의 경우 1954년에 시험비행을 했는데, 군함의 좁은 공간에 탑재할 생각이었습니다. 나찌 독일의 트리플뤼겔처럼 평소에도 그냥 저렇게 수직으로 서 있다가 시동 걸고 위로 날아가는 단순한 방식이었죠. 문제는 착륙하는 것도 수직으로 할 수밖에 없어서 착륙지점을 향해 날아와서 기체를 수직으로 세운 뒤, 뒤돌아보면서 조심스럽게 땅을 향해 '후진'을 해야 했는데, 너무 어려운 일이라 일반 파일럿이 소화해내기엔 무리라는 결론이 납니다.


 물론 1967년에 제대로 된 수직이착륙 전투기인 해리어가 등장하면서 상황이 달라지지만 해리어도 손쉽게 수직으로 날아다니는 것도 아니고, 해리어 이외에는 대부분의 수직이착륙기들이 개발 과정에서 실패하고 취소되어버렸듯이 수직 이륙이라는 건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죠.




xfv-12.jpg

실패한 많은 수직이착륙기 중 하나, 록웰 XFV-12



 덕분에 냉전 초창기, 적에게 활주로가 박살날 경우를 대비해 일반 전투기를 차에 싣고 다니다가, 로켓 부스터로 발사해버리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를 누군가 떠올렸습니다. ZEL 혹은 ZELL(Zero Length Launch, 영거리 발사)이라고 하는 물건입니다.





f-84 zel launch.jpg

 사진으로 보시니 이해하기 쉽죠?  



 실용화가 되지 않은 데서 알 수 있듯이 문제가 몇 가지 있었는데, 파일럿이 과도한 가속도에 뻗어버린다던가 기체 조종이 힘들다던가 하는 건 아니었습니다. 3.5G 정도가 걸릴 뿐이었고, 테스트 파일럿의 증언에 따르면 로켓을 잘 설치할 경우 발사 버튼만 누르고 나면 조종에 따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정도로 이륙 과정이 쉬웠다고 하더군요.

 문제는 역시 비용입니다. 로켓은 비싸고 불편한 물건인데다가, 전투기를 저렇게 차량에 싣고 다닌다고 해도 수십 수백 대씩 싣고 다니고 관리하고 정비하고 하는 것 역시 너무 번거로운 일입니다. 게다가 근본적인 개념적으로도 문제가 있는데, 활주로가 박살난 상황에서 로켓으로 전투기를 이륙시킬 수는 있다 쳐도, 전투기가 임무 치르고 귀환하면 어디에 착륙해야 하냐는 문제가 있었죠. 전투기를 쏘고 버리는 일회용으로 취급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말예요.

 그래서 1954년에는 항공모함에서 그러는 것처럼 어레스팅 후크를 사용해서 두꺼운 매트 위에 착륙하려는 실험을 했었습니다. 잘 되지는 않았어요. 후크가 매트를 긁어버리면서 터지는 바람에 전투기는 고철이 되었고, 파일럿은 부상을 입고 몇 달을 쉬어야 했었거든요. 이후로 몇 번 실험이 더 있기는 했지만 어쨌건 다른 수많은 프로젝트처럼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맙니다. 냉전 시절답게, 얼마 뒤에 소련에서도 MiG-19 전투기로 따라해보려고 했지만 같은 결론을 내렸죠.

 물론 이후로 이 개념이 아예 쓰이지 않았던 건 아닙니다. 착륙이 문제였지 이륙하는 건 전혀 문제가 없었으니까, 애초에 제대로 착륙할 필요가 없는 물건에 쓰면 된다는 소리죠.




regulus ii launch.jpg



 1956년 등장한 레귤러스 2 순항미사일입니다. 이 시절 순항미사일은 V-1이 그랬던 것처럼 그냥 무인 제트기에 가깝죠. 요즘 순항미사일도...그렇기는 하지만서도요.



v2 rocket.jpg




 물론 요즘 순항미사일들은 그냥 비행기에서 쏘던가, 부스터를 뒤에 달고 수직으로 쏘던가 하는 식이지 저렇게 하진 않죠. 차량에 싣고 다니면서 세워서 쏜다는 개념이야 보시다시피 V-2가 개척했었고, 패트레이버...가 아닌 각종 미사일의 TEL(Transporter erector launcher)으로 아직도 잘 쓰이고 있고요. 여기서는 발사기를 직접 수직으로 올려줘야 하긴 하지만.


 한편  ZELL처럼 활주로 아예 없이도 이륙하는 물건은 아니지만, 짐 많이 실은 화물기가 이륙하기 힘들어하거나, 혹은 활주로가 좁거나 해서 로켓 부스터로 활주로에서 가속을 붙여 이륙을 보조한다는 RATO/JATO 역시 2차 대전 때 실사용되기 시작해 아직도 잘 사용되고 있습니다.




A3D JATO Takeoff web.jpg


c-130 jato.jpg




 다소 흥미로운 것은 로켓으로 빠르게 이륙시키려는 시도 뿐만 아니라, 빠르게 착륙시키려는 시도도 있기는 있었다는 겁니다. 독수리 발톱 작전(Operation Eagle Claw) 덕분이었죠. 혹시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해당 작전은 1979년 이란의 테헤란에서 미국 대사관 인질극이 벌어지자 지미 카터 당시 미국 대통령이 특수부대를 투입하기로 하는데, 작전 특성상 근처에 고정익 항공기가 착륙할 자리가 없어 헬기로 특수부대를 투입하고 싶었으나 너무 멀어서 가다가 연료가 떨어질 지경이었습니다.

 그래서 누가 돈 많은 나라 아니랄까봐 중간지 사막에 몰래 임시 활주로를 개척하고 수송기로 병력과 연료를 실어다 놓은 뒤에, 항공모함에서 헬기를 보내 활주로에서 다시 연료를 채우고 다시 이륙해서 목적지로 간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작전 당일 임시 활주로에서 여러 대의 항공기가 혼잡하게 엉켜 재급유하는 와중에 헬기와 수송기가 충돌하면서 연료가 인화되고 폭발이 일어나 8명이 사망, 작전은 취소되고 맙니다. 당황한 병력들이 급히 철수하면서 남겨두고 간 헬기 두 대는 이란이 가져다가 잘 쓰고 말았죠.

 이 사실이 공개되자 카터 행정부는 많은 비난에 휩싸이지만 그러고 끝낼 수는 없었는지 어쨌건 재시도를 하려고 들었습니다. 그게 오소리 작전(Operation Honey Badger)이었는데, 그 부속으로 믿을만한 친구 작전(Operation Credible Sport)라는 게 있었습니다. 돈 많은 나라답게 여전히 비싼 방법을 찾고 있었던 거죠.

 폭발 사고를 겪고 나니 헬기는 영 미덥잖았기 때문에 수송기를 아주 짧은 활주로(근처의 스타디움을 이용하려고 했습니다)에 착륙시킨 뒤 이륙시킬 방법을 찾으려 들었죠. 그래서 C-130 수송기에 로켓을 30개를 달았습니다. 급히 해야 하니 전용 로켓을 만들 수는 없고, JATO로는 출력이 부족해서 ASROC 대잠로켓과 쉬라이크 대레이더 미사일, 스탠다드 대공미사일 등에서 뜯어온 거였죠. 착륙시에는 빠르게 내려온 뒤 앞쪽과 아래를 향해 로켓으로 감속하면서 안전하게 착륙하고, 이륙시에는 그냥 JATO처럼 뒤쪽으로 로켓을 쏴서 빠르게 이륙한다는 거였습니다.

 1980년 10월에는 드디어 프로토타입이 로켓을 잔뜩 달고 실험에 들어갔습니다. 이륙이야 이미 JATO 같은 게 잘 쓰이던 시절이라 어려울 게 없었는데, 문제는 착륙이었습니다. 원래는 앞을 향한 로켓들 중 일부를 먼저 점화해서 속력을 줄이기 시작하고, 지면에 닿으면 아래와 앞을 향한 나머지 로켓들을 다 쏴서 착륙 충격을 줄이는 방식이었는데, 조작 오류인지 기계 고장인지 앞쪽을 향한 로켓들이 한꺼번에 점화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기체는 실속하면서 너무 빠르게 아래로 떨어져버렸고 충격으로 날개가 떨어지면서 불이 붙습니다.



 이 영상의 27초 부분입니다. 다행히도 승무원들은 살아서 탈출했습니다.



 이후로 이리저리 고친 끝에 1980년 말에는 거의 완성이 되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지미 카터 대통령은 재선에 실패하고 레이건이 대통령이 되었으며, 위험 부담이 큰 인질 구출 작전은 취소되고 협상을 통해 1981년 1월에 다들 풀려나게 됩니다. 이후로 Credible Sport II라는 이름으로 더 개발이 이루어지고 나자 본격적으로 쓰려고 들었지만, 윗선에서는 비용 문제였는지 안전성 문제였는지 도입을 거부하고 말죠. 이후로 해당 기체는 원래대로 되돌리는 데 드는 비용조차도 너무 비싸다고 해서 그냥 박물관 신세가 되고 맙니다.



IMG_3990.jpg


 미국 한 박물관에서 쉬고 있는 이 기체에는 보시다시피 로켓을 장착하려고 기체 외부에 덧댄 부분들이 그대로 남아 있죠.






f-104 zell museum.jpg


 한편으로 여기 독일 공군 박물관 신세를 지고 있는 F-104 ZELL도 있군요.

 



 결론은...

 음. 로켓은 비싸고 위험하다는 거네요.

 그러니까 우주 개발이 지지부진하지.

profile

Our last, best hope for pe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