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과 영화 <호비트> 시리즈의 치·명·적·인 내용 누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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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마을을 공격하는 스마우그. 참 대단한 위용이긴 한데….]

 


영화 <스마우그의 폐허>는 소위 ‘절단신공’으로 끝납니다. 결정적인 장면을 앞두고 느닷없이 막을 내리죠. 엔딩 크레딧을 보며 할말을 잃은 관객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사실 3부작에서 2부는 으레 1부와 3부를 잇는 징검다리 역할입니다. 뭔가 큼지막한 일이 터졌는데, 수습이 안 되고 끝날 때가 많죠. 스마우그는 오랜 잠에서 깨어나 이제 막 기지개를 켰습니다. 그리고 소린 일행을 죽어라 쫓아다니죠. 결국 자기 영역을 침범한 진짜 배후가 호수 마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에스가로스를 박살낼 기세로 뛰쳐나갑니다. 압도적인 괴수가 날아오는 가운데, 사람들은 불안에 휩싸이고요. 하지만 그런 불안과 달리 스마우그의 깡패짓은 얼마 못 갑니다. 원작 소설대로 따지면, 바드에게 화살을 맞고 호수 밑바닥으로 추락해요. 그리고 자유민을 위협하는 더 큰 사건, 다섯 군대 전투가 벌어집니다. 모든 인물들이 동참하고, 모든 갈등을 마무리하는, 진정한 클라이막스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3편인 <다섯 군대 전투>의 줄거리가 애매해진다는 겁니다. 스마우그는 에레보르의 최대 원수이며, 덕분에 그 동안 최종보스 취급을 받았습니다. 한마디로 끝판왕이라는 뜻이죠. 1편 <뜻밖의 여정>도 드워프 성채 공습으로 시작하고, 백색회의에서도 용을 걱정하고, 막판에도 용의 눈동자를 보여주며 흑막을 암시했죠. 2편 <스마우그의 폐허>도 용을 잡으러 논의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머크우드 엘프나 호수마을 사람들도 저 놈이 언제 죽을지 학수고대하죠. 2편의 마지막 장면 역시 1편처럼 용의 모습을 보여주며 마무리합니다. 스마우그가 없어지고 에레보를 재건하면 모든 게 잘 풀릴 것처럼 돌아갑니다. 이렇게 최종보스처럼 한껏 강조했는데, 정작 중반에 죽어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드워프, 인간, 엘프, 오크까지 용 따위 안중에도 없고, 서로 보물 가지고 싸우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 영화의 긴장감이 허탈하게 풀리거나, 맥이 빠질 것 같습니다. 용 잡는 이야기로 시작했으니, 용이 죽는 걸로 마무리해야 자연스럽겠죠.

 


원작 소설은 이게 별 문젯거리가 아니었습니다. 소설도 스마우그가 무서운 적수이긴 합니다만. 유쾌한 모험담이라서 등장인물들이 다소 가볍거든요. 애초에 소린 일행은 스마우그와 대면하지도 않습니다. 원수니 뭐니 떠들어도 멀리 날아가는 걸 지켜보기만 했죠. 자기들이 무기 들고 싸우러 갈 엄두도 못 냈습니다. 소린 자체도 해학적인 귀족 꼰대에 가까워요. 영웅적인 인물상과 거리가 멀죠. 스마우그 역시 자만심이 넘치는 놈이라서 자기 약점을 멍청하게 드러내놓습니다. 강력하고 지혜롭지만, 딱히 위압감은 없습니다. 바보 같이 죽어도 그럴 만하다는 느낌입니다. 더욱이 바드는 결정적인 사건을 해결하는 중요 인물입니다. 하지만 소설 후반까지 별다른 설명도 안 해줍니다. 난데없이 튀어나와 영주 후손이라고 주장하더니, 여기저기 마구 끼어들죠. 이만큼 대단한 인물이 왜 그렇게 살아왔는지 몇 줄 설명하고 끝입니다. 바드가 갑자기 등장한 만큼, 스마우그가 중반에 죽어도 그리 어색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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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위용 넘치는 최종보스 화룡이 중반에 죽어버리면 너무 싱겁지 않을까요.]

 


그러나 실사 영화는 소설과 달리 대하 서사극입니다. 대륙의 운명을 걸고 싸우는 분위기를 팍팍 풍깁니다. 둘째 문단에서 설명한 것처럼 스마우그 비중은 훨씬 높아졌습니다. 1편과 2편 모두 도입부와 마무리를 스마우그 문제로 장식했습니다. 게다가 두뇌 회전도 상당히 교활합니다. 소린 일행의 속셈과 인물 됨됨이, 대륙의 판도까지 짚어볼 정도입니다. 사우론이 돌아왔고, 오크들이 모인다는 것도 훤히 꿰뚫었죠. 비중이나 성격만 그런 게 아니라 스펙도 상승했습니다. 소설에서는 기껏해야 주택 크기였습니다. 영화에서는 거의 초대형 여객기만큼 덩치가 커졌어요. 이런 괴수를 화살로 격추시키는 게 말도 안 되기에 거대 노포까지 설치했고요. 즉, 스마우그는 소설과 달리 몸값이 높아졌습니다. 그렇다 해도 중반에 덜컥 죽어버리는 건 소설과 똑같겠죠.

 

 

아마 3편은 싸우는 상대에 따라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뉠 겁니다. 초반~중반까지 스마우그가 호수 마을을 불태우다 쇠뇌 맞고 격추되겠죠. 화룡이 떨어지면, 인간, 드워프, 엘프, 오크들이 죽어라 치고 받을 겁니다. 물론 곧장 맞붙는 건 아니고, 한 박자 쉬었다 가겠죠. 소린이 에레보르를 점거하고, 인간과 엘프가 연합하고, 오크들이 당도하고, 아르켄스톤의 행방도 찾고 등등 갈등 구도를 다시 성립해야 하거든요. 그리고 막판 보스는 언제나 그렇듯 사우론과 휘하 부하가 맡겠죠. 하지만 말이죠. 그렇게나 위험하다고 띄워준 화룡이 중반부에 퇴장하면 아깝지 않겠습니까. 겨우 마을 하나 불태우다 죽다니요. 에스가로스는 성채나 도시가 아닙니다. 군사 방비가 엄중하게 잘 된 곳도 아닙니다. 겨우 시시한 시골 따위를 공격하다 죽는 건 중간보스 위상에 어울리지 않죠. 그러니 어쩌면…. 어쩌면, 아주 만에 하나…. 스마우그가 다섯 군대 전투에 참여할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요.

 

 

사우론과 스마우그는 과거 모르고스 밑에서 한솥밥 먹던 사이였습니다. 화룡이 살아있다면, 사우론이 자기 군세로 끌어들일 마음도 있겠죠. 이를 증명하듯 영화 2부에서는 '용과 사우론이 함께 작당했다'고 스로르가 증언합니다. 스마우그는 에스가로스를 공격한 이후, 약속한 대로 돌 굴두르 군대에 합류합니다. 기어이 다섯 군대 전투가 벌어집니다. 치열한 격전 끝에 화룡이 추락합니다.  사우론이 패퇴하고 소린이 죽을 만큼 결렬합니다. 스마우그가 여기서 죽어도 체면에 손상이 가지 않을 겁니다. 스마우그를 격추시킨 인물은 소설대로 바드일 테고요. 노포 같은 건 바퀴를 달아 옮길 수도 있으니, 높은 곳에 설치해서 발사할 수 있잖아요. 대형 화살을 맞은 스마우그는 힘겹게 퍼덕이며 전장을 이탈, 치료할 곳을 찾아 헤맵니다. 하지만 부상이 도져서 얼마 못 가고, 호수 마을을 지날 때쯤 힘이 빠져 추락합니다. 그리고 소설처럼 호수에 빠져 꼬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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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한 군대와 화룡이 어울리면, 정말 대단한 장관일 것 같습니다만….]

 


에, 뭐, 이는 원작 소설과 너무 동떨어진 가능성입니다. 스마우그가 다섯 군대 전투에 참여한다니, 소설에서는 상상도 못한 일이죠. 그러나 실사 영화 시리즈는 이미 소설과 거리가 멀어졌습니다. 설정이나 줄거리, 인물 구성이 판이합니다. 1편만 해도 비슷했지만, 2편에서는 각도가 크게 틀어졌죠. 소린은 더 이상 멍청하게 화룡의 꽁무니나 바라보지 않습니다. 원수를 처치하려고 적극적으로 나서죠. 실제로 둘이 코앞에서 대면해 이야기까지 나누고요. 머크우드 엘프도 레골라스 같은 인물을 추가하거나, 타우리엘 같은 인물을 새로 집어넣었습니다. 스란두일은 화룡을 상대한 경험이 있다며 화상까지 보여주고요. 그저 강령술사로 대충 넘어갔던 사우론은 자기 존재를 확실히 드러냅니다. 따라서 스마우그가 다섯 군대 전투에 참여해도 별 무리가 없을 만한 배경입니다.

 


정말 스마우그가 오크 군대과 합세하면, 자유민들에게 악몽이나 다름없겠죠. 거의 요술사왕만큼 무서운 적일 겁니다. 아니, 나즈굴은 일개 인간이죠. 용은 요술사왕은 비교도 안 될 만큼 엄청난 위협일지도…. 자유민들에게도 독수리가 있지만, 아무래도 체급이나 능력 차이가 크겠죠. 분노의 전쟁 때 모르고스는 최후 병기로 날개 달린 화룡을 풀었습니다. 그러자 발라들마저 물러났다고 하죠. 결국 에렌딜의 활약으로 패했지만, 그만큼 화룡이 대단하다는 반증일 겁니다. 어쨌든 스마우그는 혼자서 에레보르를 깨부순 전력이 있습니다. 거기다 이만한 괴수가 가세하면, 전투가 훨씬 입체적으로 바뀔 겁니다. 자유민 쪽은 주요 3개 종족에다가 독수리와 거대 곰과 마법사까지 있습니다. 오크 군대는 말 그대로 오크랑 와르그가 전부라서 뭔가 부족한 감이 있으니까요. 스마우그는 초월적인 존재로서 오크 군대에 모자란 부분을 채워줄 수 있습니다. 영화로서는 볼거리를 늘릴 수 있으니까 좋겠죠.

 


물론 이것들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추측입니다. 스마우그가 오크 군대에 참가해 자유민 군대와 싸우는 경천동지할 일이 벌어질 확률은…. 음, 기껏해야 0.000…1% 정도? 실제로 소설처럼 스마우그가 중반에 죽는 플롯으로 갈 테니까요. 하지만 그간 실사 영화 시리즈의 행보를 보면, 순순히 원작 행보대로 흘러가기 섭섭합니다. 스마우그 같은 괴수를 애써 만들어놓고, 그저 중반에 퇴장시키기는 아까울 것 같아요.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으니, 제대로 써먹어야 하지 않겠어요. 어차피 영화는 2부부터 소설과 큰 차이가 납니다. 그만큼 3부에서는 정점을 찍지 않을까 싶은데요. 개인적으로는 원작 파괴를 할 지언정 좀 더 오래 활약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이제 중간계 실사영화 시리즈도 마지막인데, 용을 이대로 소모하면 두 번 다시 못 볼 테니까요. <반지전쟁> 본편은 아예 용이 안 나오고, <후린의 아이들>은 이후 영화로 만들지 장담할 수 없죠.

 

 

 

3편이 화룡의 최후를 어떤 식으로 장식할지 궁금하네요. 부디 조금이라도 더 오래 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