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무협 포럼
판타지, 무협 세계의 정보나 설정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그 다채로운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곳.
( 이 게시판은 최근에 의견이나 덧글이 추가된 순서대로 정렬됩니다. )
의천도룡기의 마지막 즈음, 의천검과 도룡도의 의미에 대해 하는 이야기가 있지요.
"무림계에 전해지는 말 중에는 또 <의천이 나타나지 않으면 누가 그와 겨룰 수 있겠는가?>라는 말이 있는데, 의천검은 이제 두 동강이 났습니다. 하지만 훗날 다시 붙일 수는 있을 것입니다. 검 속에 숨겨진 것은 아주 대단한 무공의 비급이었습니다. 저는 이 몇마디 말에 담겨진 참 뜻을 깨달았습니다. 그건, 병서는 오랑캐를 쫓아 버리는데 쓰는 것이며, 만약 누군가가 혼자 대권을 장악한 후에 자신의 위엄과 행복을 위해서 잔인하고 횡포한 짓을 저질러 세상 백성들에게 그 화가 미치게 된다면, 한 영웅이 의천검으로 그 자의 목을 잘라버리라는 뜻인 것입니다. 백만 대군을 통솔하는 사람이 설사 천하를 호령할 수는 있다 해도, 반드시 의천검의 일격을 막아낸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서형, 이 말을 잘 기억해 두시기 바랍니다."
의천검의 무력, 그리고 그 안에 숨겨진 구음진경의 무공은 개세의 신공이며 상상을 초월하는 것으로 작품중에 등장합니다.
도룡도에 숨겨진 병법서는 전쟁에 이겨 세상을 다스릴 힘을 주는 것이고 의천검의 힘은 도룡도의 힘으로 세상을 얻은 이가
그른 길로 갈때 그것을 베어내기 위한 것이라는 이야기죠.
사마천은 사기에서 자객열전을 적었지요.
사적인 원한이나 용무가 아니라 나라를 위해 행동한 자객들에 대해 기술했습니다.
중국의 첫 황제인 진시황과 얽힌 자객 이야기도 인상깊습니다.
나라를 잃은 협객들이 그를 쓰러뜨리기 위해 도전했지만 모두 실패했죠.
현실적으로 아무리 뛰어난 힘을 지닌 자라고 해도 황제와 같은 이를 암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새신 크리드는 암살단에 얽힌 스토리가 기반이 되는 게임입니다.
주인공은 암살단의 일원이 되어 적대하는 템플러에 맞서 싸우죠. 그 와중에 일어나는 역사적 사건들과 전쟁들은 흥미로운 것입니다.
주인공이 쓰는 기예, 파쿠르나 초월적 무기, 아이템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죠.
아무리 깊은 탑 속에 숨어 있어도, 아무리 막강한 병사들 틈에 숨어 있어도 암살자의 칼은 그를 찾아갑니다.
초월적 능력을 지니고 있는 자가 권력의 핵심에 있는 악인을 처단하는 내용은 심심찮게 등장하는 내용이죠.
하지만 왠지 우리나라식 환타지에서 그런 내용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소드마스터라는 이들은 국가요직에 등용되어 전략무기와 같은 취급을 받습니다.
현대적으로 치면 해병이 업그레이드 해서 구축함이나 순양함이 되고 마침내 항공모함이 되는 식이랄까요.
아니면 보병이 업그레이드 해서 전차나 공격헬리곱터가 되고 전투기가 되고 최종적으로 전략핵병기가 된다고 해야 할까요.
거의 대부분의 이런 힘들은 국가에 예속됩니다. 주인공 같은 경우가 특별한 예외가 된다고 할 수 있겠죠.
캐릭터의 힘을 어느 이상 키워 놓으면, 그 힘이 국가를 넘어서는 순간 세계 질서가 흔들려 버리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여튼 재미있는 것은 이런 힘은 결코 암살과 같은 방식으로 사용되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물론 시도는 종종 등장합니다만, 보통은 다른 소드 마스터의 방해로 실패하죠.
그나마도 주인공은 별로 시도하지 않습니다. 적국의 악당 소드마스터가 주인공측 요인을 암살하러 왔다가
격퇴되는 게 보통이죠. 암살이라는 것은 꽤나 비열한 방식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정정당당하게 맞서 싸우는 것이야말로 정의 그 자체다. 라는 인식도 꽤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는 것 같고요.
전쟁터에서 죽이는 건 괜찮지만 몰래 도둑처럼 들어가서 찔러 죽이는 것은 살인이다. 라고 생각하는 걸지도요.
어쩌면 이야기의 서사적 구조에도 그 원인이 있는 것 같습니다, 최종보스라 할만한 악당을 암살을 통해 쓰러뜨리면
너무 이야기가 급하게 전개되어 버리는 경향 때문일지도 모르죠. 분량뽑기가 중요하다면 그건 피해야 할 일입니다.
숙적과 같은 중요한 적 캐릭터의 경우 매 회 쓰러뜨릴때마다 '다음번엔 용서하지 않겠다' 같은 악당 대사를 날리며
도주할 수 밖에 없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겁니다. 매번 새롭게 만드는 건 어려운 일일테니까요.
저런 작품속에서의 암살이 어떤 것이든 간에 현실적으로 요인의 암살이라는 건 꽤 많은 노력과 희생을 들여야 가능한 것일 겁니다.
암살을 시도한 사람이 성공할 확율을 높이려면 목표에 더욱 다가가야 하고 다가가는 만큼 빠져나올 가능성은 줄어드니까요.
어새신 크리드 같은 게임에서야 일당백에다 지붕위로 슉슉 점프해서 도망치면 닭쫒던 개 지붕보는 격이 되어 버리지만
어디 현실에서도 그게 쉽겠습니까.
여튼 흔들림 없이 적진에 잠입하여 요인을 암살할 배짱과 지식, 무력은 쉽게 얻어지는 건 아니겠죠.
그런 고급 인력을 육성하고 먹여살리는데에는 큰 돈이 들어가고 그럼 결국 돈을 벌기 위해 암살을 청탁받고
큰 돈을 주는 쪽은 보통 권력층이고.. 결국 암살단도 권력층과 손을 잡게 되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무협지에서도 개인의 무력이 뛰어난 것도 뛰어난 것이지만 방파나 조직이 되어야 안정되고
힘을 갖게 되니까요. 결국은 어떻게든 오래 남기 위해선 권력과 결탁하고 안정화되는 수순을 밟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무협지등에서 권력과 계속 맞서면서도 힘을 키우는 경우라면 마교나 혈교같은 사이비 종교 같은 성격을 띄어야나
가능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니 현실에서의 어새신들도 종교단체이긴 했었네요.
현실에서의 핵무기가 전쟁을 억제하는 메커니즘을 생각해 보면 말이죠
소드마스터라 하는 이들도 어쩌면 전쟁억지력으로 존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이것은 핵무기의 비대칭성-공격력은 매우 높지만 방어력은 극히 떨어지는-에 의한 바가 큰 것일지도 모르죠.
그렇다면 소드 마스터라는 존재가 일단 선빵을 날리면 그 공격을 방어하는 것은 불가능한 무공을 가지고 있다고
설정한다면 - 능력 고하에 무관하게 선빵을 날리면 이김! - 현실의 핵병기와 비슷한 취급이 가능해질지도 모르겠네요.
여튼 소드마스터들이 암살을 잘 하지 않는 것은 그렇게 암살을 택하지 않아도 먹고 살 길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고
어쩌면 자존심 때문일지도 모르죠. 물론 암살단 소속 소드마스터 같은 이들도 있긴 합니다만 보통은 주인공을 빛나게 하기
위한 조연 정도로 등장하는 것 같더군요.
ps. 그러고 보니 의천도룡기에서도 산중노인 하산의 무공이 등장합니다. 나름 어새신과 연결되는 부분도 있군요. :)
세상은 원래 비정한 법이야.
묘사가 쉽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겠죠. 목표를 정하고, 정보를 모으고, 장소를 둘러보고, 탈출 경로를 모색하고…. 단어가 풍기는 어감과 달리 어지간한 작가가 아니라면, 재미있게 쓰기 힘들다고 봅니다. 사실 본문에 언급한 <어쌔신 크리드>도 액션 비중이 훨씬 크고요.
작품 내적으로 살펴보면, 아무래도 판타지와 암살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봅니다. 일련의 영웅들이 일반 민중의 신망을 얻어 거대하고 악한 제국을 쓰러뜨리는 골자니까요. 암살처럼 비밀스러운 수단은 대중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어렵겠죠. 국제 정세를 자기네 뜻대로 조종하려는 배후 집단이라면 모를까요. 물론 독립 투사들이라면 암살을 노릴 법하겠지만, 판타지 제국은 대부분 식민통치보다 독재나 공포정치 쪽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