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연재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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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 연재입니다.
제로의 사역마 라는 작품과 워해머40k 라는 작품의 세계관을 믹스한 팬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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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악을 집대성해놓은 곳이다.
워프의 위협이란 그런 식이다. 만약 복마전이 실제로 있다면 그곳은 워프에 있으리라. 절망적인 숫자의 악마가 밀려들어왔으나 그들의 눈앞에는 죽음의 천사들이 서 있었다. 세상에 존재해선 안 되는 이형의 괴물들을 죽이면서 그들은 자신의 존재의 이유를 되새긴다.
죽여라! 불태워라! 제거하라!
아마겟돈은 밀려들어오는 외계생물체의 공격을 감내하며 워프를 통과하듯 가로질러 나아갔다. 어째서 이렇게 됐는지는 모른다. 데스워치의 그 잔뼈 굵은 사이러스 조차도. 어쩌면 타이라니드의 하이브 마인드가 엔젤 포지로 향하는 아마겟돈의 한 줌에 불과한 블러드 레이븐을 위협이라고 여긴 것인지도 모른다. 그 초자연적인, 존재를 용납할 수밖에 없는 정신적 영역의 거대한 존재는 이런 짓도 벌일 수 있을 것이리라고 짐작할 뿐이었다.
아마도, 그렇겠지.
그는 떠오르는 짐작들을 뒤로 미뤄둔 채로 ‘헤러틱(Heretic)’ 패턴 화염방사기를 들어올렸다. 구멍 뚫린 금속판이 차갑게 식어서 무거운 빛을 뿌리고 있는 이곳은 아마겟돈의 선체 내부. 그 중에서도 선루의 D섹션, 운 좋게도 놈들이 아직 눈치 채지 못했지만 그 곳에는 내부 환경제어패널을 포함한 유지 장치와 선내로 얼기설기 이어진 덕트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곳을 오염당하면 아마겟돈은 끝장이다. 타데우스가 체인소드를 들고 난동을 부리고 있을 때, 틈을 봐서 타데우스가 빠져나오면 D섹션의 공기를 제거한다. 격벽을 막고, 놈들을 죽인다. 괜찮은 계획이었다.
우주선 안에서 불을 지르는 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나 방법이 없었다. 놈들에게 충분한 제압화력을 제공할 수 있는 마린들의 다른 화력 - 예를 들면 아비투스의 헤비 볼터 같은 무기 - 들은 선내에 큰 피해를 미칠 것이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화염방사기가 낫다.
“…볼품없군.”
체인소드의 굉음과 악마들의 비명이 불협화음을 이룬다.
타르커스와 타데우스는 그의 분대원들과 함께 확실히 난동을 부리고 있었다. 체인소드가 악마의 살결을 살라먹으면서 놈의 검붉고 불쾌한 피가 타데우스의 얼굴을 적신다. 그러나 수백년을 싸운 자들은 적의 피로써 세례를 받는다. 블러드 레이븐 특유의 저 검붉은 파워 아머는 어쩌면 적의 피로 채색된 것일지도 모른다.
하긴. 외계인 중에는 녹색 피를 가진 놈들도 있다. 파워 아머가 녹색으로 물들지는 않았으니, 감상에 불과할 것이다. 사이러스는 녹색 피를 가진 놈들이 특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제거해야 할 적임에는 변함이 없지만 유독 그런 놈들은 끔찍했다.
타이라니드.
블러드 레이븐이 일찍이 조우하지 못했던, 가장 강력한 적.
장담할 수 없는 절망으로 넘실대는 미래의 물결 사이에서 일말의 희망이나마 건져보기 위해 싸웠던 모든 형제들이 노력했다. 그러나 우리들의 몸부림은 지금 하이브 마인드가 부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일말의 농간에 거침없이 유린당하고 있다.
블러드 레이븐의 누구도 사이러스만큼 타이라니드를 이해하고 있지 못했고, 심지어 수백년을 함께 싸워온 베테랑들조차도 그 진정한 위험성을 알고 있지 못했다. 혼자 하는 고민은 외롭고 고독한 법이다. 외롭다, 고독하다, 그런 개념을 잊어버릴 정도로 오랫동안 황제의 적을 쓰러뜨리며 인류의 수호자로써 근속한 사이러스였지만….
“마텔루스. 우리가 실패하거든… 자침과정을 밟으시오.”
[알겠소. 황제의 가호가 있길.]
테크 마린의 대답이 돌아왔다.
눈앞의 현실은 고달프다.
[지금 나간다!]
볼터를 사정없이 난사하며 밖으로 빠져나오는 타르커스와 그 와중에도 하나라도 더 썰어 죽이려고 몸부림치는 타데우스의 모습이 보인다. 시뻘건 살점이 군데군데 묻어있는 체인소드가 이중으로 된 톱니를 거침없이 늘어뜨리며 회전하는 것을 본 사이러스. 그는 속으로 ‘그래도 저 놈들은 피가 빨간색이군.’ 이라고 생각했다. 파워 아머 하나가 겨우 드나들 법한 좁다란 문을 향해 워프의 괴물들이 새까맣게 밀려들었다.
헤러틱 패턴의 화염방사기가 불을 뿜었고, 놈들은 전멸했다.
“차륜전이군. 지금 몰려온 놈들은 전초전에 불과하니, 어떻게든 워프에서 빠져나가야 한다.”
칼데리스와 메리디언 행성의 거리는 통상공간을 두고 이야기하면 장구할 지경이었지만, 워프를 통해서 이동하면 하루도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 짤막한 여행 기간 사이에도 하이브 마인드는 아마겟돈을 공격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
아마겟돈은 워프를 표류하고 있다. 어디로 갈지는 누구도 모른다.
“아스트로패스의 상태는 정상입니다. 그는 오염되지 않았고 정신적인 충격도 받지 않았으며 외상 또한 없습니다. 그러나 워프의 등불을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계속 흐리고 상실시킨다고 말했습니다. 아스트로패스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는 아마겟돈을 외부에서 교란하는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의무관 고르디언의 말이었다.
“외부에서… 사이러스, 뭔가 아는 것 없습니까?”
타데우스의 물음에 사이러스는 턱을 짚으며 말했다.
“모르겠군. 그렇지만 하이브 마인드라면 이런 수작을 부릴 수 있을지도 모르지. 놈은 그 어떤 인간도 대적하지 못할 정도로 거대한 정신체이니까. 놈이 가지고 있는 정신적 역량은 워프에서 그 어떤 군대보다 막강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 어떤 군대보다? 재미있군.”
아비투스는 냉소적으로 덧붙였다.
“아직 싸움은 끝난 게 아니야. 우리는 살아있다.”
그는 강력한 전사이자 스페이스 마린으로써 지녀야 할 많은 덕목을 가진 인간이었다. 그러나 사이러스는 아비투스에 대해서 딱 한 가지 모자란 점을 꼽을 수 있었다. 겸손함. 물론 죽음의 천사들이 적에 대해 겸손해 할 필요는 없지만, 정신적 역량이 출중한 사서가 많기로 유명한 블러드 레이븐에서도 하이브 마인드에 대적할 자는 없었다. 적이 얼마나 막강한지 냉철하게 깨닫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나 또한 그렇게 믿네. 그렇지만 표류하는 건 사실이지. 우리는 워프 기준으로 24시간 이상 표류하고 있다.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그림자 속에서 방황할 뿐 아닌가. 아우렐리아 섹터에 하이브 함대가 어떤 치명타를 가했을지 알 수 없어. 커맨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이러스의 말에 좌중의 시선이 집중됐다. ‘커맨더’는, 블러드 레이븐의 역사상 가장 젊은 지휘관이었다. 물론 스페이스 마린 기준의 ‘젊다’는 말이 일반적인 인간들에게 적용되는 말은 아니다. 그 임페리얼 가드의… 황제폐하에 대한 충심과 외계인들을 박멸할 끝없는 전투역량으로 무장한 유명한 독전관들도 베테랑 스페이스 마린들 앞에서는 어린아이에 불과한 법이다.
“어떻게든 통상 공간으로 복귀하는 것이 급선무겠지. 수복할 수 있는 피해를 입길 바랄 뿐. 그 외에 다른 해결책은 없다. 그러니….”
“커맨더? 보고드릴 것이 있습니다.”
갑작스레 대화에 끼어든 자는 테크 마린인 마텔루스였다.
“무슨 일이지?”
커맨더는 테크 마린을 존중하기로 한 모양이다.
“워프 저편에서 미약하지만 신호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인공적인 신호입니다.”
마텔루스는 아주 이상한 듯이 말했다. 헬멧을 타고 지나오는 그 웅얼거리는 기계음에서도 그의 당혹스러운 기색을 엿볼 수 있을 지경이었다.
“확실한가? 펄사가 아니라?”
“확실합니다. 아우렐리아 섹터에는 E급 중성자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워프에서 표류한 시간을 고려해도 가장 가까운 위치의 주기적인 신호를 발산하는 별까지 다다르려면 적어도 72시간 이상 이동해야만 합니다. 지금까지는 신호의 패턴을 분석해본 결과, 고대의 통신중계소가 발신했던 조난신호와 유사하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러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마린이 똑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타이폰 행성에 천체관측소가 있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통신중계소의 역할도 담당하는데, 어쩌면 그 신호일지도 모릅니다.”
타르커스의 말을 들은 마텔루스는 자신의 생각도 그렇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사의 말이 맞습니다. 우리는 워프를 통해 맴돌이를 한 것이라고 추정되고, 주기적 신호를 발견한 이상 지침으로 삼아서 항해도와 대조하는 작업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워프에 너무 오랫동안 노출됩니다. 하나의 전력도 아까운 상황이고….”
“그 말이 맞군. 아마겟돈을 위험에 노출시킬 수는 없지. 좋네. 통상공간으로 복귀를 준비하게. 아스트로패스는?”
“그는 이미 자기 자리에 돌아갔습니다. 명령만 내리시면 즉시 가능합니다.”
“하게.”
“알겠습니다.”
그들은 군말이 없다. 거침이 없다. 워프에서 그 비참한 생을 연명해가는 괴물들조차도 블러드 레이븐에게는 한갓 방해물에 불과하다. 설령 한줄기 빛조차 없는 암흑조차도 스페이스 마린들은 체인소드로 찢어발기고 황제폐하의 은총을 심을 것이다.
그렇게 아마겟돈은 워프의 악마들을 뒤로 남겨두고 거대한 원형 통로를 열고 워프의 밖으로 나아갔다….
아름다운 행성이었다.
황제께서 거하시는 홀리 테라의 옛 모습이 저러할까. 물론 위대한 홀리 테라에는 그 어떤 행성도 견줄 수 없지만, 모성이 없는 블러드 레이븐으로써는 발아래 펼쳐진 푸른 행성은 너무나 아름답게 다가왔다. 칼데리스나 타이폰, 메리디언 또한 마찬가지였다.
행성에는 바다가 있었다. 거대한… 지형의 굴곡과 대기의 변화, 군데군데 보이는 희끗한 녹색은 저 행성에 녹음이 울창하리란 것을 보증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블러드 레이븐이 겪어보지 못한… 인간이 살아가기에 가장 완벽한 행성.
어쩌면 인간이 있을지도 모른다.
“챕터의 기록에 조회해보았지만 저런 행성을 발견한 적은 없습니다.”
마텔루스의 말이었다.
“그렇다면 미지의 행성? 아우렐리아 섹터에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행성이 있다는 거요, 테크 마린?”
“불확실한 일입니다. 아비투스 상사. 그러나 워프는 변덕스럽고 때때로 그것이 드리우는 그림자는 행성 하나의 모습조차도 쉬이 묻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조난신호는?”
“그것이….”
그 부분이 말이 되지 않는 것이다.
타데우스는 아비투스가 오랜말에 말이 되는 지적을 했다고 속으로 고소를 머금었다. 인간이 발을 디딘 행성이 아니라면 고대의 통신중계소와 동일한 패턴의 조난신호가 발신되어 올 리가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아래의 행성에는 인간이 한때나마 자리 잡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다면 어째서 챕터의 서고에서 저 행성에 대한 기록을 하나도 발견할 수 없었던 거지?
“신호는 계속 송출되고 있나?”
“그렇습니다, 커맨더.”
“그렇다면 확인을 해봐야지. 타르커스, 타데우스, 사이러스는 강하를 준비하고 대기하게. 임무 형태는 강행정찰, 귀환시간은 현지 사정에 따른다. 현재시각 1632시. 금일 1640시에 강하한다. 복창.”
“강하 준비 및 대기, 강행정찰, 1640시 강하.”
“이상.”
“황제폐하의 가호가 있길.”
인간을 위협하는 모든 적들과 싸우는 가장 강력한 인류의 전사들이 ‘1640시에 행성 정찰을 감행한다.’고 결의하고 있을 무렵에, 트리스테인 마법 학원의 낙제생인 루이즈 프랑소와즈 양은 신춘 사역마 소환의식을 맞이하여 악전고투를 거듭하고 있었다.
“아름답고 신성한 나의 사역마여! 내 앞에 나타나라!”
이번에도 어김없이 실패하는 것이었다.
커먼 매직이라 폭발까지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자 두 사람은 한숨을 쉬었다. 한쪽은 마법을 사용한 당사자였고….
“미스 발리에르. 자네 지금 몇 시간째 그러고 있는지 알고 있나?”
콜베르 선생의 말이었다.
그저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 가장 냉혹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미스터 콜베르! 제발, 제발 한 번만 더 시도하게 해주세요!”
“다른 메이지들이 모두 소환을 끝냈네. 자네 때문에 이 이상 지체하는 건….”
“제로의 루이즈! 그냥 포기하는 게 어때!?”
클래스의 메이지 소년 소녀들이 야유하는 가운데, 루이즈는 소리를 빽 질렀다.
“원래 주역은 늦게 등장하는 법이에요!”
“알았네. 알았어. 정말, 마지막 시도라네. 이번에 실패하면… 알고 있겠지?”
넌덜머리가 난다는 듯 고개를 가로젓는 콜베르의 모습.
‘마지막 시도’라는 말에 지금껏 없었을 정도로 잔뜩 긴장한 루이즈는 숨을 한껏 들이쉬었다. 트리스테인 제일가는 귀족가문의 삼녀이자 인형을 방불케 할 정도로 아름다운 이 아이는 메이지의 자질이 없다는 이유로 멸시당하고, 오늘은 그 극치를 보게 될 지도 모른다. 그만한 긴장감이 루이즈의 분위기를 바꿔버렸다. 낭랑한 목소리로 읊는 주문에서 염사의 콜베르가 일련의 한기조차 느낄 정도로….
이 자그마한 소녀의 어디에 이런 기운이!
넘실대는 냉기가 좌중을 한창 빙하기로 돌려보내고 있었다.
“우주의 어딘가에 있을 아름답고 신성한 나의 사역마여!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라!”
단어 한 마디 한 마디가 가져오는 짜릿한 긴장감의 향연!
그러나….
“또 실패야?”
“…….”
루이즈는 망연자실해서 그 자리에 푹 주저앉아버렸다.
콜베르는, 아무튼 신춘 사역마 소환 의식에서 사역마를 소환하지 못한 메이지는 본 적이 없으므로 어떻게 위로해야할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가장 무난한 접근법은 “정말 유감이네.” 로 시작하는 쪽이겠지. 아무튼 클래스메이트들이 쯧쯧 혀를 차면서 발길을 돌리려는 찰나에 콜베르는 무너진 루이즈에게 말을 걸었다.
“미스 발리에르. 정말 유….”
“저게 뭐야!”
“우와아아아악! 피해!”
이게 대체 무슨 소란인가!
콜베르가 화를 내면서 학생들을 돌아보자, 학생들은 하늘을 쳐다보면서 입을 뻐끔뻐끔 열고 뭐라뭐라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러더니 후다닥 달아나는 것이었다.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서 하늘을 쳐다본 콜베르는 마찬가지로 비슷한 반응을 보이며 도망치… 려고 했다.
“맙소사, 미스 발리에르! 일어나게!”
그러나 망연자실한 루이즈에겐 아무래도 좋은 일인 모양이었다. 정확하게는 하늘에서 수십톤에 달하는 쇳덩어리가 떨어지고 있는지 몰랐을 뿐이지만. 콜베르는 이도저도 안되겠다 싶어서, 심지어 주문을 외울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루이즈를 낚아채서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들이 아슬아슬하게 위험에서 벗어날 즈음에 그 거대한 쇳덩어리는 신춘 사역마 소환 의식을 치르던 벌판을 무자비한 굉음과 함께 직격했다.
쿵!
“마… 맙소사….”
그것은 강철의 냉혹한 냄새가 물씬하게 풍기는 거대한 검붉은 색 쇳덩어리였다. 아래가 좁게, 지면에 부딪히기에 적합한 육각형 모양의… 그리고 위로 올라가면서 넓어졌다가 다시 위쪽으로 올라가면서 육각형 모양은 좁아진다. 새를 닮은 검은색의 마크. 그 검은 갈가마귀의 한 가운데에는 붉은 색 물방울 모양의… 콜베르는 자신이 굳이 저것을 붉은 물방울이라고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문양은 핏방울을 찍어놓은 검은 새였다.
어떠한 곳에서도 본 적이 없는 문장이었다.
쇳덩어리가 입을 벌렸다. 모든 방향으로 삼각형의 널찍한 입을 벌려, 안에 들어있던 마찬가지로 강철 내음을 풍기는 인류의 가장 위대한 전사들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이 드랍 포드로부터 걸어 나오면서 난 소리는 저벅, 저벅이 아니었다.
쿵.
쿵.
쿵.
파워 아머가 램프도어를 짓밟는 소리였다.
강철이 강철에 마주쳤을 때 날 법한 가장 위압적인 고동이 좌중을 가득 메웠다. 거대한 갑옷을 입은 자들 중에서도 가장 선두에 선 자는, 그들을 경악의 눈초리로 쳐다보는 트리스테인의 2학년 일동을 훑어보더니 드랍포드 끄트머리에서 흙먼지를 모조리 다 뒤집어 쓴 불쌍한 몰골의 두 남녀를 쳐다봤다.
“원주민인 것 같은데.”
커맨더가 떠올린 의문은 사이러스가 대신 전했다.
“테크 마린, 원주민을 발견했소. 여기가 신호 발원지가 확실한 거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강하 예정지는 아닙니다. 아무래도 드랍포드의 강하 시퀸스에서 뭔가 오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위협적입니까?’]
뭔가 중간에 주어를 빼먹은 것 같은 질문이었다.
그러나 사이러스는 어떤 의미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는 경악에 떠는 원주민들을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
“아니, 그런 것 같지는 않소. 연약하군. 그냥 인간이오.”
[알겠습니다. 커맨더, 현지의 판단에 맡깁니다.]
“알았네.”
그들은 왜소했다. 스카웃 분대의 신병들조차도 그들에게는 거인처럼 비쳐질 것이다. 모병행성의 혹독한 환경을 거친 가장 강인한 전사들만이 블러드 레이븐이 될 영광을 누릴 자격을 얻는다. 세상이 거르고 또 인간이 걸렀으며 황제폐하의 은총을 받을 자격을 거머쥔 자들이 11명 도열한다.
“몰골이 엉망이군.”
타데우스가 루이즈를 보면서 한 말이었다.
제로의 사역마 라는 작품과 워해머40k 라는 작품의 세계관을 믹스한 팬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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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악을 집대성해놓은 곳이다.
워프의 위협이란 그런 식이다. 만약 복마전이 실제로 있다면 그곳은 워프에 있으리라. 절망적인 숫자의 악마가 밀려들어왔으나 그들의 눈앞에는 죽음의 천사들이 서 있었다. 세상에 존재해선 안 되는 이형의 괴물들을 죽이면서 그들은 자신의 존재의 이유를 되새긴다.
죽여라! 불태워라! 제거하라!
아마겟돈은 밀려들어오는 외계생물체의 공격을 감내하며 워프를 통과하듯 가로질러 나아갔다. 어째서 이렇게 됐는지는 모른다. 데스워치의 그 잔뼈 굵은 사이러스 조차도. 어쩌면 타이라니드의 하이브 마인드가 엔젤 포지로 향하는 아마겟돈의 한 줌에 불과한 블러드 레이븐을 위협이라고 여긴 것인지도 모른다. 그 초자연적인, 존재를 용납할 수밖에 없는 정신적 영역의 거대한 존재는 이런 짓도 벌일 수 있을 것이리라고 짐작할 뿐이었다.
아마도, 그렇겠지.
그는 떠오르는 짐작들을 뒤로 미뤄둔 채로 ‘헤러틱(Heretic)’ 패턴 화염방사기를 들어올렸다. 구멍 뚫린 금속판이 차갑게 식어서 무거운 빛을 뿌리고 있는 이곳은 아마겟돈의 선체 내부. 그 중에서도 선루의 D섹션, 운 좋게도 놈들이 아직 눈치 채지 못했지만 그 곳에는 내부 환경제어패널을 포함한 유지 장치와 선내로 얼기설기 이어진 덕트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곳을 오염당하면 아마겟돈은 끝장이다. 타데우스가 체인소드를 들고 난동을 부리고 있을 때, 틈을 봐서 타데우스가 빠져나오면 D섹션의 공기를 제거한다. 격벽을 막고, 놈들을 죽인다. 괜찮은 계획이었다.
우주선 안에서 불을 지르는 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나 방법이 없었다. 놈들에게 충분한 제압화력을 제공할 수 있는 마린들의 다른 화력 - 예를 들면 아비투스의 헤비 볼터 같은 무기 - 들은 선내에 큰 피해를 미칠 것이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화염방사기가 낫다.
“…볼품없군.”
체인소드의 굉음과 악마들의 비명이 불협화음을 이룬다.
타르커스와 타데우스는 그의 분대원들과 함께 확실히 난동을 부리고 있었다. 체인소드가 악마의 살결을 살라먹으면서 놈의 검붉고 불쾌한 피가 타데우스의 얼굴을 적신다. 그러나 수백년을 싸운 자들은 적의 피로써 세례를 받는다. 블러드 레이븐 특유의 저 검붉은 파워 아머는 어쩌면 적의 피로 채색된 것일지도 모른다.
하긴. 외계인 중에는 녹색 피를 가진 놈들도 있다. 파워 아머가 녹색으로 물들지는 않았으니, 감상에 불과할 것이다. 사이러스는 녹색 피를 가진 놈들이 특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제거해야 할 적임에는 변함이 없지만 유독 그런 놈들은 끔찍했다.
타이라니드.
블러드 레이븐이 일찍이 조우하지 못했던, 가장 강력한 적.
장담할 수 없는 절망으로 넘실대는 미래의 물결 사이에서 일말의 희망이나마 건져보기 위해 싸웠던 모든 형제들이 노력했다. 그러나 우리들의 몸부림은 지금 하이브 마인드가 부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일말의 농간에 거침없이 유린당하고 있다.
블러드 레이븐의 누구도 사이러스만큼 타이라니드를 이해하고 있지 못했고, 심지어 수백년을 함께 싸워온 베테랑들조차도 그 진정한 위험성을 알고 있지 못했다. 혼자 하는 고민은 외롭고 고독한 법이다. 외롭다, 고독하다, 그런 개념을 잊어버릴 정도로 오랫동안 황제의 적을 쓰러뜨리며 인류의 수호자로써 근속한 사이러스였지만….
“마텔루스. 우리가 실패하거든… 자침과정을 밟으시오.”
[알겠소. 황제의 가호가 있길.]
테크 마린의 대답이 돌아왔다.
눈앞의 현실은 고달프다.
[지금 나간다!]
볼터를 사정없이 난사하며 밖으로 빠져나오는 타르커스와 그 와중에도 하나라도 더 썰어 죽이려고 몸부림치는 타데우스의 모습이 보인다. 시뻘건 살점이 군데군데 묻어있는 체인소드가 이중으로 된 톱니를 거침없이 늘어뜨리며 회전하는 것을 본 사이러스. 그는 속으로 ‘그래도 저 놈들은 피가 빨간색이군.’ 이라고 생각했다. 파워 아머 하나가 겨우 드나들 법한 좁다란 문을 향해 워프의 괴물들이 새까맣게 밀려들었다.
헤러틱 패턴의 화염방사기가 불을 뿜었고, 놈들은 전멸했다.
“차륜전이군. 지금 몰려온 놈들은 전초전에 불과하니, 어떻게든 워프에서 빠져나가야 한다.”
칼데리스와 메리디언 행성의 거리는 통상공간을 두고 이야기하면 장구할 지경이었지만, 워프를 통해서 이동하면 하루도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 짤막한 여행 기간 사이에도 하이브 마인드는 아마겟돈을 공격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
아마겟돈은 워프를 표류하고 있다. 어디로 갈지는 누구도 모른다.
“아스트로패스의 상태는 정상입니다. 그는 오염되지 않았고 정신적인 충격도 받지 않았으며 외상 또한 없습니다. 그러나 워프의 등불을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계속 흐리고 상실시킨다고 말했습니다. 아스트로패스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는 아마겟돈을 외부에서 교란하는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의무관 고르디언의 말이었다.
“외부에서… 사이러스, 뭔가 아는 것 없습니까?”
타데우스의 물음에 사이러스는 턱을 짚으며 말했다.
“모르겠군. 그렇지만 하이브 마인드라면 이런 수작을 부릴 수 있을지도 모르지. 놈은 그 어떤 인간도 대적하지 못할 정도로 거대한 정신체이니까. 놈이 가지고 있는 정신적 역량은 워프에서 그 어떤 군대보다 막강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 어떤 군대보다? 재미있군.”
아비투스는 냉소적으로 덧붙였다.
“아직 싸움은 끝난 게 아니야. 우리는 살아있다.”
그는 강력한 전사이자 스페이스 마린으로써 지녀야 할 많은 덕목을 가진 인간이었다. 그러나 사이러스는 아비투스에 대해서 딱 한 가지 모자란 점을 꼽을 수 있었다. 겸손함. 물론 죽음의 천사들이 적에 대해 겸손해 할 필요는 없지만, 정신적 역량이 출중한 사서가 많기로 유명한 블러드 레이븐에서도 하이브 마인드에 대적할 자는 없었다. 적이 얼마나 막강한지 냉철하게 깨닫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나 또한 그렇게 믿네. 그렇지만 표류하는 건 사실이지. 우리는 워프 기준으로 24시간 이상 표류하고 있다.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그림자 속에서 방황할 뿐 아닌가. 아우렐리아 섹터에 하이브 함대가 어떤 치명타를 가했을지 알 수 없어. 커맨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이러스의 말에 좌중의 시선이 집중됐다. ‘커맨더’는, 블러드 레이븐의 역사상 가장 젊은 지휘관이었다. 물론 스페이스 마린 기준의 ‘젊다’는 말이 일반적인 인간들에게 적용되는 말은 아니다. 그 임페리얼 가드의… 황제폐하에 대한 충심과 외계인들을 박멸할 끝없는 전투역량으로 무장한 유명한 독전관들도 베테랑 스페이스 마린들 앞에서는 어린아이에 불과한 법이다.
“어떻게든 통상 공간으로 복귀하는 것이 급선무겠지. 수복할 수 있는 피해를 입길 바랄 뿐. 그 외에 다른 해결책은 없다. 그러니….”
“커맨더? 보고드릴 것이 있습니다.”
갑작스레 대화에 끼어든 자는 테크 마린인 마텔루스였다.
“무슨 일이지?”
커맨더는 테크 마린을 존중하기로 한 모양이다.
“워프 저편에서 미약하지만 신호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인공적인 신호입니다.”
마텔루스는 아주 이상한 듯이 말했다. 헬멧을 타고 지나오는 그 웅얼거리는 기계음에서도 그의 당혹스러운 기색을 엿볼 수 있을 지경이었다.
“확실한가? 펄사가 아니라?”
“확실합니다. 아우렐리아 섹터에는 E급 중성자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워프에서 표류한 시간을 고려해도 가장 가까운 위치의 주기적인 신호를 발산하는 별까지 다다르려면 적어도 72시간 이상 이동해야만 합니다. 지금까지는 신호의 패턴을 분석해본 결과, 고대의 통신중계소가 발신했던 조난신호와 유사하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러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마린이 똑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타이폰 행성에 천체관측소가 있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통신중계소의 역할도 담당하는데, 어쩌면 그 신호일지도 모릅니다.”
타르커스의 말을 들은 마텔루스는 자신의 생각도 그렇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사의 말이 맞습니다. 우리는 워프를 통해 맴돌이를 한 것이라고 추정되고, 주기적 신호를 발견한 이상 지침으로 삼아서 항해도와 대조하는 작업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워프에 너무 오랫동안 노출됩니다. 하나의 전력도 아까운 상황이고….”
“그 말이 맞군. 아마겟돈을 위험에 노출시킬 수는 없지. 좋네. 통상공간으로 복귀를 준비하게. 아스트로패스는?”
“그는 이미 자기 자리에 돌아갔습니다. 명령만 내리시면 즉시 가능합니다.”
“하게.”
“알겠습니다.”
그들은 군말이 없다. 거침이 없다. 워프에서 그 비참한 생을 연명해가는 괴물들조차도 블러드 레이븐에게는 한갓 방해물에 불과하다. 설령 한줄기 빛조차 없는 암흑조차도 스페이스 마린들은 체인소드로 찢어발기고 황제폐하의 은총을 심을 것이다.
그렇게 아마겟돈은 워프의 악마들을 뒤로 남겨두고 거대한 원형 통로를 열고 워프의 밖으로 나아갔다….
아름다운 행성이었다.
황제께서 거하시는 홀리 테라의 옛 모습이 저러할까. 물론 위대한 홀리 테라에는 그 어떤 행성도 견줄 수 없지만, 모성이 없는 블러드 레이븐으로써는 발아래 펼쳐진 푸른 행성은 너무나 아름답게 다가왔다. 칼데리스나 타이폰, 메리디언 또한 마찬가지였다.
행성에는 바다가 있었다. 거대한… 지형의 굴곡과 대기의 변화, 군데군데 보이는 희끗한 녹색은 저 행성에 녹음이 울창하리란 것을 보증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블러드 레이븐이 겪어보지 못한… 인간이 살아가기에 가장 완벽한 행성.
어쩌면 인간이 있을지도 모른다.
“챕터의 기록에 조회해보았지만 저런 행성을 발견한 적은 없습니다.”
마텔루스의 말이었다.
“그렇다면 미지의 행성? 아우렐리아 섹터에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행성이 있다는 거요, 테크 마린?”
“불확실한 일입니다. 아비투스 상사. 그러나 워프는 변덕스럽고 때때로 그것이 드리우는 그림자는 행성 하나의 모습조차도 쉬이 묻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조난신호는?”
“그것이….”
그 부분이 말이 되지 않는 것이다.
타데우스는 아비투스가 오랜말에 말이 되는 지적을 했다고 속으로 고소를 머금었다. 인간이 발을 디딘 행성이 아니라면 고대의 통신중계소와 동일한 패턴의 조난신호가 발신되어 올 리가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아래의 행성에는 인간이 한때나마 자리 잡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다면 어째서 챕터의 서고에서 저 행성에 대한 기록을 하나도 발견할 수 없었던 거지?
“신호는 계속 송출되고 있나?”
“그렇습니다, 커맨더.”
“그렇다면 확인을 해봐야지. 타르커스, 타데우스, 사이러스는 강하를 준비하고 대기하게. 임무 형태는 강행정찰, 귀환시간은 현지 사정에 따른다. 현재시각 1632시. 금일 1640시에 강하한다. 복창.”
“강하 준비 및 대기, 강행정찰, 1640시 강하.”
“이상.”
“황제폐하의 가호가 있길.”
인간을 위협하는 모든 적들과 싸우는 가장 강력한 인류의 전사들이 ‘1640시에 행성 정찰을 감행한다.’고 결의하고 있을 무렵에, 트리스테인 마법 학원의 낙제생인 루이즈 프랑소와즈 양은 신춘 사역마 소환의식을 맞이하여 악전고투를 거듭하고 있었다.
“아름답고 신성한 나의 사역마여! 내 앞에 나타나라!”
이번에도 어김없이 실패하는 것이었다.
커먼 매직이라 폭발까지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자 두 사람은 한숨을 쉬었다. 한쪽은 마법을 사용한 당사자였고….
“미스 발리에르. 자네 지금 몇 시간째 그러고 있는지 알고 있나?”
콜베르 선생의 말이었다.
그저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 가장 냉혹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미스터 콜베르! 제발, 제발 한 번만 더 시도하게 해주세요!”
“다른 메이지들이 모두 소환을 끝냈네. 자네 때문에 이 이상 지체하는 건….”
“제로의 루이즈! 그냥 포기하는 게 어때!?”
클래스의 메이지 소년 소녀들이 야유하는 가운데, 루이즈는 소리를 빽 질렀다.
“원래 주역은 늦게 등장하는 법이에요!”
“알았네. 알았어. 정말, 마지막 시도라네. 이번에 실패하면… 알고 있겠지?”
넌덜머리가 난다는 듯 고개를 가로젓는 콜베르의 모습.
‘마지막 시도’라는 말에 지금껏 없었을 정도로 잔뜩 긴장한 루이즈는 숨을 한껏 들이쉬었다. 트리스테인 제일가는 귀족가문의 삼녀이자 인형을 방불케 할 정도로 아름다운 이 아이는 메이지의 자질이 없다는 이유로 멸시당하고, 오늘은 그 극치를 보게 될 지도 모른다. 그만한 긴장감이 루이즈의 분위기를 바꿔버렸다. 낭랑한 목소리로 읊는 주문에서 염사의 콜베르가 일련의 한기조차 느낄 정도로….
이 자그마한 소녀의 어디에 이런 기운이!
넘실대는 냉기가 좌중을 한창 빙하기로 돌려보내고 있었다.
“우주의 어딘가에 있을 아름답고 신성한 나의 사역마여!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라!”
단어 한 마디 한 마디가 가져오는 짜릿한 긴장감의 향연!
그러나….
“또 실패야?”
“…….”
루이즈는 망연자실해서 그 자리에 푹 주저앉아버렸다.
콜베르는, 아무튼 신춘 사역마 소환 의식에서 사역마를 소환하지 못한 메이지는 본 적이 없으므로 어떻게 위로해야할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가장 무난한 접근법은 “정말 유감이네.” 로 시작하는 쪽이겠지. 아무튼 클래스메이트들이 쯧쯧 혀를 차면서 발길을 돌리려는 찰나에 콜베르는 무너진 루이즈에게 말을 걸었다.
“미스 발리에르. 정말 유….”
“저게 뭐야!”
“우와아아아악! 피해!”
이게 대체 무슨 소란인가!
콜베르가 화를 내면서 학생들을 돌아보자, 학생들은 하늘을 쳐다보면서 입을 뻐끔뻐끔 열고 뭐라뭐라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러더니 후다닥 달아나는 것이었다.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서 하늘을 쳐다본 콜베르는 마찬가지로 비슷한 반응을 보이며 도망치… 려고 했다.
“맙소사, 미스 발리에르! 일어나게!”
그러나 망연자실한 루이즈에겐 아무래도 좋은 일인 모양이었다. 정확하게는 하늘에서 수십톤에 달하는 쇳덩어리가 떨어지고 있는지 몰랐을 뿐이지만. 콜베르는 이도저도 안되겠다 싶어서, 심지어 주문을 외울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루이즈를 낚아채서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들이 아슬아슬하게 위험에서 벗어날 즈음에 그 거대한 쇳덩어리는 신춘 사역마 소환 의식을 치르던 벌판을 무자비한 굉음과 함께 직격했다.
쿵!
“마… 맙소사….”
그것은 강철의 냉혹한 냄새가 물씬하게 풍기는 거대한 검붉은 색 쇳덩어리였다. 아래가 좁게, 지면에 부딪히기에 적합한 육각형 모양의… 그리고 위로 올라가면서 넓어졌다가 다시 위쪽으로 올라가면서 육각형 모양은 좁아진다. 새를 닮은 검은색의 마크. 그 검은 갈가마귀의 한 가운데에는 붉은 색 물방울 모양의… 콜베르는 자신이 굳이 저것을 붉은 물방울이라고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문양은 핏방울을 찍어놓은 검은 새였다.
어떠한 곳에서도 본 적이 없는 문장이었다.
쇳덩어리가 입을 벌렸다. 모든 방향으로 삼각형의 널찍한 입을 벌려, 안에 들어있던 마찬가지로 강철 내음을 풍기는 인류의 가장 위대한 전사들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이 드랍 포드로부터 걸어 나오면서 난 소리는 저벅, 저벅이 아니었다.
쿵.
쿵.
쿵.
파워 아머가 램프도어를 짓밟는 소리였다.
강철이 강철에 마주쳤을 때 날 법한 가장 위압적인 고동이 좌중을 가득 메웠다. 거대한 갑옷을 입은 자들 중에서도 가장 선두에 선 자는, 그들을 경악의 눈초리로 쳐다보는 트리스테인의 2학년 일동을 훑어보더니 드랍포드 끄트머리에서 흙먼지를 모조리 다 뒤집어 쓴 불쌍한 몰골의 두 남녀를 쳐다봤다.
“원주민인 것 같은데.”
커맨더가 떠올린 의문은 사이러스가 대신 전했다.
“테크 마린, 원주민을 발견했소. 여기가 신호 발원지가 확실한 거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강하 예정지는 아닙니다. 아무래도 드랍포드의 강하 시퀸스에서 뭔가 오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위협적입니까?’]
뭔가 중간에 주어를 빼먹은 것 같은 질문이었다.
그러나 사이러스는 어떤 의미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는 경악에 떠는 원주민들을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
“아니, 그런 것 같지는 않소. 연약하군. 그냥 인간이오.”
[알겠습니다. 커맨더, 현지의 판단에 맡깁니다.]
“알았네.”
그들은 왜소했다. 스카웃 분대의 신병들조차도 그들에게는 거인처럼 비쳐질 것이다. 모병행성의 혹독한 환경을 거친 가장 강인한 전사들만이 블러드 레이븐이 될 영광을 누릴 자격을 얻는다. 세상이 거르고 또 인간이 걸렀으며 황제폐하의 은총을 받을 자격을 거머쥔 자들이 11명 도열한다.
“몰골이 엉망이군.”
타데우스가 루이즈를 보면서 한 말이었다.
whatever you say...
배경 색이 예전과 달리 너무 밝아져서, 저 혼자 그렇게 느끼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화만 수작업으로 모든 문단의 시작마다 두칸씩 띄어주었는데, 불필요한 선택인가 싶네요.
이후에는 원문의 변화 없이 그대로 업로드 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