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흐르는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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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는 한국에서 40 대 장르이다"라는 말을 들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2000년 12월 서울 관악구민회관에서 열렸던 [SF를 좋아하는 이들의 느긋한 오후] 자리에서,
SF 번역자이자 출간 기획자로 활약하고 있었던 김상훈님이 강연을 진행하면서 나온 이야기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제 자신은 나이 40 에 비해 한 참 어렸기에 의아함이 먼저였지만...
1991년 [과학동아]에 SF 연구회 '멋진신세계' 소개 기사가 났던 것을 떠올리며 생각해보니
그 당시 주축이 80년 학번들이었고 - 말하자면 386 세대가 SF 팬덤의 시작이기도 한 셈이므로...
2000년대 초반이면 그 분들은 40대 초입일 것이고, 그러면 그럭저럭 셈은 맞겠구나 싶기도 했습니다.
그 후로 이미 20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 1999년 [SF 도서전]이 코엑스에서 개최되었고,
- 2000년 [SF를 좋아하는 이들의 느긋한 오후] 행사가 있었으며,
- 2001년 [SF 컨벤션]이 열렸습니다.
당시 20 대 후반의 사회 초년생이었던 저는 40대 후반으로 회사에서도 임원이 되었으며,
당시 40 대 초입이었던 분들은 이제 60대 중반으로 은퇴를 바라봐야 하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 현재 한국에서 SF를 읽는 분들은 주로 어떤 분들일지 궁금합니다.
제 경우 10 대 후반부터 SF를 읽기 시작해서 20 대와 30 대 시절을 SF에 빠져 보냈지만,
나이 40을 넘어서면서 일과 생계에 대한 책임이 취미보다 앞에 놓이면서 확실히 예전보다 시간을 덜 씁니다.
책은 여전히 읽고 있지만, 한국 창작 SF의 전성기가 왔음에도 20년전 선입관 때문에 외국SF를 선호합니다.
어느새 세상의 변화에 뒤쳐지고 있는 느낌을 받습니다.
나름 대기업에서 AI 및 스마트팩토리를 리딩하는 임원이 되어 있는데,
변화와 혁신을 디지털로 선도한다면서 회사에서도 밖에서도 나대고 있지만,
제가 가장 변화를 즐겼던 것은 SF에 빠져 살았던 20대와 30대 중반이었습니다.
과거 SF로 읽던 것을 실제로 구현하는 권한과 책임을 가진 자리어 올랐지만,
오히려 아무런 힘도 사람도 예산도 없었던 20년 전이 더 창의적었고 적극적이었죠.
그래도 나이먹으니 세 가지 좋은 게 있습니다.
1) 2015년 이후 책을 마음껏 새로 사 볼 수 있습니다. 거의 다 지원 받습니다.
2) 2023년 이후 모든 영화를 무한대로 볼 수 있습니다. 모두 다 지원 받습니다.
3) 2022년 이후 차를 줍니다. 기름값 톨비 정비비 다 지원 받습니다.
문제는, 시간을 낼 수가 없어서 책과 영화를 누리기 어렵고, 여행은 커녕 휴가도 못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