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흐르는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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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서울역에서 오전 일정을 소화하고, 점심시간에 숙대입구까지 산책 삼아 걸어가서 '고래서점'에 들렀습니다.
'고래서점'은 새책 판매와 헌책 판매를 겸하는 곳으로 나름 유명해서, 서울역에 일이 있으면 종종 들르곤 했습니다.
왕년에는 서울역에서 숙대입구까지 서울북마트(구 별빛서점), 책찾사, 고래서점까지 헌책방이 잇달아 이어졌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서울북마트, 책찾사 등이 차례로 문을 닫고 이제는 고래서점만 예전 그 자리에 남아 있습니다.
고래서점에서 책 구경을 하다가, "SF 유니버스를 여행하는 과학 이야기"라는 책에 눈이 갔습니다.
최근 3년 사이에 SF를 소개하는 책이 워낙 많이 나와서 제목은 멋진데 저자는 어떤 사람일까 싶어서 확인해 보니,
"SF & 판타지 도서관장 전홍식 지음"이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솔직히 깜짝 놀랐습니다 - 이곳 JoySF 사이트에서도 이 책의 출간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었던 것 같은데,
책 나온 지 2년이 다 되도록 저는 이 책의 출간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거든요.
대략 30 년 동안 한국에 나온 SF 서적은 거의 다 챙겨 읽으려 해 왔고 (간혹 놓치기는 하지만)
그래서 정기적으로 어지간한 책들은 거의 다 체크하고 사 읽곤 하기 때문에... 전혀 모르기가 더 어려웠습니다.
박상준, 고장원 님 등과 같이 SF 팬덤의 유명인사분들이 쓰거나 번역하신 책들은 거의 놓친 적이 없었거든요.
반가운 마음에 바로 사들고 나왔고, 이 맛에 헌책방 투어를 그만둘 수 없다고 생각하며 돌아와 퇴근 후 밤새워 읽었습니다.
책 내용은 이곳 JoySF에서 접했던 표도기님의 칼럼도 있고, 처음 보는 글도 있었습니다.
SF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 SF 영상물들을 주로 리뷰하면서 과학기술과 인간의 삶에 대해 다룬 글이었습니다.
무엇보다 특유의 글맛이 그대로여서 과거 JoySF 및 SFWAR 사이트에서 읽던 그 시절의 향수를 다시 느낄 수 있었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단어를 사용하면서도 깊이 생각해야 할 부분을 명확하게 잘 짚어내는 것이 특히 좋았습니다.
근래 패미니즘 쪽에서 SF에 관심을 가지면서 SF는 잘 모르는 평론가, 패미니즘 운동가 같은 사람들이 나서서는
"패미니즘 SF란 무엇인가"를 논하는 책을 마구 출간하고 있어서 호기심에 사 읽었다가 몇 번 데이기도 했는데...
장르 SF를 잘 모르면서 현학적으로 뭔지 모를 말만 잔뜩 늘어놓고는 끝에 가서 막무가내 주장으로 마무리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상한 책들이 판을 치는 것을 생각하면, 이 책의 장점이 더 도드라진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솔직히 개인적으로 영상물 컨텐츠보다는 소설과 같이 문자로 된 책을 훨씬 더 선호하는 면이 있어서,
SF 유니버스를 여행하는 과학 이야기가 SF 영상물만 다루고 있는 것이 살짝 아쉽기도 했지만...
어쩌면 이 책은 의도적으로 SF 영상물 중심으로 쓴 글을 모아서 다듬어 출간한 것이고,
이후 후속편으로 SF 소설에 대한 책이 예정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도 좀 들었습니다.
책을 출간한 출판사 이름은 '요다'였고, 발행인이 '한기호'로 되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책을 많이 읽고 책을 가장 많이 안다는 바로 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바로 그 사람이었습니다.
대략 30 년 동안 매주 20 권 이상 매년 1000 권씩 꼬박꼬박 다 읽고 칼럼을 써 왔다는 전설적인 책미치광이로 알려졌죠.
추정 독서량이 3만 권이 넘는다는 사람이, 장르문학 서적을 출간하기 위해 작정하고 만든 출판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보니 제가 왜 이 책이 나왔는지 잘 모르고 있었는지 알 것 같더군요.
영업력을 갖춘 유명 출판사가 아니어서, 대형서점 등에 돌아다니는 중에는 발견하기 어려웠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