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연재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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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10
여명의 빛이 황도 임뤼르의 거탑들에 부딪혀 타오르는 듯 찬란한 빛의 조각을 사방에 흩뿌렸다. 각각의 탑들은 저마다 수천은 될 법한 다양한 색의 빛을 발했다. 장미의 그것과도 같은 분홍빛과 꽃가루를 흩뿌린 듯한 황색, 보라색, 엷은 초록빛, 연한 자주빛, 다갈색, 오렌지색, 흐릿한 푸른색, 백색, 그리고 금가루를 흩뿌린 듯한 광채들, 그러한 빛들이 모두 햇빛속에서 사랑스럽게 반짝이고 있었다.
두 기사가 꿈의 도시를 뒤로 하고, 도시를 둘러싼 성벽을 벗어나 아직도 밤의 어두움이 채 가시지 않은 소나무 숲을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다람쥐들이 부산히 움직이고, 여우들은 집으로 돌아간다. 새들이 지저귀고, 숲속의 꽃들이 잠에서 깨어나 꽃잎을 활짝 열어, 은은한 향기를 허공에 흩날린다. 그 주위에서 벌레 몇 마리가 향기에 취해 붕붕거린다.
화려하고 장대한 도시와 이 소박하면서도 평화로운 전원의 차이는 너무나 컸다. 황도에서 호화롭게 살고 있는 다른 이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적어도 지금 말에서 내려 흐드러지게 핀 푸른 꽃들 사이를 조심스럽게 거니는 기사에게는 그러한 평안함은 도시에서는 절대로 찾을 수 없는 귀중한 것으로 느껴지고 있었다.
그와 함께 말을 달리던 소녀는 말을 세우기는 했지만 그처럼 내리려고는 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말 위에서 몸을 기울여 그녀의 연인에게 미소를 보냈다.
"엘릭 님? 여긴 임뤼르에서 너무 가까운 거 아닌가요?"
엘릭은 그녀를 돌아보며 싱긋 웃었다.
"잠깐만 있자고, 우리 너무 급하게 달렸어. 다시 달리기 전에 숨 좀 돌려야겠어."
"밤에는 잘 주무셨나요?"
"잘 잤어, 사이모릴. 알 수 없는 꿈을 좀 꿨지만, 일어나 보니 몇가지 뒤끝이 좋잖은 게 남아 있어. 이일쿤과 드잡이질 한 게 별로 좋지 않았었나 봐."
"그 때, 그가 폐하께 마법으로 도전하려 했다고 생각하세요?"
엘릭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가 마법을 쓰려 했다면 그 전에 내가 진작 알았겠지. 그 녀석도 내 힘을 알고 있으니 감히 마법으로 나한테 덤비지는 않을 게야."
"그가 폐하께 힘을 써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도록 해야 해요. 그는 오랫동안 폐하의 존재 자체를 꺼려했을 뿐이지만, 그가 폐하의 능력까지 경계하기 시작한다면, 위험하지 않을까요? 그가 폐하의 인내력을 시험한답시고 폐하께 감히 도전한다면?"
엘릭은 눈살을 찌푸렸다.
"아, 나도 그것에 대해서는 생각하고 있어. 그러나 아직은 아냐, 그렇게 생각해야 해."
"그는 폐하께서 돌아가실 때까지 만족하지 않을 거예요, 엘릭 님."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그는 그 자신을 파괴해 버리겠지. 사이모릴."
엘릭은 그렇게 말하면서 꽃 한송이를 땄다. 그리고 싱긋 웃었다.
"당신의 오빠는 절대적인 힘에게만 굴복하지, 그렇지 않아? 약한 자에 대한 혐오가 그를 꽉 채우고 있지."
사이모릴은 그의 말뜻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말에서 내려 그에게로 걸어갔다. 그녀의 얇은 가운은 주위에 흐드러진 꽃들과 거의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는 그녀에게 꽃을 건넸다. 그녀는 그것을 받아들고는 아름다운 입술에 그것을 가져갔다.
"그리고 강한 자에 대한 시기로도 꽉 차 있지요, 나의 사랑스런 폐하. 이일쿤은 나의 형제지만, 그렇더라도 나는 폐하께 감히 말씀드리겠어요. 힘을 사용하세요. 그를 제거해야 해요."
"난 그를 죽일 수 없어, 그건 옳은 일이 아니야."
엘릭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추방시킬 수도 있지 않아요?"
"멜니보네 인에게 추방과 죽음이 무슨 차이가 있겠나?"
"폐하께서는 전에 외국 땅을 여행하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엘릭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거야 내가 진정한 멜니보네 인이 아니기 때문이지. 그리고 이일쿤의 말을 들은 적잖은 이들이 그의 생각에 동감하고 있어."
"오빠는 폐하께서 명상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폐하를 헐뜯고 있어요. 선황 세드릭 폐하도 폐하와 같은 분이셨지만, 아무도 그 분의 권위를 부정할 수 없었다는 걸 생각하세요."
"내 아버님도 나와 같이 명상을 좋아하셨지만, 나처럼 거기에만 매달리지는 않으셨지. 적어도 그 분은 황제로서의 책무에 충실하셨어.
다른 건 몰라도 이거 하나는 인정하자고. 이일쿤 역시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걸 말이야. 그 녀석에게는 멜니보네를 일으킬 능력이 있어. 만약 그 녀석이 황제였다면 그는 주위 나라들과 우리가 맺은 굴욕적인 지금의 외교관계를 다 끊어 버리고 우리 힘을 총동원해서 전 세계를 박살내서 지배해 버렸을 게야.
그리고, 그게 바로 지금 우리 백성들이 원하는 것이지. 그것을 부정할 권리가 나에게 있다고 생각하나?"
"폐하께서는 황제이기에, 모든 것을 폐하의 뜻대로 할 수 있어요. 폐하께 충성하는 이들 모두가 저처럼 생각하고 있고요."
"유감스럽지만 그들의 충성은 방향을 잘못 잡은 것 같군. 어쩌면, 이일쿤이 옳고 나는 그들의 충의를 저버릴 뿐 아니라 용의 섬에 파멸을 불러올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그의 우울한 진홍빛 눈이 그녀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그때 내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죽었어야 했는지도 몰라. 그랬다면 이일쿤이 황제가 되었겠지. 운명의 장난일까?"
"운명은 장난 같은 걸 치지 않아요. 세상의 모든 일들은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있지요. 정말로, 운명이란 것이 있다면 말이지만."
엘릭은 깊이 숨을 들이쉬고는, 그녀를 놀리듯 말했다.
"당신의 논리는 지나치게 이단적이군, 사이모릴. 만약 우리들이 멜니보네의 전통을 믿어야 한다면, 당신은 나와의 우정을 그만 잊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어."
사이모릴이 웃음을 터뜨렸다.
"폐하, 마치 이일쿤처럼 말씀하시는군요. 제 사랑을 시험하시는 건가요?"
그는 다시 말에 올랐다.
"그건 아니야, 사이모릴, 그러나 난 당신에게 당신의 사랑을 재고해 보라고 충고해야겠어, 우리 사랑이 앞으로도 오늘처럼 행복하기만 할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거든."
그녀는 안장에 올라 자세를 바로잡고는 생긋 웃었다.
"폐하께서는 너무 어두운 면만 생각하시지요. 조금만이라도 밝게 생각하시면 안될까요? 당신께 베풀어진 축복은 결코 작은 게 아니니까요, 나의 사랑하는 폐하."
"하긴, 그렇게 해보도록 노력은 하겠어, 쉽지는 않겠지만."
그들은 뒤쪽에서 들려오는 말발굽 소리에 눈을 돌렸다.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황색 제복을 걸친 일단의 기사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그들이 뒤에 남겨두고 온 근위병들이었다.
단출하게 여행하고 싶었는데, 곤란한 자들이군. 엘릭이 쓰게 웃었다
"사이모릴, 도망치자고!"
엘릭이 소리쳤다.
"숲속으로 들어가서 구릉을 넘어가면 저 녀석들, 우리를 결코 찾지 못할 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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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옥체를 생각하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