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연재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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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서운 한파가 몰아치던 12월의 어느 밤.
저 서울 한복판에 위치한 사무실 안에서는 청년 한 명이 구슬땀을 흘리며 레고 세트를 끼워맞추고 있다.
사무실 바닥에는 레고를 담은 플라스틱 바구니 수십 개가 널려 있다.
그리고 방 중앙에는 가로 세로 5미터에다가 높이는 3미터에 육박하는 엄청난 크기의 레고 구조물이 떡 버티고 서있다.
이제 몇십 개만 더 끼워맞추면 청년은 집에 갈 수 있다.
"휴우~"
아침 8시에 출근해서 저녁 11시까지 오직 레고 구조물만을 조립한 청년의 얼굴에서는 한숨이 배어나왔다.
허리와 어깨가 굽어질대로 굽어진 그는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퀭한 눈으로 자기 손에 있는 레고 조각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약 15초 동안 미동도 안하고 레고 조각을 뚫어지게 쳐다본 청년은 마침내 고개를 들고 기지개를 켰다.
"아아아아윽!"
그의 입에서는 고통에 가득찬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잠시 스트레칭을 한 청년은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하얀색 벽, 하얀색 바닥, 하얀색 천장, 하얀색 형광등 조명.
그리고 하얀색 플라스틱 창 너머로 보이는 서울 도심의 불빛들.
잠시 창 밖을 멍하니 바라보던 청년은 곧 상념에서 깨어나 다시 빠른 속도로 레고를 끼워맞추기 시작한다.
1초라도 빨리 집에 가기 위해 미친 듯이 손발을 움직이던 청년은 어느 순간 남은 레고 부품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던 그는 사무실 천장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울려나오는 방송을 듣고 비로소 안도한다.
"축하드립니다. 오늘 할당량을 채우셨습니다. 이제 퇴근하셔도 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방송을 들은 청년은 별다른 반응도 없이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자신이 조립한 레고 무더기에서 터벅터벅 걸어내려와
문 옆에 걸어놓은 잠바를 입고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그렇게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고 건물 밖으로 나온 그를 반갑게 맞아주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살을 에는 듯한 칼바람이었다.
"휘이이...휘이이잉~"
"에...에...에췌이!!!"
갑작스런 추위에 놀란 청년은 코를 훌쩍거리며 버스 정류장으로 달려갔다.
...
그가 집에 도착한 것은 11시30분 경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마자 청년이 한 것은 양팔을 벌려 자기 몸을 큰 대자 형태로 만든 다음 침대 위에 쓰러지는 것이었다.
"툭!"
침대 어딘가에서 삐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얼굴을 이불에 파묻은 그는 마치 폐렴 환자처럼 숨을 몰아쉬었다.
"씨이익, 후우우~ 씨이익, 후우우~"
그렇게 약 15분간을 꼼짝없이 누워있던 그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 침대 오른쪽에 있는 책상으로 다가가더니
그 위에 놓여있던 노트북의 전원을 켜고 인터넷에 접속한다.
네이트온을 켠다.
접속자 현황을 확인한다.
Nimdok이라는 아이디를 가진 사람이 아직 접속 중임을 확인한다.
"얘는 아직까지 안 자고 뭐하는 거야?"
짜증인지 비아냥인지 모를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청년은 대화창을 누른 다음 Nimdok에게 메시지를 날린다.
※ JoySF의 건전한 언어문화 정착을 위하여 인터넷 전용 의성어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안 자고 뭐하냐? -_-"
곧바로 답장이 날라온다.
"와우한다. 넌 왜 안 자냐? -_-"
"그냥 잠이 안온다. 불면증인가?"
"쯧쯧 불쌍한 중생 같으니. 나는 요즘 아리따운 천생연분을 만나 청춘을 불사르고 있거늘 허허 ^^v"
"...X랄한다. 죽을래?ㄱ -"
"야, 나 오늘 취직했다. 더 이상 잉여인간 아님. ^^"
"얼마나 주는데? -_-"
"무려 일당 15만원. 일도 별로 안 어려움. 땡 잡았음 킬킬 ^^"
"...혹시 다단계냐? 아니면 화류계? -_-"
"어허, 나를 그런 인간으로 보다니 꽤 실망이군. 정말 정상적인 회사임."
"거기가 어딘데?"
"놀라지 마시라. 너랑 똑같은 회사임."
"야...혹시 Integritus냐? 직원들한테 별 이상한 작업을 다 시킨다는 그 회사? -_-"
"빙고~ 어제 첫 출근했는데 5시간 동안 레고만 조립하다가 퇴근함 ^^"
"뭐, 겨우 5시간? 야, 나는 아침 8시에 출근해서 저녁 11시까지 조립하고 왔다!
나중에는 레고 부품들이 X덩어리들로 보이기 시작하더라고. 사무실에서 토할 뻔함 -_-"
"그래? 이상하다. 나한테는 하루에 5시간만 일하면 된다고 했는데. 혹시 다른 회사 아냐?"
"임마, 그딴 이상한 작업을 시키는 데가 거기 말고 또 어디 있겠냐!? ㄱ="
"하긴 그렇군. 너는 거기서 얼마 받는데?"
"나도 너처럼 똑같이 일당 15만원 받음. 아니, 그런데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응?
누구는 15시간 일하고 누구는 5시간 일하는데 왜 일당은 똑같은 거냐고?"
"글쎄. 내가 너보다 능력이 좋아서 그런가? ^^a"
"...그런 건 손발만 멀쩡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잖아 -_-"
"아니면 내가 하는 일이 너 일보다 더 중요한 건지도."
"...농담이지? -_-"
"뭐 니가 얼마 받든 난 알 바 아님 ^^"
"망할 놈. 니가 그러고도 내 친구냐? ㄱ -"
"배 아프냐? 킬킬. 불만 있으면 본사 가서 따져. 그럼 이만 ^^"
"에라이, 와우 계정이나 해킹 당해라!"
청년의 진심어린 저주에 돌아오는 답변이라고는 짤막한 글귀 한 줄 뿐이었다.
- Nimdok님이 접속을 끊으셨습니다 -
그는 멍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약 6초 동안 바라보았다.
그리고 책상 위에 두 팔을 올려놓은 다음 거기에 자신의 얼굴을 파묻었다.
...
다음날 아침.
평소보다 일찍 일어난 청년은 휴대폰으로 어딘가에 전화를 걸고 있었다.
현재 시각 06시 30분.
평소대로라면 아직 꿈나라에서 헤매고 있어야 할 시간이었다.
전화를 걸자마자 그의 귀에 들린 것은 자동응답기의 상냥한 목소리였다.
"안녕하십니까. Integritus입니다. 현재 대기자가 많아 전화를 받을 수 없사오니, 잠시만 기다려주시기 바랍..."
"꾸루루룩~"
청년의 위장에서 공기 흐르는 소리가 났다.
이후 똑같은 멘트가 4번 반복되었다.
"안녕하십니까. Integritus입니다. 현재 대기자가 많아 전화를 받을 수 없사..."
"안녕하십니까. Integritus입니다. 현재 대기자가 많아..."
"안녕하십니까. Integritus입니다. 현재 대기..."
"안녕하십니까. Integri..."
그 때였다.
딸깍!
"예, Integritus사 상담실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자동 응답기는 확실히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딱히 인간답다고도 할 수 없는 한 여성의 목소리가 휴대폰에서 흘러나온다.
"아...안녕하십니까. 저는 Integritus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예에...어떤 일 때문에 전화 하셨나요?"
"다름이 아니라, 임금 지불 체계에 대해 궁금한 게 있어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임금 지불 체계라면...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아, 그게 다름이 아니라, 제가 아는 한 사람이 Integritus에 취직을 했는데,
알고 보니까 그 사람은 하루에 5시간 일하고 일당 15만원을 받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하루에 15시간 일하고 일당은 똑같이 받거든요."
"아...그러세요...그런데요?"
"...아, 그래서요...으음...그래서 제 생각에는, 이게 좀 불공정한 게 아닌가...뭐...그 사람도 저랑 똑같은 일을 하잖아요.
그런데 왜 저보다 10시간 적게 일하고도 일당은 똑같이 받는지 이해가 안된다는 거죠."
청년이 말을 끝내자 무거운 침묵이 뒤따랐다.
"뗄레레레, 뗄레레레레"
저 어디선가 희미한 전화 벨소리가 들려온다.
그렇게 약 7초 정도 지났을까.
갑자기 안내원은 뭔가 굉장히 안타깝다는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아아, 그 점에 관해서는 당사자 분 말고도 여러 분들이 문의를 하고 계시는데요.
저희 회사에서 직원들의 봉급 수준은 전적으로 회사의 상부 기관에서 결정되며,
또 채용 직전에 회사와 지원자 간에 이루어진 계약 체결에 의하여 최종적으로 확정됩니다.
그리고 회사는 필요에 따라 동일한 작업을 하는 직원들 간에도 봉급에 있어 차이를 둘 수 있습니다."
"아니, 그럼 그게 도대체 무슨 기준에 따라 결정되는 겁니까?"
"그 기준은 저희도 잘 모릅니다. 이는 오로지 회사의 상부 기관에 의해..."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그딴 식으로 운영되는 회사가 어딨어요!
어쨌든 돈을 줄려면 형평성과 공평성에 맞게 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어떤 수준의 봉급이 정당한지는 회사에서 결정할 사안입니다.
만약 당사자 분께서 채용 계약서에 명시된 대로 돈을 받지 못하셨다거나,
계약서에 명시되지 않은 사유로 인해 해고되셨다면 문제가 됩니다.
하지만 봉급 수준의 형평성이라는 것은 회사가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사안이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하실 수 없습니다."
"하지만 똑같은 일을 한다면 똑같은 봉급을 받는게 맞는거 아닙니까?"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그 문제는 회사에서 결정할 사안입니다."
이 끝도 없는 멘트를 들은 청년은 눈을 질끈 감고 이마를 찌푸린채 크게 숨을 들이쉰다.
"하아아아, 후우우우우~"
6초간의 침묵.
그는 이제 지칠 대로 지친 나머지 짜증난 목소리로 웅얼거린다.
"아아...예, 잘 알겠습니다. 그럼 한 가지만 더 묻겠습니다. 도대체 왜 이 회사는 직원들에게 레고 조립같은 쓸데없는 작업을 시키는 겁니까?"
"그 점에 대해서는 저희도 잘 모릅니다. 임무 부여는 봉급 책정과 마찬가지로 회사의 상부 기관에서 결정되는 사안입니다."
"아 예에에, 그러시군요.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우리가 뭘 시키든지 뭔 상관이냐, 돈 받고 시키는 일만 하면 되는 거지, 이거죠?"
"단순하게 말씀드리자면 그렇습니다."
청년은 다시 한번 크게 숨을 들이쉰다.
"하아아아아, 후우우우우~ 예, 알겠습니까. 까라고 하시면 까야지 뭐 별 수 있나요. 이른 아침부터 소리질러서 죄송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통화를 끝낸 청년은 마치 명상에 잠기기라도 한 듯 눈을 감은채로 천장을 향해 고개를 들어올린다.
한참을 그렇게 서 있던 청년은 마침내 고개를 떨구더니 손목시계를 본다.
오전 07시 05분.
시간을 확인한 청년은 다시 한번 크게 숨을 몰아쉬더니 모든 것에 지쳤다는 표정으로 침대에 걸터앉는다.
그렇게 약 5분간을 미동도 않고 있다가 갑자기 짜증을 내며 뒤로 드러눕는다.
"어유, 젠장! 차라리 전화할 시간에 잠이나 더 잘걸."
침대에 드러누운 그의 눈에는 천장에 발라놓은 노란색 정사각형 무늬의 도배지가 눈에 들어왔다.
...
오전 07시 30분.
버스 정거장은 출근하는 직장인들로 만원이다.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는 아침부터 신경질을 내느라 컨디션이 별로 안 좋은 청년도 있다.
피곤한 눈빛의 그는 시시각각 도착하는 버스들을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본다.
마침내 자신이 기다리던 버스가 도착하자 청년은 주머니에서 교통카드가 든 지갑을 꺼내든채 버스로 향한다.
버스에 탑승한다.
카드 리더기에 지갑을 갖다댄다.
"삑~"
900원의 요금이 빠져나간다.
"치이익~"
버스 문이 닫히고 운전사는 가속 페달을 밟는다.
"부우우우웅~"
버스가 굉음을 내며 출발하더니 곧 각양각색의 차량에 뒤섞여 저 너머로 사라진다.
황금빛 태양이 고층 건물 사이로 수줍게 모습을 드러낸다.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에는 이름 모를 새들이 쉴 곳을 찾아 비행한다.
날씨는 여전히 춥다.
그리고 청년은 오늘도 열심히 일한다.
화이팅.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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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 저와 레고 회사간에는 아무런 관계도 없음을 확실히 밝히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