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 과학 포럼
SF 작품의 가능성은 어떻게 펼쳐질 수 있을까요? 그리고 어떤 상상의 이야기가 가능할까요?
SF에 대한 가벼운 흥미거리에서부터 새로운 창작을 위한 아이디어에 이르기까지...
여기는 과학 소식이나 정보를 소개하고, SF 속의 아이디어나 이론에 대한 의견을 나누며, 상상의 꿈을 키워나가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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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늑대에 대한 질문글들을 올릴때 물리적인 시설과 환경이 좋은 동물원에있으면서도 늑대들은 정신적인 스트레스트에 시달리고 새끼를 잘 낳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사실이기도 합니다.
그게 불법이고, 합법이거나, 법을 피해갔거나의 여부를 떠나서 개인이 늑대들을 데려다 키우는 경우가 있습니다. 집이 넓지 않고, 늑대들을 키우는데 필요한 공간이나 시설 모두 좁고 동물원에 비해서 부족한데도 그곳에서 지내는 늑대들은 정신적인 문제가 없고(사람들이 보기에) 새끼 또한 잘 낳고 돌보며 지냅니다. 물론, /늑대들을 데려다 키우는 경우의 전부가 그런것은 아니지만/ 물리적으로 좋지 않은 환경에서도 늑대들이 문제없이 지내는 경우가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아마도, 늑대들을 데려왔으니 헌신해서 돌보고 늘 사랑해주는 사람의 마음이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더불어 동물원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보아야 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겠지요.
예전에 동물에게 감정따위는 없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정말 그것을 확신해서 답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늑대를 돌보는 사람들이 하는 말처럼 사람처럼 풍부함 감정을 가지고 있지는 않아도 단순하고 직선적인 감정은 가지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동물들이 그렇다고 해도 늘 먹고 있는 고기는 상관없이 먹겠지만 말이지요.
궁금한 점이 생겼습니다. 감정 혹은, 그 감정이 밑바탕이 되는 정서라는 것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생기게 되는 것일까요? 최초로 생명이 생겨난 이레 시작된 진화의 과정에서도 말이죠.
늑대와 늑대인간을 좋아하는 카르디엔(블루그리폰)입니다. 컹컹.
글과 늑대인간에 관한 포스트는 블로그에 있습니다.
일단 정서라는 것은 집단 생활을 하는 동물, 그 중에서도 포유류에게서만 찾아볼 수 있는 특이한 현상이라는 것을 이해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두뇌가 발달할 수록 정서역시 발달하는 경향성이 존재합니다.
최초의 포유류를 상상해봅시다. 작은 체구에, 가진 능력은 보잘것 없고, 수 많은 천적으로부터 위협받는 햄스터같은 생물을요.
이 생물에게 기쁨이나 즐거움이 그렇게 필요한 감정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러나 공포라는 감정은 매우 중요했을 겁니다. 따라서 최초의 감정으로 공포를 가정하는 것도 그다지 큰 무리는 아닐겁니다. 실제로 공포를 담당하는 뇌 부위는 뇌의 가장 근원적인 부위인 대뇌 변연계입니다. 성욕등의 종족 유지를 위해 필수적인 본능을 담당하는 부위죠.
시간이 흘러 늑대가 나타났습니다. 늑대는 집단 생활을 합니다. 집단 생활의 가장 큰 특징은 위계질서입니다. 리더는 부하들을 통솔하고 부하들은 리더의 명령에 복종합니다. 여기서 필요하게 되는 감정이 복종, 비굴, 아부, 즐거움 등의 감정입니다. 이 감정이 없다면 집단사회가 유지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보다 발달한 원숭이의 사회는 속임수, 거래, 위장 감정 등의 늑대보다 다양하고 복잡한 감정을 지니게 됩니다. 인간은 더더욱 복잡하죠.
인간의 뇌에서 감정을 담당하고, 타인의 감정을 추측하는 뇌 부위는 계산하는 부위보다 훨씬 크다고 합니다. 심리학적인 이야기를 예로 들자면 점 두 개, 선 하나, 동그라미 하나를 나열하면 인간은 인간의 얼굴, 더 나아가서는 표정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컴퓨터에게 이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인간의 얼굴이 아니라 그저 교통표지판이나, 필통같은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인간은 인간의 얼굴을 떠올리고 더 나아가 표정을 추측합니다. 그만큼 인간에게 인간을 먼저 알아보고 감정을 추측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죠. 감정은 이러한 타인과의 교류에서 나타났습니다.
감정이 집단 생활에 중요한 가장 큰 이유는, 언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언어가 없는 상태에서 자신의 현재 상태를 표현하고, 상대방의 상태를 유추하기 위해선 당연히 감정을 잘 표현하고 이해하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으니까요.
감정이라는 것은 무리지음과 관계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무리를 짓는 이들에게 있어 자신의 상태에 대해 전달하고 그것을 통해 집단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하나의 생존 방법에 관한 일이겠죠.
늑대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무리짓는 동물입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애정이란 필수 영양소처럼 꼭 필요한 요인중의 하나지요.
예전 20세기 초 미국에서 운영하는 근대적 국가 보육시설에서 아이들이 잘 자라지 않는 이유를 조사한 적이 있었습니다.
더럽고 지저분한 곳에 다소 모자란 영양을 공급받더라도 사람의 체온을 느끼며 포근하고 부드러운 것에 기대어 크는 경우가
더 잘 자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아기 원숭이를 통한 실험에서도 음식이 나오는 차가운 금속 엄마원숭이와 따뜻하고 포근한 털로 만들어진 엄마원숭이를 놓고 봤을때 원숭이는 젖을 먹을때만 잠깐 금속 엄마원숭이에게 갈 뿐, 대부분의 시간은 포근한 털 엄마원숭이에게서 보냈다고 했죠.
중요한 것은 그런 사랑이나 관심과 같은 것을 필요로 하는 것은 모든 동물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건 무리짓는 포유류의 특징이죠.
보육을 필요로 합니다.
상어는 어떨까요? 거북이는요? 파리는 어떻습니까? 거미는요? 한마리만 둔다고 외로워서 죽을까요?
먹이만 있다면 살 수 있는 것도 있고, 무리 지어야만 살 수 있는 것도 있습니다.
개미는 무리짓는 동물이죠. 그들의 페로몬에 의한 의사교환을 합니다. 아마 그들도 어떤 감정이나 정서 같은 게 있을지도 모르죠.
그것은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에 보유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개인의 위험이 집단의 위험으로 확대될 수 있기에 타인의 감정이나 감수성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그리고 무리지어 외로움을 달래려 하는 것, 서열을 정해 그 힘의 우위를 정하려 하는 것 모두 인간과 개과 동물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특성들이겠죠.
여담입니다만, 그런 관점에서 드래곤이란 존재는
과도하게 인간적이고 감정적이에요.
피도 눈물도 없는 파충류일텐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