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 과학 포럼
SF 작품의 가능성은 어떻게 펼쳐질 수 있을까요? 그리고 어떤 상상의 이야기가 가능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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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게 뭔 소리인고 하니까 그냥 요즘 드는 생각이 이겁니다.
[수많은 사람들이나 이야기들에서 사람들은 인간이 결코 악하기만 한 존재가 아니라 살아갈 이유가 있고 인류의 미래에 대한 믿음을 애기한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도 객관적이지 못한 이야기 이지 아니한가?] 라는 겁니다.
인간에 대한 믿음? 믿음이란건 언제도 배신당할수 있는건 약한 것입니다. 인류의 미래에 대한 희망? 과거의 역사를 보아도 사람들은 그걸 위해서 살아왔지만 솔직히 말해서 앞으로 나아가는지 반복되는지 조차 알수 없는 것이 인류의 역사 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은 고통받고 있죠. 이러한 현실속에서 우리는 미약하기 그지 없는 믿음이나 희망만으로 버텨나갈수 있는 것일까요?
그렇기에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언젠가는 과학이 그러한 질문에 대해서 대답을 해줄수 있을지도 모른다구요. 물론 많은 분들이 과학은 도구이고 그 도구를 어떻게 사용할지 결정하는 것은 인간이라고 애기하시죠.
그럼에도 언젠가는 과학이 그러한 대답을 만들수도 있지 않을까 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회원 여러분의 생각을 한번 들어보고 싶어서 이리 글을 올려봅니다. 과연 미래에는 인간의 존재 에 대한 긍정을 확실히 할수 있는 이론 같은것이 나올까요?
ps. 이 글이 분쟁의 소지가 될 경우에는 바로 삭제합니다.
구원은 과학의 영역이 아닙니다.
어쩌면 언젠가 과학의 힘으로 모든 인간의 고통이 구제될날이 올지도 모릅니다만 제가 보기에 거기에 도달한 존재는 더 이상 인간이라고 부를수 없는것일 겁니다.
과학보다는 논리과 사고의 발전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과학 기술이 발달해서 인식이 넓어지는 경우도 있죠. 인간이 우주에서 실제 어떠한 존재인지 깨달았을 때, 어리석은 종교적 맹신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처럼요. 그런 점에서 사상은 계속 변하겠지만, 그게 항상 현실을 바꾸는 건 아닙니다. 현실을 바꾸려면 많은 사람들이 단결하고 참여해야죠. 심지어 그렇게 해도 실패할 때가 많습니다. 어쩼든 과학이 발달할수록 사람들 간의 거리도 줄어드니까, 현실을 바꿀 가능성이 높아지긴 합니다. 하다못해 인터넷 서명 운동 같은 거라도 벌이긴 하니까요. 군중은 남들을 따라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렇게 거리가 좁아지면 따라할 확률도 늘어나죠.
아울러 뻔한 대답 같지만, 인간이 살아가는 이유 따위 없습니다. 그냥 태어났으니까 살아가는 겁니다. 굳이 거기에 긍정이나 부정을 덧붙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중요한 건 지금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그걸 어떻게 고칠지 고민하는 거죠. 사실 인류가 희망을 보며 산 적이 있나 싶습니다. 그냥 상황에 맞춰서 발버둥치며 살아왔다는 편이 맞을 듯합니다.
만약에 스타트랙이나 유년기의 끝에서처럼 기본 생계가 보장되고 자신의 개인 과업 성취가 목표가 되는 사회상이 된다면........전세계적인 고통량이 급감할테니 님이 언급하신 '미약하기 그지없는 믿음이나 희망' 의 필요성이 많이 사라질겁니다.
대부분의 '미약하기 그지없는 믿음이나 희망'은 생존을 하기 위한 성공이나 실패의 존재 때문에 의해 생기는 거라서요.
물론 그런 상황에서도 노답인 인간이나 자신의 성공 기준이 높아서 좌절하는 사람들은 있겠지만 사회적 평균을 생각할때 그러리라 봅니다.
............
근데 이건 결과론적인 얘기고 근본적으로는 과학이 발전해서 전 지구인을 먹여 살릴 수 있게 된다 하더라도 인류가 그걸 실제로 시행할만한 가치관과 사고방식이 패러다임으로 자리잡아야 가능한 거죠.
어쩌면 지금도 기술적으로는 전 지구인을 먹여 살리는건 문제가 없을 수도 있어요. 해본적이 없어서 실제로 가능한진 모르겠다만......
어느 곳에서는 사람들이 굶어 죽고 있는데 지구 반대편에서는 음식이 남아서 버리죠. 어째서 그런 일이 벌어지느냐........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그 상태 그대로는 과학이 더 발전해도 달라지는 건 없으리라 추측할 수 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자원이나 자본이 남는 곳에서 부족한 곳으로 옮기는 것이 과학적으로나 기술적으로 부족해서 벌어지는건 아니거든요.
행여나 그러한 일을 실천할 수 있을만한 '가치관이나 사고방식의 패러다임' 그 자체를 인류가 자발적으로 사고하고 선택한 결과로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과학적으로 이룰 수 있는지를 묻는 것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세뇌' 입니다.
당사자가 자신의 사고틀이나 가치관을 자신의 경험이나 생각에 의해 스스로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물리적,화학적,생물학적등으로-으로 바꾼다면 그건 말 그대로 세뇌인거죠.
과학이 발달해서 그게 가능할 수는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방식에 딱히 '의미'가 있는진 모르겠습니다.
저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과학은 많은 긍정적 영향을 미쳤고요.
한 예로 칼 세이건의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을 읽어보면 아주 설득력있게 과학에 근거한 결론에 따라 이 사람의 정치적 신념을 엿볼 수 있죠. 저는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이 책에서 드러난 칼 세이건처럼 완벽하게 정치적으로 공정한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나중에 평전을 읽으니 그도 원래부터 정치적으로 그렇게 공정했던 사람은 아니었어요. 그의 경험이 그렇게 만든 거죠. 마리화나 애호가라는 사실에는 살짝 충격...)
만약 과학이 인류 존재에 대한 답을 줄 수 있느냐 하면, 사실 정답은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번식이라는 다른 자연의 생물종과 동일한 목적입니다. 그리고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긍정적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특별하지 않다. 인간이 특별하다면 다른 모든 생물종들도 마찬가지다. 물론 자연의 법칙에 따라 생물종간의 충돌은 어쩔 수 없이 일어납니다. 그것도 긍정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게 자연에서 모든 것들이 존재하는 방식이니까.
그나마 과학과 지식이 발달한 지금이 그래도 인류 역사상 가장 덜 야만적인 시대입니다. 어떤 곳에서는 여전히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긴 하지만 인류 역사를 통틀어서 볼 때 지금처럼 인권의 개념이 있었던 시대는 없었습니다.
예전에 터키에서 화학교사를 하셨다던 분이 해 주셨던 말씀이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과학과 민주주의는 쌍둥이처럼 함께 성장을 해왔다. 고대 그리스가 그러했고 현대의 서구 사회가 그렇다.'
과학은 합리적 사고를 기초로 하고 사람들이 합리적 사고를 하게 되면 사회적인 현상들도 개선됩니다.
오늘 좋은거 보고 가네요. "과학은 합리적 사고를 기초로 하고 사람들이 합리적 사고를 하게 되면 사회적인 현상들도 개선됩니다. "
정말 잠시동안 많은 생각을 하게 하네요.
그렇지만 그 과학적인 진보로 만들어진 세상을 누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태에 점차 빠져들면 무섭다고 생각도 되네요.
인간에 대한 긍정은 과학이든 인문학이든, 이성과 경험으로 증명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인간과 생명의 존엄은 그냥 종교처럼 가정되는 것이에요. 그 가정 위에서 온갖 행동으로써 실천하고, 담론을 펼치고, 법과 제도를 만들어 강제력을 행사하면, 이 가정은 힘을 가진 현실이 되는 것이고요.
과학이 인간에 대한 긍정을 만들어내는게 아니라, 인간이 인간에 대한 긍정을 만들어내는 것이겠죠. 발전용으로 사용하느냐, 무기로 쓰느냐에 따라 원자력을 사용하는 사람들과 인간에 대한 긍정과 부정이 엇갈리는 것이지, 기술 자체는 가치중립적이니까요.
0이 네 개 붙는 사람들을 한 큐에 쓸어버린 핵침을 떠올린다면 과학이 인간에 대한 긍정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생각을 쉽게 하긴 어렵겠죠.
애초 과학적 의식과 합리적 사고는 별 상관도 없습니다. 과학이라고 부를만한 게 없었던(혹은 지금보다 과학적으로 훨씬 후졌던) 시절의 그리스와 지금을 비교해 보면 그런 식의 주장은 그냥 정신승리일 뿐이죠.
인간의 존재론적 위상이 점유하는 좌표를 어디에 두느냐는 개개인이 가진 지식과 지능으로 총력을 다하는 고뇌와 고민이지 과학 자체나 인문학 자체, 뭐 그런 게 아닙니다.
과학적인 상상력을 가진다면, 인간은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사고를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 세월호 사건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했지요. "상상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라고.
낡아빠지고 마개조 상태의 배를 보면서 조금이라도 상상력을 가졌다면, 그 배가 위험에 빠질 가능성을 얼마든지 예상했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세월호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겠지요.
한국은 상상력이 부족한 사회입니다. 어찌보면 뻔할지도 모르는 상황을 예측하지 못하고 생각하지 못합니다.
과학은 그 자체로서 상상력을 이끌어내지는 않지만, 상상력을 좀 더 충실하게 만들어주는데 도움을 줍니다.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될까?'라는 것에서 그 '어떻게'를 떠올리게 하는데 도움을 주죠.
"그날이 오면(The Day After)"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1983년에 미국의 TV에서 방송된 영화인데, 핵전쟁이 일어나고 핵 공격을 받은 미국의 한 마을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입니다. 방사능에 의해서 죽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지요. 핵전쟁이 일어났을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를 과학적인 상상력에 바탕을 두고 구성한 이야기가 인상적입니다.
이 영화가 끝나고, 칼 세이건을 비롯한 여러 학자들이 모여서 대담을 하면서 시청자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대담이 끝날때까지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오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방송을 보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너무도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죠.
그 이후 미국 전역에서 반핵, 반전단체가 늘어납니다. 그리고 의미있는 '핵 감축 협상'이 진행되지요.
과학적 상상력, 즉 SF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인류의 운명을 긍정적으로 바꾸어 놓은 사례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한편, 이 영화의 제목을 오마주한 영화가 있습니다.
"투모로우(The Day After Tomorrow)"
이 영화에서는 지구 온난화로 인해서 세계가 빙하기에 돌입하게 되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아들을 구하고자 애쓰는 주인공의 이야기도 인상적이지만, 마지막에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얼어붙은 지구를 내려다보면서 "이렇게 아름다운 지구를 본 적이 있어?"라는 말이 충격적이죠.
이 영화는 지구 온난화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사람들이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비록 "그날이 오면" 만큼의 영향을 준 영화는 아닐지라도, 이로 인해서 지구 온난화가 단순히 날씨가 따뜻해지는 정도로 끝나는게 아니라 인류를 파멸시킬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이 두 편의 영화는 '과학적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이야기입니다. 상상이 중요하지만, 이를 설득력 있는 이야기로서 완성하는데는 역시 '과학'의 힘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한편, 쥘 베른의 과학적 상상력은 인류를 달로 이끌었고(아폴로 8호의 선장은 "쥘 베른은 위대한 우주 여행의 선구자."라고 말했을 정도입니다.) 해저로의 꿈을 키워주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과학 그 자체가 아니라, 과학을 활용하여 상상하는 '과학적 상상'의 영향력을 잘 보여줍니다.
사람들에게 상상력이 있을때, 과학은 이 상상력에 구체적인 힘을 실어주고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것은 자연스레 인류를 조금이라도 긍정적이고 좋은 길로 가도록 도와줍니다.
긍정하든 부정하든 남이 해줄 수 있는게 아닙니다.
이건 개인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죠. 자기가 존재할 이유가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면 그렇게 되는거고,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니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