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울한 검은 색이 그녀의 세계의 전부였다.
그리고 그 세계에는 어떤 여자도 있었다. 그 여자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책 한 권이 머리맡에 놓여있다. 검은 가죽 표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Holy Bible」이라고. 영문판 성경이었다.
인기척에 여자는 중얼거렸다.

"펜릴…?"

문이 열리고 빛이 쏟아진다. 바깥에서 내리쬐는 태양의 축복에 비하면 비교하는 것이 민망할 정도의 밝기였지만 어둡기만 한 방에서 받아들이기로는 광명이나 다름없었다. 빛이 먼저 쏟아져 들어오고, 파리한 여자의 얼굴을 비춘다. 그녀의 얼굴은 본래 미인이기도 하겠거니와 무엇보다 병을 앓고 있었기에 그 외모가 더 돋보였다. 병을 앓는 여인은 아름답다는 법이라니.
거구의 사내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일어나지 마라."

사내는 그가 풍기는 음울한 분위기와는 영 다른, 연민 어린 시선으로 여자를 바라봤다. 그의 시선에 맞춰 그녀는 아득히 올려다보며 말했다. 추궁은 아니었다. 타박도 아니었다.

"무슨 일 하고 온 거야…?"

"……."

그녀의 눈매가 약간 비틀렸다. 머리맡에 놓여있는 것은 성경만이 아니었다. 시트에는 거뭇한 자국이 묻어 있었다. 핏자국이다. 그녀의 머리가 놓여있는 베게 근처에서 그런 거무스레하게 말라붙은 핏자국이 발견된다는 것은 그녀가 토혈을 하고 있다는 증명이나 다름없다. 그 증명을 머리맡의 붉은 색 휴지 뭉치들이 더욱 더 공고히 만들었다. 펜릴은 몸을 굽혀 이불을 끌어다가 그녀의 가슴께 까지 올려주었다.

"그만 둬."

그녀가 말했다. 전부터 계속 들어오던 말이었기에 펜릴은 딱히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가 하는 말은 매스를 대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매스나 아트나이프의 날에 비견될 정도로 분명히 날카롭고 정밀했기에, 다른 사람이라면 그녀의 말씨에 가슴속의 응어리를 절개 당하고는 새 인간처럼 살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펜릴은 그렇게 살 수 없다.
가슴속에 묻어둔 응어리는 말하지 않는 것으로 더욱 커지고 커졌다. 정밀 수술은 불가능하다. 전기톱이라도 들고 와서 파헤치고 잘라내는 것이 아니라면 그의 상처를 절개할 방법은 없었다. 그것은 유일한 해답이었고, 마음을 그런 괴물 같은 것으로 헤집으면 그 다음은 뻔했다.
그는 과묵했다. 입만 그런 것이 아니라 마음 역시 과묵했다.

"… 거짓말은…."

"나쁘지."

펜릴은 힘겹게 말하는 그녀의 뒤를 이었다. 꽉 다문 이가 바스러지는 것만 같다. 약간 비릿한 맛이 느껴졌고 그것이 잇몸에서 나온 피의 맛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심유한 눈으로 아래를 쳐다봤다. 그녀가 안타까워 하지만 별 수 없었다.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었다. 마음으로도 과묵했기에 그는 여기까지 치달은 것이다.
그녀는 모른다. 그래서 그녀의 비난은 상당수 방향을 잘못 잡고 있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펜릴은 그 오류를 수정하려고 들지 않았다. 그는 과묵한 사내니까.
미나를 바라본다. 눈이 어지럽다. 그녀는 언제나 펜릴 자신을 이상 기분으로 몰고 가곤 한다. 그게 약간은 틀린, 하지만 그녀로서는 그리고 일반론으로서는 결코 옳을 생각에서 출발한 악의 없는 말에서 비롯된 것이라곤 해도. 순식간에 수십 명의 인간을 염라대왕 문턱에 걸쳐놓는 것이 가능한 한 사내의 감각은 지금 현실로부터 철저하게 유리되어 붕 떨어진 듯 하고 있었다.
변명하지 않았고 그래서 듣게되는 어쩌면 어이없는 말.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미워하지는 않았다. 분노의 화살은 어디까지나 하운드의 방향이다.
그래서 베인하프 가문의 장녀는, 미나 베인하프는 모두를 대신해서 그에게 속삭였다.

"… 그를 용서해 줘."

그녀가 제대로 알고 있는 거의 유일한 사실.
그 말만은 펜릴의 귓가에 또렷하게 들렸다.
지금도 그 말만이 또렷하게 들린다.
그는 방아쇠를 당겼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날아오르는 것이 있으면 떨어지는 것도 있는 법이다. 세상은 제로 섬 게임으로 돌아가는 법이기에. 한동안 잊고 있었던 인수가 탄 수송기는 그 행선지가 페르카 고원 SL­77 기지였다. 그리고 페르카 고원에서 한창 날아가는 도중에 재앙은 덮쳐왔다. 맨 땅에다 대고 지르박이라도 밟을 요량으로 수송기가 무식하게 내려꽂히기 시작한 것이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이건 인수의 처절하기 짝이 없는 비명소리다. 그리고 그에 동조라도 하듯이 자신을 디안바에트 코퍼레이션 한국지부의 어느 말단 직원이라고 밝힌 수수께끼의 사내도 같이 비명을 질렀다.

"거 비명소리 하곤 되게 품위 없게도 지르시는 구만!"

그리고 눈앞에서 불이 번쩍 하자, 직원은 인수에게 외쳤다.

"칵! 아프잖소!"

"맞아도 싸 이 미친 인간아!"

자신의 주먹이 부르르 떨리는 것을 바라본 인수는 진심으로 자기 옆에 자리 잡고 있는 말단 직원이라는 인간의 목을 비틀고 싶어졌다. 대체 저 인간은 심줄이 뭐로 만들어져 있기에 이 절체절명의 상황 속에서도 저렇게 여유만만인거냐!

"낙하산! 낙하산은 어디 있어!?"

"그런 사치스러운 유니크 아이템이 있을 리가 있… 느아아아악!"

"당신이 숨겼지이이이!"

모가지 비틀기라는 원대하기 그지없는 계획의 실행을 위한 한보를 내딛었다. 그 역사적인 첫 번째 단계는, 그의 멱살을 잡고 미친 듯이 휘두르는 것이었다. 말이 나오다가 이상하게 꼬여서 이제는 직원도 으아아악 비슷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수송기는 계속, 계속 아래로 떨어진다. 의료반 요원들의 비명소리까지 섞여서 수송기 내부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인수의 손아귀에서 풀려난 직원씨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참으로 안타깝다는 바라보며 평했다.

"젠장."

그리고는 기울어진 바닥을 날듯이 뛰어 내려가서는 조종실 문을 두들겼다. 탕탕탕. 열리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철컥철컥. 열리지 않는다. 전자식으로 락이 걸려 있었다.

"… 젠장."

품속에 손을 집어넣더니 뭔가를 꺼내들었다. 그걸 본 인수가 악을 쓰며 말했다.

"그 흉악한 건 대체 뭐야! 어디서 그런 걸 막 꺼내는 거요 당신!"

"아 가만 좀 있어요!"

.50AE 데저트 이글. 그걸 손잡이에 대고 갈겨버리자 문이 세차게 튕겨 나왔다. 하마터면 손을 찍어버릴 뻔하고도 그는 여전히 여유로운 분위기로 호기롭게 내뱉었다.

"후하하하! 이런 걸 가지고 사람들은 사기라고 말하지!"

"사기다!"

"느려!"

인수의 한 템포 느린 태클을 건너뛰며 그는 조종실 안으로 난입해 들어갔다. 그리고 그는 등 쪽에서부터 자신을 스쳐 조종실로 빨려 들어가는 기내의 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바람이 이 쪽으로 오지 않았기에 처음에는 알 수 없었지만, 그가 조종실 안에서 자리 잡고 서게 되었을 때 이윽고 상황은 파악됐다. 아까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정적인 분위기가, 실제로는 전혀 조용하지 않았는데도 기분만은 그랬다. 뒤늦게 따라 들어온 인수가 숨을 죽이고 중얼거렸다.

"맙소사…."

상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사체 두 구. 공간에는 피비린내가 진동하고 있었다. 콕핏 전면의 유리는 거의 남아난 것이 없는 상태였고 난도질이라도 당한 것처럼 유리조각이 박혀 전신이 피범벅이 된 시체는 붉은 카펫 마냥 바닥과 시트를 붉게 적시고 있었다.

"이건 대체…."

인수가 크게 충격 받은 목소리로 후방의 의료반을 부르려고 하자 그가 만류했다.

"그만둬요. 둘 다 죽었으니까 소용없어요."

그리고 사체를 밀어내며 시트에 덜컥 앉았다. 사람 같지 않은, 나무토막이 땅에 떨어진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고인 피 웅덩이에 신발이 적셔진다. 조종간이 미끈미끈했다. 분명 사체의 팔에서 흘러내린 피 때문일 것이다. 구역질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인수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중얼거렸다.

"… 시츄에이션이 날 영웅으로 만들려고 드는구나. 홀리 쉣!"

조종간을 당겼다. 기체가 들려진다. 하지만 지면이 지척에 있었다. 속도를 늦출 시간 따위는 없었고, 스로틀을 최대한 줄이며 기체는 더욱 빠르게 지면을 향해 나아갔다. 그가 외쳤다.

"다들 아무거나 꽉 붙들엇! 터치 다운이다아아아아아아!"



인수는 터치다운이라고 외치며 함박웃음을 지어버린 남자를 보고선 초췌하기 짝이 없는 표정과 함께 의외의 여유를 띌 수 있었다. 물론 그 당사자만의 심정적인 감상이었을 뿐이었지만. 만약 객관적인 관찰자가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면, 거의 코앞까지 닥쳐온 지면을 창 밖으로 보고서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안전벨트를 더욱 단단히 동여매는 의료반의 모습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인수의 모습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투콰아앙─! 타앙─! 타앙─! 타다당! 텅─!

"맙소사!"

인수는 이런 상황에서도 말을 할 수 있는 자신에게도 놀랐다. 기체가 땅에 닿으면서 반발력으로 튀어 오른 것이다. 일시적으로 무중력 체험을 하면서도 이 상황을 전혀 납득하지 못하던 그는 거의 졸도 지경에 이르렀다. 무시무시한 파쇄음이 귓가를 진동시켰지만 새하얗게 변해버린 정신머리는 이미 그런 것을 받아들일 상황이 아니었다.
튕겨 나갔던 기체가 다시 땅에 닿았을 때가 더욱 지옥이었다. 무서운 충격이 그들에게 닥쳐왔다. 랜딩기어의 타이어가 질질 끌려 굴러가다가 이윽고 기둥 째 부러져버렸다. 이윽고 기체가 아예 내려 앉아버렸고, 그만큼의 충격이 전해져왔다. 인수 및 이하 일동은 마치 자이로드롭이라도 타는 것만 같은 기분으로 위 아래로 휘청거렸다. 끔찍할 정도의 멀미가 덮쳐왔지만 도무지 토할 시간도 그럴만한 여유도 없었다. 그들은 인간 칵테일이 되어서 미친 듯이 상하좌우로 흔들렸다. 터어어엉─! 콰작! 콰자작! 콰자자자작─! 한쪽 날개가 부러져나갔다. 무식하다고 표현해도 될 만큼의 불길이 순간 솟아올랐지만 지면에 닿아 길게 끌리면서 연소는 사그러들었다. 자욱하게 피어오른 흙먼지가 기체를 덮고, 내부는 뭔가를 알아보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희미하게 변해버렸다.
도무지 끝날 기색이 보이지 않는, 10초를 10년처럼 느끼게 만드는 억겁 같은 진동이 그의 옆에 자리하고 있는 반쯤 정신이 나간 사내의 비명 소리와 함께 합동으로 그를 괴롭혔다. 인수가 고개를 푹 꺾자 직원은 호들갑을 떨었다. 인수는 결국 정신을 잃고 말은 것이다.
얼마 후, 인수는 무사히 눈을 뜰 수 있었다. 시야가 어둑어둑했다. 약간 붉은 기운이 보이는 것도 같았다. 물에 빠졌다가 나온 것 같은 기분으로 눈을 뜨자 감각이 돌아왔다. 양 볼이 얼얼했다. 그는 얼빠진 목소리로 눈앞의 남자에게 물었다.

"… 여보쇼… 당신 어떻게 살아있어요?"

"멋대로 죽이지는 말아줬으면 좋겠는데. 동반자살은 더 싫고."

뺨을 때려서 깨우는 고전적이고 무식하기 짝이 없는 악취미적인 기상 방법에 이렇게까지 감사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일부러 살려뒀나?"

비릿한 어조로 묻는 말을 꺼낸 남자는 오른손에 성경을 들고 있었다. 검은색의 신부복에 새하얗게 세어버린 머리칼. 자비로워 보이는 미소를 달고 다니는 것이 어울려 보이는 얼굴의 그는 우울한 눈빛을 띄며 들판에 내동댕이쳐져서 거뭇하게 연기를 피워 올리고 있는 수송기의 잔해를 쳐다봤다.

"저격에는 늦은 감이 없지 않았다. 실패의 가능성은 내가 만든 게 아니다."

"젠장. 펜릴! 천하의 펜릴이 변명이라도 늘어놓는 건가! 그렇게 실패하고는 여유롭게 구는 태도라니 대체 뭐야!"

펜릴이라 불린 거구의 사내는 그의 신장과 거의 비슷한 크기의 특수제작 대물저격총을 마치 장난감이라도 되는 것처럼 들고서는 서 있었다. 겪어온 시간이 느껴지는 것만 같은, 거뭇하고 날카로운 상처투성이의 얼굴을 지닌 그 사내가 어둡게 내뱉었다.

"걱정하지 말라는 투로 말한 건 내가 아니다."

"두 번 말하게 하는 번거로운 일을 시키지는 말아 줘. 아까 까지는 성의만 없었지만 이제는 네 매너마저도 바닥나기 시작했다고. 펜릴. 하운드처럼 느슨해지기라도 한 건가?"

그러자 펜릴은 고개를 돌려 성경을 낀 사내를 쳐다봤다. 그는 단지 쳐다보기만 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 눈빛을 마주하고 있는 사내는 절절히 느낄 수 있었다. 그 평화로워 보이고 심유하기까지 한 눈빛은 '죽여 버릴까.' 라는 의사를 매우 강하게 표시하고 있다는 것을.
이윽고 그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흥미를 잃었다는 것처럼 그는 조용히 내뱉었다.

"놈의 이야기는 하지 마라."

쓰린 추억인가 보군. 사내는 방금 전까지 옆의 거한에게 생사여탈을 좌지우지 당할 뻔했다는 것은 깡그리 잊어버린 것만 같은 태도로 물었다.

"그렇군. 나에게 협력하고 있는 이유는 순전히 그건가? T.S.S에 대한 복수만이 목적이 아니고."

"놈은 형제들을 져버린 배신자다. 패륜에는 죽음 뿐."

"… 패륜에는 죽음 뿐이라. 퍽 좋은 말이야. 뭐… 어차피 고립 상태의 기지니까 문제는 없겠지. 이번 일은 제대로 빚을 졌군. 사례하지."

"다른 건 필요 없다. 단, 놈을 찾으면 날 부르도록. 반드시."

"아아. 그래. 꼭 부르지."

펜릴은 등을 돌리고 걸어 내려갔다. 그가 떠나간 자리에는 그 거대했던 대물라이플의 탄피 두 개가 나뒹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성경을 든 사내는 담배를 한 가치 들어올리면서 빙글빙글 웃었다. 아직까지도 그의 주위에 초연이 흩어져 맴도는 것만 같았다. 그는 그 초연에다가 담배연기를 섞었다. 죽음과 담배연기가 어우러진 세계에서, 그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 날아가는 수송기의 콕핏을 저격해서 조종사를 맞추다니… 비록 망령에 다름 아니지만 괴물은 괴물이군. 이게 켈베로스(Cerberus) 프로젝트의 힘인가. 넘버 2 펜릴이라. 재미있는 놈을 만났는데."

단 두 발. 엎드려서 쏜 것도 아니고 서서 사격했다. 그것도 대물저격총을 들고서.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명중이 될 리가 없지만, 어처구니없게도 펜릴이라 불린 사내는 그 일을 해내고야 말았다. 수송기를 격추시켰어도 안의 인간들은 살아남은 것 같으니 결과적으로는 실패이긴 하지만, 그 실패도 오래가지는 않는다. 저기 떨어진 인간들은 그의 손에 도륙당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어쨌든 그에게는 소문으로만 들어오던 펜릴이란 인간이 대충 어느 정도인지를 파악한 것만 해도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담배연기를 마저 내뿜자 무전기에 통신이 들어왔다. 반경 100km 이내의 전자기기는 모조리 맛이 가버린 페르카 지역 내에서, 단파 통신조차도 반송파로 모조리 막아버리는 해괴한 재밍 속에서의 유유자적한 통신이었다.

"거의 끝났습니다."

그는 약간 공손한 어조로 말했다.

"괜찮습니다. 어차피 고립 상태니까요. 펜릴이 잘 해줘서, 거리낄 것은 없고 모두 순조롭습니다. 예. 공박은 예정대로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무전을 끊어버렸다. 그는 두 번째 담배에 불을 붙이면서 조용히 내뱉었다.

"망할 디안바에트 코퍼레이션 놈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군. 그따위 구닥다리 수송기로 재밍을 뚫질 않나. 항법장치 오류 유도도 실패했고…. 어쩌면 T.S.S보다 거추장스러울 지도 모르겠는데."

그게 펜릴을 불러와야 했던 이유였다. 전자기기라면 무조건 다운시키고, 첨단기기라면 해킹해서 자신의 것으로 탈취해버리는 이 초고도의 전자전을 뚫고 들어온 항공기가 있었다. 그것이 디안바에트 코퍼레이션 소속의 C-­9 한대. 외견상으로는 보통의 C­-9와 다른 점이라고는 전혀 없었지만, 이 C-­­­­­­9는 그들의 대공망을 뚫고서는 제대로 탐지조차 당하지 않고 유유히 페르카 고원 상공을 질주했다.
뒤늦게 발견한 그들은 펜릴에게 사주했고, 마침 빚을 지워줘야 할 필요가 있었던 펜릴은 맞아 들어가는 이해관계에 따라 대물저격총으로 파일럿을 저격하는 진기명기를 보여줬다. 그래서 추락해버렸지만….

"나쁘지는 않군."

그가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손을 들어올렸다. 손끝을 서서히 앞으로 내리며 그가 중얼거렸다. "March unto death." 악취미적인 이야기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현실이 되었다. 우렁찬 엔진 소리와 함께 보병전투차량과 전차 등 잡다한 구성의 병력들이 어딘 가로 이동을 시작한 것이다.

"살아있는 동안은 언제나 미사시간이니 기도를 외고 회개하면 부활할 지도 모르지…."

그 역시 몸을 돌려 어둠 속으로 사라질 뿐이었다.








추신:
제가 폰트가 없어서 그런건지 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문장부호 중 적히질 않는 게 있군요. 궁여지책으로 땜빵했지만...-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