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이지... 뜻대로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그렇게도 미워했으면서...
그들이 죽어주기를 내심 바래왔으면서...
살아있는 그들을 내버려두지 못하고 죽을 짓으로 여기 온 것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왜 저들이 죽은 것에 대하여 이처럼 가슴이 시리고 아픈거지? 왜 저들이 죽지 않았기를 바라고 있는거지?

모르겠다...
사실, 모조리 죽이고픈 마음도 있었다. 그들이 죽으면 나는 더 이상 목숨에 위협을 받을 일은 없을테니까...
그래도... 왜 나를 그렇게 죽여야만 했는지 묻고싶었다. 내가 살아있다는 그것이 그들에게 그렇게 큰 괴로움이나 아픔이 되었던 것일까?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있었던 것일까?
차라리 물어서 알 수 있었다면, 이렇게 싸우지는 않았어도 되었을텐데...

거칠었다. 죽어가는 자에게 너무 심했는지도 모른다.
그마저 죽어버리면 물어볼 수도 없었기에, 성급하게 물어보려고 멱살을 잡았다. 순간, 그는 제 살을 깨물었다.
결국 내 손으로 그에게 죽음을 주었다.

차라리... 나를 만나지 않았다면...
이 인간들은 더 오래 살 수 있지는 않았을까?

죽은 것은 미동도 없으나 편히 쉬기엔 뭔가 켕긴다.
숲에 들어온 것이 내 손에 걸린 것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최소한 돌려 보내주어야 하지는 않을까?

(이들을 다 돌려보내면, 나는 이 모습 모른다는 듯이 살아갈 수 있을까?)

시체를 전부 돌려보낸다는 것은 혼자서는 무리다. 그 전에 죄다 썩어버릴 것이다.
그렇다고, 여기에 버려두면 켕기는 나를 어찌할 수가 없다. 긴검땅뿌리에게 도움을 청하는 동안 이들은 거름이 될지 먹이가 될지 알 수 없다.

얼굴은 기억해줄까?

이들의 얼굴은 기억에 남는다. 마치 흐르는 물과 같아서 자유로이 변하던 모양매.
이들은 소리 뿐만 아니라 앞발과 몸짓으로 많은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은 얼굴에 묻어나는 많은 모양매였다. 내가 저들의 모양매를 통해 어느정도 저들을 느낄 수 있었다면, 그런 얼굴이라면 저들이 누구였는지 알아볼 수 있게 하지 않을까?

지금은 전부 질려버린 그 얼굴들...
붉은 물은 굳어버렸고 뒤틀린 모양매 위로 흰 돌처럼 굳어버린 얼굴들...
그래도 제각각의 얼굴들. 전혀 같지 않은 그 특이한 얼굴들. 그래서 더 기억에 날 얼굴들...

그래.
얼굴만이라도 보내주자.

이렇게 딱딱하지는 않았는데...
나무껍질에 작은구릅이 걸리는 느낌이 돋는다. 나무껍질이라기엔 더 부들부들하고 마른 진흙보단 퍼석퍼석한 그런 느낌이 작은구릅 하나하나를 타고 올라온다.

한 몸에서 얼굴만 빼는 것이 미안하기도 하다. 전부 다 보내주고 싶지만... 나에게 그럴 힘이 없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목숨을 거둘 힘은 있으면서... 정작 돌려보내 줄 수 있는 힘이 없는 이런 나를... 그래서 너무 미안하다.

뚝! 철퍽―!
목 위를 전부 뽑아내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렇지만, 이들은 우리보다는 약한 듯 싶다. 이들에게는 비늘도 없고, 그렇다고 몸이 단단하지도 않다. 그래서 이들은 무거운 비늘을 몸에 덧대고 뾰족한 꼬챙이를 만드는가보다. 보고 있자니 참 신기한 모습들도 보인다. 대체 이 많은 잔뿌리는 뭐에 쓰는 것일까?
이들이 뭉칠 때는 그렇게도 무서웠는데... 이렇게 쉽게 쓰러지는 자들이었다니... 기껏 뽑은 목이 어디로 굴렀지?


그렇게 전부 열하나의 목 윗 부분을 뽑아내었다. 저들의 꼬챙이는 거죽 속으로 들어갈 때는 좋은데, 막상 딱딱한 곳이 또 있어서 거기는 들어가지 못한다. 결국 손으로 뽑아내는 수밖에 없었다. 뽑아내기는 다 뽑아냈지만.. 이걸 대체 어떻게 보내야 하나... 근처에 인간들이 사는 곳으로 보이는 곳이 있었다. 일단 거기에 굴려서 보낼까? 굴려서 보내면 이 얼굴들을 알아볼 수 있을까? 굴리다가 상하면 어떻게 하지? 주워다가 다시 굴릴 수도 없고... 날 보면 또 인간들은 꼬챙이를 들고 달려올지도 모른다.

던질까?
직접 던진다면... 이 얼굴들이 말짱하지는 않겠지?
저 꼬챙이에 매달아 던진다면... 그러면 괜찮을까? 그나마 가장 말짱하게 보낼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서서히 밝아져온다.
큰 밝음이 날고 있나보다. 작은 밝음은 이제 보이지 않는다. 검은 나무들이 저마다의 모습을 갖기 시작했고 물 같던 모든것이 서서히 변하고 있다. 그나저나 이거 어떻게 꼬챙이에 매달아야 하나...

꿰자니 딱딱한 부분 때문에 안들어가고, 꼬챙이 앞쪽은 너무 크다... 아! 나무를 긁자!
여기 나무들 중에는 긁으면 끈적한 물이 나오는 나무가 있다. 워낙 끈적거려서 잘 안떨어지는 그런 이상한 물이었는데.. 그걸 잔뿌리에 바르면 붙지 않을까? 마침 큰 밝음 덕분에 어느 나무인지 쉽게 알 수 있을 것도 같다.


분명 이 나무는 어느때에 보던 신기한 나무다. 다른 나무들은 가지가 위로 솟는데 이 나무만은 물이 무거워서 그런지, 아래로 축 처진 가지를 갖고 있다. 뿔과 같아서 뿌리로 내려갈 수록 굉장히 굵은데 위로 갈수록 얇아지는 희한한 나무다.

너무 굵어서 구릅으로 긁기에는 꽤 아플 듯도 싶지만...
크게 대고 긁어내리니 찢겨진 살갗 안에서 스멀스멀 흘러나오는 곤물... 구릅이 아프긴 하지만, 빨리 꼬챙이에 옮겨바르지 않으면 또 굳어버린다. 거미줄 그 이상으로 곤적곤적 거리는 탓에 얼마 지나지 않아서 흐르는 것을 멈추고 굳어버린다.

땅에 꽂은 꼬챙이를 비비적 돌려가며 곤물을 옮기고 잔뿌리를 이 위에 얹었다. 잔뿌리는 곤물에 붙어서 잘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 곧 곤적임도 멎어버리고 이리저리 잔뿌리들을 감아버린 곤물. 이정도면 더는 떨어질 걱정 하지 않아도 좋을 듯 싶다.


꼬챙이 셋에 붙은 목 윗부분들.. 이렇게라도 돌아가요.
이제 바로 앞이다. 몇 발자국만 더 가면 땅이 낮아지는 곳이 있다. 내가 사는 이 곳에 비하면 굉장히 낮은 땅에 사는, 그런 인간들의 ‘곳’이 있다. 그들이라면, 이들을 알아 볼 수 있을까? 내가 아는 인간들은 저기 뿐인데..

일단 던지자. 여기서 썩게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않겠나?

투벅, 투벅, 투벅, 투벅, 파앗!
어설프지만 꽤 높이 날아간 꼬챙이... 너무 멀리 던졌나?
다음번 꼬챙이도 보내줄 차례다. 다시 돌아와서 두 번째 꼬챙이를 집었다. 처음 던진 꼬챙이는 멀쩡했으니 분명 나머지 꼬챙이에 붙은 이들도 멀쩡하겠지?

투벅, 투벅, 투벅, 투벅, 파앗!
너무 높이 날아간다.... 이런! 인간굴 위에 떨어졌다. 인간들이 굴에서 뛰어나온다.
이제 마지막 남은 꼬챙이다. 돌려보내주자. 방금처럼 너무 높이 날리지만 말자. 나를 죽이러 온 인간들이었지만 그래도 돌려보내 주지 않으면 불편하다.

투벅, 투벅, 투벅, 투벅, 파앗!

잘 가요―――!
다시는 이렇게 만나지 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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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 원하는 내용을 제대로 옮겨넣지 못한 것 같아서 가장 아쉽습니다. 리자드맨의 눈으로 인간을 보려고 하는데, 이게 어렵네요. (저도 인간이기 때문에...) 도로 1점으로 떨어진 것 같은 기분입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평가와 딴지, 대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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