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연재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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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28
"여기가 어디지?"
윈진은 길을 잃은 듯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신의 주변 건물들은 불타고 있었고, 주변의 사람들은 불을 끄기위해 물동이를 들고 이리저리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중이었다.
"이보시오. 말좀 물읍시다. 이보시오!"
하지만, 사람들은 그의 말을 듣지 못한 듯, 아니면 들으려 하지 않는 듯 정신없이 뛰어다니기만 하였다.
"그래, 임시정부......임시정부로 가야해!"
원진은 자신이 어느방향으로 가고있는지도 모른채 무조건 불을 피해 달리기 시작했다.
한참을 정신없이 달렸을까? 어느덧 불길이 치솟던 건물들과 바쁘게 움직이던 사람들은 사라지고, 인기척도 없는 깜깜한 어둠만이 그를 감싸고 있었다.
"이곳은 대체 어디지? 이보시오. 거기 아무도 없소?"
그때 원진의 눈 안에 웬 사람의 형상이 들어왔다. 원진은 다짜고짜 달려가 그를 붙잡아 세웠다.
"저기 말좀 물읍시다."
"정......원......진......기다리고 있었다."
그 정체불명의 남자가 뒤돌아 본 순간 탕! 하는 소리와 함께 큰 충격이 왔다.
"허억! 헉......"
잠에서 깬 원진은 온 몸이 식은땀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꿈인지 현실인지 아직도 분간을 못하는 원진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원진의 주변에는 어느 군 소속인지 모를 이상한 복장의 지저분하게 생긴 사내들이 쭈그리고 앉아 원진의 행색을 비웃고 있었다.
몇시간 전 정신을 잃었던 원진은 공산당을 상징하는 붉은 별 마크가 찍힌 장갑차 안에서 잠이 들어버렸다.
그동안 누적되었던 피로감이 한번에 폭발하는 듯 자신도 모르게 깊은 잠의 세계로 빠져든 것이다.
악몽은 그 달콤하고 깊은 원진의 수면을 일순간에 박살내버렸다.
그때 장갑차가 멈추면서 누군가가 장갑차 옆을 때리는 듯 퉁퉁하는 소리가 들렸다.
"자, 모두 나와! 즐거운 집이다."
원진이 이상한 사내들에게 끌려 내려왔을때 그가 본 광경은 화전으로 일군 산기슭의 밭들과, 작고 한가로운 마을이었다.
주변 자연 역시 얼마 전 물 한모금 없던 사막과는 전혀 다른, 마을 주변으로 울창한 숲이 있었고, 그 숲 나무들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하지만 전체적인 마을의 첫 인상과는 정 반대로 총을 든 사내들이 마을을 순찰하고 있었다.
장갑차에서 사람들이 다 내리자, 장갑차들은 다시 산속 어디론가 사라졌다.
"자, 어서가자! 두령님께서 기다리고 계신다."
"넌 날 따라와."
이상한 복장의 사내들은 마을의 가장 큰 건물 쪽으로 걸어갔고, 그 사내들 사이에서 원진을 끌고왔던 국민당군 대대장의 모습도 보였다.
원진은 두명의 사내들에게 들려 어느 돼지우리 비슷한 건물쪽으로 끌려갔다.
그 건물은 겉보기에는 돼지 우리와 같았지만, 임시로 만들어 놓은 감옥이었다.
감옥 안에 갇힌 사람들은 일본군 복장을 한 사내들과, 국민당군 복장을 한 사람들, 심지어는 백인들까지 다양했다.
"신참인가 보군......이곳은 아무도 빠져나갈 수 없지. 왜냐구? 일본군이건 국민당이건, 공산당이건 아무도 이곳을 발견하지 못했거든. 설령 이곳을 탈출한다고 하더라도 길을 잃고 헤매다가 놈들의 순찰병들에게 붙잡혀서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기 쉽상이지. 이곳은 저놈들 세상이니까......"
일본인 포로 중 한명이 입을 열자 주변의 일본군 포로들은 전부 고개를 끄덕였다.
"보기에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은 허름한 돼지우리처럼 보이지만, 이래뵈도 튼튼한 소나물르 베어 만든 감옥이야. 이곳에서는 이 감옥을 부술 수 있는 힘이나 도구를 가진 사람이 없지."
포로들이 너도 나도 감옥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 지키고 있던 사람이 시끄럽다는 듯 감옥 문을 소총 개머리판으로 몇번 쳐댔다.
"시끄러! 얼마 살지도 못할 녀석들이 말들이 아주 많아요."
그때 한 사람이 감옥을 찾아와 감옥을 지키는 사람에게 무언가 말을 전했다.
그러자 감옥을 지키는 사람이 감옥 안을 향해 소리쳤다.
"이봐 신참! 어서 나와!"
원진이 아무 반응이 없자, 감옥을 지키는 사람은 감옥문을 열고 원진을 강제로 끌어내었다.
"왜? 죽는게 두렵나보지? 히히. 하지만 걱정마라. 죽는일은 아니다. 뭔일인지는 가 보면 알거 아니야?"
원진은 총을 든 괴한 몇명에게 붙들려 마을 중앙 큰 건물까지 끌려갔다.
건물 안으로 붙들려 들어간 원진은 괴한들에 의해 강제로 바닥에 꿇어앉혀졌다.
"그래, 이놈이 이번에 새로 붙잡은 포로란 말인가?"
원진이 고개를 들어 말을 한 사내를 보려고 하자, 괴한들은 원진의 머리를 눌러 고개를 들지 못하게 하였다.
"이자식이 어딜 감히!"
"아 아. 그냥 놔둬."
우두머리로 보이는 남자가 지시를 하자, 괴한들은 원진에게서 한발짝 떨어졌다.
원진이 고개를 들어 그 우두머리를 봤을때 처음에 깜짝 놀랐다. 가슴에 약장과 훈장이 달린 일본군 고급 장교의 상의를 걸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약간 길게 늘어진 수염과 다듬어지지 않은 헝클어진 머리, 이마에 중범죄자임을 상징하는 글씨가 새겨진 인두자국이 나 있는 것으로 봐서는 확실히 일본군은 아니었다.
그가 쓰고있는 모자 역시 일본군의 것은 아니었다. 원진이 보기에는 처음 본 생소한 물건이었지만, 그것은 영국 해군 장교의 것이었다.
그 우두머리의 의자 뒤에는 일본군 장교에게서 노획한 것으로 추정되는 일본군도 몇개가 엉성하게 만들어진 장식대에 놓여져 있었고, 의자 뒤 벽면에는 각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 미국, 중국 국민당 등 군대의 군기들이 걸려있었다.
그의 부하들 복장 역시 벽에 걸린 군기들 만큼이나 다양한 나라의 복장을 하고있었다.
그들의 우스꽝 스러운 수염과 지저분한 머리행색, 꾀죄죄한 몰골들은 복장들과 어울리지 않는듯, 어울리는 묘한 풍경이 연출되었다.
"그래, 이번 작전이 성공을 거두었으니 약속대로 우리를 공산군에 정식적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해 주시구려."
우두머리가 말을 하자, 건물 어두운 한켠에서 누군가가 걸어나왔다. 그 국민당군 대대장이었다.
"일단 공산당 측에 연통은 해 보겠소이다."
"가능하면 빨리 들어갈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 주시오. 일본군과 국민당 녀석들 생각하면 아직도 이빨이 다 나가도록 분이 풀리지 않소..."
우두머리는 잔뜩 화가 난 듯 자리에서 일어나 이를 갈며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 아 진정하시오. 내 그렇게 해 드리리다."
국민당군 대대장은 그를 가까스로 진정시켜 다시 자리에 앉혔다.
"끄응......"
억지로 화를 억누른 우두머리는 영국군 장교에게서 노획한 듯한 고급 본차이나 주전자에 담긴 물을 화려한 도자기 커피잔에 따라 마시고는 원진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래, 네놈 이름은 무엇인고?"
한편, 무한을 떠나 만주로 향하던 일본군 보충병력은 수일간에 걸친 행군으로 피로에 지쳐있었다.
주로 트럭을 타고 이동했지만, 트럭을 휩싸고 부는 강한 모래바람은 그들을 더욱 지치게 만들었다.
"대체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인솔을 맡은 지휘관은 지난번 공습 직전, 원진일행 철수건에 대해 말을 꺼내다 중대장에게 미움을 산 후 만주로 발령받은 오타와 소위였다.
지금은 중위로 진급했고, 중대장으로 진급했다. 사실 좋은 수순으로 진급했다기 보다는 떠맡은 것이었다.
"이 길이 맞는거야?"
"현재 가장 빠른 길로 가고 있습니다."
오타와 중위의 물음에 운전병이 대답하였다. 하지만 눈 앞은 끝없는 황야와 도무지 방향을 알 수 없게 만드는 비슷비슷하게 생긴 모래 절벽 뿐이었다.
"뭐 맞다면 할 수 없고......"
그때 오타와 중위의 트럭이 힘이 빠진 듯 툴툴 거리더니 이내 멈춰섰다.
뒤따르던 다른 트럭들 역시 따라서 멈췄다.
"무슨일이야?"
"기름은 반 정도 남았는데......아무래도 엔진에 모래가 들어간것 같습니다."
"고칠 수 있겠어?"
"고치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운전병은 트럭에서 내려 트럭 엎 엔진 뚜껑을 열고 엔진을 살폈다. 뚜껑을 열자 엔진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과열된거 아니야?"
차창에 얼굴을 내밀면서 오타와 중위가 말을 했다.
"제 생각대로 모래바람 때문인거 같습니다. 엔진에 모래가 잔뜩끼어 있습니다."
운전병은 차 안에서 수리 공구를 꺼내어 엔진을 손보기 시작하였다.
"얼마나 걸리겠어? 오늘 안에 고칠 수 있는거야?"
"최대한 오늘 안에 해결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오타와 중위의 불안함과 초조함은 해소되지 않았다. 그는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자, 전부 하차! 이 차량이 수리가 다 될때까지 다른 차로 나눠서 옮겨탄다."
중위는 자신의 트럭에 타고있는 병력들을 하차시켰다. 그리고는 다른 트럭으로 나눠서 옮겨타게 하였다.
"에이, 아직도 사막이야?"
"시원한 그늘에 편히 누워 물이라도 실컷 마셔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그래도 트럭 짐칸 그늘이 어디야? 밖에 나와서 쉬라는 말 안한것도 천만다행이지......"
"난 개인적으로 저기 저 여자들 타고있는 트럭에 옮겨타고 싶어."
"그럼 트럭 고장 핑계삼아 저 트럭으로 갈까?"
"좋지. 히히"
병사 몇병이 여자들이 타고있는 트럭으로 이동하려는 순간, 오타와 중위가 서류철을 들고 트럭 밖으로 나왔다.
"자자, 전부 집합! 호명하는 사람들은 각자 배정된 트럭으로 이동한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저기 저 여자들 타고있는 트럭으로 갈 생각은 꿈도 꾸지 말아! 여자들은 온전한 상태로 우리가 주둔하게 될 만주 사령부로 먼저 이송해야 하니까."
"에이, 좋다 말았네."
그 여자들 트럭으로 이동하려던 두명의 병사들을 빼고도 많은 병사들이 실망하는 눈치였다.
다만 병사들 중 무한의 부대에서 여자들 감시를 맡은 바 있던 경훈만 예외였다.
'저놈의 여자들 돌보기가 얼마나 골치아픈데......가라고 해도 안간다!'
오타와 중위가 자신의 트럭에 탔던 병사들을 호명하고 있을때 멀리서 모래바람과 함께 검은 그림자들이 몰려오는것이 보였다.
"중대장님! 저기, 저기를 보십시오!"
오타와 중위는 쌍안경으로 그것들을 보려고 하였지만 모래묻은 쌍안경이 제대로 보일 리 없었다.
그는 손수건을 꺼내어 쌍안경을 닦고, 다시 그것들을 보았다.
"젠장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