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연재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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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28
소련군의 출현 소식에 만주 23사단에서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혹시나 모를 소련군 전차의 기습공격에 대비해 전차와 장갑차, 대전차포 등이 사단의 길목이 될 만한 주요 교량등에 배치가 되었고, 사단 후방의 병력 또한 몽골과 마주하고있는 강가쪽 참호 화력을 보강하는데 동원되었다.
후지와라 중위가 맡고있는 군수계 역시 손이 바빠지기는 마찬가지였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오늘 이내로 탄약 수량은 물론 젓가락 하나까지 빠짐없이 정리해서 사단에 보고해야 한다. 신속히, 그리고 신중하게 정리를 하도록. 자, 다들 힘좀 내자구."
그때 병사 한명이 들어와 중위를 찾아 경례를 부쳤다.
"대대장님께서 찾으십니다."
"대대장님께서? 이렇게 바쁜 시기에......알았다."
후지와라 중위는 모자를 챙겨쓰고 문을 나섰다.
"어, 이리 앉지."
"무슨 일이십니까?"
"그 소련놈들 말이야. 지금 저 강 건너에 있다는 놈들......그놈들 어떻게 생각하나?"
중위는 대대장의 질문에 맥이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대답을 하려는 순간 대대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놈들 그래봤자 한낱 개차반 군대 아니겠어? 우리는 이미 저놈들에게 패배의 쓴맛을 보여줬고 말이야......"
중위는 대대장의 세상 물정 모르는 무지함에 기가 차기 시작했다.
자신이 옥스포드 유학시절 들었던 그 소련의 정세와 어마어마한 잠재력등을 대대장이 말 한마디로 무시했기 때문이었다.
"그래, 자네 생각은 어떤가?"
"저는 생각이 좀 다릅니다. 물론 우리는 이미 러시아에게 승리 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우리 해군에 쓰디쓴 패배를 맛보았던 러시아 함대는 전쟁이 벌어지기 전 이미 전의를 상실한 상태였고, 러시아 역시 국내외로 산재된 문제로 인해 전쟁 수행을 제대로 하지 못한것으로 알고있습니다."
"뭐 어쨌든 우리가 이긴거 아닌가? 30년전 그때나 지금이나 뭐가 다른가 말이야. 그때 우리는 세계 최강의 함대라는 함대를 격파했어!"
"다릅니다. 아주 많이 다릅니다. 30년도 훨씬 지난 세월입니다. 그리고 당시의 제정러시아가 아닌 소비에트 체제의 러시아입니다. 그리고 30여년전 우리는 영국이라는 든든한 후원자가 있었지만, 지금의 우리는 영국을 포함한 열강의 눈치를 봐야 하는 입장이고, 게다가 중국의 국민당, 공산당군과 전쟁중이지 않습니까? 여러가지로 우리쪽이 불리합니다."
대대장은 씁쓸한 듯 인상을 찌푸리기 시작했다.
"음, 그래? 자네 생각은 그렇단 말이지......그렇다면 저 새빨간 녀석들이 언제쯤 쳐들어올까? 몽골에 지원한다 한다 하는 소리만 하면서 쭈욱 미루다가 지금 이렇게 나타난거 보면 곧 쳐들어 올거같은데 말이야."
"그건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무슨 말인가?"
중위는 지금 도착해 있는 소련군에 대해 자신이 생각한 바를 말하기 시작했다.
"저들은 필시 이곳 상황을 정탐하기 위한 선발대일 것입니다. 제 생각이 많다면 보병 병력은 그다지 많지 않을것이고, 지난번 전령이 봤다던 전차나 장갑차 역시 보병부대를 보조하는 정도일 것이라 짐작하고있습니다. 지금 당장 저들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여겨집니다만, 다만 몽골군의 공격 정도는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네 이야기가 틀리지 않은가? 아까는 소련군이 무섭다며 온갖 호들갑을 떨더니, 이제와서는 걱정하지 말라고?"
대대장은 꼬투리를 잡았다는 듯 따지고 늘어졌다. 대대장의 얼굴에는 아까의 불편함이 사라지고 지금 중위와 말싸움 하는것을 즐기는 듯한 표정으로 변했다.
하지만 중위는 일체의 흔들림없이 대답해 나갔다.
"제 말 중에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달라진게 없다니? 아까는 소련이 무섭다고 해놓고서는 지금은 별거 아니라고 하는게 달라진게 아니고 뭔가?"
"제 말의 의미는 저들은 몽골군이 이곳을 공격할때를 대비해 공격에 투입된 몽골군을 대신하여 강 건너 저들의 기지를 지켜줄 경비병력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더불어 이곳 상황을 지켜 본 후 추후에 소련군 본대의 지원 시기를 알리는 정탐병들이라는 것입니다. 무서운것은 저들의 본대입니다. 우리 사단이 몽골군의 공격을 어느정도 막아내느냐에 따라 저들 본대의 투입시기가 결정되는 것이니, 저들을 신경쓰기 보다는 이번 몽골군의 공격에 집중적으로 대비를 해야한다고 생각하는것 뿐입니다."
"음, 그래 자네 말도 일리 있구만. 뭐 걱정 말게나 몽골군 따위야 허섭 쓰레기 개차반 놈들이니 녀석들 막는거야 어렵지 않지......"
예상 외로 대대장이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자,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구만. 자네도 돌아가서 일 봐야지? 어서 일어나 보게나."
"네, 그럼 가보겠습니다."
중위는 일어나 경례를 부치고 문을 나섰다.
중위가 나가는 것을 본 대대장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멍청한 놈. 미련한 러시아 곰탱이 녀석들 따위가 뭐가 무섭다고 뭐 저리 호들갑이람. 쯧쯧......"
한편, 중경의 한 여관에서는 야마구치와 원진 등 정탐병 일행들이 모여서 작은 회의를 하고있었다.
"일주일 안에 모든 시설물들 다 찍어야 해. 이봐 원진이. 필름 아직 많이 남았지?"
"많이 남았습니다."
"아껴서 영양가 있는것만 찍으라구. 괜히 엄한거나 이상한거 찍지 말고......"
같은 시각 무한의 비행장에서는 항공대 출정의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비행기 조종사는 물론 관제 장교들과 병사들, 그리고 신문사 기자들까지......출격을 앞둔 폭격기들이 대기중인 활주로 주변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자, 다들 목표물이 찍힌 사진들은 비행기에 붙여뒀겠지?"
"네, 그렇습니다."
"그럼 천황폐하를 위해 건배!"
"건배!"
하지만 출정식 장교 중 단 한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원진의 중대 중대장은 자신의 사무실에서 봉투 6장을 꺼내었다.
그리고는 어디서 얻었는지 모를 머리카락을 종이에 고이 싸서 봉투안에 어떠한 내용이 적힌 종이와 함께 넣었다.
그리고는 봉투를 밀봉하여 책상 서랍속에 넣었다.
그 봉투들에는 전사 통지서라고 쓰여져 있었다.
중경의 여관에서는 자신들의 전사 통지서가 만들어진 줄 모른 채 여전히 진지한 작전 회의가 한창이었고, 비행장에서는 출정의식이 막바지로 접어들어 사진사들과 신문 기자들이 비행사들 줄을 세운다음 단체사진을 찍고 있었다.
"자, 찍습니다. 줄들 서시고......하나, 둘, 셋!"
같은시각 만주 23사단에서는 보초병 두명과 위관급 장교 한명이 망루 위에서 강 건너를 바라보고 있었다.
"엇! 저게 뭐야?"
병사 중 한명이 다소 놀란 듯 강 건너를 보고 소리쳤다.
"이봐. 무슨일이야?"
장교의 질문에 병사가 대답을 하였다.
"강 건너에 시커먼 개미떼 같은 것들이......"
"새삼스럽게 뭐......몽골놈들 단체로 훈련하는거 아니야?"
병사의 대답을 끊고 다른 병사가 맞받아쳤다.
"저리 비켜봐!"
장교는 답답한지 병사들을 좌우로 밀치고 쌍안경을 들어 강 건너를 주시했다.
"대체 무슨일이 일어난다고......저......저건!"
쌍안경 안 풍경속에서는 새까만 개미떼같은것들이 커다란 시커먼, 혹은 회색빛의 무언가를 들어 옮기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 회색빛의 물체는 개미떼들이 옮기는 것 말고도 강 상류쪽에서 부터 강물을 타고 나타나기도 하였다.
그들의 거대한, 일사분란한 움직임에 강 건너에는 황사바람이 일었다.
"배, 배입니다!"
"놈들이 강을 건널 준비를 하는것이 틀림없다. 이 사실을......"
멀리서 굉음이 들리는가 싶더니 일순간 조용 해졌다.
"소대장님? 소대장님?"
병사들은 불러도 대답이 없자, 뒤를 돌아봤고, 그들이 부르던 소대장은 머리에 피를 흘리고 있는 채로 엎어져 있었다.
"이런 젠장!"
병사 한명이 재빨리 사다리를 타고 감시탑을 내려가려고 했지만, 사다리에 도달하자마자 역시 굉음과함께 머리에서 피를 뿜으며 감시탑에서 떨어졌다.
그것을 본 나머지 병사 한명은 얼굴이 창백해 진채 바로 엎드려 감시탑 아래로 내려가는 사다리까지 기어가다시피하여 사다리에 도착하자마자 사다리에 발을 걸치지 않고 양 손으로 사다리의 양쪽 기둥을 잡은채 미끄러져 내려갔다.
하지만 땅에 착지할때 다리에 큰 충격을 받아 땅바닥을 굴렀다.
"저격병이다! 적의 저격병이다!"
병사는 재빨리 일어나 소리가 난 산을 향해 총을 겨누면서 다리를 절며 뛰어가려고 하였다.
하지만그 역시 배를 무언가가 찌르는 듯한 통증을 받았다. 총에 맞은것이다.
그는 쓰러진 채로 일단 가까운 건물로 엉금엉금 기어갔다.
"뭐야? 저격병이 나타나?"
저격병이 나타났다는 소식에 대대장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네, 목공소를 지키던 병사가 적의 저격에 의해 부상당한 병사를 발견하고 방금 의무실로 옮겼다고 합니다."
"그럼 전방의 나머지 초소들은?"
그때 다른 병사가 대대장실로 뛰어들어왔다.
"근처 초소 세곳이 적의 저격에 당했다고 합니다."
"이럴수가......그래 저격병은 잡았는가?"
"지금 3대대에서 병력을 풀어 수색중입니다만 저격병은 이미 도주한 듯 싶고, 저격병이숨었을 곳으로 추정되는 장소 흔적만......"
그때 대대장실로 소위 한명이 뛰어 들어왔다.
"대대장님, 큰일났습니다. 방금 3대대에서 오는 길인데......"
"그래, 저격병을 잡았다든가?"
"그게 아니옵고, 더 큰일이 일어났습니다."
"무슨일인지 숨 좀 고르고 차근 차근히 보고하게."
"놈들이......놈들이 도하준빌르 하고 있습니다!"
대대장은 다시한번 크게 놀랐다. 이번에는 몸을 다소 주춤하기까지 하였다.
대대장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질문을 이었다.
"그래, 사단에는 보고를 했고?"
"방금 사단본부로 전령을 보냈습니다."
한편 강 건너에서는 개미떼같이 모여 든 몽골군들이 각각 배에 나눠타고 도하준비를 하고있었다.
"이렇게 상륙정까지 빌려주시고......소련에서 이렇게 세심한 배려를 해 주시니,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려. 수상께 감사의 말을 전해 주시구려."
몽골군 지휘관은 소련군 장교에게 고개를 연달아 숙이며 감사의 표시를 하였다.
"뭐 우리는 형제국이 아니오? 형제끼리 돕고 살아야지요. 허허"
병력들이 가득 찬 배들은 벌써 도하를 하려는 듯 시커먼 연기를 내뿜어대었다.
몽골군 지휘관이 정박중인 상륙정들 앞에 임시로 마련된 연단에 서서 확성기를 입에 대고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자, 이제 우리에게 남은 일은, 우리의 국경을 위협하는 저 오만무도한 일본 야만 족속들을 쓸어버리는 일 밖에 남지 않았다. 그동안 저 섬나라 일본 오랑캐들과 그들의 속령인 괴뢰국가 만주국은 우리의 국경을 유린하였고, 대대손손 물려받은 우리의 터전을 짓밟아 자신의 땅이라 우기고 있다. 놈들을 이 땅에서 몰아내야 할 명분은 충분하다! 그리고 우리에겐 소련이라는 거대한 친구들이 있다. 우리는 무서울 것이 없다. 저 오만한 섬나라 놈들을 원래 고향인 바다로 몰아버리자, 그리고 우리의 땅을 되찾자. 이것이 우리의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조상이 되는 길이며, 자랑스럽게 역사에 이름이 남는 길이다. 자, 놈들에게 매운맛을 보여주자. 놈들을 이 땅에서 쓸어버리자!"
"와! 와! 와!"
몽골군 병사들의 함성이 메아리쳤다.
"자 이제 준비가 되었으면 슬슬 도하하는 것이 어떻겠소?"
소련군 장교가 몽골군 지휘관에게 도하를 시작할것을 제의하였다.
"알겠소."
몽골군 지휘관은 손짓으로 각 배에 탑승중인 소대장들에게 신호를 보냈고, 소대장들은 도하 시작을 알리는 호루라기를 입으로 불어대기 시작했다.
배는 기적소리를 내며 시커먼 연기를 내뿜으며 하나, 둘 육지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일본군 지휘부 역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군. 놈들의 대규모 병력이 황사바람처럼 밀려오고 있어......포격을 준비하고, 항공대 지원을 요청해야겠어. 그리고 기관총 진지와 전방 참호에 병력을 더 충원시켜."
사단장의 명령에 장교들은 각자 맡은 소임대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한편, 무한의 비행장에서는 출정식이 다 끝나고 활주로에 대기중인 폭격기들은 프로펠러를 돌리고 있었다.
그때 중대장실로 전령으로 보이는 한 병사가 도착했다.
"어, 그래. 이거 사단본부에 전해주고 와."
중대장의 손에는 아까 그 책상 서랍속에 넣어뒀던 전사통지서가 쥐어져 있었다.
전령이 전사통지서를 가방에 넣고 중대장실을 나서자, 중대장은 휘파람을 불며 뒷짐을 지고 활주로에 대기중인 폭격기와 전투기들을 바라보았다.
먼저 활주로에서 전투기들이 이륙을 하기 시작했다.
비행기가 하나 둘 이륙할때마다 활주로 주변의 관제병들과 장교들은 깃발과 모자를 흔들며 일제히 환호를 하였고, 사진사들과 기자들은 비행기 이륙장면을 놓칠새라 셔터를 눌러대며 마그네슘 플래쉬를 터트려대었다.
한편, 중경에서는 비행기가 이륙하지 모른채 작은 작전 회의를 마무리 짓고 있었다.
"자, 오늘은 그만 쉬고, 내일 부터 다시 진행하자고. 내가 피곤해서 그래."
야마구치는 여관 방 한켠에 누워 머리를 이불에 받친 채로 잠이 들었다.
그때 눈치를 보고 있었던 원진 일행 통역병이 방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사수가 재빨리 붙잡았다.
"어디 가려고? 오늘은 좀 쉬래잖아."
"아......어, 그래......"
통역은 언짢은 듯 방 안으로 다시 들어와 벽에 등을 댄 채 웅크려 앉았다.
그러나 살살 눈치를 보는 일 만큼은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수 역시 그러한 통역의 행동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뭔가 수상해. 녀석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게 틀림없어.'
중경이 곧 불바다가 될텐데 허허,
로또 타령이나 하고,
지금 나온 인물들 중에 살아남을 인물이 있을까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