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무협 포럼
판타지, 무협 세계의 정보나 설정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그 다채로운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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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중세를 기준으로 삼았다면..
사람들이 밥 먹을때 포크도 없이 나이프로 석석 잘라서 손으로 먹고...
증류주도 없어서 걍 탁한 술 마시고
사람들은 거의 미신에 가까운 종교에 목숨을 걸고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귀신이나 도깨비 괴물들도 마치 실존하는 것처럼 여겨지며(실제 있는 것들 말고도)
대양 항해기술은 당연히 없고 대규모 교역도 힘들며
사람들은 자신이 나고 자란 지방 이외의 곳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바 없고
그 무식함은 지배층이라 해도 다르지 않아 공부 좀 해서 책 좀 읽었다 싶으면 현자소리 들으며 살고
제작 기술이나 산업은 개인전승과 가내수공업을 모토로 하는 사회.
영광의 제국이 무너진 뒤에 많은 기술들도 비슷하게 실전되고
반쯤 박살난 폐허에 토대 올리고 뭔가 흉내내는 대충 그런 느낌 아닌가 싶은데 말이죠.
근대를 기준으로 삼으려면..
총기 기술과 시민 사회의 태동,
신대륙과 부의 집중, 대량생산과 대규모 무역, 대양항해 기술
과학과 산업에서의 눈부신 발전 기존 정치체제의 재편 문화와 의식의 변화
인쇄기술과 교육에서의 변화로 더 넓고 많은 세상에 대한 열린 지식을 나누는 상황이라 본다면...
많은 판타지에서 다루고 있는 대규모 상비군, 체계화된 군사조직, 대량생산 시스템,
시민들과 귀족들의 깨인 의식, 발달된 문물등은 암만 봐줘도 중세로 보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매우 근대적인 분위기에요. 총만 없다 뿐. (대신 마법이 있지만요.)
물론 우리 사회와 같은 발달 과정을 거친 건 아니고 보통은 고대 융성했던 마법제국이 무너진 뒤 1만년쯤 큰 변화 없이
지내왔다. 뭐 이런 설정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문명발달 과정이 좀 편의 위주에요.
통화나 재화의 이동은 쉽고.. 대규모 교역이 이루어지며 원하는 물품을 구하는 건 아주 쉽죠.
중앙으로 강하게 집중된 권력 체계를 인정하면서도 봉건사회인 것처럼 행동하고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거의 근현대를 방불케 합니다.
종교적 감수성이 굉장히 예민한 것 같지만 실제 신의 권능이 존재하니까 믿는다 정도의 느낌일 뿐
정말 종교에 목숨 바치는 분위기는 아닌 경우가 많고요.
뭐 역사 덕후가 아닌 이상은 이런 걸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따지는 사람은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론..
원시인들 틈에서 우가우가 돌도끼로 공룡 때려 잡다가 밥 먹을때 되면 5성급 호텔에서 은제 식기와
본차이나 금장 접시에 햄버거 먹은 뒤 뜨거운 물로 샤워하는 걸 보는 듯한
위화감도 듭니다만, 뭐 상관 없겠죠. 호이포이 캡슐이든 북두신권이든 즐거우면 되는 거지 다 따져뫄야
별 의미는 없는 건지도요.
건담 콕핏 안에 샤워실이 있으면 또 어떻습니까. 재미있으면 된 거죠.
세상은 원래 비정한 법이야.
사실 역사적 고증을 철저히 고치면 로망이 죄다 달아나는 게 대부분이죠. 때가 꼬질꼬질한 해적들이나, 일자무식 기사들이나...뭐 그렇다고 슬레이어즈처럼 여관에서 여행객 정식 메뉴 시켜먹는 세계관은 별로 보고싶진 않지만.
그래서 제가 이영도를 좋아합니다. 세계관이 어째서 이런지를 사소한 부분까지 인물들의 자연스러운 대화와 행동으로 풀어내거든요. 사투리가 없는 이유를 설명해주는 판타지 소설은 처음 봤습니다. 다만, 중세라고 해도 다 같은 중세가 아닌지라 중세 전기(암흑기)와 중세 후기(르네상스 이전)의 생활 모습과 기술 수준은 1980년대 초반과 2014년대의 갭만큼이나 큽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하루에 한 번씩 목욕을 할 수 있었던 건 아니죠ㅋㅋㅋ
전 판타지나 무협을 볼 때마다 이질감이 드는게, 아무리 예쁘고 사랑스러워도 일주일에 한 번 목욕을 하면 많이 하는 것이고, 샴푸나 비누는 커넝 양잿물도 없던 시절에 머릿기름과 비듬, 손등이나 손에 낀 때, 겨드랑이나 음부(...)의 냄새등을 생각하면... 정말 싫더군요.
전 마법 때문에 그러한 발전과정이 깨졌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신성시대와 마법시대의 영광이 존재한다고 가정한 상태에선...
오히려 신성시대와 마법시대의 부활을 꽤하는 것이 과학과 문화를 발전 시키는 것 보다 더 우선되겠죠.
왜냐면 신성/마법 시대엔 안되는게 거의 없다는 조건이 깔리고, 제약 조건이 많은 과학은 자연히 매력이 없어 보이는 것이지요.
그러니 그에 집중하는 인력들도 적고 발전도 더디고요.
대신에 신성/마법시대에 발전하거나 남은 잔재가 있어서 사회구조나 문화등이 어느이상 상태를 머무른거라고 봅니다.
즉, 우리 시대가 특별한 일이 있어서 과학수준이 지금에서 중세시대 정도로 떨어진다면...
사회구조나 문화는 지금 상태에서 머물게 되지 않을까해요.
대신 과학 수준을 과거의 영광이 있던 시대만큼 끌어 올리기 위해서 노력하겠죠.
그 덕분에 다른 부분들의 발전이 매우 더디게 일어 나지 않을 까 합니다.
그래서 전 가장 큰 조건인 신성/마법시대의 영광이 사라진 시대라는 관점에서 솔직히 어느정도 이해가 되긴 합니다.
단, 신성/마법시대가 엄청나게 마법,사회,문화적으로 발전한 시대였어야 겠죠.
<타임패트롤> 읽어 보면, 뒤집어 지죠. 지극히 현대적인 패트롤 대원이 관념도, 시설도 엉망인 과거에 적응하려 애쓰니까요. 그나마 패트롤 대원은 현대 물품이라도 챙겨가서 다행이지만, 들키지 않으려면 쓰기도 힘들고요. 고대나 중세 환상을 깨기 딱 좋습니다.
사실 검마 판타지라는 게 말 그대로 사람들의 환상을 담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불편한 건 추리고, 향수에 젖을만한 부분은 남겨놓고. 예쁘장한 엘프 아가씨가 구더기 들끓는 화장실에서 볼일 보면 아무도 안 읽을 테니까요. 비단 판타지만 그런 게 아니라 창작물은 대부분 그렇지만요. 로망을 충족하는 것도 창작물의 몫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