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의 개인적인 문장 실력이나 이야기 풀어 나가는 방식이 너무 구태 의연하고 고루한 까닭이 가장 클 것이다. 그렇지만, 변명 아닌 변명으로 이 판타지라는 물건을 잠시 곁눈질로 흘겨 보기도 한다.

판타지라는 놈은 참으로 어렵다. 다른 소설 장르도 무척이나 어렵다. 그런데, 나는 그 중에서 이 판타지가 정말로 어려운 장르로 보인다. 현실을 벤치마킹해서 리얼함의 근거를 마련하는 여타의 소설들과 달리 판타지는 벤치 마킹 할 만한 마땅한 게 잘 보이지 않는다.

기껏해야 신화나 전설에서 조금 차용하거나 다른 판타지 소설의 설정을 빌려서 독자에게 리얼하다고 거짓말을 해야만 한다. 독자들 속이기 정말 어렵다. 독자들의 수준 향상은 둘째치고라도, 작가 자신도 자신이 부여한 리얼함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걸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톨킨의 소설을 게임으로 옮긴 D&D는 여러가지로 이후 작가들에게 길을 열어 주었다. 더 이상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엘프나 드워프들에 대해서 특별히 길게 설명 할 필요가 없어졌다. 독자들 역시 아 엘프나 드워프군. 혹은 하플링이야. 라고 받아 들인다. 마치 현실에서도 정말로 그러한 것이 존재하는것 처럼 인식한다.

한동안 판타지 작가들 글 쓰기 편했으리라. D&D라는 현실에 준하는 가상의 실체가 리얼함을 보증해 줬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이게 유명해 지다 보니 너무 정형화되어 버렸다는 점이다. 작가의 상상력이 죽어 가고 있다. 몇 서클의 마법이라는 설정이 담긴 게임 리플레이를 쓰고 있는 실정이다. 작가들 스스로가 알고 있다. 이건 이미 소설이 아니라는 점을.... 그럼에도 그들은 계속 D&D세계관을 사용한다.

이미 상상력이라는 작가 고유의 능력을 잃어 버렸기 때문이다.

많은 독자와 사람들, 다른 장르의 작가들 말처럼 판타지가 작가 마음대로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나 자신도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처음 이 장르에 매력을 느꼈던 것도 순진한 그 착각때문이었다. 그런데, 막상 발을 들이 밀은 이 판타지라는 바닥은 정말 답이 안보였다.

어디서 부터 시작해야 할지 난감했다. 도대체 뭘 해야 하지? 세계관을 끄적여 보고 이리저리 조립하고 간신히 완성해 보면 여기저기 구멍이 보인다. 소소한 정도가 아니라 너무도 커서 자신이 만든 세계 한 가운데가 블랙홀 처럼 커다랗게 뻥 뚫려 있는 듯한 느낌이다. 어찌 어찌 그 구멍을 메꿨다고 치자. 이제 캐릭터를 배치하고 이야기를 해 나가면 될 것 같다고 착각한다.

그런데, 단 한 줄도 이야기가 안써진다. 왜냐하면, 그 세계의 법칙을 창조자인 작가 자신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몸도 같고 뇌도 같지만, 세계관을 짰던 과거의 작가와 이제 소설을 써 내려가려는 현재의 작가는 매우 다른 인간이 되어 버린다.

그럼에도 작가는 그 세계의 특수성을 항상 염두해 가면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야만 한다. 그런데, 이건 정말 스트레스가 쌓이는 작업이다. 정말로 노이로제가 걸리는 일들이다. 조금이라도 빈틈을 보이면 세계가 폭주하다 못해 파멸한다. 이미 여러차례 이전 작가들이 선례를 남겼던걸 기억해 본다. 그렇지만, 여전히 써내려가다 보면 세계는 점점 더 망가져 간다.

왜냐하면, 작가는 우리가 사는 현실에 기반한 인식 체계를 가지고 있지만, 소설을 위해서 설정한 세계속의 사람들은 그 세계에 기반한 인식체계를 가지기 때문이다. 작가의 현실 기반 인식으로 소설을 쓰려고 하니 당연히 안된다. 그렇다고, 그 세계의 인식 기반을 어렵게 수련해서 도입한다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작가 외에 독자들은 그걸 받아 들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 딜레마에 빠지게 되면 이렇게 생각한다. 아... 그만 두고 싶다.

이러한 문제를 달고도 계속 꿋꿋하게 써 내려가는 작가에게 사람들은 조소를 보낸다.

판협지! 불쏘시개! 낙서! 수준미달! 노루표보다 못한 쓰레기!

더욱 더 작가를 힘들게 하는 건 정말 수준 미달의 3류보다도 못한 5류 이하의 것들과 동급으로 취급당할때이다. 아무리 3류라도 작가에게는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 있는데, 그것은 자기 소설을 남들과 동류로 보는 것이다. 작가가 아무리 세상에 외쳐봐도 세상은 그를 작가로 보지 않는다. 대여점용 리플레이 제조업자로 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