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문] 영화를 극장에서 보고와서... 
몇 가지 키워드 중심으로 감상을 남겨 봅니다. 
  

1. '너무 늦게 나온' 한국 최초의 정통 우주개발 SF 영화   
정통 우주개발을 테마로 '하드 SF' 성격의 영화를 만든 것은 사실상 처음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비해 55년이 늦었지만, 일단 시작했다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하다고 여깁니다. 

더불어 한국의 그래픽 역량을 총동원하였는데, 최근 몇 년 사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는 게 느껴졌고, 
이제 헐리우드 영화에 비교하더라도 한국의 그래픽 기술력이 나름 경쟁력을 갖췄다고 여겨졌습니다. 
영화 앞 부분에서 그냥 우주선이 운반되어 가는 모습 하나만으로도 멋지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문제는... 
2020년대에 "우주로 가자"라는 테마 자체가 호소력 있는 테마가 맞느냐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스페이스 오페라는 소설이 1930년대 뜨기 시작해서 영화는 우주개발 붐이 한창이던 1960년대~1980년대에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하지만 SF문단에 뉴웨이브 바람이 불면서 "내우주"에 집중하기 시작한 1970년대 이후 소설 쪽에서는 스페이스 오페라 창작이 줄어듭니다. 
SF 영화 역시 1990년대 재난물과 사이버펑크 영화들이 붐을 이루더니 2000년대 이후 시간여행 & 차원여행으로 트랜드가 이동했습니다. 

2000년대 이후에도 우주개발을 다루는 헐리우드 SF 영화가 없지는 않았지만, 대박을 칠 정도의 성공작은 사실상 거의 없었습니다. 

오랜 스페이스 오페라 프랜차이즈 영화들도 시간여행 & 차원여행 중심으로 바뀐 트랜드에 녹아드는 형태로 제작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더 문] 영화를 보면서... 

사실적으로 우주공간에서 겪을 수 있는 여러 예기치못한 고난을 다루는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즐거웠습니다. 

이건 제가 1980년대와 1990년대 SF에 빠져들었던 오랜 SF 매니아이기 때문에, 올드팬의 감성이 반응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와 같이 스페이스 오페라와 우주개발 중심의 SF라면 덮어놓고 무조건적으로 좋아할만한 골수 올드팬에게는 통하겠지만, 

SF에 무덤덤한 보통 사람 or 우주개발 SF붐이 다 흘러간 후 태어난 작금의 젊은 세대들에게도 호소력을 가질 수 있을 지...

이 부분에 대하여 근본적인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2. '기승전결 신파'로 귀결되는 한국의 K-Culture 영상물 

한국은 2023년 현재 세계적인 문화 강국 중 하나입니다. 

유럽과 미국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지만, 일본에 비교하면 지금 뒤진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동남아에서는 일본에 비해 K-Culture 음악, 영상물이 더 잘 팔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한국의 영상물은 화려하고 충격적인(또는 흥미로운) 도입부, 

이후 아기자기하게 이야기를 이어가는 전개부까지는 나름 괜찮은데, 

절반을 넘어가면서 스토리가 진부해지거나 마냥 신파로 흘러가버리면서... 

후반부에서는 흡인력과 설득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용두사미의 성향을 보이곤 합니다.

   

거의 대부분의 작품들이 '기승전결 신파'로 귀결되는 공통된 모습을 보이고, 

한 두 세대 전에 주류였던 "한(恨)의 정서"를 여전히 2020년대에도 메인으로 깔고 갑니다. 

왜 주요 등장인물이 가슴 속에 한을 품고 있는지를 설명하려하고, 이것을 중요한 동기로 활용하려 합니다. 

그리고 결말에서는 한과 응어리가 풀어지면서 억지로 눈물을 짜내고 화해의 장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하려 합니다.    

  

[더 문]은 배경이 달이고 테마가 우주개발으로 되어 있기는 하지만, 

스토리 라인은 그냥 1970년대~1980년대 박경리나 박완서의 소설과 별로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냥 전형적인 멜로드라마의 속성을 우주개발이라는 테마에 입혀 놓은 셈인데, 영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클라이막스를 이루어야 하는 대목이 진부함과 억지춘향 눈물로 도배되니까 아예 이입이 되지 않더군요. 

영화 절정부에서 배우들은 다들 눈물짓고 있는데, 보는 관객들은 그것을 비웃고 있었다고나 할까요. 

   

3. Summary

저는 영화 [더 문]을 보면서 너무 즐거웠습니다.

본격 우주개발 SF를 한국에서 거의 헐리우드에 맞먹는 화면 퀄리티로 내 놓았으니까요. 

하지만 중반 이후 스토리가 진부해지고 전형적인 한국식 신파와 눈물짜기로 흘러가면서... 

한 마디로 말해 아쉬움이 컸고, 이 영화를 위해 애쓴 모든 사람들에 대해 안쓰러움을 느꼈습니다. 

    

[사족]

힌국 최초의 정통 우주개발 SF 영화가 나왔는데, 

이 곳에서 단 한 마디도 언급되지 않았다는 것에서... 

시대의 흐름에 한 참 동떨어진 영화여서 그렇다는 생각도 들기도 하고, 
웹 기반 커뮤니티 역시 시대 흐름에서 밀려나고 있기 떄문이라는 생각도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