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연재 게시판
SF, 판타지, 무협 등 다양한 장르의 창작 소설이나 개인의 세계관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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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11
창성은 자신이 생각해도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놀이엔 소질이 없었다. 지금 처럼 그저 지고나서 너털 웃음을 터트리는 수 밖에. 창성의 깨끗하고 아름답게 울리는 목소리가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였다.
"아하하. 내가 졌다. 졌어."
"으헤헤. 오빠. 이제 우리 뭐하고 놀까?"
"쉬잇, 잠깐."
창성은 자신의 입에 손가락을 대고, 특유의 긴 귀로 귀를 기울였다. 혜민과 혜연은 그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밖에는 그저 참새들이 날고 몇몇은 닭들과 땅을 쪼고 있었다.
"...오고있어."
"누...누가요?"
굳어진 남매를 보며 창성은 피식 웃었다.
"아우님... 너희 아버님 말야. 웬일로 산에서 빨리 내려오신다네."
"이번에도 새의 말을 들었나요?"
"오빠는 신기해요. 그런 재주는 어떻게 하면 부릴 수 있죠? 가르쳐 주세요!"
"어... 그게..."
창성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참새를 통해 인근의 정보를 탐색한 것은 맞다. 하지만 창성은 자신이 어떤 식으로 그런 일을 해낼 수 있는지 자신도 전혀 모르고 있다. 그래도 혜연은 열심히 창성에게 붙어 조르고만 있다.
"오빠 제발요. 오빠도 엄마한테 많이 배우고 있잖아요!"
"연아! 그럼 못써. 형이 곤란해 하잖아!"
"혜연아. 나도 내가 어떤 식으로 이런게 가능한지 몰라. 하지만 그걸 알게 된다면 꼭 가르쳐 주마."
"오빠 거짓말쟁이. 뭘 물어봐도 모른다. 뭘 가르쳐달래도 모른다, 모른다, 모른다! 오빠 나빠!"
"그러니까... 어? 연아야? 어디가는 거야? 같이가!"
혜연은 비밀을 가르져 주지 않는 것이라 생각한듯, 심통을 내며 어딘가로 달려가 버렸고 혜민은 당황하여 혜연을 따라 달려갔다. 창성도 방에서 나가 따라가려 했으나, 대청에서 들러온 칼칼한 목소리가 그를 붙잡았다.
"놔 두시구랴."
"장 어르신."
"걱정마시구랴. 그애들. 곧 돌아오게 될 테니 말이오."
"좋은 애들입니다. 하지만 저 자신에 대해 제가 말을 할 수도 없단게 한심하네요."
창성은 고개를 저으면서 장노인에게 팔을 벌렸다.
"아직도 옛일이 기억 나지 않소?"
"두통이라도 적어진걸 다행으로 여깁니다. 지금은요."
창성은 그렇게 말하면서 힘없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방에서 나와 노인처럼 대청에 앉았다. 잔뜩 구름낀 우중충한 날씨다. 간혹 군데 군데 구름에 구멍이 뚫려 햇살의 기둥을 만들었다. 하는 날을 보아선 창성이 특히 좋아하는 맑게 개인 밤하늘과 달빛을 보긴 틀린것 같다. 장노인은 품을 뒤적거리더니 연촛가루를 곰방대에 넣고 슬쩍 불을 당겼다. 곧 장노인의 입에선 무럭 무럭 연기가 뿜어올랐다. 그 모습이 창성의 뇌리의 무엇인가를 자극하여 창성은 피식 웃었다.
"뭐야, 왜 웃는 겐가?"
"어르신의 모습을 보니 예전에 꼭 어르신 같이 신기한 연기를 뿜는 사람와 좋은 시간을 보낸 듯한 느낌이 들어서요."
"연초가 무에 신기하다고?"
"신기하죠. 여기에 산건 몇 달 밖에 안되었지만 우리마을 사람 외엔 태워서 연기나는 풀을 머금는 사람은 없잖습니까."
창성은 자신도 모르게 미래마을을 우리마을이라 부르고 있다. 짧은 시간이지만 언어와 풍습을 익히는 속도만큼 빨리 정이 붙어서이리라.
"이몸은 자네가 훨씬 신기하다네.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이 대맥에서 지내지 않나, 온갖 무서운 물건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다니지 않나... 처음엔 무슨 악귀나 신장쯤으로 여겼는데, 투구를 벗고보니 안엔 선녀같은 얼굴과 목소리가 있고... 귀는 토끼귀마냥 길지...쩝."
장노인은 연초를 빨다가 목이 컬컬해졌는지 침을 삼켰다. 창성은 뭐라 말도 없이 그냥 이었다. 그 당시는 창성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사실, 그것이 창성의 기억의 시작이라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주'를 한 첫날에 본 것들... 마치 지옥을 연상시키는 세상과 빛나는 문을 통과하자 보인 아름다운 자연은, 지나치게 생생하여 도리어 자신이 꿈속에 있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인 것이다. 하지만 창성은 곧 그런게 아니라고 결론지었다. 창성은 자신의 육체를 믿었다. 그리고 그 육체의 새겨진 감각은 완전한 진실이다. 그렇다면...
"혹시나... 전 정말 악귀나 신장쯤 되지 않았을까요...?"
"커헉. ㅌㅟㅅ. 갑자기 그게 뭔소린가?"
창성이 불쑥 한 말에 장노인은 가래를 밭으며 반문했다.
"이 사람 한번... 쯧쯧. 은경이 한 말도 못들었나? 자네의 군장을 볼때, 자넨 저 멀리 서방 오랑캐의 귀족전사가 틀림 없다고 보증을 하지 않았나! 지금이야 이 땅에 정붙이고 산다지만, 언젠가 자네의 동포가 있는 땅으로 갈 수 있을걸세."
동포... 그 말을 장노인의 입으로 듣자 창성의 뇌리에 백색 고통이 밀려들었다. 숨이 가빠지고 심장이 뛴다. 그리고 텅비어가는 머리가 간신히 균형을 잡았다. 장노인은 묵묵히 그 모습을 보더니 식은 땀을 닦으라며 손수건을 건네 주었다.
"괜찮은가?"
"괜찮습니다. 예전에 비해선 훨씬 나아졌습니다."
창성의 말은 맞지만 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늙은이가 괜한 소리로 젊은이를 괴롭히구마... 잔말말고 안에 들어가서 쉬거라. 공덕이와 며늘아이가 오면 바로 알려주마."
창성은 간신히 일어너 공덕 식구가 자신의 방으로 배정해준 사랑채로 들어가 벽에 등을 기대어 앉았다.
창성의 눈에 비친 방은 허름하고 평범해 빠진 방이다. 잿빛의 벽은 종이로 발라져 있고, 한 구석의 옷장과 문갑이 조용히 자릴 차지하고 있으며, 그 위에 연초함이 올려진게 방안의 전부였다.
그리고 그 안을 차지하고 있는 자신. 창성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이곳에서 얼마나 이질적인지 잘 알고있다. 장노인은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 꼭 있다고 안심을 시켜주고 있지만, 짐승들과 말이 통하는 사람이 도대체 어디쯤 있을 것인가? 창성은 당장 외모부터 다르다. 자신의 몸 전체가 그들과는 다르다는걸 인식하고 있다.
창성은 사람이다. 그렇다. 살아 움직이고 숨쉰다. 먹고 마신다. 그러나 이질적이다. 노골적으로 이질적이라서 자신이 사람과는 다른 사람이란 것을 자각하고 있다. 자신의 육체적인 면, 자신의 외모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창성은 자신의 안에... 아니, 자신의 내면 자체 역시도 이질적이란 것을 잘 알고 있다.
창성이란 이름을 받기전, 이질적인 그것은 잃어버린 기억과 함께 죽어 있었다. 존재의 감각은 남아있다. 하지만 그것은 살아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러나 자신이 창성이란 이름을 받게 되면서, 그것은 부활했다. 그리고 자신이 살아 있다는 기쁨을 영혼 깊숙히에서 포효했다. '난 살아있다'라면서. 그에 동조하듯이 창성 자신도 전율적인 쾌락에, 존재감을 부여받은 쾌락에, 육체의 한계를 까마득히 돌파한 쾌락에 떨어던 것이다.
'그것'의 정체는 무엇일까? 거기에 창성은 답을 찾을 수 없었다. 하기사 예전의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데 그것을 찾아낸다는 게 말이 안되는 이야기이다. 어쩌면 그것이야 말로 진짜 자기 자신이며 기억을 잃은 자신은 단지 겉가죽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창성은 다시금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다가 창성의 귀에 무엇인가가 잡혔다. 밖으로 나서자 물기로 끈적해진 공기가 요동을 치고 있다. 창성의 예민한 감각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무엇인가... 거의 자신만큼이나 이질적인것. 하지만 심상치 않은 사악함이 공기중에 퍼져있고, 작은 짐승들이 그 사악함에 떨고 있다.
창성은 천천히 그 공기를 마시고 공포에 더는 짐승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마을을 쭉 ㅎㅜㅌ어보았다. 둔감한 마을은 이런 공기에 아직 젖어들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방법이 있을 지도 모른다. 창성은 웬지 모를 희열을 느꼈다. 이 사악함은 그가 아주 오래전부터 느껴온 것이며, 친하지는 않지만 익숙했다. 몸이 슬며시 떨려왔다. 자신의 강력함을 '적'앞에 과시하라며 충동질을 한다. 창성이 알지 못하는 사이, 창성의 육체와 내면 깊숙한 곳에선 이미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창성의 귓가에 속삭이는 바람의 소리를 들었다.
'음?...'
어쩐지 이상했다. 저 멀리 공덕이 어떤 사람과 함께 오는 것 같다. 산사람은 기상을 잘 탄다. 날씨에 따라 목숨이 오가는 일이 비일비재한 만큼 날이 안좋으면 언제든 일을 팽개치는 자들이 산사람들이다. 하지만...
'날씨만으로 봐선 아직 시간이 있는데?'
창성이 잰 감각으론 아직 비가 올려면 좀 더 있어야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정신없이 마을을 향해오고 있다. 두 사람은 창성도 인정한 사람. 그걸 모를리가 없을텐데 무슨 일로 서두르는 거지?
"아하하. 내가 졌다. 졌어."
"으헤헤. 오빠. 이제 우리 뭐하고 놀까?"
"쉬잇, 잠깐."
창성은 자신의 입에 손가락을 대고, 특유의 긴 귀로 귀를 기울였다. 혜민과 혜연은 그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밖에는 그저 참새들이 날고 몇몇은 닭들과 땅을 쪼고 있었다.
"...오고있어."
"누...누가요?"
굳어진 남매를 보며 창성은 피식 웃었다.
"아우님... 너희 아버님 말야. 웬일로 산에서 빨리 내려오신다네."
"이번에도 새의 말을 들었나요?"
"오빠는 신기해요. 그런 재주는 어떻게 하면 부릴 수 있죠? 가르쳐 주세요!"
"어... 그게..."
창성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참새를 통해 인근의 정보를 탐색한 것은 맞다. 하지만 창성은 자신이 어떤 식으로 그런 일을 해낼 수 있는지 자신도 전혀 모르고 있다. 그래도 혜연은 열심히 창성에게 붙어 조르고만 있다.
"오빠 제발요. 오빠도 엄마한테 많이 배우고 있잖아요!"
"연아! 그럼 못써. 형이 곤란해 하잖아!"
"혜연아. 나도 내가 어떤 식으로 이런게 가능한지 몰라. 하지만 그걸 알게 된다면 꼭 가르쳐 주마."
"오빠 거짓말쟁이. 뭘 물어봐도 모른다. 뭘 가르쳐달래도 모른다, 모른다, 모른다! 오빠 나빠!"
"그러니까... 어? 연아야? 어디가는 거야? 같이가!"
혜연은 비밀을 가르져 주지 않는 것이라 생각한듯, 심통을 내며 어딘가로 달려가 버렸고 혜민은 당황하여 혜연을 따라 달려갔다. 창성도 방에서 나가 따라가려 했으나, 대청에서 들러온 칼칼한 목소리가 그를 붙잡았다.
"놔 두시구랴."
"장 어르신."
"걱정마시구랴. 그애들. 곧 돌아오게 될 테니 말이오."
"좋은 애들입니다. 하지만 저 자신에 대해 제가 말을 할 수도 없단게 한심하네요."
창성은 고개를 저으면서 장노인에게 팔을 벌렸다.
"아직도 옛일이 기억 나지 않소?"
"두통이라도 적어진걸 다행으로 여깁니다. 지금은요."
창성은 그렇게 말하면서 힘없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방에서 나와 노인처럼 대청에 앉았다. 잔뜩 구름낀 우중충한 날씨다. 간혹 군데 군데 구름에 구멍이 뚫려 햇살의 기둥을 만들었다. 하는 날을 보아선 창성이 특히 좋아하는 맑게 개인 밤하늘과 달빛을 보긴 틀린것 같다. 장노인은 품을 뒤적거리더니 연촛가루를 곰방대에 넣고 슬쩍 불을 당겼다. 곧 장노인의 입에선 무럭 무럭 연기가 뿜어올랐다. 그 모습이 창성의 뇌리의 무엇인가를 자극하여 창성은 피식 웃었다.
"뭐야, 왜 웃는 겐가?"
"어르신의 모습을 보니 예전에 꼭 어르신 같이 신기한 연기를 뿜는 사람와 좋은 시간을 보낸 듯한 느낌이 들어서요."
"연초가 무에 신기하다고?"
"신기하죠. 여기에 산건 몇 달 밖에 안되었지만 우리마을 사람 외엔 태워서 연기나는 풀을 머금는 사람은 없잖습니까."
창성은 자신도 모르게 미래마을을 우리마을이라 부르고 있다. 짧은 시간이지만 언어와 풍습을 익히는 속도만큼 빨리 정이 붙어서이리라.
"이몸은 자네가 훨씬 신기하다네.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이 대맥에서 지내지 않나, 온갖 무서운 물건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다니지 않나... 처음엔 무슨 악귀나 신장쯤으로 여겼는데, 투구를 벗고보니 안엔 선녀같은 얼굴과 목소리가 있고... 귀는 토끼귀마냥 길지...쩝."
장노인은 연초를 빨다가 목이 컬컬해졌는지 침을 삼켰다. 창성은 뭐라 말도 없이 그냥 이었다. 그 당시는 창성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사실, 그것이 창성의 기억의 시작이라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주'를 한 첫날에 본 것들... 마치 지옥을 연상시키는 세상과 빛나는 문을 통과하자 보인 아름다운 자연은, 지나치게 생생하여 도리어 자신이 꿈속에 있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인 것이다. 하지만 창성은 곧 그런게 아니라고 결론지었다. 창성은 자신의 육체를 믿었다. 그리고 그 육체의 새겨진 감각은 완전한 진실이다. 그렇다면...
"혹시나... 전 정말 악귀나 신장쯤 되지 않았을까요...?"
"커헉. ㅌㅟㅅ. 갑자기 그게 뭔소린가?"
창성이 불쑥 한 말에 장노인은 가래를 밭으며 반문했다.
"이 사람 한번... 쯧쯧. 은경이 한 말도 못들었나? 자네의 군장을 볼때, 자넨 저 멀리 서방 오랑캐의 귀족전사가 틀림 없다고 보증을 하지 않았나! 지금이야 이 땅에 정붙이고 산다지만, 언젠가 자네의 동포가 있는 땅으로 갈 수 있을걸세."
동포... 그 말을 장노인의 입으로 듣자 창성의 뇌리에 백색 고통이 밀려들었다. 숨이 가빠지고 심장이 뛴다. 그리고 텅비어가는 머리가 간신히 균형을 잡았다. 장노인은 묵묵히 그 모습을 보더니 식은 땀을 닦으라며 손수건을 건네 주었다.
"괜찮은가?"
"괜찮습니다. 예전에 비해선 훨씬 나아졌습니다."
창성의 말은 맞지만 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늙은이가 괜한 소리로 젊은이를 괴롭히구마... 잔말말고 안에 들어가서 쉬거라. 공덕이와 며늘아이가 오면 바로 알려주마."
창성은 간신히 일어너 공덕 식구가 자신의 방으로 배정해준 사랑채로 들어가 벽에 등을 기대어 앉았다.
창성의 눈에 비친 방은 허름하고 평범해 빠진 방이다. 잿빛의 벽은 종이로 발라져 있고, 한 구석의 옷장과 문갑이 조용히 자릴 차지하고 있으며, 그 위에 연초함이 올려진게 방안의 전부였다.
그리고 그 안을 차지하고 있는 자신. 창성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이곳에서 얼마나 이질적인지 잘 알고있다. 장노인은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 꼭 있다고 안심을 시켜주고 있지만, 짐승들과 말이 통하는 사람이 도대체 어디쯤 있을 것인가? 창성은 당장 외모부터 다르다. 자신의 몸 전체가 그들과는 다르다는걸 인식하고 있다.
창성은 사람이다. 그렇다. 살아 움직이고 숨쉰다. 먹고 마신다. 그러나 이질적이다. 노골적으로 이질적이라서 자신이 사람과는 다른 사람이란 것을 자각하고 있다. 자신의 육체적인 면, 자신의 외모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창성은 자신의 안에... 아니, 자신의 내면 자체 역시도 이질적이란 것을 잘 알고 있다.
창성이란 이름을 받기전, 이질적인 그것은 잃어버린 기억과 함께 죽어 있었다. 존재의 감각은 남아있다. 하지만 그것은 살아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러나 자신이 창성이란 이름을 받게 되면서, 그것은 부활했다. 그리고 자신이 살아 있다는 기쁨을 영혼 깊숙히에서 포효했다. '난 살아있다'라면서. 그에 동조하듯이 창성 자신도 전율적인 쾌락에, 존재감을 부여받은 쾌락에, 육체의 한계를 까마득히 돌파한 쾌락에 떨어던 것이다.
'그것'의 정체는 무엇일까? 거기에 창성은 답을 찾을 수 없었다. 하기사 예전의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데 그것을 찾아낸다는 게 말이 안되는 이야기이다. 어쩌면 그것이야 말로 진짜 자기 자신이며 기억을 잃은 자신은 단지 겉가죽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창성은 다시금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다가 창성의 귀에 무엇인가가 잡혔다. 밖으로 나서자 물기로 끈적해진 공기가 요동을 치고 있다. 창성의 예민한 감각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무엇인가... 거의 자신만큼이나 이질적인것. 하지만 심상치 않은 사악함이 공기중에 퍼져있고, 작은 짐승들이 그 사악함에 떨고 있다.
창성은 천천히 그 공기를 마시고 공포에 더는 짐승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마을을 쭉 ㅎㅜㅌ어보았다. 둔감한 마을은 이런 공기에 아직 젖어들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방법이 있을 지도 모른다. 창성은 웬지 모를 희열을 느꼈다. 이 사악함은 그가 아주 오래전부터 느껴온 것이며, 친하지는 않지만 익숙했다. 몸이 슬며시 떨려왔다. 자신의 강력함을 '적'앞에 과시하라며 충동질을 한다. 창성이 알지 못하는 사이, 창성의 육체와 내면 깊숙한 곳에선 이미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창성의 귓가에 속삭이는 바람의 소리를 들었다.
'음?...'
어쩐지 이상했다. 저 멀리 공덕이 어떤 사람과 함께 오는 것 같다. 산사람은 기상을 잘 탄다. 날씨에 따라 목숨이 오가는 일이 비일비재한 만큼 날이 안좋으면 언제든 일을 팽개치는 자들이 산사람들이다. 하지만...
'날씨만으로 봐선 아직 시간이 있는데?'
창성이 잰 감각으론 아직 비가 올려면 좀 더 있어야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정신없이 마을을 향해오고 있다. 두 사람은 창성도 인정한 사람. 그걸 모를리가 없을텐데 무슨 일로 서두르는 거지?
[물고기군] 밤이면 언제나 아름다운 인생을 꿈꾼다. 사랑하고픈 사람과 별을 바라다 보고 싶을때 비오는날 우산들이 공허하게 스쳐갈 때 노래부르는 물고기가 되고 싶고 날개달려 하늘을 날고싶다. 아침의 차가운 바닥에서 눈을돌려 회색의 도시라도 사람의 모습을 느껴본다 부디 꿈이여 날 떠나지 마소서... [까마귀양] 고통은 해과 함께 서려가고 한은 갑갑하메 풀 길이 없네 꿈은 해와 함께 즈려가고 삶과 함께 흩어지네 나의 꿈이여 나의 미래여 나의 길을 밝혀 밤의 끝을 보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