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무협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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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연금술사의 힘이던가...
아니면 다나카 요시키의 힘이던가...
하여간 다나카 요시키의 미완성 작품 <아루스란 전기>가 또 다시 우리말로 재번역되었습니다.
일단 1부의 7권 분량만큼만 다시 재번역되었고, 영상출판미디어(영상노트)에서 출간되었네요.
번역자는 최근 이타카(DNC미디어)판 <은하영웅전설>을 완역하였던 김완씨입니다.
특기할 사항이라면, 새로 나온 번역본의 표제는 <아르슬란 전기>입니다.
이슬람권에서 사자를 뜻하는 그 단어를 일본식 표기가 아니라 영어 발음대로 썼습니다.
<나니아 연대기>에서는 사자 왕을 영어 발음에 맞추어 아슬란 왕이라고 번역했었던 바 있죠.
아루스란이라는 게 일본식 발음이어서 바꾼 것은 알겠는데, 아르슬란이 정말 맞는 표현인 지는 모르겠습니다.
헤라클레스를 영어식으로 허큘리스라고 읽는 게 맞지 않듯, 영어식 발음이 올바른 것인가 의문이 좀 들거든요.
요즘 <강철의 연금술사>로 최고의 희트를 기록했던 만화가가 <아루스란 전기>를 만화로 연재하고 있고,
그렇게 연재된 <아루스란 전기> 만화가 어느새 단행본이 출간되면서 그것에 보조를 맞추어
이번 <아르슬란 전기> 소설의 재출간이 진행된 게 아닌가... 그런 생각도 강하게 듭니다.
일본에서는 2008년 13권이 나오고 6년의 세월이 흘러 14권이 새로 나왔지만, 평은 무척 안좋았죠.
실은 작가가 처음 책을 쓰기 시작해서 적어도 매년 1권꼴로 순조롭게 출간하던 1~9권까지 괜찮았고,
이후 20년 동안 띄엄띄엄 나온 10권 이후부터는 이야기도 산만하고 재미도 떨어진다는 평이 많습니다.
특히 13권과 14권은 처음 예정했었던 완결 분량에 거의 다다르면서 급격하게 마무리를 의식해서인지
주요 인물들이 잇달아 허무하게 사망처리되면서 "작가가 성의가 없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다나카 요시키는 <은하영웅전설>, <아루스란 전기>, <창룡전> 등 많은 희트작을 가진 작가이지만,
실상 이 작가의 전성기는 1990년대 초반까지이고 그 이후에는 급격히 쇠퇴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1992년 이후 쓰여진 책들은 이전에 비해 힘이 많이 떨어지고, 산만하고, 재미도 별로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필력이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죠.
가면 갈수록 한 권 한 권 나오는 텀도 길어지고,
작가가 나이들어가는 모습이 아쉽습니다.
이제 어느덧 환갑을 넘겼으니 원...
여담이지만...
김용이 처녀작 <서검은구록>을 쓰기 시작한 게 31세인가 그렇고,
마지막 작품 <녹정기>를 쓰고 소설 절필을 선언한 게 49세 때입니다.
대략 20 년 정도의 기간 동안 소설을 쓰고, 이후에는 더 이상 창작을 하지 않았죠.
예전에는 이렇게 인기가 높고 소설 창작을 좋아하는 작가가 왜 절필했는가 이상하다고 여겼는데,
이제 제가 나이 40줄에 들어서니 어느 정도 그 심정이 이해되는 바가 있습니다.
나이 50을 넘기면 더 이상 창작력을 발현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을 작가 스스로 알았던 것이죠.
다나카 요시키가 급격히 힘이 떨어진 것도 나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어차피 지금까지 다작으로 이미 많은 작품을 남겼다면, 창작력이 떨어져 졸작을 쓸 바에야 절필을 선택하는 게 낫죠.
하지만 재미를 떠나서 SF라는 가상의 세상을 배경으로 민주주의와 전제주의의 차이가 크지 않다는 현실을 그려내면서 그 국가의 "시스템"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라는 대전제로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며 보는 이로 하여금 인간 사회의 한계를 깨닫게 하는 데에서 다나카 요시키의 필력이 느껴진다고 봅니다.
재미와 흐름도 중요하지만 배경과 세계관과 스토리를 통하여 독자에게 말하는 그 필력은 과연 국내 작가중에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여겨지네요. 끝 마무리 보다도 이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가 무엇을 느낄 수 있었느냐에 그 작가의 가치가 틀려진다고 생각 됩니다.
문제는 작가의 인기가 크면 클수록 이런 대전제는 잊혀지고 마지막 이야기가 쓸데없이 늘어난다는 느낌이 드는건 문학계에서도 아쉬운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장편 소설의 한계가 거기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왜 타이타니아인가... 왠지 재미는 있는데 마음에도 없는 작품을 쓴 것을 보면... -_-;; 계속 연재 해달란 말이야~!!
김용, 최인훈, 이스마일 카다레...
이 작가들은 젊은 시절에 멀쩡하게 너무나도 잘 쓴 자기 작품을
나이 먹으면서 고치고 또 고치고 하면서 세월을 보내는데...
거의 병적으로 개작에 집착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그렇게 고친 게 대부분 쓸데없는 짓이었구요.
예를 들어...
한국에는 아직 번역되지 않았지만, 사조영웅전 최신 개작판에서는
황약사가 제자 매초풍에 대해 무려 연정을 품는 내용이 나온다고 합니다.
작품 전반에 걸쳐 황약사가 아내에 대한 지고지순한 애정을 버리지 못하는 게 너무나도 중요한데,
메인 컨셉을 무너뜨린는 황당한 설정이 개작하면서 끼어 들어가면... 배가 산으로 가는 것 밖에는 안되거든요.
황약사라는 인물의 성격을 생각해 봐도 말도 안되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죠.
홍콩에서도 요즘의 새로 나오는 김용의 개작본을 보고 독자들이 어이없어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군요.
조금 케이스가 다르기는 한데...
톨킨도 말년에 반지의 제왕 오탈자 잡느라고 헛된 시간을 많이 보냈다는 증언이 많이 있습니다.
그 시절만 해도 작가가 쓴 원고가 교정할 때 충실히 다 반영되지 못하고 출간되는 일이 왕왕 발생했고,
게다가 미국 출간본은 톨킨이 확인도 하기 전에 멋대로 발간되는 바람에 영국판과 다른 부분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열받은 톨킨은 모든 문제를 해결한 완벽한 책을 다시 내기 위해 오탈자 잡고 문장을 고치고 그런 작업을 했는데,
그게 하루 이틀 한 게 아니라 무려 십 년이 넘는 세월을 소비하게 했다는 게 문제였죠.
쇄를 거듭할 수록 조금씩 더 많은 오탈자를 잡아내기는 했지만, 완벽하지 않아서...
톨킨은 계속 오탈자 잡고 교정하고 그러는 데 만년까지 계속 시간을 써야만 했습니다.
스스로도 진저리를 칠 정도였다고 하죠.
하도 오래 전에 봐서 기억도 안 나긴 합니다만. (쌍칼 쓰고 독수리 데리고 다니던 전사가 마음에 들었는데, 이름도 잊어버렸군요. =_=;;) 확실히 인물들이 모이고 구성하는 부분까지는 재미있었다는 느낌이 여전합니다. 읽으면서 뭔가 장엄한 이야기보다 동료들끼리 소소하게 싸우고 여행하는 부분을 잘 썼다고 생각했네요.
개인적으로는 나이가 소설 필력 고갈에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소설가가 활동하는 기간이 길면 길수록 스스로 사그라 든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 소설가들이 젊은 나이에 시작하기 때문에 나이가 들면 필력이 떨어지고 어쩐다 하지만 말입니다. 김용이 절필한 것도 더이상 할 애기가 없는 거라고 봅니다.
왜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일어나지 않습니까? 술을 먹으면 같은 애기 계속 반복하는 분 말입니다. 소설가은 그걸 글로 표현해 주고 있는 셈입니다.
소설가 본연이 가진 소재나 애기의 고갈이라고 봅니다. 소설가들 보면 전성기라 불리는 기간이 있습니다. 그 기간에 명작이나 좋은 작품들이 나오죠. 그게 짦은 분들이 있고 긴 분들이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장편 소설이나 대하 소설은 그런 창작력이나 필력을 극도로 소모시키죠. 그래도 이런 저런 다양한 글 재주를 지닌 분들은 자기 작품에 모든 필력을 소모해서 말년에는 딴 일에 눈을 둘리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봅니다.
뭐 우리나라 소설가들도 흔하지 않습니까?
소설가에서 지금은 삼국지부터 시작해서 고전 번역가가 완전 변신하신 분부터 말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필력은 소모재인가 싶습니다.
문제는 작가의 작품 중 확실하게 완결된 작품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은하영웅전설도 외전 시리즈를 더 내겠다고 했으니까요. 일단 은하영웅전설 본편은 완성되었습니다만...
사실 저는 작가의 필력이라는게 조금 다르다고도 생각합니다. 다나카 요시키의 작품은 은하영웅전설도 그렇지만, 어느 정도 시점부터 마무리까지는 뭔가 부족한 느낌이 있습니다. 은하영웅전설이 사실 그러했습니다. 원래부터 '삼국지'를 소재로 한 작품만큼, 작품상 제갈량에 해당하는 양 원리를 먼저 죽이고도 계속 진행되었지만, 양 원리가 사라진 시점에서 재미가 급격하게 떨어집니다. 로이엔탈의 반란이 일어났지만 억지스러운 느낌인데다 대단치 않았고, 이후의 이야기는 지구교도라는 존재와의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싸움이었죠. (여기에서도 주요 인물이 가차없이 사라져 버립니다. 그것도 허망하게...)
분명히 창의력이 뛰어난 작가가 맞고 인물들을 멋지게 등장시키지만, 이야기의 마무리 부분은 항상 뭔가 부족한 느낌이 있었는데, 그건 과거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아슬란 전기... 1부는 좋았고 2부도 초반까지는 괜찮았지만, 슬슬 인물들이 떠나가는 시점에서 재미가 확실하게 떨어져 버리더군요. 비극적인, 혹은 장렬한 최후를 장식하고 싶었지만 뭔가 잘 안 되는게 아닌지... 타나카 요시키의 작품에서 중요 인물이 뭔가 인상적으로 사라진 것은 은하영웅전설의 키르히아이스, 그리고 양 원리 정도가 아니었을까요. 나머지 인물 중 '최후'가 기억에 남는 사람은 솔직히 없습니다. 물론 모든 인물이 멋지게 죽을 수는 없는 것이지만, 그래도 뭔가 납득이 가야 말이죠.
어쩌면 타나카 요시키 작품 속 인물들. 특히 주연급 인물이 워낙 불사신처럼 그려져서 그랬는지도 모르겠군요.
그랬다면 차라리 그들을 죽이지 않는다면 더 나았을지도 모르는 일일지도... (초인 로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