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연재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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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17
[[B]]잡문을 소개하기에 앞서.[[/B]]
이 졸렬하기 짝이 없는 글을 구상한지 딱 4년차로군요.
이걸 가지고 썼다가 지웠다가 썼다가 지우곤 합니다. 끌쩍거리고 싶은 이야기는 많은데 반해 글 솜씨는 바닥을 치니, 시간이 지나면서 약간씩은 원숙해진 눈으로(물론 눈만 그렇습니다.) 이전의 졸문을 보면 "이건 대체 어디의 어떤 머저리가 갈긴 글이냐!" 하면서 날려버리기 일쑤. 게다가 이번에는 포맷으로 데이터를 모조리 날렸다는 퍽 좋은 변명거리도 있지요.-_-;
좋은 계기였습니다. 마음 다잡고 새로 썼죠. 전의 잡글은 싹 잊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스스로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끌적이기 시작한 물건이라 괴상한 오마쥬에 어디서 본 것 같은 건 다 들어가 있지만, 다른 분들에게 보여드리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보니, 전보다는 좀 나아진 것 같습니다. 졸문이라는 사실이 변하지는 않았지만 말입니다. 핫핫핫.
어쨌든 시작합니다. 1200년에 걸치는 연대기의 첫 막이 올라갑니다.
이번에는 중도하차 하지 않겠습니다.
AD 2014.
전장 270km의 정체불명의 거대 외계함선 '피난처(Refuge)'에 의한
지구 침공이 시작되었다. 이형의 생물들이 가해오는 공세에 세계의 운
명은 풍전등화와 같았다. 놈들이 조금이라도 변덕을 부렸다면 인류는
다른 길 없이 삽시간에 종말을 맞이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랭커(Ranker)' 라고 이름 붙여진 소속 불명의 용사들의 활
약으로, 그리고 또한 알 수 없는 또 하나의 거대 외계함선의 공격으로
'피난처'는 지구 궤도상에서 산산이 조각났다. 함선이 떠나가고 세
계에는 '피난처'의 잔해가 흩뿌려졌다. 그 저주받을 외계의 함선은
파괴되기 직전까지도 인류에 대해 저주를 퍼부은 것이다. 지금의 인류
가 보유하고 있는 기술로는 흉내조차 내지 못할 초고도의 오버테크놀
로지를 간직한 외계함선의 잔해가 세계 곳곳에 낙하했다. 그것은 인간
이 제어하지 못할 물건이었고 분에 넘치는 선물이었으며 또한 그 선물
은 악의마저도 품고 있었다. 이를테면 재앙이었다.
AD 2015.
T.S.S. 대외적으로는 The Silent Service 라고 불리는 기관이 창설되
었다. 세계안전보장을 위한 범세계적 군사통합기구의 발족. 외계로부
터의 공격은 인류에게 한 가지 가능성 - 위기상황 앞에서 하나로 뭉칠
수 있다는 - 을 시사하였다. 기관의 총 책임자로는 레만루스 리글러스
터라는 신원미상의 사내가 발탁되었다. 세계가 그 남자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단 하나였다. 그가 현존 인류 최대의 석학이라는 점. 그것
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아는 것은 없었다.
그리고 이듬해. AD 2016년. 퍼스트 워페어라고 불리는 세계대전의 시
발점이 된 전쟁. '페르카 전쟁'이 발발했다.
Ferka War. 전쟁은 우랄 산맥 서쪽의 동유럽 끝자락에서 시작되었고,
그곳에서 끝났다. 발단은 간단했다. '피난처'가 인류에 남긴 재앙의
일환. 그것은 병기였다. 현존하는 인간은 결코 해석하지 못할 기술을
이용한 고도의 파괴능력을 가지고 있는 병기. 그것을 사용하려 드는
추악한 마음씨를 가진 자가 있기 마련이었고 '피난처'는 그 점을 너
무나 유효적절하게 파고들었다. 원인은 모른다. 누가 방아쇠를 당겼는
지는 결코 알 수 없다. '피난처'의 조각난 유산이 작동되는 순간 그
곳에 소재하던 모두가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조각이 낙하했던 산봉우리의 윗자락은 그것이 가동되자 송두리째 날
아가 버렸다. 고스란히 깎여 나가버린 그 자리는 고원이 되었다. 그리
고 내전이 발발했다. '피난처'의 병기를 입수, 해석해서 사용하려고
하는 군벌들. 그에 동조하는 뒷세계의 무기상인들. 그들은 이미 상당
한 수의 '유산'을 입수한 상태였다. '피난처'의 병기는 여지없이
사용되었고, 페르카 지역은 나날이 시체가 쌓여갔다. 민족분쟁과 인종
청소가 그 사이에 끼어들어 버렸다. 무참하기 이를 데 없는 학살과 생
산되어 방치되는 시체더미. 페르카 전쟁은 단기간 내에 가장 많은 민
간인이 죽어나간 전쟁으로 기억될 것이 자명했다.
그리고 The Silent Service가 참전했다.
T.S.S 참전 후 3주. 페르카 전쟁은 종결되었다.
2개월에 걸친 전쟁이 끝났고, 2개월이 전쟁의 전부였던 것 치고는 그
결과가 너무나 비참했다. 1천 2백만 명의 민간인 사상자와 3천만 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했다. 게다가 T.S.S는 '피난처'의 잔해를 소각하
기 위해서 페르카 고원을 향해 인공위성 발사 마이크로웨이브 폭격을
퍼부었고, 유독하기 짝이 없는 전자파가 들끓게 된 그 지역은 더 이상
생물이 살아갈 수 없을 정도로 황폐하게 변해버렸다. 무기상인들과 함
께 자멸해버린 군벌들이 스러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터뜨린 유산과 핵
병기 다발까지 합해서.
그리고 세계는 비록 수많은 사상자를 내었을지라도 인류의 종말이 좀
더 이후로 미루어졌다는 사실에 대해서 여지없이 기뻐했다. 한 개인이
가질 비통함과 눈물은 뒤로 미뤄둔 채, 눈물의 무게에 견줘보면 알량
하기 그지없을 통계수치에 안도했다.
그렇게 전쟁은 끝났다.
페르카 전쟁은 퍼스트 워페어의 첫 번째 사례다. 국가와 국가간의 전
면대립은 아니지만 막대한 민간인 사망을 동반하는, 미묘한 크기의 국
지전이 '피난처'가 흩뿌린 오버테크놀로지 탑재의 병기 유입과 함께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기 시작했다. T.S.S는 세계 각지에 사령부를 설
치하고 군대를 파견했으며 유산을 소각했다.
새로운 비극은 페르카 전쟁 이후 5년, AD 2021년부터 시작된다.
CHERISHED DESIRE
Chapter 1
The First Goodbye.
Avenger, return
그 날은 차가운 날이었지.
3년 전 그날 말이야.
당신이 알고 싶어 하는 이야기의 서막이 오른 날이지.
그가 누구인지 알고 싶나?
뭐라고 하면 좋을까.
그래. 다른 말은 필요 없겠군.
불행한 사내야.
쉽사리 자신을 긍정할 수 없었지.
그래서 그가 안타까운 일을 당했던 거지만.
하지만 그는 좋은 사내였지.
그는 좋은 사내야. 그를 대해보면 알 수 있어.
내가 말해봐야 당신이 납득할 수는 없을지도 몰라.
어쨌든 모두는 그를 무서운 사내로 바라봤어. 당신조차도.
지금은.
중요한 건 이게 아니지.
나는 그가 죽었다는 말을 믿지 않아. 아직도 그는 살아있어.
그는 결코 죽지 않았어.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에 나는 그를 쫓고 있지.
3년째 계속. 설령 평생이 되더라도.
나는 감사하지 않으면 안돼.
이야기를 듣고 싶나? 좋아.
하지만 한 가지… 시작하기 전에 요구할 것이 있어.
이야기의 대가로서, 같이 울어주길 요구하겠어.
미안한 일이군. 하지만 어쩔 수 없어.
그가 아닌, 파괴되어버린 그들에게 바치는 곡이 될 테니까.
당신 자신에게도 레퀴엠을 바쳐야 할 테니까.
이게 당신이 듣고 싶은 이야기.
아마 지금부터 정확하게 3년 전에 있었던 일부터 시작해야겠군.
그건 모두에게 의미 있을 차가운 나날들의 이야기야.
긴 밤이 되겠는데.
빌어먹을 정도로 달빛이 창백하게 이지러지는 어느 깊은 밤. 차갑게
불어오는 해풍이 파도와 함께 백사장에 덮쳐든다. 파도와 같이 박살나
는 물방울. 그 위로 서린 달빛은 차갑게 부스러진다. 아래에는 물결의
윤곽이 드러났다. 바다가 모래를 적시고 하얀 백사장은 검은 물을 머
금는다.
북풍이 바다를 매몰차게 떠밀어내고, 바다는 겨울처럼 차갑게 백사장
을 연거푸 두들긴다. 밀려오고, 또다시 밀려오는 파도에 젖어드는 발
자국. 점점이 이어진 발자국이 지워져간다. 일부러 그런 듯 선명하게
남은 자취를 덮어버리려는 것처럼 모래는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무언가를 찾아 헤매듯 새하얀 모래 알갱이를 하나하나 훑어 올리던
북풍이 드디어 끝에 도달했다. 발자국 끝에는 더 이상의 자취가 남아
있지 않았다. 북풍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리자 자취의 끝에 한 사내
가 있었다.
검은 가죽코트를 입은 거대한, 체격이 매우 단단해 보이는 거구의 사
내가 서 있었다. 사내의 얼굴은 젊은이의 윤곽을 지니고 있었지만 크
고 작은 흉터들은 그가 겪었던 격한 시간들을 그대로 드러내주는 듯
했다. 마치 삽시간에 평생을 떠나보낸 듯한 모습이었다.
북풍은 눈을 가리며 그 남자의 품으로 뛰어들 듯 불었다. 코트 자락
이 마치 망토처럼 남자의 뒤로 크게 흩날렸다. 단정하진 않지만 마구
잡이로 기른 것도 아닌 그의 머리카락도 자락처럼 퍼져서 띄워졌다.
사내는 손에 유리병을 쥐고 있었다. 조잡한 모양으로 동그랗게 생겨
서 유리병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던 술병이 하나. 새어 들어오는 달빛에
비쳐져 새하얗게 빛나는 액체만이 유일하게 고귀해보였다. 밋밋하게
붙어있는 라벨. 'SPIRYTUS'라는 이름.
부서트릴 듯이 마개를 열었다. 그는 병을 기울였다. 아주 느릿하게
무감동한 표정으로. 손아귀만은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96도의 증류주가 모래 위로 떨어져 내렸다.
"네가 가장 좋아하는 술이었지."
모래가 술을 삼킨다. 젖어드는 모래 속으로 사라지곤 증발해서 대기
로 퍼져나가는 투명한 액체. 술 냄새가 뜨겁게 풍겨 오르고 북풍은 취
한 듯 사내를 휘감아 올렸다. 에탄올 수준의 엄청난 독주의 냄새가 그
남자에게는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했다.
사라져버리는 술을 무표정하게 바라본다. 술병은 아직도 기울여지고
있었다. 무심할 정도로 성실하게, 그 입구는 96도의 알코올을 꾸역꾸
역 뱉어냈다.
병을 기울이던 사내는 술을 병째로 바다 멀리 던져버렸다. 검은 바다
위로 투명한 액체가 흩뿌려지며 길게 호선이 그어진다.
"병째로 마시라고…."
남자는 뒤돌아서서 걸어갔다. 그가 걸어가는 뒤로 흐릿하게 그림자가
어린다. 남자가 다시금 백사장을 짓밟자 무력하게 무너지는 새하얀 모
래알갱이들의 위로 발자국이 점점이 이어졌다. 북풍이 그의 코트 자락
을 흔들었다. 그의 흐트러진 머리카락과 함께 흩날렸다.
문득 생각이라도 난 듯이 고개를 돌려 달을 쳐다본다. 그가 조용히
뇌까렸다.
"약속하겠다. 놈들을 모두 죽여 버리겠다고."
그리고 이어 말했다.
"다른 약속을 하는 건 힘드니까."
세워놓은 검은색 할리 데이비슨에 올라탄 남자는 그를 마지막으로 다
듬어올리듯 스쳐지나가는 북풍의 차가움을 꿰뚫고 포효하듯 울려 퍼지
는 엔진소리와 함께 사라져버렸다. 그가 가버리고 백사장에 남은 것은
적막뿐이다. 관중은 별조차 보이지 않은 어두운 하늘에 유일하게 걸려
있는 다른 것, 달밖에 남지 않았고 북풍은 바다를 두드려 파도를 연주
했다. 그녀의 선율에 따르듯 사내가 던진 술병은 바다 위에서 위 아래
로 약동했다.
이제 달만이 남아 적막과 파도소리의 이중주를 감상할 뿐이었다.
홀로 남은 달은 유난히 창백해보였다.
추신:
맹세 하나 하죠.
메모장과 한글의 악랄하기 그지없는 문장부호의 차이에 저주를 퍼붓겠습니다. 젠장할.
이 졸렬하기 짝이 없는 글을 구상한지 딱 4년차로군요.
이걸 가지고 썼다가 지웠다가 썼다가 지우곤 합니다. 끌쩍거리고 싶은 이야기는 많은데 반해 글 솜씨는 바닥을 치니, 시간이 지나면서 약간씩은 원숙해진 눈으로(물론 눈만 그렇습니다.) 이전의 졸문을 보면 "이건 대체 어디의 어떤 머저리가 갈긴 글이냐!" 하면서 날려버리기 일쑤. 게다가 이번에는 포맷으로 데이터를 모조리 날렸다는 퍽 좋은 변명거리도 있지요.-_-;
좋은 계기였습니다. 마음 다잡고 새로 썼죠. 전의 잡글은 싹 잊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스스로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끌적이기 시작한 물건이라 괴상한 오마쥬에 어디서 본 것 같은 건 다 들어가 있지만, 다른 분들에게 보여드리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보니, 전보다는 좀 나아진 것 같습니다. 졸문이라는 사실이 변하지는 않았지만 말입니다. 핫핫핫.
어쨌든 시작합니다. 1200년에 걸치는 연대기의 첫 막이 올라갑니다.
이번에는 중도하차 하지 않겠습니다.
AD 2014.
전장 270km의 정체불명의 거대 외계함선 '피난처(Refuge)'에 의한
지구 침공이 시작되었다. 이형의 생물들이 가해오는 공세에 세계의 운
명은 풍전등화와 같았다. 놈들이 조금이라도 변덕을 부렸다면 인류는
다른 길 없이 삽시간에 종말을 맞이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랭커(Ranker)' 라고 이름 붙여진 소속 불명의 용사들의 활
약으로, 그리고 또한 알 수 없는 또 하나의 거대 외계함선의 공격으로
'피난처'는 지구 궤도상에서 산산이 조각났다. 함선이 떠나가고 세
계에는 '피난처'의 잔해가 흩뿌려졌다. 그 저주받을 외계의 함선은
파괴되기 직전까지도 인류에 대해 저주를 퍼부은 것이다. 지금의 인류
가 보유하고 있는 기술로는 흉내조차 내지 못할 초고도의 오버테크놀
로지를 간직한 외계함선의 잔해가 세계 곳곳에 낙하했다. 그것은 인간
이 제어하지 못할 물건이었고 분에 넘치는 선물이었으며 또한 그 선물
은 악의마저도 품고 있었다. 이를테면 재앙이었다.
AD 2015.
T.S.S. 대외적으로는 The Silent Service 라고 불리는 기관이 창설되
었다. 세계안전보장을 위한 범세계적 군사통합기구의 발족. 외계로부
터의 공격은 인류에게 한 가지 가능성 - 위기상황 앞에서 하나로 뭉칠
수 있다는 - 을 시사하였다. 기관의 총 책임자로는 레만루스 리글러스
터라는 신원미상의 사내가 발탁되었다. 세계가 그 남자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단 하나였다. 그가 현존 인류 최대의 석학이라는 점. 그것
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아는 것은 없었다.
그리고 이듬해. AD 2016년. 퍼스트 워페어라고 불리는 세계대전의 시
발점이 된 전쟁. '페르카 전쟁'이 발발했다.
Ferka War. 전쟁은 우랄 산맥 서쪽의 동유럽 끝자락에서 시작되었고,
그곳에서 끝났다. 발단은 간단했다. '피난처'가 인류에 남긴 재앙의
일환. 그것은 병기였다. 현존하는 인간은 결코 해석하지 못할 기술을
이용한 고도의 파괴능력을 가지고 있는 병기. 그것을 사용하려 드는
추악한 마음씨를 가진 자가 있기 마련이었고 '피난처'는 그 점을 너
무나 유효적절하게 파고들었다. 원인은 모른다. 누가 방아쇠를 당겼는
지는 결코 알 수 없다. '피난처'의 조각난 유산이 작동되는 순간 그
곳에 소재하던 모두가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조각이 낙하했던 산봉우리의 윗자락은 그것이 가동되자 송두리째 날
아가 버렸다. 고스란히 깎여 나가버린 그 자리는 고원이 되었다. 그리
고 내전이 발발했다. '피난처'의 병기를 입수, 해석해서 사용하려고
하는 군벌들. 그에 동조하는 뒷세계의 무기상인들. 그들은 이미 상당
한 수의 '유산'을 입수한 상태였다. '피난처'의 병기는 여지없이
사용되었고, 페르카 지역은 나날이 시체가 쌓여갔다. 민족분쟁과 인종
청소가 그 사이에 끼어들어 버렸다. 무참하기 이를 데 없는 학살과 생
산되어 방치되는 시체더미. 페르카 전쟁은 단기간 내에 가장 많은 민
간인이 죽어나간 전쟁으로 기억될 것이 자명했다.
그리고 The Silent Service가 참전했다.
T.S.S 참전 후 3주. 페르카 전쟁은 종결되었다.
2개월에 걸친 전쟁이 끝났고, 2개월이 전쟁의 전부였던 것 치고는 그
결과가 너무나 비참했다. 1천 2백만 명의 민간인 사상자와 3천만 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했다. 게다가 T.S.S는 '피난처'의 잔해를 소각하
기 위해서 페르카 고원을 향해 인공위성 발사 마이크로웨이브 폭격을
퍼부었고, 유독하기 짝이 없는 전자파가 들끓게 된 그 지역은 더 이상
생물이 살아갈 수 없을 정도로 황폐하게 변해버렸다. 무기상인들과 함
께 자멸해버린 군벌들이 스러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터뜨린 유산과 핵
병기 다발까지 합해서.
그리고 세계는 비록 수많은 사상자를 내었을지라도 인류의 종말이 좀
더 이후로 미루어졌다는 사실에 대해서 여지없이 기뻐했다. 한 개인이
가질 비통함과 눈물은 뒤로 미뤄둔 채, 눈물의 무게에 견줘보면 알량
하기 그지없을 통계수치에 안도했다.
그렇게 전쟁은 끝났다.
페르카 전쟁은 퍼스트 워페어의 첫 번째 사례다. 국가와 국가간의 전
면대립은 아니지만 막대한 민간인 사망을 동반하는, 미묘한 크기의 국
지전이 '피난처'가 흩뿌린 오버테크놀로지 탑재의 병기 유입과 함께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기 시작했다. T.S.S는 세계 각지에 사령부를 설
치하고 군대를 파견했으며 유산을 소각했다.
새로운 비극은 페르카 전쟁 이후 5년, AD 2021년부터 시작된다.
CHERISHED DESIRE
Chapter 1
The First Goodbye.
Avenger, return
그 날은 차가운 날이었지.
3년 전 그날 말이야.
당신이 알고 싶어 하는 이야기의 서막이 오른 날이지.
그가 누구인지 알고 싶나?
뭐라고 하면 좋을까.
그래. 다른 말은 필요 없겠군.
불행한 사내야.
쉽사리 자신을 긍정할 수 없었지.
그래서 그가 안타까운 일을 당했던 거지만.
하지만 그는 좋은 사내였지.
그는 좋은 사내야. 그를 대해보면 알 수 있어.
내가 말해봐야 당신이 납득할 수는 없을지도 몰라.
어쨌든 모두는 그를 무서운 사내로 바라봤어. 당신조차도.
지금은.
중요한 건 이게 아니지.
나는 그가 죽었다는 말을 믿지 않아. 아직도 그는 살아있어.
그는 결코 죽지 않았어.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에 나는 그를 쫓고 있지.
3년째 계속. 설령 평생이 되더라도.
나는 감사하지 않으면 안돼.
이야기를 듣고 싶나? 좋아.
하지만 한 가지… 시작하기 전에 요구할 것이 있어.
이야기의 대가로서, 같이 울어주길 요구하겠어.
미안한 일이군. 하지만 어쩔 수 없어.
그가 아닌, 파괴되어버린 그들에게 바치는 곡이 될 테니까.
당신 자신에게도 레퀴엠을 바쳐야 할 테니까.
이게 당신이 듣고 싶은 이야기.
아마 지금부터 정확하게 3년 전에 있었던 일부터 시작해야겠군.
그건 모두에게 의미 있을 차가운 나날들의 이야기야.
긴 밤이 되겠는데.
빌어먹을 정도로 달빛이 창백하게 이지러지는 어느 깊은 밤. 차갑게
불어오는 해풍이 파도와 함께 백사장에 덮쳐든다. 파도와 같이 박살나
는 물방울. 그 위로 서린 달빛은 차갑게 부스러진다. 아래에는 물결의
윤곽이 드러났다. 바다가 모래를 적시고 하얀 백사장은 검은 물을 머
금는다.
북풍이 바다를 매몰차게 떠밀어내고, 바다는 겨울처럼 차갑게 백사장
을 연거푸 두들긴다. 밀려오고, 또다시 밀려오는 파도에 젖어드는 발
자국. 점점이 이어진 발자국이 지워져간다. 일부러 그런 듯 선명하게
남은 자취를 덮어버리려는 것처럼 모래는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무언가를 찾아 헤매듯 새하얀 모래 알갱이를 하나하나 훑어 올리던
북풍이 드디어 끝에 도달했다. 발자국 끝에는 더 이상의 자취가 남아
있지 않았다. 북풍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리자 자취의 끝에 한 사내
가 있었다.
검은 가죽코트를 입은 거대한, 체격이 매우 단단해 보이는 거구의 사
내가 서 있었다. 사내의 얼굴은 젊은이의 윤곽을 지니고 있었지만 크
고 작은 흉터들은 그가 겪었던 격한 시간들을 그대로 드러내주는 듯
했다. 마치 삽시간에 평생을 떠나보낸 듯한 모습이었다.
북풍은 눈을 가리며 그 남자의 품으로 뛰어들 듯 불었다. 코트 자락
이 마치 망토처럼 남자의 뒤로 크게 흩날렸다. 단정하진 않지만 마구
잡이로 기른 것도 아닌 그의 머리카락도 자락처럼 퍼져서 띄워졌다.
사내는 손에 유리병을 쥐고 있었다. 조잡한 모양으로 동그랗게 생겨
서 유리병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던 술병이 하나. 새어 들어오는 달빛에
비쳐져 새하얗게 빛나는 액체만이 유일하게 고귀해보였다. 밋밋하게
붙어있는 라벨. 'SPIRYTUS'라는 이름.
부서트릴 듯이 마개를 열었다. 그는 병을 기울였다. 아주 느릿하게
무감동한 표정으로. 손아귀만은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96도의 증류주가 모래 위로 떨어져 내렸다.
"네가 가장 좋아하는 술이었지."
모래가 술을 삼킨다. 젖어드는 모래 속으로 사라지곤 증발해서 대기
로 퍼져나가는 투명한 액체. 술 냄새가 뜨겁게 풍겨 오르고 북풍은 취
한 듯 사내를 휘감아 올렸다. 에탄올 수준의 엄청난 독주의 냄새가 그
남자에게는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했다.
사라져버리는 술을 무표정하게 바라본다. 술병은 아직도 기울여지고
있었다. 무심할 정도로 성실하게, 그 입구는 96도의 알코올을 꾸역꾸
역 뱉어냈다.
병을 기울이던 사내는 술을 병째로 바다 멀리 던져버렸다. 검은 바다
위로 투명한 액체가 흩뿌려지며 길게 호선이 그어진다.
"병째로 마시라고…."
남자는 뒤돌아서서 걸어갔다. 그가 걸어가는 뒤로 흐릿하게 그림자가
어린다. 남자가 다시금 백사장을 짓밟자 무력하게 무너지는 새하얀 모
래알갱이들의 위로 발자국이 점점이 이어졌다. 북풍이 그의 코트 자락
을 흔들었다. 그의 흐트러진 머리카락과 함께 흩날렸다.
문득 생각이라도 난 듯이 고개를 돌려 달을 쳐다본다. 그가 조용히
뇌까렸다.
"약속하겠다. 놈들을 모두 죽여 버리겠다고."
그리고 이어 말했다.
"다른 약속을 하는 건 힘드니까."
세워놓은 검은색 할리 데이비슨에 올라탄 남자는 그를 마지막으로 다
듬어올리듯 스쳐지나가는 북풍의 차가움을 꿰뚫고 포효하듯 울려 퍼지
는 엔진소리와 함께 사라져버렸다. 그가 가버리고 백사장에 남은 것은
적막뿐이다. 관중은 별조차 보이지 않은 어두운 하늘에 유일하게 걸려
있는 다른 것, 달밖에 남지 않았고 북풍은 바다를 두드려 파도를 연주
했다. 그녀의 선율에 따르듯 사내가 던진 술병은 바다 위에서 위 아래
로 약동했다.
이제 달만이 남아 적막과 파도소리의 이중주를 감상할 뿐이었다.
홀로 남은 달은 유난히 창백해보였다.
추신:
맹세 하나 하죠.
메모장과 한글의 악랄하기 그지없는 문장부호의 차이에 저주를 퍼붓겠습니다. 젠장할.
그리고...분야는 다르지만 건축이라는 창조적 작업을 해 본 경험으로 말씀 드리면, 디테일이 아무리 좋아도 끝까지 완성시키지 못하면 아무 짝에도 소용이 없더군요. 결과물이 안좋더라도 하나를 완성시키고 같은 모델을 다시 만들어 또 완성시키고 하는 사람의 건축이 반쯤 만들다 마음에 안든다고 또 새로 시작하기를 반복 하는 사람 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사실 이건 일반수학 정석의 집합 부분을 도사가 되도록 공부하고 종합영어의 명사를 눈감고도 쓰도록 외우지만 정작 그 참고서들을 끝까지 보지 못하는 대부분의 학생들보다 이해가 좀 안되도 끝까지 꾸준히 공부한 다음 새로이 처음부터 다시 보기를 반복하는 학생들이 공부를 더 잘하는 것과도 같은 이치가 아닌가 싶네요.
그런 의미에서 첫 부분을 100번 고치는 것 보다는 끝까지 쓰고나서 열번 고치는 글이 더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