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윽!!"



쿠와르 해방군의 소총탄을 수없이 맞아도 끄떡없던 파워슈츠가 갈갈이 찢겨나가기 시작했다. 7mm 소총탄과 30mm 기관포탄은 단순히 7:30의 계산식으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차이가 있었다. 게다가 무자비하게 쏟아져나오는 탄환이 대전차 파괴용 2중 철갑 관통탄일 경우는 더더욱 그랬다.



그나마 카림이 세뇌교육에 버금가는 프로 정신에 입각해서 라제스를 보호하기 위해 몸을 날렸고, 무장 헬기의 파일럿은 정확하게 카림을 노리고 사격했다는 사실이 기적적으로 겹치면서 상반신 전부에 무수한 구멍이 뚫리는 대신 -비록 유일하게 남아있던 무기였지만- 라이플을 희생시키는 정도로 끝났다는 것이 불행중 다행이었다.



물론 덤으로 라이플을 쥐고 있던 오른팔도 함께 정든 몸과 이별을 고하기는 했지만.



"파앗!"



파워슈츠를 움직이던 푸른색 전해질 용액과 카림의 몸 속에서 흐르던 붉은 피가 허공으로 튀며 두가지 빛깔의 무지개를 그렸다. 그리고 그 무지개는 뒷쪽에 얼어붙은 듯이 꼼짝 못하고 서있던 라제스의 머리 위로 내려앉으며 정지되었던 시간을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꺄아아아!!"

"쿠당탕!"



막 비명을 지르기 시작하는 라제스를 밀쳐내며, 카림도 아래층으로 구르듯이 뛰어내려갔다.



"소리... 지르지... 말아요... 크윽!"



카림이 이를 악물며 띄엄띄엄 말했지만, 얼핏 보기에도 그의 부상은 심각했다. 오른팔이 어깻죽지부터 완전히 사라져버렸고, 파워슈츠의 절단면과 더불어 형태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뭉개진 상처에서는 전해질 용액과 섞여 녹색 빛깔을 띄는 피가 계속 흘러내리고 있었다. 게다가 엎친데 덮친 격으로 라제스의 어설픈 바느질 실력으로 꿰멘 옆구리의 상처마저 다시 벌어지며 쇼크 상태를 유발하고 있었다.



"아.. 아... 이... 우..."



뭐라고 말을 하려고 하지만 얼이 빠진채로 아무말도 하지 못하는 라제스.

그녀의 표정을 보며 카림이 힘겨운 미소와 함께 말을 이었다.



"쿠와르 해방... 군을 몰살시켰을 때도..... 끄떡없더니... 지금...은... 왜.. 그렇게.. 놀라는..."

"흑... 흑흑... 하, 하지만... 피가... 흑... 게다가 죽을지도 모르는... 흑흑흑..."

"그만 울고.. 나 좀 도와줘요... 일단... 헤드셋부터 벗기고... 옆쪽에 보면... 주사기와 약병이.. 몇개 있을텐데... 크윽!"



카림이 얼굴을 찌푸리며 신음을 흘렸고, 이에 놀란 라제스가 재빨리 헤드셋을 분리시켰다. 그리고, 헬멧을 벗겨내자 마자 주루룩 흘러내리는 핏줄기.



"젠장.. 내장..까지 당했으니.. 큰일인데..."

"어, 어떻게 해야되는거야? 이 주, 주사기를?"

"이... 일단 빨간색은 상처 부위에... 녹색....은... 목에다.. 찔러넣으면..."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라제스는 조그만 권총 모양의 주사기에 붉은색 약병을 집어넣고 떨리는 손으로 떨어져나간 팔 부분에 주사했다.



"그, 그리고.. 이, 이건.. 모, 목에다가?!"

"예에... 가급적이면... 나... 죽기 전에... 해주세요..."



목에 주사한다는 말에 잠시 멈칫했지만, 사그라드는 듯한 목소리를 듣자 필사적으로 힘을내어 주사기의 방아쇠를 당길 수 있었다.



"크윽!"

"괜찮아, 카림?"

"아우... 머리아파.. 역시 정제 세릴듐은 자주 맞을게 못된다니까요.."

"저. 정제 세릴듐?! 그건 마약이잖아!"

"뭐, 어때요. 잘못하면 죽을 판인데. 이것저것 다 써봐야지. 덕분에 통증으로 인한 쇼크사는 면했잖아요?"

"말을 너무 많이 하지마! 너, 지금 입에서 계속 피가 흘러나오고 있다구!"

"아까 맞은 붉은색 주사가 지혈작용을 하니까 상관없어요. 그나저나.."



카림이 자신의 오른팔이 있었던 자리를 보며 말했다.



"라이플.. 아까워 죽겠네... 신형이라서 비싼건데."

"오른팔이 날아갔는데 그깟 총이 문제야?"

"지금 심정같아서는 왼팔까지.. 아니, 왼팔에 두다리 다 줘도 좋으니 라이플만 있었으면 좋겠어요. 무기가 하나도 없으니.. 이젠 죽은 목숨이라구요."

"그런가..."



비관적인 상황을 한층 더 비관하게 만드는 카림의 말에, 라제스 역시 풀이 죽은채로 다시 흐느끼기 시작했다.



"역시.. 오는게 아니었어.. 흑... "

"저도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막상 실제로 이런 꼴이 되어버리니까 착잡하네요. 16년 짧은 인생. 그나마 고아원에서 죽어지낸 것을 빼면 몇년 되지도 않는데... 그나저나... 뭐하는 거예요?"



카림은 벽쪽으로 돌아앉아 뭔가를 적는 라제스를 보며 물었다.



"혹시라도 해서.. 흑흑.. 유서를 남기는 거야. 이렇게 레이져 펜을 출력 최대로 해서 벽에다 긁어놓으면 누군가가 이걸 읽고 뉴로다이브 본사에 전달해줄지도 모르니까... 훌쩍."



애꿎은 벽에 그을음만 남기는 그녀를보며 카림이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소용없어요. 30밀리 기관포탄이라면 이까짓 벽 정도,, 그대로 날려버릴...?"



갑자기 뭔가를 발견한 듯 눈을 반짝이는 카림.



"잠깐만.. 라제스. 그거 외부 전원도 연결되는 거죠?"

"응. 그런데 그건 왜?"

"그렇다면, 제 파워슈츠의 에너지 팩을 연결해서 쏘면 어느 정도의 위력이 있을까요?"

"그, 글쎄?"

"일단 줘 봐요."



길쭉하면서도 끝부분이 약간은 뭉툭한 펜을 건네받은 카림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행이네요. 연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미안하지만 나는 팔이 하나밖에 없으니까 라제스가 대신 좀 해줘야겠네요."

"어떻게 하면 되는거지?"

"일단 파워슈츠 옆부분의 파워 케이블을 꺼내서 펜에 연결하세요."

"응. 그리고?"

"그 펜은 이제 절 주시고... 제 헤드셋을 머리에 써요."

"어, 어째서?"

"나... 출혈이 심해서 그런지 지금은 앞이 잘 안보이거든요. 라제스가 대신 내 눈 역할을 좀 해줘야 할 것 같네요."

"그러면 차라리 내가 쏠게!"

"초보 기자의 사격 실력을 믿으라구요? 말도 안되는 소리라는 생각 안 들어요? 다행히 제 팔에는 자동 조준장치가 있으니까, 헤드셋이 자동으로 현재 조준위치를 표시해 줄거예요."



그 말에 라제스는 머뭇거리며 피에 젖어있는 헤드셋을 머리에 쓰기 시작했다.



"잘 보여요?"

"응."

"좋아요. 그러면 잠깐만..."



카림은 서툰 손놀림으로 자신의 가슴 부위에 위치한 파워슈츠의 케이스를 열고 스위치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원래 오른팔에 부착되어있던 조작 계기판은 이미 날아가버렸기 때문에, 시간이 좀 더 들긴 해도 이 방법밖에 남아있지 않았던 것이었다.



"아앗?"

"어때요? 투시 화면으로 바뀌었죠?"

"으응.."

"좋아요. 그러면 주위를 둘러보세요. 공격 헬기가 어디에 있는지."

"으음.... 찾았다. 우리 머리 위에 있어. 185C. 50m라고 뜨는데?"

"좌표와 거리를 나타내는 거예요. 녀석, 아직 우리 상태를 잘 몰라서 경계하나 보군요."

"175C, 45m."

"조금씩 기웃거려보겠다는 건가..."

"140D, 30m"

"슬슬 오는군요."

"118C, 25m. 노란색으로 무슨 글자가 뜨는데?"

"저쪽도 우릴 포착했다는 뜻이예요. 빨간색으로 변하면 이야기 해줘요."

"93D, 23m.. 22m... 83E, 20m... 지금이야!."

"라져."

"파앙!"



카림의 짧은 대답과 함께, 그의 손에 쥐어져있던 펜에서 눈부신 빛이 폭발하듯 터져나왔다. 광학 라이플에 비하면 그다지 큰 범위를 커버하는 빛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충분히 강하고, 확실했다. 수천, 수만번이나 연습해서 이제는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진 좌표로의 사격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타겟 시스템이 추천한 최적의 표적 - 헬기 파일럿의 머리를 꿰뚫었고, 아무런 무기 반응도 나타나지 않아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접근하던 중무장 헬기는 결국 의외의 일격에 두뇌를 잃고 그대로 추락하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콰앙!"



격렬한 폭음을 들은 카림이 라제스에게 물었다.



"성공.. 한거죠?"

"그래! 완전히 날려버렸어!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진짜로 입증시켜 버린거야!"

"좋아요.. 그러면.. 후속부대가 올 때까지 여유는 좀 있을테니... 미안하지만 이제부터는 라제스 혼자 길을 뚫어야겠네요."

"무, 무슨소리야?"

"나.. 방금 그 공격으로 파워슈츠의 전원이 완전히 나가버렸어요. 전압이 안 맞았던 건가? 게다가..."



자신의 왼쪽 팔을 들어보이는 카림. 그러나 그곳에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있었던 왼손마저도 사라지고 없었다.



"펜이 폭발하면서 이쪽 손도 날아가버렸구요. 뭐, 어느정도는 예상했던 일이지만..."

"카림, 설마 그것때문에 일부러 네가 쏘겠다고 한거야? 너, 정말... 도대체..."



다시금 울먹거리기 시작하며 카림을 바라보는 라제스. 하지만 카림은 이제 완전히 앞이 보이지 않는지 라제스를 향해서가 아닌, 자신의 앞만 멍한 눈으로 응시한 채 입을 열었다.



"자, 어서 가요. 운이 좋으면 미르의 경계병들에게 들키지 않고 리우 웬과 접선할 수 있을거예요."

"하지만.. 너는?"

"저는 걱정하지 말라니까요."



조금씩 사그라드는 카림의 목소리. 하지만 라제스는 이와는 대조적인 높은 옥타브로 외치며 그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웃기지 마, 이자식아! 걱정하지 말라구? 이게 일이라구? 열 여섯살 짜리 꼬마가 세상 다 안다는 듯한 표정 지으면서 그따위 소리를 지껄이면 내가 '네, 그러시군요'라고 납득하며 물러설 줄 알았어? 자, 어서 일어나! 너도 함께 가는거야! 넌 내 경호원이잖아? 그런데 무슨 서비스가 이모양이야? 나도 돈을 빌려가며 의뢰한 거라구.. 나중에 돌아가면.... 흑... 흑흑.. 손해배상 청구.. 해버릴거야... 흑흑... 그러니까... 빨리 일어나란 말이야아아..."



처음엔 쩌렁쩌렁 울릴듯이 고함치던 목소리는 점점 줄어들더니, 결국엔 카림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며 우는 목소리로 바뀌어버렸다.



"헤헷. 겨우 벌어놓은 시간을... 이런 곳에서 낭비하지 말고 빨리 가세요."

"흑흑.. 그러니까.. 너도.."

"아아.. 절대 불가능이예요. 앞이 안보이는 것도, 출혈이 심한것도, 오른팔과 왼손이 사라진 것도 별 문제는 안되지만... 무엇보다도 이 파워슈츠, 무게단위가 톤 단위거든요. 지금처럼 일단 발전기가 나가버리면 구난차량이 오지 않는이상 움직일 수 없어요."

"그, 그런..."



라제스는 카림의 팔을 잡아끌다가 그 말을 듣고 다리에 힘이 빠진 듯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그러니까... 빨리 가라구요! 노처녀 히스테리 부리지 말고! 이러다가 추가 병력이 도착하면 둘 다 개죽음이라니까!"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며 카림이 소리쳤고, 이에 화들짝 놀란 라제스가 반사적으로 일어났다.



"그래요... 경호원의 말을 잘 들어야 착한 의뢰인이죠..."

"흑... 빌어먹을..."



라제스는 결국 눈물을 흘리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점점 멀어져가는 그녀의 발소리를 들으며, 카림은  거의 들리지 않는 희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뭐.. 이걸로 된거야.. 어디까지나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