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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문학관 - 작가 : nitrocity1
글 수 15
"정말로.. 괜찮아?"
"그렇다니까요. 이정도 쯤이야.. 문제없다구요."
걱정스럽게 묻는 라제스에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대답하는 카림. 그러나 허리에 감은 붕대 사이로 스며나온 붉은 흔적과 창백한 그의 표정은 별로 문제없어 보이지는 않았다.
쿠와르 군사방어체계의 철저한 무관심속에 복귀한 라제스와는 달리, 고속으로 이동하는 카림의 파워슈츠는 모든 적 함대를 박살내고 목표를 잃은 대공 방어망의 시선을 집중시켰고, 그 결과는 20여기의 요격 미사일과 전투기 편대가 그를 추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카림은 스타 파이터 편대가 도착하기 전에 미사일에 요격되어 추락했고, 박살난 부스터가 내뿜는 엄청난 화염을 본 파일럿들은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갤럭시 로테이션의 패잔병, 요격 완료. 생존 확률 제로'라는 통신을 날렸다.
승전의 기쁨에 들뜬 파일럿의 무관심 덕에 목숨을 건진 카림은, 그러나 부상 제로로 끝나지는 못한 채 파워슈츠의 부스터와 30%에 이르는 복합장갑의 손실, 그리고 옆구리 부분의 상당히 깊은 상처를 입는 것으로 댓가를 치뤄야만 했다.
간신히 호텔로 돌아온 그는 방 안에 들어서자마자 출혈과 통증으로 인해 쓰러졌고, 라제스가 성간 통신장비를 통해 5분만에 배운 응급조치가 기적적으로 먹혀들면서 그대로 16세 전쟁고아의 한많은 생을 마감했을지도 모르는 위기를 (비록 사흘정도는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치열한 접전을 펼쳐야 했지만) 간신히 넘길 수 있었다.
"그나저나, 이제부터는 어떻게 하지..."
"뭘 걱정해요? 전쟁은 끝났잖아요. 이제 오늘이나 내일 중으로 리우 웬의 스타파이터가 돌아올테니 그걸 타고 떠나면 끝이라구요."
"내가 아니라, 너 말이야. 그런 상처로 전투기에 탈 수 있겠어?"
"에에? 미안하지만 복귀하는 건 라제스 혼자예요. 저는 아직 이쪽에서의 정찰 임무가 남았다구요."
"무, 무슨 소리야! 그 몸으로 일을 계속한다는 거야? 그건 미친 짓이야!"
갑자기 흥분하며 나서는 라제스의 모습을 보며 카림은 얼굴을 찡그리며 상처를 매만졌다.
"아야야야... 소리 좀 지르지 말아요. 상처가 울린다구요."
"아, 미안.."
"그나저나 왜 그렇게 흥분하는 거예요? 별 일도 아닌데."
"별 일이 아니라니? 아무리 날림으로 살려낸 거라도 내가 구해낸 목숨이 곧바로 자살행위를 하겠다는데 말리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거지."
"헤에...? 뉴로다이브 전장분석반이라면서요? 그렇게 여린 마음씨를 가지고도 용케도 지금까지 살아남았네요."
"아니 뭐, 꼭 그렇다기보다는..."
"혹시... 설마..."
"뭐, 뭐야. 그 눈초리는..."
"혹시라도 앞날이 유망한 용병 하나 꼬셔서 어떻게 해볼생각이라면 포기하는게 좋아요. 난 연상의 여인은 관심 없으니까."
"라제스 펀치!"
"꾸에에에에에!"
강렬한 어퍼컷을 맞고 뻗어버린 카림을 보며 라제스가 말했다.
"나도 연하의 남자, 그것도 열 여섯살짜리 꼬맹이에게는 관심 없네요."
"으그그그... 그렇다고 환자를 때릴 것까지야.."
"뭐, 굳이 따지자면 사랑보다는 동정심이지. 길에서 주운 불쌍한 강아지를 치료해주고 생색내는 거라고나 할까."
"윽. 가...강아지..."
단번에 '앞날이 유망한 용병'에서 '상처입은 집없는 강아지'신세가 되어버린 카림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지만, 라제스는 아랑곳하지않고 말을 이었다.
"어쨌거나 아무리 전쟁이 끝났다고 해도 쿠와르는 여전히 분쟁지역이니까. 역시 다친 몸으로 남아있는 건 위험하다구. 내가 살려낸 목숨, 내가 책임진다! 알겠어? 카림? 내 말 듣고있는거야?"
"코오오오..."
"자는거야?"
"쿠우우울.."
"자는 척 하는 거겠지?"
"코오오오.."
"라제스 펀...!"
"아, 잘잤다!"
엄청난 살기에 화들짝 일어난 (실제로는 일어난 척이었지만) 카림이 황급히 변명했다.
"아아.. 배고파서 기운이 하나도 없네요. 우리 뭐라도 좋으니 먹으러 가죠?"
"아직 몸도 불편한데 움직이지 마. 내가 나가서 사올테니."
"라제스, 정말로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요.."
"뭔데?"
"지난 며칠동안 라제스가 만들어 준 음식을 먹었지만, 어떻게 하면 인스턴트 식품을 그렇게 맛없게 조리할 수 있는거죠? 단지 기계에 넣고 돌리는 것 뿐이잖아요. 그런데도 어쩌면 그렇게 맛없게 만들 수 있는건지, 정말이지 상처가 낫지 않는 이유중의 상당부분은 라제스의 요리솜씨 때문..."
"라제스 펀치!"
카림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옆구리의 상처 부분에서 느껴지는 강력한 통증에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고, 잠시 후 호텔 직원들은 볼이 퉁퉁 부은채로 로비를 나서는 핑크빛 머리의 안경잡이 아가씨와, 그 뒤를 비틀거리며 따라나서는 한 소년을 볼 수 있었다.
"아야야.. 정말 너무한 것 아니예요? 환자를 그렇게 두들겨 패다니."
길거리의 초라한 야외 음식점에 자리를 잡은 카림은 상처를 부여잡으며 엄살을 떨었다. 하지만 라제스는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냉랭하게 쏘아붙였다.
"그래도 난생 처음 해보는 요리치곤 그정도면 잘 하는 거 아니야? 벌 받는다구, 남의 성의를 무시하면."
"성의인지 악의인지.."
"뭐라구?"
"아, 아무것도 아니예요. 그나저나, 뭐 먹을래요?"
"글쎼.. 쿠와르의 요리는 별로 먹어본 적이 없어서.."
그러나 메뉴판을 두고 고민하기 시작한 라제스를 도와주기라도 하려는 듯이, 다채로운 색깔의 싱싱한 샐러드를 하나 가득 담은 접시가 탁자 위로 놓여졌다. 카림은 의아한 표정으로 샐러드를 서빙한, 귀여운 웨이트리스 복장의 꼬마아이에게 말했다.
"저, 우리는 아직 아무것도 주문하지 않았는데?"
"승전 기념으로 서비스하는 거야. 그나저나 오래간만이네 오빠."
"아아.. 그동안 일 떄문에 좀 바빴거든."
"응.. 그런데 이쪽은 누구?"
"아아, 이 사람은..."
"아, 알겠다. 오빠네 엄마구나."
"빠직"
"앗, 가, 갑자기 배가 무지하게 고프네! 내가 언제나 먹던 걸로 두개. 빨리빨리!"
황급하게 꼬마 웨이트리스를 밀어낸 카림은 식은땀을 흘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금이 가서 물이 새기 시작하는 컵을 손에 든 라제스가 살기어린 표정을 띄고 있었다.
"도대체, 뭐야... 저 꼬마는?"
"이 음식점 주인 아저씨의 딸이예요. 집안 일 돕겠다고 나섰는데 의외로 인기가 있어서 이 거리의 명물이 되었다더군요."
"기껏해야 열 두살이나 열 세살정도밖에 안되어보이는데."
"일을 돕는 건 둘째치고 귀여우니까요. 광고 효과 하나는 확실하죠."
"헤에? 아는 사이야?"
"라제스의 호위 임무를 맡기 전에는 종종 이곳에 들러서 식사하곤 했으니까요."
"혹시.. 설마..."
"뭐, 뭡니까. 그 의혹의 눈초리는."
"혹시라도 장래성이 보이는 꼬마아이 하나 잘 꼬셔서 어떻게든 엮어보려는 것 아니야? 왜, 있잖아. '키워서 잡아먹는다'고 하던가?"
"복수인가요."
"화풀이라고 해두지."
조금은 기분이 나아진 라제스는 샐러드에서 젤리처럼 투명한 노란색 과육을 포크로 건져 올리며 말했다.
"음.. 이게 그 유명한 리오라는 건가. 그러고보니 한번도 못먹어봤네."
"에에? 한번도 먹어본 적 없는 거예요?"
"워낙 비싼 과일이니까. 쿠와르에 도착한 이후로는 시간이 없었고. 다행히 이곳을 떠나기 전에 기회가 생기네."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리오를 잠시 감상하던 라제스는 곧바로 신중하게 맛을 보기 시작했다.
"음... 맛있어. 확실히.. 이건 마치.. 뭐라고 해야할까.. 달콤하면서도.. 음..."
"하핫. 다른 과일로 리오의 맛을 묘사한다는 건 무리라구요. 다른 어떤 과일과도 비슷한 부분이 없는 맛을 갖고있기 때문에 그렇게 고급 과일로 분류되는 건데요."
"그런가...확실히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독특하고 맛있는 과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것 때문에 피를 흘리며 싸우기까지 해야하는 걸까나. 이해불가능이야."
"사람들의 '가치부여'라는 건 원래 이해불가능의 영역이니까요."
"그건 그래."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라제스는 다시 분주하게 포크를 움직였고, 모종의 위기감을 느낀 카림 역시 이에 질세라 본격적으로 샐러드에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경쟁적으로 그 많던 샐러드를 다 먹어치운 두 사람의 '전투식사'모드는 각자의 앞에 정식 요리가 서빙될때까지 계속되었다.
"하아.. 그나저나 여기 앉아서 이렇게 여유롭게 밥을 먹고 있으니까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곳이 전쟁터였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아."
"전쟁이라는 게 다 그렇죠. 마치 격렬한 운동을 하고 난 후에 지쳐서 숨을 몰아쉬듯이, 전쟁이 끝난 후의 전쟁터는 항상 이런 분위기예요. 허무한 기쁨과 지친 슬픔이 공존하는 허전한 공간이죠."
"흠.. 무슨 시인같아."
"전쟁터를 돌아다니면서 느낀 걸 그대로 말했을 뿐이예요. 일단 전투가 끝나고 나면 예전과 같으면서도 어딘가 다른, 그런 고요한 분위기가 흐르거든요, 주위를 한번 둘러 보세요. 전쟁 전과 똑같은 풍경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상처를 간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바쁘게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 여전히 하늘높이 솟아있는 건물들, 쉴새없이 지나다니는 자동차들, 여전히 눈부신 태양과 찌는듯한 더위, 쉘터 너머로 보이는 사막, 푸른 하늘, 그리고 그 하늘을 한가득 수놓는.... 미사일?!"
주변을 둘러보며 한가롭게 말을 하던 카림은 마지막으로 시선을 돌린 하늘에서 수십기의 미사일을 보며 경악을 금치못했다.
"이럴수가! 설마 그렇게 당하고도 또 갤럭시 로테이션이?! 아니야.. 저 미사일 형태는... 미르?! 미르의 미사일? 직접 나섰다는 건가!"
"하지만 이상한걸. 이 도시의 요격체계를 뚫기 위해서는 미사일 정도로는 안될텐데?"
"하긴, 100% 요격할 자신이 있으니까 경계 경보도 울리지 않겠지만 말이죠."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튼튼한 방어체계를 입증시켜주겠다는 듯이 도심 곳곳에서 요격 미사일과 대공포가 불을 뿜었다. 먹이를 향해 정확하게 달려드는 요격 미사일과 무시무시한 양의 탄환을 비처럼 뿌려대는 대공포화의 빈틈없는 대공방어망이 펼쳐졌고, 이 때문에 2~30여개에 이르던 미사일은 쉘터에 도달하기도 전에 모조리 요격당하며 그 잔해를 공중에 흩뿌렸다.
"거 봐. 안된다니까?"
"하지만 이상한데요. 폭발도 그다지 크지 않은 것으로 봐서는 폭약이 아니라 다른 것을 실어나르던 미사일 같은데.. 아무런 목적도 없이 저렇게 미사일을 낭비하지는 않았을테고.. 설마!"
자신의 생각에 경악한 카림은 황급히 품 속에서 기계를 꺼내 뭔가를 입력했다. 그리고 그 결과를 본 후 나오는 안도의 한숨.
"후우.. 그럼 그렇지. 미치지 않고서야 그걸 쓸리가 없겠지."
"왜? 도대체 뭔데?"
"아, 혹시나 해서 생화학무기 반응을 검사해본 거예요. 다행히 아무런 변화도 없군요."
"당연하지. 쉘터의 공기정화 필터를 거쳐서 들어올 수 있는 화학무기는 없으니까."
"그러면 도대체 무엇때문에 저런 쓸모없는 짓을 한걸까요?"
"글쎄. 단순히 위협용 무력시위였을지도. 지속적으로 이런 식의 도발을 하면 아무래도 외부 자본이 들어오긴 힘들테고, 쿠와르의 발전 속도도 그만큼 늦어질테니까. 미르 사의 입장에선 못 먹는 떡에 재나 뿌린다는 걸까."
"흐음.. 하지만 미사일 공격에 소모되는 비용을 감안하면 손해보기가 쉬울..."
"챙그랑!"
카림과 라제스의 심각한 대화는 그릇 깨지는 소리에 방해를 받으며 끝났다.
"아, 저런저런. 그러니까 조심하라고 했잖아. 괜찮아?"
황급하게 달려가며 꼬마 웨이트리스를 부축하려던 카림은, 그러나 잠시 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자고있어?"
"그렇다니까요. 이정도 쯤이야.. 문제없다구요."
걱정스럽게 묻는 라제스에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대답하는 카림. 그러나 허리에 감은 붕대 사이로 스며나온 붉은 흔적과 창백한 그의 표정은 별로 문제없어 보이지는 않았다.
쿠와르 군사방어체계의 철저한 무관심속에 복귀한 라제스와는 달리, 고속으로 이동하는 카림의 파워슈츠는 모든 적 함대를 박살내고 목표를 잃은 대공 방어망의 시선을 집중시켰고, 그 결과는 20여기의 요격 미사일과 전투기 편대가 그를 추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카림은 스타 파이터 편대가 도착하기 전에 미사일에 요격되어 추락했고, 박살난 부스터가 내뿜는 엄청난 화염을 본 파일럿들은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갤럭시 로테이션의 패잔병, 요격 완료. 생존 확률 제로'라는 통신을 날렸다.
승전의 기쁨에 들뜬 파일럿의 무관심 덕에 목숨을 건진 카림은, 그러나 부상 제로로 끝나지는 못한 채 파워슈츠의 부스터와 30%에 이르는 복합장갑의 손실, 그리고 옆구리 부분의 상당히 깊은 상처를 입는 것으로 댓가를 치뤄야만 했다.
간신히 호텔로 돌아온 그는 방 안에 들어서자마자 출혈과 통증으로 인해 쓰러졌고, 라제스가 성간 통신장비를 통해 5분만에 배운 응급조치가 기적적으로 먹혀들면서 그대로 16세 전쟁고아의 한많은 생을 마감했을지도 모르는 위기를 (비록 사흘정도는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치열한 접전을 펼쳐야 했지만) 간신히 넘길 수 있었다.
"그나저나, 이제부터는 어떻게 하지..."
"뭘 걱정해요? 전쟁은 끝났잖아요. 이제 오늘이나 내일 중으로 리우 웬의 스타파이터가 돌아올테니 그걸 타고 떠나면 끝이라구요."
"내가 아니라, 너 말이야. 그런 상처로 전투기에 탈 수 있겠어?"
"에에? 미안하지만 복귀하는 건 라제스 혼자예요. 저는 아직 이쪽에서의 정찰 임무가 남았다구요."
"무, 무슨 소리야! 그 몸으로 일을 계속한다는 거야? 그건 미친 짓이야!"
갑자기 흥분하며 나서는 라제스의 모습을 보며 카림은 얼굴을 찡그리며 상처를 매만졌다.
"아야야야... 소리 좀 지르지 말아요. 상처가 울린다구요."
"아, 미안.."
"그나저나 왜 그렇게 흥분하는 거예요? 별 일도 아닌데."
"별 일이 아니라니? 아무리 날림으로 살려낸 거라도 내가 구해낸 목숨이 곧바로 자살행위를 하겠다는데 말리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거지."
"헤에...? 뉴로다이브 전장분석반이라면서요? 그렇게 여린 마음씨를 가지고도 용케도 지금까지 살아남았네요."
"아니 뭐, 꼭 그렇다기보다는..."
"혹시... 설마..."
"뭐, 뭐야. 그 눈초리는..."
"혹시라도 앞날이 유망한 용병 하나 꼬셔서 어떻게 해볼생각이라면 포기하는게 좋아요. 난 연상의 여인은 관심 없으니까."
"라제스 펀치!"
"꾸에에에에에!"
강렬한 어퍼컷을 맞고 뻗어버린 카림을 보며 라제스가 말했다.
"나도 연하의 남자, 그것도 열 여섯살짜리 꼬맹이에게는 관심 없네요."
"으그그그... 그렇다고 환자를 때릴 것까지야.."
"뭐, 굳이 따지자면 사랑보다는 동정심이지. 길에서 주운 불쌍한 강아지를 치료해주고 생색내는 거라고나 할까."
"윽. 가...강아지..."
단번에 '앞날이 유망한 용병'에서 '상처입은 집없는 강아지'신세가 되어버린 카림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지만, 라제스는 아랑곳하지않고 말을 이었다.
"어쨌거나 아무리 전쟁이 끝났다고 해도 쿠와르는 여전히 분쟁지역이니까. 역시 다친 몸으로 남아있는 건 위험하다구. 내가 살려낸 목숨, 내가 책임진다! 알겠어? 카림? 내 말 듣고있는거야?"
"코오오오..."
"자는거야?"
"쿠우우울.."
"자는 척 하는 거겠지?"
"코오오오.."
"라제스 펀...!"
"아, 잘잤다!"
엄청난 살기에 화들짝 일어난 (실제로는 일어난 척이었지만) 카림이 황급히 변명했다.
"아아.. 배고파서 기운이 하나도 없네요. 우리 뭐라도 좋으니 먹으러 가죠?"
"아직 몸도 불편한데 움직이지 마. 내가 나가서 사올테니."
"라제스, 정말로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요.."
"뭔데?"
"지난 며칠동안 라제스가 만들어 준 음식을 먹었지만, 어떻게 하면 인스턴트 식품을 그렇게 맛없게 조리할 수 있는거죠? 단지 기계에 넣고 돌리는 것 뿐이잖아요. 그런데도 어쩌면 그렇게 맛없게 만들 수 있는건지, 정말이지 상처가 낫지 않는 이유중의 상당부분은 라제스의 요리솜씨 때문..."
"라제스 펀치!"
카림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옆구리의 상처 부분에서 느껴지는 강력한 통증에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고, 잠시 후 호텔 직원들은 볼이 퉁퉁 부은채로 로비를 나서는 핑크빛 머리의 안경잡이 아가씨와, 그 뒤를 비틀거리며 따라나서는 한 소년을 볼 수 있었다.
"아야야.. 정말 너무한 것 아니예요? 환자를 그렇게 두들겨 패다니."
길거리의 초라한 야외 음식점에 자리를 잡은 카림은 상처를 부여잡으며 엄살을 떨었다. 하지만 라제스는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냉랭하게 쏘아붙였다.
"그래도 난생 처음 해보는 요리치곤 그정도면 잘 하는 거 아니야? 벌 받는다구, 남의 성의를 무시하면."
"성의인지 악의인지.."
"뭐라구?"
"아, 아무것도 아니예요. 그나저나, 뭐 먹을래요?"
"글쎼.. 쿠와르의 요리는 별로 먹어본 적이 없어서.."
그러나 메뉴판을 두고 고민하기 시작한 라제스를 도와주기라도 하려는 듯이, 다채로운 색깔의 싱싱한 샐러드를 하나 가득 담은 접시가 탁자 위로 놓여졌다. 카림은 의아한 표정으로 샐러드를 서빙한, 귀여운 웨이트리스 복장의 꼬마아이에게 말했다.
"저, 우리는 아직 아무것도 주문하지 않았는데?"
"승전 기념으로 서비스하는 거야. 그나저나 오래간만이네 오빠."
"아아.. 그동안 일 떄문에 좀 바빴거든."
"응.. 그런데 이쪽은 누구?"
"아아, 이 사람은..."
"아, 알겠다. 오빠네 엄마구나."
"빠직"
"앗, 가, 갑자기 배가 무지하게 고프네! 내가 언제나 먹던 걸로 두개. 빨리빨리!"
황급하게 꼬마 웨이트리스를 밀어낸 카림은 식은땀을 흘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금이 가서 물이 새기 시작하는 컵을 손에 든 라제스가 살기어린 표정을 띄고 있었다.
"도대체, 뭐야... 저 꼬마는?"
"이 음식점 주인 아저씨의 딸이예요. 집안 일 돕겠다고 나섰는데 의외로 인기가 있어서 이 거리의 명물이 되었다더군요."
"기껏해야 열 두살이나 열 세살정도밖에 안되어보이는데."
"일을 돕는 건 둘째치고 귀여우니까요. 광고 효과 하나는 확실하죠."
"헤에? 아는 사이야?"
"라제스의 호위 임무를 맡기 전에는 종종 이곳에 들러서 식사하곤 했으니까요."
"혹시.. 설마..."
"뭐, 뭡니까. 그 의혹의 눈초리는."
"혹시라도 장래성이 보이는 꼬마아이 하나 잘 꼬셔서 어떻게든 엮어보려는 것 아니야? 왜, 있잖아. '키워서 잡아먹는다'고 하던가?"
"복수인가요."
"화풀이라고 해두지."
조금은 기분이 나아진 라제스는 샐러드에서 젤리처럼 투명한 노란색 과육을 포크로 건져 올리며 말했다.
"음.. 이게 그 유명한 리오라는 건가. 그러고보니 한번도 못먹어봤네."
"에에? 한번도 먹어본 적 없는 거예요?"
"워낙 비싼 과일이니까. 쿠와르에 도착한 이후로는 시간이 없었고. 다행히 이곳을 떠나기 전에 기회가 생기네."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리오를 잠시 감상하던 라제스는 곧바로 신중하게 맛을 보기 시작했다.
"음... 맛있어. 확실히.. 이건 마치.. 뭐라고 해야할까.. 달콤하면서도.. 음..."
"하핫. 다른 과일로 리오의 맛을 묘사한다는 건 무리라구요. 다른 어떤 과일과도 비슷한 부분이 없는 맛을 갖고있기 때문에 그렇게 고급 과일로 분류되는 건데요."
"그런가...확실히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독특하고 맛있는 과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것 때문에 피를 흘리며 싸우기까지 해야하는 걸까나. 이해불가능이야."
"사람들의 '가치부여'라는 건 원래 이해불가능의 영역이니까요."
"그건 그래."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라제스는 다시 분주하게 포크를 움직였고, 모종의 위기감을 느낀 카림 역시 이에 질세라 본격적으로 샐러드에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경쟁적으로 그 많던 샐러드를 다 먹어치운 두 사람의 '전투식사'모드는 각자의 앞에 정식 요리가 서빙될때까지 계속되었다.
"하아.. 그나저나 여기 앉아서 이렇게 여유롭게 밥을 먹고 있으니까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곳이 전쟁터였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아."
"전쟁이라는 게 다 그렇죠. 마치 격렬한 운동을 하고 난 후에 지쳐서 숨을 몰아쉬듯이, 전쟁이 끝난 후의 전쟁터는 항상 이런 분위기예요. 허무한 기쁨과 지친 슬픔이 공존하는 허전한 공간이죠."
"흠.. 무슨 시인같아."
"전쟁터를 돌아다니면서 느낀 걸 그대로 말했을 뿐이예요. 일단 전투가 끝나고 나면 예전과 같으면서도 어딘가 다른, 그런 고요한 분위기가 흐르거든요, 주위를 한번 둘러 보세요. 전쟁 전과 똑같은 풍경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상처를 간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바쁘게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 여전히 하늘높이 솟아있는 건물들, 쉴새없이 지나다니는 자동차들, 여전히 눈부신 태양과 찌는듯한 더위, 쉘터 너머로 보이는 사막, 푸른 하늘, 그리고 그 하늘을 한가득 수놓는.... 미사일?!"
주변을 둘러보며 한가롭게 말을 하던 카림은 마지막으로 시선을 돌린 하늘에서 수십기의 미사일을 보며 경악을 금치못했다.
"이럴수가! 설마 그렇게 당하고도 또 갤럭시 로테이션이?! 아니야.. 저 미사일 형태는... 미르?! 미르의 미사일? 직접 나섰다는 건가!"
"하지만 이상한걸. 이 도시의 요격체계를 뚫기 위해서는 미사일 정도로는 안될텐데?"
"하긴, 100% 요격할 자신이 있으니까 경계 경보도 울리지 않겠지만 말이죠."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튼튼한 방어체계를 입증시켜주겠다는 듯이 도심 곳곳에서 요격 미사일과 대공포가 불을 뿜었다. 먹이를 향해 정확하게 달려드는 요격 미사일과 무시무시한 양의 탄환을 비처럼 뿌려대는 대공포화의 빈틈없는 대공방어망이 펼쳐졌고, 이 때문에 2~30여개에 이르던 미사일은 쉘터에 도달하기도 전에 모조리 요격당하며 그 잔해를 공중에 흩뿌렸다.
"거 봐. 안된다니까?"
"하지만 이상한데요. 폭발도 그다지 크지 않은 것으로 봐서는 폭약이 아니라 다른 것을 실어나르던 미사일 같은데.. 아무런 목적도 없이 저렇게 미사일을 낭비하지는 않았을테고.. 설마!"
자신의 생각에 경악한 카림은 황급히 품 속에서 기계를 꺼내 뭔가를 입력했다. 그리고 그 결과를 본 후 나오는 안도의 한숨.
"후우.. 그럼 그렇지. 미치지 않고서야 그걸 쓸리가 없겠지."
"왜? 도대체 뭔데?"
"아, 혹시나 해서 생화학무기 반응을 검사해본 거예요. 다행히 아무런 변화도 없군요."
"당연하지. 쉘터의 공기정화 필터를 거쳐서 들어올 수 있는 화학무기는 없으니까."
"그러면 도대체 무엇때문에 저런 쓸모없는 짓을 한걸까요?"
"글쎄. 단순히 위협용 무력시위였을지도. 지속적으로 이런 식의 도발을 하면 아무래도 외부 자본이 들어오긴 힘들테고, 쿠와르의 발전 속도도 그만큼 늦어질테니까. 미르 사의 입장에선 못 먹는 떡에 재나 뿌린다는 걸까."
"흐음.. 하지만 미사일 공격에 소모되는 비용을 감안하면 손해보기가 쉬울..."
"챙그랑!"
카림과 라제스의 심각한 대화는 그릇 깨지는 소리에 방해를 받으며 끝났다.
"아, 저런저런. 그러니까 조심하라고 했잖아. 괜찮아?"
황급하게 달려가며 꼬마 웨이트리스를 부축하려던 카림은, 그러나 잠시 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자고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