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연재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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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28
이른아침, 원진은 곽선생과 함께 탄광 발파작업에 쓰일 폭약을 구입하기 위해 하얼빈 시내로 가기로 되어있었다.
준비를 마친 곽선생은 원진과 함께 출발하기위해 원진의 거처를 찾아갔다.
"준비는 다 마쳤습니까?"
"네, 곽선생님."
"그럼 천천히 출발합시다."
곽선생은 트럭의 운전석에, 원진은 조수석에 앉아 시내를 향해 출발했다.
원진은 마음속에 뭔가 걸리는게 있는 듯 곽선생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그, 유창이라는 친구 말입니다."
"유창이요? 그친구 너무 신경쓰지 않아도 됩니다. 그 친구 낯가림이 좀 심해서 그렇지 본심은 착한 친구예요.
"네......그저 저는 모든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고 친해지고 싶을 뿐입니다. 물론 그 유창이라는 친구와도 친해지고 싶구요."
"뭐, 제가 나중에 한번 잘 타일러 보겠습니다."
트럭은 어느새 시내로 접어들고 있었다.
최근 항일 무장운동이 활발해지면서 일본군은 다이너마이트 소지 단속에 더욱 고삐를 조이고 있었다.
하지만 몇몇 사례의 경우 일본군에게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다이너마이트 밀거래를 묵인해 주는 경우도 있었는데, 바로 지금 곽선생과 원진이 하려는 일이 바로 그러한 경우가 될 것이다.
"아이고, 다케우치 상등병 아닙니까? 아, 병장으로 진급을 하였군요? 수고가 많습니다."
"아, 곽선생님! 이거 오랜만에 뵙습니다."
곽선생은 상점 앞을 지키고 있는 군인한테 일본군에서 임시로 발행한 허가증을 보여주고 상점 안으로 들어섰다.
원진 역시 곽선생의 뒤를 따라 들어가려 하였으나 일본군 병사가 그의 앞을 막아섰다.
"가만가만......처음......보는 얼굴인데?"
"아, 이 사람은 조씨네 아들인데, 저기 산시성에 일하러 갔다가 모처럼 휴가내어 집으로 와서 간만에 하얼빈 시내 구경도 하고싶다고 해서......뭐 한 근 5년만에 귀향이죠? 아마?"
곽선생의 말에 머리가 복잡해진 듯 병사는 머리를 긁적이며 원진을 건물 안으로 들여보내었다.
"뭐......5년이면 내가 여기 없었을 때인데......고등학교 다닐 때였나? 알게뭐야? 어차피 곽선생님이 보증해준 사람인데......"
그렇게 건물안으로 무사 통과한 원진은 곽선생을 따라 건물 깊숙히 들어갔다.
"저기 보이는 저 문이 우리가 다이너마이트를 구입하는 창고 문이요. 앞으로 계속 이곳을 들르게 될테니 오는 길을 잘 외워두시오. 그리고 허가증은 조중태라는 이름으로 3일 후에 지급될 것이오."
"네, 잘 알겠습니다."
같은시각 건물 밖을 지키던 병사는 문 밖 누군가를 향해 경례를 하였다.
"근무중 이상 없습니다!"
"음......지금 전방 기병대 꽁무니나 쫒아다니는 공병 녀석들이 이번에 보급된 폭약이 부족하다 해서 말이야......여기 주인장하고 사제폭약지급에 관해 논의하러 왔는데, 주인장 계시나?"
"네, 지금 손님이 와서......안에 계실 껍니다."
"음......그럼 들어가서 만나면 되겠군."
문 밖의 인물이 문 안으로 들어서자, 어두침침한 건물 안을 비추던 백열등에 그 얼굴이 드러났다.
그는 다름아닌 가토였다.
한편, 창고 안에서는 상점 주인이 원진과 곽선생에게 폭약 상자를 보여주며 가격을 흥정하고 있었다.
"10년단골인데 좀 싸게 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아니, 우리도 먹고살아야지, 요즘 항일무장 투쟁이다 뭐다 일들이 많이 터지는지라, 다이너마이트 판매에 세금이 높아져서 우리 상인들도 남는게 없는걸 낸들 어떻하라는거요."
"뭐 외상을 한다는게 아니라, 평소처럼 돈을 주고 구입을 하겠다는데......아니, 어떻게 한달만에 다이너마이트 값이 2배로 뛰어오른단 말입니까?"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따질거면 일본 당국이나 만주 정부에 가서 따지든지 하쇼. 아니면, 다른 가게 알아보시던가......"
"주인장, 정말 이러기요? 그래도 주인장과 친분이 있어서 찾아왔는데......"
"그 세금 눈감아 드리죠."
한창 흥정중인 곽선생과 상점주인 뒤로 한 남자가 말문을 열었다.
"그, 세금 내가 눈감아 드린다니까......"
"아니, 중좌님께서 어인일로......"
원진 역시 얼떨결에 그 장교의 얼굴을 보았다.
처음보는 듯 했으나 어딘지 낯설지가 않은 얼굴이었다.
"뭐하고 있소? 세금 눈감아 드린다니까......거기 두 사람은 어서 거래 빨리 끝내고 일들 보시오. 주인장은 뭐하고 있소?"
"아......예......"
곽선생은 호주머니에서 돈봉투를 꺼내어 잠시 돈을 세어본 후 주인장에게 건넸다.
"액수는 저번과 동일한 액수요. 그럼 한 상자 들고나가도 되지요?"
"뭐......그러시구려......"
곽선생과 원진은 큰 다이너마이트 상자 하나를 양쪽으로 나눠들고 상점 밖으로 나가려하였다.
그때 상자가 너무 커서인지 원진은 나가려다가 가토와 부딪히게 되었다.
"죄......죄송합니다."
"워 이사람이, 조심하지 않고는......"
상자를 들고 나가는 원진을 바라보며 가토는 혀를 끌끌 찼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조심성이 없어서 탈이야!"
그때 가토의 머릿속에 뭔가 스치고 지나가는 상이 하나 떠올랐다.
"이상하다......처음봤는데 웬지 낯설지가 않아......"
"뭐가 말입니까?"
주인장의 말에 가토는 환상에 깨어난 듯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 아무것도 아니오. 내가 여기를 찾아온것은 다름이 아니고......"
가토는 주인장의 귀에대고 귓속말로 무언가를 말해주었다.
"아, 아니! 그렇게 많은 양을......"
"쉿! 조용히 하시오. 누가 듣겠소이다."
"하지만 그 많은 양은 이곳 하얼빈 상점을 다 털어놔도 구할 수가......"
상인이 부정적인 말을 하자 가토의 표정이 싸늘하게 변하면서 살짝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럼......장사를 그만 두시겠다? 대 일본 제국이 세금을 눈감아 주겠다는데, 여기 주인장은, 제국을 위해 그정도 노력은 하지 않으시겠다?"
"아......하지만......"
"아까 나간 사람들 다이너마이트 반상자 값에 한 상자 들고나가던데......이걸 상부에 보고한다면......"
"아......노력하겠습니다. 최대한 노력해 보겠습니다."
"내가 원하는 대답은 이게 아닌데......"
"아......하겠습니다! 하고 말구요! 누구 명령이신데......"
"좋소! 그럼 내 천사장만 믿고 가겠소."
"감사합니다.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만세! 만세!"
상점 주인은 가토앞에 무릎을 꿇고 만세를 부르며 눈물을 흘리며 벌벌 기어댔다.
가토는 다시한번 자신이 승리한 듯 멋쩍어하며 상점 밖을 빠져나갔다.
"역시 세상에 돈과 권력을 대체할 무언가는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