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연은 언제나 혼자였다.
심지어는 그녀가 말을 했던 어렸을때 조차도 그녀의 부모님을 제외한다면, 그녀에게 말을 붙이는 사람은 거의 전무했다.

그녀는 그녀대로 이런 상황에 적응해갔고, 그녀가 혼자라는것은 그녀도, 그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 사실이었다.

그 밤이 오기 전까지는..

소연은 언제나 그랬던것처럼 아침에 일찍 일어나 얇은 실크를 몸에서 걷어내고, 따뜻한물로 몸을 씻은 후에 로션을 온 몸에 골고루 발랐다.
언제나처럼 혼자 학교에 가서 한번도 말을 붙여본적 없는.. -사실은 그녀는 자기가 말을 할수 없는지 말을 하지않는지도 몰랐다. 그녀의 가족들은 그녀가 어렸을때 앓았던 고열의 병때문에 말을 영영 못하게 되었다고 생각했고, 소연은 '가족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의사도 그렇게 말하니까' 그것을 믿었고, 믿음은 현실이 되었다.
그 누구도. 소연이 말한다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다...- 아이 옆에 앉아서 칠판을 보며 공책에 몆가지 말을 끄적이다가.. 혹은 눈을 내리감고 잠시 졸다가.. 그녀의 발을 꼭 감싸주는 신발을 신고, 집으로 타박타박 걸어왔다.

그녀는 수화조차 배우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하고만 '대화'를 했는데, 주로 아버지(혹은 어머니)가 말을 하고, 소연이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그녀의 눈 색과 꼭 같은 푸른 펜으로 하이얀 종이위에 '말'을 하곤 했다.

그녀는 그녀의 가장 하찮은 푸념조차도 그녀의 종이위에 쏟아놓았고, 그녀의 일기장은 늘 그녀의 일상과 하소연으로 가득했다.
그녀는 일기를 쓰고는, 항상 그 책을 '탁' 덮고 조깅을 했다.

그녀는.. 결코 알지 못했다. 그녀만을 항상 애정어린 시선으로 보는 사람이 이세상에는 있음을.

그녀는 말을 하지 못했기에 다른사람과 소통을 하자면 굉장히 번거로웠고, 그보다는 자연스레 그녀와 다른사람 사이에는 거리가 생겼다.. 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이 그녀에게 말을 걸면 그녀는 단지 푸른 눈을 더욱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약간 내밀 뿐이었다.
항상 그런식이었다.

"저기요.."
'누구지?'
"소연...누나?"
'나를..  아는 사람인 모양인데.?'
"말을 하실줄 모른다는것은 알아요. 하지만 이것만은 들어주셨으면 해요"
'무슨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별로 듣고싶지 않아. 나는 네가 거기에 서서 저기있는 가로등과 이야기 하기를 원해. 그편이 너에게나 나에게나 속편할거야. 어차피 가로등이나 나나 보이는 반응은 비슷할테니까.'
"소연누나를.. 저..."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저렇게 뜸을 들이나...'

소연이 입을 뻐끔거린다.

"저... 소연누나와.. 조금 가까워지고 싶어요"

소연은 다음날에도 아침 일찍 일어났다.
그녀로서는 처음 받아보는.. 그런류의 제안이었기에 그녀는 약간 당황하기도 했지만, 그녀는 그녀 특유의 표현, 즉 눈을 크게 한번 동그랗게 떠보고 머리를 까딱거리며'무슨말인지 잘 이해가 안된다'라는 마
음을 전하고는 일정한 발걸음으로 콩콩 뛰어서 집까지 돌아왔다.
하지만. 그날은 평소보다 조금 일찍 집에 들어왔다.

조금씩.. 조금씩.. 사하라 사막을 가로질러서 이동하는 무모한 모험가와 같이, 그는 조금씩 조금씩 그녀의 메마른 마음을 가로질렀고, 메마른 언덕 하나하나마다 물을 주고, 나무를 심었다.

사막은 모험가를 거부한다. 낮의 강렬한 태양과 밤의 살을 에는듯한 추위.
그리고 구석구석 파고드는 마르고. 무감각한. 세상에서 제일 비정한 모래가 여행자의 속살을 파고든다.
하지만, 이번 모험가는 달랐다.

소연이 그를 내칠때마다, 그는 한없이 상처받으면서도, 한숨으로 상처를 메우며 다시 그녀를 기다렸다.
아니, 이때만은 모래가 그의 상처를 메워주었는지도 모른다.
그를 위해서 매정한 사막을 원망하면서..

소연은 가끔씩, 그가 나와있지 않는 저녁이면 웬지 허전함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하지만 그럴때마다, 그녀는 자신을 경멸하곤 했다.

하지만 어느덧 시간이 흘러, 사막은 초원이 되었다.
이는 모험가의 몫이라기 보다는 모험가가 심은 나무가 씨를 퍼뜨린 덕택도 있다.

그렇게, 그는 소연의 마음속에 매일매일 있는듯 없는듯한 여운을 남겼고, 결국은 그는 소연이 마음을 열게된 유일한 사람이 되었다.

그는 소연을 매일같이 도와주었고, 소연도 그런 그를 어느덧 그리워하게 되었다.








'나는 누나를 언제까지나 꼭 품어주고 싶어'






'나를 동정하지마. 나를 기다려주고 나를 도와주고, 나를 위해서 커피를 사주는것이 동정이었니?
말을 못하는 나에게 다가온것이.. 단지 내가 불쌍해서였니?'





'나는... 누나를 불쌍하다고 생각하지않아. 아니 그런적 없어'





'거짓말 하지마'



'내가 누나곁에 있으면서 항상 누나만 바라보는건.. 누나를...'


'나를?'



'사랑해서야'



하루에 한문장씩, 그렇게 서로는 자신의 '말'을 공책에 적어갔고,

한마디 한마디를 하는데 시간이 오래걸린만큼, 그들은 그 공책에 자신의 말을 적어넣을시간만을 기다렸고, 따라서 그들의 대화에는 바보같은 말이 많았다.

그렇게 1년이 흘렀고, 그들은 서로 365마디를 주고받았다.





'나와.. 결혼해줄래? 재현아?'


'누나와.. 결혼하자고?'

'그래'


둘이 서로 이 제안에대해서 말을 마치고, 결혼을 결정하는데는 2주가 걸렸다.
그리고, 기타 잡다한것을 논의하는데 또 1달이 걸렸다.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소연은 그 어느떄보다 아름다웠고, 나재현군과 민 소연 양은 부부가 되었다.


어느날, 소연은 정원을 걷다가 우연히 넘어졌고,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누가 비명을 질렀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자기가 비명을 질렀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자기가 어쩌면 말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아아.. 아아아아아"
그녀는 성악가가 목을 푸는것처럼, 자신도 잊고있었던 능력을 재확인하고 있었다.

'그러면, 이제 재현이에게 사랑한다고.. 말할수 있다'


소연은 흥분에 차서 집밖으로 달려나갔다.
재현이가 보인다.
그녀는 재현에게로 뛰어갔다.

그시각, 또다른 행복에 겨운 커플이 운전하는 흰 스포츠카 한대가 길을 올라오고 있었다.
여자는 남자에게 키스를 청했고, 그 둘은 키스를 하면서, 또 다른 행복에 겨운 커플에게로 돌진하고 있었다.

한 사람의 생명이 파괴되는데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는다.

흰 스포츠카는 나재현군을 치고 그대로 지나가버렸고,
차에치인 고깃덩이를보고 슬퍼하는사람은 소연뿐이었다.

'이제 그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데.. 이제 말할수 있는데..'

소연은.. 그렇게 말을 다시 할수 있게 되자 마자 말할 상대를 잃고 말았다.

그때, 나재현군이 눈을 조그맣게 뜨었다.

소연이 울부짖으며 사랑한다는 말을 되뇌고, 또 되뇌었다.

나재현군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경련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어찌되었든, 나재현군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 이제 말할 수 있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