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사람이 살기 적합치 않은 곳이다. 터전 자체가 산과 인접해 있고 지형이 험악하다. 북쪽으론 지력대맥과 바로 접하고 있으며 동쪽으론 금산산맥과 이어져 있는 더할나위없이 완벽한 산간벽지다.

그래서 맨처음 이토록 험악한 곳에 정을 붙인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이곳에 정을 붙인 세월이 한해 두해 흘러갔다. 그동안 한 사람은 두 사람이 되고, 두 사람은 네 사람이 되었다.

이렇게 사람은 모여서 살기 마련이고, 세월과 함께 그들이 사는 터전은 어느새 마을이 되어 있었다. 또한 사람이란 이름을 붙이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 마을도 이름이 있다.

이곳의 이름은 미래(彌來)마을이라 한다.

이 마을과 생명을 같이 이어온 사찰. 그곳의 옛 고승이, 언젠가 이 터전에 미륵이 오게 된다며 계송으로 참설(讖說) 하였다. 이후로 고승의 시도, 그의 이름마저 사라진 후에도, 참설의 알맹이인 예언만이 남아 마을의 이름이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오늘까지 오게 되었다. 미래마을에 이방인이 찾아온 오늘까지.



"천년뭔지 하는 그 대단한걸, 달여서도 먹였고 가루내서도 먹였는데 혜연인 왜이리 안일어나는거냐? 영물이라면 당장 일어나야 하는거 아냐?"

"제아무리 천년하오수라도 되는게 있고 안되는게 있는 거야. 약좀 먹었다고 사람이 불떡불떡 일어나면 그게 괴물이지 사람이야?"

불만스러움이 묻어나는 장노인의 말에 대꾸한 것은 장노인과 함께 미래마을에서 늙어간 의원인 박현철. 바로 그가 공덕에게 쓸데없이 천년하오수에 대한 이야길 꺼내는 바람에 공덕은 아닌 밤중에 홍두께마냥 뛰어나갔다. 이후로 남의 귀한 아들을 죽일일 있냐고 장노인에게 책잡혀 버렸다.

"내팔자야. 누가 정말로 그걸 구하러 갈 줄 알았나..."

"무슨 말인가?"

장노인의 대답에 박의원은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별거 아닐세. 하여간 혜연인 몇주쯤이면 힘을 차릴테고, 한 몇달쯤 지나면 예전보다 훨씬 튼튼해 질걸세. 그보다 공덕이가 좀 문제인데. 산왕(호랑이)에게 다친 상처가 완전히 나으려면 시간좀 걸릴걸세."

"그거라면 상관없네. 그동안 모아온 약초도 제값받고 맘 착한 의원에게 팔았고... 무엇보다 그 미친짓을 하고도 이정도면 아주 양호한거지. 근데 그 무슨... 절맥인가? 그것도 다 나은거야?"

"그래. 역시 영물은 영물이야. 체질 자체를 바꾸는 힘이 있으니 말일세. 기왕에 달이는거, 건더기라도 주었다면 좋았을 텐데..."

박의원은 장노인이 죽일듯이 노려보자 즉시 맘 착한 의원으로 돌아와 변명을 했다.

"말하자면 그렇다는 게지. 뭘 그렇게 보는가?"

"아직도 계셨군요. 차를 데워 왔습니다. 드시면서 말씀을 나누세요."

장노인이 심통맞은 표정으로 입을 열기 직전, 기품있는 여인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이게 누군가. 은경이 아니냐? 그렇게나 피폐해 있더만 금새 기운을 차렸구나."

"이래뵈도 우리 며느리아닌가? 좀 약해서 그렇지 공덕을 닮아서 쇠심줄마냥 질기디 질기다네."

"...손자가 아들을 닮아야지, 며느리가 아들을 닮는게 말이 되는가?"

노인들이 말하는 동안 여인은 차가 올려진 작은 상을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아닌게 아니라 여인은 몇일 되지도 않아 피폐해진 인상은 완전히 ㅆㅣㅆ겨졌고 특유의 서글서글한 눈에는 활력이 넘쳤다. 덕분에 곱고 아리따운 외모가 꽃처럼 활짝 피어 있었다.

"옛말에 부부는 서로 닮아간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럼 그럼. 살다보면 닮아가게 되는거 아니겠는가."

여인이 맞장구 치자 장노인은 기분 좋게 껄껄 웃었다.

"그이가 캐온 쑥으로 만든 쑥차입니다. 드시면서 말씀 나누세요."

한모금 입에 머금은 박의원은 곧 감탄하였다.

"좋구나. 구수하면서도 탄맛은 없고 쑥향기가 그대로 살아있어. 정말이지 아깝다. 이렇게나 예쁘고 착하고 교양있는 아일 공덕이 차지하다니... 내가 10년만 젊었어도..."

"그래도 네놈의 딸뻘이다. 범죄적인 말도 작작해라. 게다가 공덕한테 비교해도 은경이가 어리지 않더냐?"

장노인의 퉁명스런 말에 박의원은 입맛만 다시면서 쑥차를 마셨다. 사실 은경이 나이에 맞잖게 젊어보이긴 했다. 30대가 아니라 20대 후반이라고 해도 통할 정도였다.

"그건 그렇고... 처음부터 말하고 싶은건데, 저 사람은 대체 누군가?"

박의원은 활짝 열린 방문을 손으로 가르켰다. 의원이 가르킨 곳으로 시선을 돌리자 이 근방에서 보기 드문 6척 장신의 날씬한 사람이 있었다. 윤기나는 검은 머리는 아무렇게나 자른듯 봉두난발이었고, 투명하게 느껴질 정도로 하얀 피부는 절로 시선을 잡아버렸다.

손자인 혜민의 손에 끌려 무엇인가를 배우는 듯 한데, 그 모습은 이 근방의 사람 차원을 넘어, 이나라 사람인지도 의문스러웠다.

전체적으론 그냥 사람과 크게 다를게 없다. 머리도 한개고 코나 입이 잘못되지도 않았고, 팔이나 다리도 둘씩이다. 하지만 뭔가 달랐다.

뭔가 이질적이었다. 굉장한 미인이지만 남자라고 보기엔 선이 너무 가늘고, 여자라고 보기엔 지나치게 힘차보였다. 젊은듯 하면서도 나이들어 보였고 나이들었다고 보기엔 너무나 젊다. 무엇보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기형적으로 길고 뽀족한 귀였다.

"나도 이러저렇게 소식을 많이 듣는 편이지만, 저렇게 생긴 족속은 들어보질 못했다네."

[물고기군] 밤이면 언제나 아름다운 인생을 꿈꾼다. 사랑하고픈 사람과 별을 바라다 보고 싶을때 비오는날 우산들이 공허하게 스쳐갈 때 노래부르는 물고기가 되고 싶고 날개달려 하늘을 날고싶다. 아침의 차가운 바닥에서 눈을돌려 회색의 도시라도 사람의 모습을 느껴본다 부디 꿈이여 날 떠나지 마소서... [까마귀양] 고통은 해과 함께 서려가고 한은 갑갑하메 풀 길이 없네 꿈은 해와 함께 즈려가고 삶과 함께 흩어지네 나의 꿈이여 나의 미래여 나의 길을 밝혀 밤의 끝을 보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