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 과학 포럼
SF 속의 상상 과학과 그 실현 가능성, 그리고 과학 이야기.
SF 작품의 가능성은 어떻게 펼쳐질 수 있을까요? 그리고 어떤 상상의 이야기가 가능할까요?
SF에 대한 가벼운 흥미거리에서부터 새로운 창작을 위한 아이디어에 이르기까지...
여기는 과학 소식이나 정보를 소개하고, SF 속의 아이디어나 이론에 대한 의견을 나누며, 상상의 꿈을 키워나가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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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작품의 가능성은 어떻게 펼쳐질 수 있을까요? 그리고 어떤 상상의 이야기가 가능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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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327
칼 세이건의 '악령들이 출몰하는 세상'을 다시 읽다가, 인상적인 인용구를 보아서 옮깁니다.
이성을 무효화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성적으로 이성에 반대하고 있는 것인지 비이성적으로 이성에 반대하고 있는지 진지하게 고려해보아야 한다. 만일 이성적으로 그런 것이라면, 그들은 자신들이 몰아내려고 애쓰고 있는 바로 그 원리를 입증하는 셈이다. 그게 아니라 만일 비이성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것이라면(일관성을 유지하려면 그럴 수 밖에 없다), 그들은 이성적인 확신의 범위를 벗어나 있는 것이거나, 이성적인 주장을 했다고 인정 받을 수 없다.
꽤 재미있는 내용의 논증입니다. ~ 포스트모더니즘이 모더니즘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통에, 모더니즘의 상징인 계몽주의라거나 합리성이라거나 이성적이니 과학적이니 하는 단어들이 상당한 맹공격을 받게 되었죠. 과학철학에 관한 지식이 좀 있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파이어아벤트의 무정부주의적 과학론에 따르면 실제로 제대로 된 지식을 전달하는 과학이란 존재할 수 없고, 오로지 어떤 과학이 그 시대에 더 많은 권력(정부 권력 얘기가 아니라 주류 비주류의 얘기입니다)을 차지하느냐만이 중요하다고 할 지경입니다. 지나치게 신격화된 이성의 맹신에 대한 반발로 일어난 일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포스트모더니즘은 신과학/의사과학/사이비과학 등등으로 불릴 수 있는 과학 너머의 그 무엇과 쉽게 결합하게 되었습니다. 수정 치료나 우주 생명 에너지 같은 걸 논할 때는 '믿어야 보인다'고 말하지, '이성적으로 회의하라'를 강조하지는 않습니다. 심지어는 전문가나 회의론자들 앞에서는 제대로 시연이 불가능하고, 오로지 일반 청중 앞에서 불이 꺼진 어두운 방 같은 특정한 조건 하에서만 시연이 가능해지는 '관찰자 효과'라는 말 마저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실험이나 검증을 요구하기는 힘들지요.
분명 이성을 맹신하는 것은 경계해야 마땅할 일입니다. 본인도 옛날 일기장에 쓴 글을 보니까 '이해는 믿음의 또 다른 이름이다'라고 써놨더군요. 하지만 최소한 아무리 그게 '기껏해야' 믿음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더 믿을 만한 것을 믿는다'가 더 낫지 않는지 생각해봅니다. 과학이란 또 하나의 종교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이 있는데, 전 그게 솔직히 왜 비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은 저 말을 뒤집으면 더 진실이 가까워집니다 : 종교도 하나의 과학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종교가 어떤 자연 현상을 설명하고자 시도했을 때, 바로 그 시도 자체를 과학이라고 불러야 합니다.(물론 종교가 자연 현상을 설명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은 고려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신께서 중력의 천사들에게 그렇게 명했든, 사물의 본성이 지구 중심을 향해 끌려가게 되어 있든, 만유 인력의 법칙에 따라 중력이 작용하는 것이든, 모두 나름대로 하나의 설명이고 그 설명 가운데 어느 것이든 우리는 자유롭게 선택해서 믿을 수 있습니다. 다만 어느 것이 더 믿을 만 한지는 그 다음의 문제인 동시에 더 중요한 문제가 아닐까요? 천사들의 이름을 부르는 에노키안 주술로 중력의 천사의 이름을 불러서 실제로 중력을 조정해 보일 수 있다면 저 믿음이 훨씬 믿을만 한 것일 터이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이루어졌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습니다.
결국 이 문제는, 이전에 사이비과학에 대해 논할 때도 말한 것과 유사한 이야기로 귀결됩니다. 아마도 이렇게 말하겠지요 : "좋습니다. 당신이 무엇을 믿든 간에 자유입니다. 당신이 무엇을 믿는다고 말하면 그것은 이미 당신이 더 믿을 만 하다고 생각하는 쪽을 택한 것이겠지요. 그래서, 당신은 열에 시달리는 아이에게 무엇을 가져다 줄 것입니까? 안수 기도입니까? 푸닥거리입니까? 해열제 주사입니까? 믿음이 행동을 결정한다면, 그 결과 또한 믿음에 책임이 있을 것입니다. 당신은 개개인의 믿음은 자유로워야 한다고 항변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당신은 당신의 믿음이 오로지 당신 뿐 아니라 당신 주위의 사람들, 혹은 다른 사회 전체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안수 기도를 행해서 아이를 구해내지 못했다면 그것은 당신의 믿음의 책임입니다. 오, 물론, 해열제 주사로 아이를 구해내지 못했다면 그것은 당신의 믿음의 책임이지요. 어느 것이 더 일어나기 쉬운 일인가를 생각한다면, 당신은 어느 것이 더 믿을 만 한지 결정할 수 있을 겁니다."
우리는 단순히 믿음이 현실을 결정하는 플레인 스케이프의 세상이나 WoD의 마법 패러다임을 둘러싼 승천 전쟁 한복판에 살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믿음 너머에 어떤 현실 같은 무언가가 있고, 그것에 어긋나는 믿음은 대체로 자꾸만 현실과 충돌을 일으키게 됩니다. 믿음이 현실을 결정한다면 아마 믿는 그대로 현실이 고정되어 버렸어도 별 상관이 없겠지요. 하지만 아무리 많은 아이들이 산타클로스가 실제한다고 믿어도, 루돌프가 초속 5천km로 달려야만(그것도 수십억개의 점을 잇는 최단 거리를 찾아서) 전세계 모든 아이들에게 하룻밤에 선물을 나눠 줄 수 있다는 것을 안다면 믿음이 대체 어떻게 실현될지 가망이 잡히질 않는 군요. 에이즈가 신화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 믿음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서 스스로에게 에이즈 균을 투여해 보면 됩니다. 여태까지 의학사의 위대한 발견 중에 그런 희생은 드문 것도 아니었지요. 황열병 균을 실험하고 죽은 의학자도 있고, 장티푸스가 소화기로 전염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해보이려고 설사를 한 컵 들이킨 의학자도 있으니까요. '에이즈 환자는 성적으로 비도덕하고 타락하다'는 편견은 우리가 맞서 싸워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에이즈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에이즈 환자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저러한 편견을 고정시키기 위한 것이다'고 주장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이 항목은 따로 발제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 예시로만 들겠습니다)
이성을 무효화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성적으로 이성에 반대하고 있는 것인지 비이성적으로 이성에 반대하고 있는지 진지하게 고려해보아야 한다. 만일 이성적으로 그런 것이라면, 그들은 자신들이 몰아내려고 애쓰고 있는 바로 그 원리를 입증하는 셈이다. 그게 아니라 만일 비이성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것이라면(일관성을 유지하려면 그럴 수 밖에 없다), 그들은 이성적인 확신의 범위를 벗어나 있는 것이거나, 이성적인 주장을 했다고 인정 받을 수 없다.
꽤 재미있는 내용의 논증입니다. ~ 포스트모더니즘이 모더니즘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통에, 모더니즘의 상징인 계몽주의라거나 합리성이라거나 이성적이니 과학적이니 하는 단어들이 상당한 맹공격을 받게 되었죠. 과학철학에 관한 지식이 좀 있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파이어아벤트의 무정부주의적 과학론에 따르면 실제로 제대로 된 지식을 전달하는 과학이란 존재할 수 없고, 오로지 어떤 과학이 그 시대에 더 많은 권력(정부 권력 얘기가 아니라 주류 비주류의 얘기입니다)을 차지하느냐만이 중요하다고 할 지경입니다. 지나치게 신격화된 이성의 맹신에 대한 반발로 일어난 일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포스트모더니즘은 신과학/의사과학/사이비과학 등등으로 불릴 수 있는 과학 너머의 그 무엇과 쉽게 결합하게 되었습니다. 수정 치료나 우주 생명 에너지 같은 걸 논할 때는 '믿어야 보인다'고 말하지, '이성적으로 회의하라'를 강조하지는 않습니다. 심지어는 전문가나 회의론자들 앞에서는 제대로 시연이 불가능하고, 오로지 일반 청중 앞에서 불이 꺼진 어두운 방 같은 특정한 조건 하에서만 시연이 가능해지는 '관찰자 효과'라는 말 마저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실험이나 검증을 요구하기는 힘들지요.
분명 이성을 맹신하는 것은 경계해야 마땅할 일입니다. 본인도 옛날 일기장에 쓴 글을 보니까 '이해는 믿음의 또 다른 이름이다'라고 써놨더군요. 하지만 최소한 아무리 그게 '기껏해야' 믿음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더 믿을 만한 것을 믿는다'가 더 낫지 않는지 생각해봅니다. 과학이란 또 하나의 종교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이 있는데, 전 그게 솔직히 왜 비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은 저 말을 뒤집으면 더 진실이 가까워집니다 : 종교도 하나의 과학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종교가 어떤 자연 현상을 설명하고자 시도했을 때, 바로 그 시도 자체를 과학이라고 불러야 합니다.(물론 종교가 자연 현상을 설명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은 고려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신께서 중력의 천사들에게 그렇게 명했든, 사물의 본성이 지구 중심을 향해 끌려가게 되어 있든, 만유 인력의 법칙에 따라 중력이 작용하는 것이든, 모두 나름대로 하나의 설명이고 그 설명 가운데 어느 것이든 우리는 자유롭게 선택해서 믿을 수 있습니다. 다만 어느 것이 더 믿을 만 한지는 그 다음의 문제인 동시에 더 중요한 문제가 아닐까요? 천사들의 이름을 부르는 에노키안 주술로 중력의 천사의 이름을 불러서 실제로 중력을 조정해 보일 수 있다면 저 믿음이 훨씬 믿을만 한 것일 터이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이루어졌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습니다.
결국 이 문제는, 이전에 사이비과학에 대해 논할 때도 말한 것과 유사한 이야기로 귀결됩니다. 아마도 이렇게 말하겠지요 : "좋습니다. 당신이 무엇을 믿든 간에 자유입니다. 당신이 무엇을 믿는다고 말하면 그것은 이미 당신이 더 믿을 만 하다고 생각하는 쪽을 택한 것이겠지요. 그래서, 당신은 열에 시달리는 아이에게 무엇을 가져다 줄 것입니까? 안수 기도입니까? 푸닥거리입니까? 해열제 주사입니까? 믿음이 행동을 결정한다면, 그 결과 또한 믿음에 책임이 있을 것입니다. 당신은 개개인의 믿음은 자유로워야 한다고 항변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당신은 당신의 믿음이 오로지 당신 뿐 아니라 당신 주위의 사람들, 혹은 다른 사회 전체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안수 기도를 행해서 아이를 구해내지 못했다면 그것은 당신의 믿음의 책임입니다. 오, 물론, 해열제 주사로 아이를 구해내지 못했다면 그것은 당신의 믿음의 책임이지요. 어느 것이 더 일어나기 쉬운 일인가를 생각한다면, 당신은 어느 것이 더 믿을 만 한지 결정할 수 있을 겁니다."
우리는 단순히 믿음이 현실을 결정하는 플레인 스케이프의 세상이나 WoD의 마법 패러다임을 둘러싼 승천 전쟁 한복판에 살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믿음 너머에 어떤 현실 같은 무언가가 있고, 그것에 어긋나는 믿음은 대체로 자꾸만 현실과 충돌을 일으키게 됩니다. 믿음이 현실을 결정한다면 아마 믿는 그대로 현실이 고정되어 버렸어도 별 상관이 없겠지요. 하지만 아무리 많은 아이들이 산타클로스가 실제한다고 믿어도, 루돌프가 초속 5천km로 달려야만(그것도 수십억개의 점을 잇는 최단 거리를 찾아서) 전세계 모든 아이들에게 하룻밤에 선물을 나눠 줄 수 있다는 것을 안다면 믿음이 대체 어떻게 실현될지 가망이 잡히질 않는 군요. 에이즈가 신화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 믿음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서 스스로에게 에이즈 균을 투여해 보면 됩니다. 여태까지 의학사의 위대한 발견 중에 그런 희생은 드문 것도 아니었지요. 황열병 균을 실험하고 죽은 의학자도 있고, 장티푸스가 소화기로 전염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해보이려고 설사를 한 컵 들이킨 의학자도 있으니까요. '에이즈 환자는 성적으로 비도덕하고 타락하다'는 편견은 우리가 맞서 싸워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에이즈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에이즈 환자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저러한 편견을 고정시키기 위한 것이다'고 주장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이 항목은 따로 발제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 예시로만 들겠습니다)
티끌 같은 세상속에 작은 모래알 하나,
한바탕 미친 바람 불고 나면 그 간 곳을 모르온저
2008.03.19 15:43:48
우리가 어릴 때 어떻게 여러가지 세상에 관한 것들을 배웠나 생각해 보면, 대부분의 이해는 믿음에서 생겨날 수 밖에 없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 때는 항상 '왜요? 이건 또 왜 그래요? 왜 그래야 되는데요?'하면 '더 크면 알게 될꺼야'라는 얘기만 들었지만, 실제로 그 체계에 익숙해질 수록(믿기 시작할 수록) 점점 우리는 그걸 *이해하게* 됩니다. 믿는다는 것이 '전제를 받아들인다'나 '생각하는 방식을 채택한다'면 우리가 완벽하게 세상을 그대로 인식할 수 없는 이상 어쩔 수 없는 것 같군요.
2008.03.19 15:43:48
사실 저 이야기는 프래그머티즘, 곧 실용주의에 가까운 이야기로 귀결됩니다. 진리의 기준이 어차피 존재하지 않는다면, 결국 그 선택의 기준은 진리가 아니라 유용성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겠지요. 세계를 좀 더 잘 설명하면 더 유용한 것이고 그러므로 그 설명을 택해야 한다는 입장일지도.
과학철학과 관련된 논쟁도 한번 따로 써야겠습니다.
과학철학과 관련된 논쟁도 한번 따로 써야겠습니다.
2008.03.19 15:43:48
뭐, 사실 뉴턴이 발견할 당시 만유인력의 법칙 만큼 '믿음'의 경지에 들어선 과학만한게 없죠. 이 만유인력의 법칙은, 당시로선 그 어떤것도 설명할수 없었죠.
단지 만유인력이 존재한다고 '가정'할때 이러이러한 일이 생긴다~ 라는 이야기 니까요. 그러나 사람들은 이 법칙을 믿고 따르게 되었습니다.
과학이라는것은 이러한 것도 존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자의 기본자세로서 회의론자적 기질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나 뉴턴처럼 대 선배이자 놀라운 것을 많이 발견한 과학자도 틀릴수가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른바 '계몽된 시민들'은 이 과학을 종교대신 신봉하셨죠. 그리고 이를 옹호하며 다른 이들을 '계몽' 시켰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것이 매우 실용적으로 유효했습니다. 위생상태가 좋아지고, 질병이 많이 사라져 평균수명이 올라가고 수많은 공학적 발견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그 자체도 처음 등장했을때는 매우 새로운 믿음이었고, 이 가르침 받은 '참된 사람들'은 다른이들에게 '전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믿음을 바탕으로 중세 유럽사회는 그들끼리의 싸움을 상당히 억제할 수 있었으며, 그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하나의 기둥이 되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신학자들은 니케아 공의회의 삼위일체설을 시작으로 수많은 학설들을 내놓고 인정받거나 이단으로 배척되는등 많은 연구가 뒤따랐습니다.
이 두가지 현상은 매우 비슷한 형태를 띕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일반인'이나 '지식인'은 이 믿음을 증명하려 하기 보다는 그저 믿거나 이용하는데 그친다는 점이죠.
이를 보건데, 믿음이라는 것은 그 시대에 필요에 따라 나타나는 인간 발전의 기체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종교를 가짐으로서 인간은 '인권'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과학을 가짐으로서 인간은 '자연'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죠.
단지 만유인력이 존재한다고 '가정'할때 이러이러한 일이 생긴다~ 라는 이야기 니까요. 그러나 사람들은 이 법칙을 믿고 따르게 되었습니다.
과학이라는것은 이러한 것도 존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자의 기본자세로서 회의론자적 기질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나 뉴턴처럼 대 선배이자 놀라운 것을 많이 발견한 과학자도 틀릴수가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른바 '계몽된 시민들'은 이 과학을 종교대신 신봉하셨죠. 그리고 이를 옹호하며 다른 이들을 '계몽' 시켰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것이 매우 실용적으로 유효했습니다. 위생상태가 좋아지고, 질병이 많이 사라져 평균수명이 올라가고 수많은 공학적 발견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그 자체도 처음 등장했을때는 매우 새로운 믿음이었고, 이 가르침 받은 '참된 사람들'은 다른이들에게 '전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믿음을 바탕으로 중세 유럽사회는 그들끼리의 싸움을 상당히 억제할 수 있었으며, 그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하나의 기둥이 되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신학자들은 니케아 공의회의 삼위일체설을 시작으로 수많은 학설들을 내놓고 인정받거나 이단으로 배척되는등 많은 연구가 뒤따랐습니다.
이 두가지 현상은 매우 비슷한 형태를 띕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일반인'이나 '지식인'은 이 믿음을 증명하려 하기 보다는 그저 믿거나 이용하는데 그친다는 점이죠.
이를 보건데, 믿음이라는 것은 그 시대에 필요에 따라 나타나는 인간 발전의 기체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종교를 가짐으로서 인간은 '인권'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과학을 가짐으로서 인간은 '자연'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죠.
2008.03.19 15:43:48
믿음의 전제를 수정할 수 있는 과학과 그렇지 못한 종교는 서로 다른선상에
놓여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학만 그런것은 아니지만 학문은 기본적으로 어떤 사실을 밝히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니 어떤 이야기가 절대적으로 옳을것을 가정하지 않습니다.
이러면 이러할것이다라고 주장하죠. 그리고 그에 근거해서 논리를 전개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틀리다면 수정을하고 변경을 합니다. 적어도 학문은 그런방식으로
발전해 왔고 그런 과정상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종교는 다릅니다. 종교에서 진리는 이미 주어져 있습니다.
신의 목소리 또는 보다 상위의 존재에 의해서 밝혀진 진리.. 경전..등등.
그리고 그 틀 내에서만 해석을 합니다. 최근의 다원주의 체제하에서
종교역시 자기 틀에서만 살수는 없기 때문에 확대해석을 해주긴 하지만
기본적인 전제를 바꾸지는 않습니다. 교리 해석의 유연성은 있어도
교리 자체를 뒤집는 일이 발생할수가 없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이전까지만 해도 뉴턴의 고전 물리학이 그 학문의 전부였지만
아인슈타인과 이후 등장한 여러 뛰어난 물리학자들에 의해서 점점 수정을
가하고 기본 전제를 바꾸면서 물리학은 발전해 왔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아마도 어떤 뛰어난 천재에 의해서 물리학의 기본전제들은 수정될 수 있을
테지만 종교는 그 종교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종교의 기본전제를
바꿀수 없을것입니다. 특히나 절대신을 취하고 절대적 신의 진리를 기반으로
하는 종교들의 경우에는 특히 더 하겠죠.
놓여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학만 그런것은 아니지만 학문은 기본적으로 어떤 사실을 밝히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니 어떤 이야기가 절대적으로 옳을것을 가정하지 않습니다.
이러면 이러할것이다라고 주장하죠. 그리고 그에 근거해서 논리를 전개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틀리다면 수정을하고 변경을 합니다. 적어도 학문은 그런방식으로
발전해 왔고 그런 과정상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종교는 다릅니다. 종교에서 진리는 이미 주어져 있습니다.
신의 목소리 또는 보다 상위의 존재에 의해서 밝혀진 진리.. 경전..등등.
그리고 그 틀 내에서만 해석을 합니다. 최근의 다원주의 체제하에서
종교역시 자기 틀에서만 살수는 없기 때문에 확대해석을 해주긴 하지만
기본적인 전제를 바꾸지는 않습니다. 교리 해석의 유연성은 있어도
교리 자체를 뒤집는 일이 발생할수가 없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이전까지만 해도 뉴턴의 고전 물리학이 그 학문의 전부였지만
아인슈타인과 이후 등장한 여러 뛰어난 물리학자들에 의해서 점점 수정을
가하고 기본 전제를 바꾸면서 물리학은 발전해 왔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아마도 어떤 뛰어난 천재에 의해서 물리학의 기본전제들은 수정될 수 있을
테지만 종교는 그 종교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종교의 기본전제를
바꿀수 없을것입니다. 특히나 절대신을 취하고 절대적 신의 진리를 기반으로
하는 종교들의 경우에는 특히 더 하겠죠.
2008.03.19 15:43:48
asteia// 꼭 그렇게 볼수는 없죠. 종교도 발전이 가능합니다. 현재 세계의 주류로 자리잡은 2가지의 유일신교-이슬람교와 기독교는 유대교의 교리를 수정하고 개혁되어 나온 종교 아닙니까. 종교 역시 사람이 만들어낸 종파에서 교리를 수정하는 겁니다. 한때 얀 후스나 에라스무스는 이단으로 몰려 화형당하거나 죽을 위기에 처하지만 지금은 종교계를 개혁한 사람으로 나오지 않습니까? 과학이나 종교나 그렇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과학에서도 저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을 수정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과 희생이 있었습니까? 갈레토스의 4 체엑설이 순환설로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과 희생이 뒤따랐습니까? 뉴턴역학과 상대성이론, 그리고 양자이론이 얼마나 큰 갈등을 빚었습니까. 과학이라고 해서 변화가 자연스러운 것도 아니며, 종교가 변화하지 않는 집단인것도 아닙니다. 애초에 기독교에서 믿는 '성경'이라는 것도 수많은 경들중 공의회를 통해 지정된 것만 모은 책이지 않습니까.
또한 삼위일체설 또한 처음 나왔을때는 아리우스파의 예수인간설과 많은 대립이 있었죠.
또한 삼위일체설 또한 처음 나왔을때는 아리우스파의 예수인간설과 많은 대립이 있었죠.
2008.03.19 15:43:48
헤르시온/
하지만 종교는 기본적으로 신의 존재, 신의 무오류성, 진리는 신이 계시한다는 가설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저러한 것들은 반증 자체가 불가능하니 애초부터 과학이라고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님께서 드신 예는 종교학적인 면에서 교리의 가변성을 논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종교의 본질적인 면은 전혀 생각하지 않은 것입니다. 물론, 종교가 그렇게 최소한의 개혁을 꾀하지 않았더라면, 종교는 살아남지 못했겠죠. 하지만 그렇게 종교가 개혁을 통해 계속 변화한다면, 신 역시 인간과 함께 변화한다는 소리가 되어 버립니다. 종교가 어떤 철학적 체계라면 시대 정신 같은 소리를 해도 상관 없을텐데, 어디 신이 그렇게 인간 맘대로 늘었다 줄었다 하는 거여야 말이죠. =_= 당연히, 과학은 엄청난 격돌을 빚으며 변화해오는 집단입니다. 하지만 종교는, 비록 흘린 피는 더 많은 지언정, 과학만큼의 변화를 겪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종교는 기본적으로 신의 존재, 신의 무오류성, 진리는 신이 계시한다는 가설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저러한 것들은 반증 자체가 불가능하니 애초부터 과학이라고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님께서 드신 예는 종교학적인 면에서 교리의 가변성을 논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종교의 본질적인 면은 전혀 생각하지 않은 것입니다. 물론, 종교가 그렇게 최소한의 개혁을 꾀하지 않았더라면, 종교는 살아남지 못했겠죠. 하지만 그렇게 종교가 개혁을 통해 계속 변화한다면, 신 역시 인간과 함께 변화한다는 소리가 되어 버립니다. 종교가 어떤 철학적 체계라면 시대 정신 같은 소리를 해도 상관 없을텐데, 어디 신이 그렇게 인간 맘대로 늘었다 줄었다 하는 거여야 말이죠. =_= 당연히, 과학은 엄청난 격돌을 빚으며 변화해오는 집단입니다. 하지만 종교는, 비록 흘린 피는 더 많은 지언정, 과학만큼의 변화를 겪지는 못했습니다.
2008.03.19 15:43:48
교리해석의 차이와 주어진 진리라는 가정자체는 엄청 다른겁니다.
기독교에서 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거나 신의 오류를 인정할수는 없습니다.
심지어 카톨릭에서는 인간인 교황의 오류조차 실질적으로 부정합니다.
과거 교황의 최종결정을 이후 시대의 교황이 뒤집을수는 없습니다.
3위일체가 황제에 의해서 결정된 이후 그것을 뒤집을수는 없었습니다.
단체내의 수많은 반동세력이 있었지만 모두 사라졌습니다.
단성론자들이 이후에도 많이 나왔으며 황제가 정치적인 목적으로 그것을
이용했지만 3위일체는 성경의 어디에도 한구절도 나오지 않음에도
무오류의 진리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것이죠. 적어도 이것을 부정하는
자들은 이단이라고 하며 그 종교에서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애초에 오류를 인정하는 과학과 오류를 부정하는 서구 기독교는 같은
수준이 될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런 논의 자체는 서구의 과학과 종교의 발전에서 오는 논쟁이므로
동양적인 사상으로 본다면 좀 차이가 있을수도 있겠지만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연구가 많이 부족한 편인것 같습니다.
기독교에서 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거나 신의 오류를 인정할수는 없습니다.
심지어 카톨릭에서는 인간인 교황의 오류조차 실질적으로 부정합니다.
과거 교황의 최종결정을 이후 시대의 교황이 뒤집을수는 없습니다.
3위일체가 황제에 의해서 결정된 이후 그것을 뒤집을수는 없었습니다.
단체내의 수많은 반동세력이 있었지만 모두 사라졌습니다.
단성론자들이 이후에도 많이 나왔으며 황제가 정치적인 목적으로 그것을
이용했지만 3위일체는 성경의 어디에도 한구절도 나오지 않음에도
무오류의 진리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것이죠. 적어도 이것을 부정하는
자들은 이단이라고 하며 그 종교에서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애초에 오류를 인정하는 과학과 오류를 부정하는 서구 기독교는 같은
수준이 될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런 논의 자체는 서구의 과학과 종교의 발전에서 오는 논쟁이므로
동양적인 사상으로 본다면 좀 차이가 있을수도 있겠지만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연구가 많이 부족한 편인것 같습니다.
2008.03.19 15:43:48
로타에르,asteia// 그런가요..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렇군요. 그 3원칙은 부정될수 없군요... 저 3원칙이 유일신교가 성립하는 기준이니까요.
2008.03.19 15:43:48
유일신의 절대 타력의 종교와 본질에 대한 연구는 많이 이루어져
왔습니다. 실용적으로는 비슷한것 같지만 논지는 전혀 상반된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있구요. 단순히 비교해도 과학은 실제의 자연상태를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그것을 믿도록 합니다. 누구든지 우주로 나가서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과학을 통해서 보여주고 믿을수 있게 해줄수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종교는 해당 종교의 종교체험을 통해서만 믿음이 가능하다는 점이있죠.
신이 존재함을 믿게 되는것은 그 종교의 종겨 경험을 통해서만 가능한것이지
보편적이고 누구나 논리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물론 종교체험을 통해서만 종교적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믿음을 정말로 확고하게 가지게 되는데는 종교 체험이 상당히 중요하겠죠.
왔습니다. 실용적으로는 비슷한것 같지만 논지는 전혀 상반된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있구요. 단순히 비교해도 과학은 실제의 자연상태를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그것을 믿도록 합니다. 누구든지 우주로 나가서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과학을 통해서 보여주고 믿을수 있게 해줄수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종교는 해당 종교의 종교체험을 통해서만 믿음이 가능하다는 점이있죠.
신이 존재함을 믿게 되는것은 그 종교의 종겨 경험을 통해서만 가능한것이지
보편적이고 누구나 논리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물론 종교체험을 통해서만 종교적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믿음을 정말로 확고하게 가지게 되는데는 종교 체험이 상당히 중요하겠죠.
2008.03.19 15:43:48
저도 과학은 하나의 종교라는 말을 써보긴 했지만 과학이 종교라는 의미는 아니고
과학이 종교같이 변화되고 있다 라는 의미였습니다.
종교와 과학은 서로 차지하는 분야가 달라서 서로 불가침이다... 라는 걸 가지고 싸우는건 도킨스의 신이라는 망상에서도 다뤄지는 이야기입니다. 또 최근 나온 왜 마이클 셔머의 사람들은 이상한걸 믿는가? 라는 책에서도 부분적으로 다뤄지지요.
좀 다른 이야기지만 현재 이론물리학계의 떠오르는 (아니 이미 광풍에 가까운) 만물의 이론인 끈 이론도 같은 맥락인듯 싶습니다. 끈은 이론상 관측이 *불가능*하다고 하더군요 과학이 검증이 불가능하다면 그건 과학이 아닌데 말입니다.
과학이 종교같이 변화되고 있다 라는 의미였습니다.
종교와 과학은 서로 차지하는 분야가 달라서 서로 불가침이다... 라는 걸 가지고 싸우는건 도킨스의 신이라는 망상에서도 다뤄지는 이야기입니다. 또 최근 나온 왜 마이클 셔머의 사람들은 이상한걸 믿는가? 라는 책에서도 부분적으로 다뤄지지요.
좀 다른 이야기지만 현재 이론물리학계의 떠오르는 (아니 이미 광풍에 가까운) 만물의 이론인 끈 이론도 같은 맥락인듯 싶습니다. 끈은 이론상 관측이 *불가능*하다고 하더군요 과학이 검증이 불가능하다면 그건 과학이 아닌데 말입니다.
2008.03.19 15:43:48
근데 로타에르님이 말하는 종교는 좁은 범위를 포괄하고 있는거 같아 보이는데요. 길게 쓰면 중구난방이 될것같으니 일단 짧게 말하자면 특정 종교에 한정된 얘기같아 보입니다.
2008.03.19 15:43:48
정의되는 기준에 따라 달라질 많은 얘기들인 만큼 좀더 본문을 많이 읽어 보고 싶군요...신중한 화두입니다. 제목과 내용이 다소 상반되는 부분도 있는 것같기도 하고 아닌것같기도 하고..
2008.03.19 15:43:48
펜조/ 요즘은 포퍼의 반증이론도 하도 공격을 많이 받아서 그 쪽의 대세였던 시대는 물건너갔지요 -_-. 관측이 불가능하다고 해서 꼭 검증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고... 간단히 예만 들어도 직접 관측은 못해도 그로 인해 파생되는 결과를 예측하고 그게 들어맞으면 검증되는 겁니다.
잊지마/ 종교 가운데서도 자연과학의 영역을 침범하려고 시도하는 종교에 관해서 이야기했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특정 종교만 찝어서 말한 게 아니라, 그 쪽 종교들이 유독 그러한 설명을 고집하고 있어서입니다. 하지만 그 '특정 종교'말고도 푸닥거리 같은 무속 신앙도 마찬가지의 범주에 집어넣었습니다. 특정 종교를 공격하려는 게 아닙니다.
펜리스/ 포스트모더니즘도 부류가 하도 많아서 사실은 제목을 좀 성급하게 달은 셈입니다. ;; 그냥 과학도 하나의 믿음으로 치부하려는 경향에 관한 얘기인데... 문제는 그러한 주장을 (특히) 신흥이건 기존이건 가리지 않고 종교적인 입장을 자연과학의 영역에 견지하려는 사람들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끌어다 쓰고 있다는 겁니다. 포스트모더니즘과 종교라니 왠지 아나키즘과 맑시즘의 동침처럼 들립니다만. =_=
잊지마/ 종교 가운데서도 자연과학의 영역을 침범하려고 시도하는 종교에 관해서 이야기했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특정 종교만 찝어서 말한 게 아니라, 그 쪽 종교들이 유독 그러한 설명을 고집하고 있어서입니다. 하지만 그 '특정 종교'말고도 푸닥거리 같은 무속 신앙도 마찬가지의 범주에 집어넣었습니다. 특정 종교를 공격하려는 게 아닙니다.
펜리스/ 포스트모더니즘도 부류가 하도 많아서 사실은 제목을 좀 성급하게 달은 셈입니다. ;; 그냥 과학도 하나의 믿음으로 치부하려는 경향에 관한 얘기인데... 문제는 그러한 주장을 (특히) 신흥이건 기존이건 가리지 않고 종교적인 입장을 자연과학의 영역에 견지하려는 사람들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끌어다 쓰고 있다는 겁니다. 포스트모더니즘과 종교라니 왠지 아나키즘과 맑시즘의 동침처럼 들립니다만. =_=
2008.03.19 15:43:48
음... 과학의 근본적 특징중 하나는 자기부정이 가능하다는데 있는게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쌓아 올렸던 이론의 업적이 새로운 증거의 발견과 함께 폐기 처분된 경우들이 허다하니까 말이죠..
복잡한 논쟁으로 들어가기에는 제 논리의 깊이가 너무 얕지만 기타 종교류의 '믿음'과의 근본적인 차이는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아직까지 전 종교 내지 유사과학중에 스스로의 논리를 바닥에서 뒤집은 사례를 찾을 수가 없어서 말이죠. 과학계에서는 수많은 분야에서 허다하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말입니다.
복잡한 논쟁으로 들어가기에는 제 논리의 깊이가 너무 얕지만 기타 종교류의 '믿음'과의 근본적인 차이는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아직까지 전 종교 내지 유사과학중에 스스로의 논리를 바닥에서 뒤집은 사례를 찾을 수가 없어서 말이죠. 과학계에서는 수많은 분야에서 허다하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말입니다.
2008.03.19 15:43:48
검증이 불가능해도 과학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드신 끈이론 같은 경우에는, 물질의 기본입자를 연구하여 나온 속성(규칙성?)이 진동하는 끈에 대한 해석에 부합되니까 라는 '추론'에서 나온 거지요.
예를 드신 끈이론 같은 경우에는, 물질의 기본입자를 연구하여 나온 속성(규칙성?)이 진동하는 끈에 대한 해석에 부합되니까 라는 '추론'에서 나온 거지요.
2008.03.19 15:43:48
아...단순한 추가 보충일뿐입니다. 끈 이론의 경우 '수학적 증명'을 어느정도 시현했다고 알고있습니다.(이것에 대해서 제가 수학적 증명을 설명할 능력은 없군요...다만 '인용'에 불과합니다. 다소 책임 회피성으로 받아들이실지도 모르겠지만 끈이론이 초기 단순 가설에 불과했고 시간이 지나 이 가설을 수학적으로 '해명'함으로서 많은 가설중에서도 그나마 설득력이 있는 가설로 검증단계로 올라섰다고 보여집니다. 물론 이런 검증으로 인해 더 많은 의문이 생겼는데 그중에 하나의 끈의 '형태'라고 합니다.)
이상..본문의 주제나 소재와는 다소 무관한 '단순보충'입니다.
이상..본문의 주제나 소재와는 다소 무관한 '단순보충'입니다.
생각도 가끔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