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월드 오브 다크니스>에는 흡혈귀, 늑대인간, 마법사, 미라, 괴물 사냥꾼 등이 등장합니다. 소위 고딕 펑크인데, 플레이어들은 일반적인 인간이 아니라 저런 어둠의 세력을 연기합니다. 흡혈귀는 음침한 뒷골목에서 피를 빨아먹고, 늑대인간은 무성한 숲 속에서 사람들을 물어죽이고, 마법사는 온갖 주문으로 혼란을 퍼뜨리고, 미라는 무덤에서 일어나 방황하고, 괴물 사냥꾼들은 음지에서 공포에 떨며 흡혈귀의 심장에 말뚝을 박습니다. 이런 어둠의 세력들은 저마다 갈등이 있어요. 가령, 흡혈귀는 인간적인 면모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애씁니다. 그나마 인간 시절의 기억과 감성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죠. 하지만 피를 빨면 빨수록 피에 굶주린 악마로 변하고, 흡혈귀는 목마름과 악마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괴물 사냥꾼은 선량한 이웃들을 위해 오늘도 흡혈귀의 심장에 말뚝을 박지만, 이건 꽤나 위험한 행위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흡혈귀나 마법사를 믿지 않아요. 괴물 사냥꾼은 세상 사람들에게 살인자로 오해를 받을 수 있고, 혹은 부족하거나 잘못된 지식으로 괴물에게 덤볐다가 뼈도 못 추릴 수 있죠.
늑대인간 역시 그저 사나운 야수가 아닙니다. 사실 늑대인간은 자연 친화 사상으로 무장했고, 어머니 가이아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전사입니다. 대지모신을 섬긴다고 해야 할까요. 이들은 지구 생태계가 파괴나 오염 없이 온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삼림 벌채, 폐기물 매립, 동식물 학살 등에 반대합니다. 벌목꾼을 잡아죽이거나 공장 설비를 모조리 깨부수거나 밀렵꾼을 두들겨 패는 방식이죠. 그렇다고 늑대인간들이 무조건 사람들만 공격하지 않습니다. 늑대인간들은 일부분 영적인 존재이고, 정령과 소통하거나 정령의 힘을 빌릴 수 있습니다. 아예 늑대인간 본인이 정령계로 이동한 후 활동할 수 있어요. (북미 부족민 사상과 흡사하죠.) 문제는 정령들 중에 타락하거나 사악한 놈들도 많고, 이런 베인들은 인간 세계에서 온갖 말썽을 일으킵니다. 늑대인간들이 생명의 여신을 섬기는데 반해 사악한 정령 베인들은 파괴의 화신을 섬깁니다. 그래서 베인들은 사람들을 유혹하거나 꼬드기고, 베인에게 물든 사람들은 땅에 쓰레기를 버리거나 나무를 베거나 바다에 기름을 뿌립니다. 늑대인간들은 이런 사악한 정령들도 추적하고 제거합니다.
늑대인간들은 기본적으로 야생 환경을 좋아하지만, 비단 숲 속이나 황야에서만 활동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인간으로 변할 수 있고, 따라서 인간들 사이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당연히 각종 사회 활동에 참가합니다. 이주민들이 다른 대륙에 정착하거나 커다란 혁명이 일어나거나 전쟁이 벌어지거나 기타 각종 문제가 두드러질 때, 늑대인간들은 인간들 틈바구니에서 역사적 사건을 함께 했습니다. 어떤 늑대인간들은 무정부주의 운동을 벌이거나 사회주의 혁명에 동참하나 봅니다. 러시아 혁명이 일어났을 때, 하층 계급의 늑대인간들은 인민들과 함께 봉건제를 끝장냈다고 하더군요. 사실 사회주의 사상이나 무정부주의 사상은 늑대인간들에게 참 잘 어울린다고 봅니다. 한 번 생각해 보죠. 위에서 말한 것처럼 늑대인간들은 대지모신을 섬깁니다. 그래서 생태계를 지키기 위해 싸웁니다. 벌목꾼도 죽이고, 공장도 부수고, 밀렵꾼도 내쫓습니다. 하지만 늑대인간들이 아무리 벌목꾼을 죽이거나 밀렵꾼을 내쫓아도 결국 한계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벌목꾼이나 밀렵꾼은 생태계 파괴의 주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그저 노동자에 불과합니다. 윗대가리가 까라면 까야 하는, 노동자일 뿐입니다.
생태계 파괴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분별한 개발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업 규제를 외치고 수많은 사람들이 환경은 중요하다고 떠들지만, 그래도 뭔가 실효성은 별로 없습니다. 여전히 삼림은 사라지고, 사막은 늘어나고, 바다는 산성화되고, 미세 먼지와 미세 플라스틱이 떠돌고, 동물들은 죽습니다. 왜? 사람들이 시끄럽게 떠들어봤자 무분별한 개발 논리를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기업들이 무분별하게 개발하느냐? 뻔하죠. 자본 축적 때문입니다. 현대 사회는 거대한 자유 경쟁 시장으로 돌아갑니다. 자본주의적 자유 시장에서는 자본을 축적해야만 생존할 수 있습니다. 자본을 축적하지 못하면 다음 사업에 투자를 할 수 없고, 투자를 할 수 없다면 더 많이 생산하지 못합니다. 더 많이 생산하지 못한다면, 그만큼 적게 판매해야 합니다. 적게 판매한다면, 이윤은 줄어들겠죠. 이윤이 줄어들면, 자산 역시 줄어들고 부족해질 겁니다. 그렇게 자산이 부족해지면, 결국 그 자본가는 파산하고 말겠죠. 하지만 이 세상에 파산하기 원하는 자본가는 없을 겁니다. 결론은 하나입니다. 미친 것처럼 상품을 생산해야죠. 안 그러면 망하니까.
어떤 사람들은 자본주의가 제대로 돌아간다면, 파산한 자본가도 구제를 받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면, 그것조차 쉽지 않습니다. 사실 자유 시장은 경쟁 시장이라고 불러야 옳을 겁니다. 모두가 죽기살기로 싸우는 와중에 돈을 많이 버는 쪽이 살아 남으니까요. 그리고 자본이 많은 세력은 어떻게든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가격 경쟁력으로 상대를 누르거나, 정치권에 로비를 펼치거나,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사회에 책임을 떠넘거기나, 노동자를 함부로 내쫓습니다. 심지어 사람들이 죽어나가도 자본가는 어쩔 수 없이 그 길을 선택합니다. 소송 비용이 자동차 리콜 비용보다 저렴하다면, 운전자들이 죽는다고 해도 자본가는 그 길을 선택합니다. 자본을 축적하지 않으면 망하니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을 축적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따라서 자본가는 더 많이 생산하기 원하고, 더 많이 생산하기 위해 더 많은 원자재와 부지가 필요하고, 더 많은 원자재와 자원과 부지를 차지하기 위해 삼림을 밀어냅니다.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폐기물을 함부로 버리고, 이건 사회 전체의 피해로 돌아오죠. 하지만 이런 사회적 비용은 아무도 신경을 안 씁니다. 상품 가치가 없으니까.
그러므로 늑대인간들이 정말 자연의 여신을 지키고 싶다면, 자본주의 경제의 뿌리를 뽑아야 할 겁니다. 아니면 적어도 자본주의 경제의 상당 부분을 뜯어 고치거나…. 하지만 자본주의만 두들겨 팬다고 전부가 아니죠. 자본주의 경제의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혼돈이 사회를 지배할 수 있으니까요. 만약 반(反) 자본주의 운동에 동참한다면, 사회주의나 무정부주의를 길라잡이로 삼는 편이 낫겠죠. 물론 교조적으로 혁명가나 사상가를 따르면, 자본주의 반대 운동이 광신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아무도 미래의 정확한 모습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미래학자나 철학자라도 미래를 완벽하게 그릴 수 없을 겁니다. 누구의 말과 달리 사회주의는 과학이 될 수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신념일 따름이죠. 하지만 그렇다고 나침반조차 없이 여정을 떠날 수 없습니다. 나침반은 비록 정확한 목표 지점을 가리키지 못하지만, 그래도 올바른 방향을 가리키죠. 늑대인간들도 그런 나침반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저 무조건 거대 자본에만 반대하면, 자칫 방향을 잃을지 모르니까요.
사회주의나 무정부주의는 19세기부터 자본주의와 치열하게 대립했고, 온갖 성과를 거두거나 온갖 뻘짓을 저질렀습니다. 특히 사회주의, 그 중에서 공산당의 뻘짓은 차마 봐주지 못할 정도였죠. 물론 사회 민주주의가 잘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식민지 노동자들을 노예로 생각했으니까요. 이게 무슨 사회주의 사상인가요. 어쨌든 그만큼 사회주의와 무정부주의는 자본주의와 아득바득 싸웠고, 일종의 나침반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섬세한 GPS 지도까지는 못 되더라도 올바른 방향을 가늠할 수 있겠죠.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사회주의나 무정부주의 늑대인간은 자본주의와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잘 아는 듯합니다. 베인이나 포모리처럼 사악한 정령이나 괴물을 물어죽이는 것도 중요합니다. 늑대인간이 아니라면, 누가 이런 정령이나 괴물을 처치하겠어요. 그러나 아무리 늑대인간들이 악령을 물리쳐도 사회 경제 자체가 파괴적이라면 말짱 도루묵 아니겠습니까. 사악한 정령이나 집채만한 괴수보다 거대 자본을 움직이는 다국적 기업이 훨씬 무서워요.
문제는 늑대인간들도 저마다 생각이 다르다는 겁니다. 늑대인간들은 크게 12개 부족으로 나뉘는데, 부족마다 사상, 철학, 세계관이 다릅니다. 가령, 붉은 발톱 부족은 인류 말살을 주장합니다. 자본주의든 뭐든 결국 인류 문명이 생태계를 파괴하니까 인간 자체를 말살하자는 뜻입니다. 하지만 다른 부족들은 반대합니다. 인류도 사실 가이아의 자손(지구 생태계의 일종)이니까요. 펜리스 부족은 여자와 인종을 차별하고, 한때 나치(!)에 협력했습니다. 펜리스 부족은 20세기 후반에도 여전히 수구 꼴통 끼가 넘치는데, 이래서야 어디 좌파 세력과 연대할 수 있겠어요. 아시다시피 사회주의와 무정부주의는 파시즘과 철천지 원수 사이죠. 에스파냐 내전 때도 아나키스트들과 파시스트들이 죽자 사자 싸웠으니…. 은빛 송곳니 부족은 늑대인간 세계의 권위자들인데, 권위자들답게 로마노프 왕가와 협력했습니다. 당연히 좌파 세력과 별로 안 친할 테고요. 위에서 언급했던 하층 계급의 늑대인간은 뼈갈이(본노워) 부족으로 불리는데, 이들은 볼셰비키 혁명에 참가했고 은빛 송곳니 부족과의 사이가 좋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뭐, 뼈갈이 부족은 원래 늑대인간들 사이에서도 불가촉천민 취급을 받아요. 그래서 헉명을 원했을지도. (하지만 소비에트 연방은 간악한 뱀파이어들의 수중에 빠지고 맙니다.)
솔직히 대지모신을 섬기는 늑대인간이라면, 생태 사회주의나 사회적 생태론을 적당한 대안으로 삼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늑대인간들도 저마다 세계관과 철학이 다르기 때문에 위와 같이 단결이 안 되는 상태죠. 정작 사회주의 혁명을 일으킨 뼈갈이 부족은 늑대인간 사회에서 하층민 취급이나 받고요. 하긴 어디 늑대인간들뿐이겠습니까. 현실의 우리 인류도 현대 문명이 문제라는 걸 인식하지만, 그걸 어떻게 바꿔야 할지 저마다 생각이 다르죠. 아예 문제를 고치지 말자는 사람들마저 있고요. 인간이든 늑대인간이든, 분열이 참 문제이긴 문제인가 봅니다.
'분열'과 '개성'의 차이부터가 명확하게 가르기 애매하니까... 라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