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흐르는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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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다른 곳에 쓴 글을 그대로 복붙한 것이고 논의를 위한 발제기 보다는 선언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이하 본문은 반말체임을 미리 알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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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제이독의 노래가 여혐 운운하기에 가사를 봤다(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노래 자체를 안 좋아하는데 침 튀면서 랩하고 그런 노래들은 특히 싫어해서...). 그 결과 그걸 여혐으로 보는 건 너무 넓은 의미겠다 싶고, 여자들이 성차별적이라고 느꼈을 개연성이 충분했다 싶었다. 아마 절대다수의 남자들과 상당수의 (특히 나이 든)여자들은 안 그랬겠다만.
사실 상황이 이리 된 건 차별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그 당사자들, 즉 여자들이 광장의 절반을 메우고 있어서였지 싶다. 그러니 당연히 그 상황에서 '피해자'가 분명히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 와중에 (비록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뜬금없이)가해자가 된 이들의 정의로운 반응은 '일단 당신에게 준 상처에 대해선 사과한다'고 하는 게 맞다. 그런데 실제 상황은 가해자들의 '(분명히 차별적 표현을 썼다고 인정하면서도)'그게 무슨 차별이냐' or '그런 걸로 뭔 상처를 받냐'는 공세로 흘러가고 있다. 그런데 그건 가해자들이 할 말은 아니다.
예컨대 내가 친구와 장난을 치는 중 그를 향해 권투 흉내를 내다 실수로 , 전혀 의도치 않게, 그러나 애초 장난이었어서 아주 살살 내지른 주먹에 친구가 맞았다. 내가 보기에 주먹 끝에 닿은 느낌도 정말 사소했고 장난 중 이런 적은 많았으며 그 때문에 문제가 된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난 계속 장난을 이어가려고 하는데 친구가 정색을 하며 '아프다. 날 때린 거 사과해라'라고 요구한다.
이때 내 반응은 어떤 것들이 가능할까? 아마
1. 야. 그 정도 가지고 뭘 그래? 하나도 안 아프겠구만.
2. 야. 장난이야 장난. 왜 그렇게 까칠하게 굴어.
3. 야. 다른 친구랑도 이런 적 있었는데 걘 괜찮다드만 왜 너만 그러냐.
정도가 있겠다(뭐 몇 가지 더 생각해 볼 수는 있겠지만 뻔뻔스럽긴 매한가지니 여기까지 하자). 그런데 내가 셋 중 뭘 고를까 고민하는 중에, 혹은 답안을 찍은 후 친구에게 내밀 때 그가 정색을 하고 정말로 사과를 요구하게 되면 여기에 두 가지 반응이 더 추가된다.
4. 어? 진짜 아파? 미안. 괜찮아? 그게 사실은 주절주절 일부러 그런 게 아냐. 앞으론 정말 조심할게.
5. 하. 이 새끼 찌질하게 이런 걸로 징징거ㄹ- (열 받은 친구가 날린 주먹에 죽탱이가 돌아감).
혹자는 이거랑 내가 든 예시랑 어떻게 같냐고 물을 거다. 사실 위에서 말한 사람들 대부분이 그럴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제 광화문서 실제 일어난 상황과 지금 내가 든 예시는 본질적으로 정확히 같다. 다른 게 있다면 실제 현실은 아주 오래 전부터 너무나도 자연스러웠고 지금도 그렇기 때문에 다시 생각해 봐도 뭐가 문제인지 인지하기가 어렵다는 것뿐이다.
이런저런 갑론을박이 어떻게 흘러갔건, '여자를 특정하는 표현 때문에(혹은 그 자체로) 여자들이 상처받았다'면 그건 분명히 존중해 줘야 한다. 하지만 이번 건은 젠더 이슈가 아니다. 아니, 그걸 명백히 포괄하고는 있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이건 단순하고도 명쾌한(그러나 명백히 가치있고 지켜져야 할) ‘정의의 문제’다. 내가 아는한, 한국 사람들 대부분은 자기가 길에 버린 바나나 껍질을 누가 밟고 미끄러졌어도 그에게 미안해 한다. 의도가 없었어도, 비록 실수일지라도 그 때문에 누가 상처를 받거나 피해를 입으면 미안해 하고 공분한다. 그런데 아무에게나 보이는 그 동정과 연민, 공분을 유독 여자 대상으로는 아낀다. 사실 한국인은 약자에게 가혹한 편이라 대개 사회적 약자들에게 아끼지만, 특히 여자들에게 그렇다(여자들조차 같은 여자에게 그렇다). 그러니까 머릿속에서 (개)페미, 메갈, 워마드 같은 단어를 지우고 보자. 그냥 인간대 인간으로 사건을 보자는 말이다.
그렇게 보면 이건 디제이독이 상처 준 거 맞고, 다른 어떤 사람들은 옆에서 (지들이 피해 본 것도 없는데)괜히 분노해서 상대에게 더 큰 상처를 주고 있는 거다. 그게 이 사건의 전부다. 사실 정치적 올바름이니 하는 전문용어(?)조차 나올 필요가 없는, 아주 간단한 이야기인 거다.
애당초 ‘년’은 여자를 상대로 하는 욕이고 ‘놈’은 남자를 상대로 하는 욕인데 박근혜를 근혜년이라고 하는 게 뭐가 문제냐는 곳이 바로 한국이다. 이건 성별을 가리지 않고 튀어나오는 소리다. 그런 사람들이 ‘놈’이란 단어가 사실은 ‘인간’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떠올릴 리가 없다. 여자는 욕설에서조차 ‘인간’도 못 되는, 그냥 ‘년’이 될 수밖에 없는 이 나라의 사회문화적 문제가 뭔지 이해할 리가 없다는 거다. 그러기를 너무나도 오래한 나머지, 이젠 여자들 스스로조차 피해를 받고서도 그게 피해가 아니라고 믿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니 내가 든 예시에 나오는 친구의 반 만큼도 여자가 존중 받지 못하는 한국에서 약자의 분노는 두 배가 되고, 자기가 강자라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미시권력은 그 저항이 건방지고 어처구니 없을 뿐이다. 몸에 배인 문화가 너무나도 자연스러워, 자연스러움과 옳음을 무의식적으로 동치시킨 결과다. 하지만 누구나 인정하듯 그 두가지는 절대 같은 게 아니다. 애초 개념의 위상이 다르다.
이 사건(?)을 정의의 문제로 푼 건 젠더이슈를 물타기 위함이 아니다. 단지 그 접근법이 보다 본질적이고 간단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한, 한국에선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자들에게 가해진 피해가 가장 다량으로 보고되어 있을 뿐 ‘약자’에 대한 가혹하기는 매일반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노숙자가 얼어 죽으면 사회의 ‘쓰레기’가 잘 죽었다고 한다.
아기를 떨어뜨려 죽인 다섯 살 지능의 장애인에게 ‘책임’을 지라고 한다.
공분을 살만했으나 죽을 만큼 잘못하지 않은 악플러를 ‘사형’시키라고 한다.
동영상에서 선생에게 말대꾸를 하는 학생에겐 요즘 애들 '안 맞고 커서' 버릇이 없다고 한다.
수 십, 수 백만이 보는 포탈 뉴스 기사의 댓글에서 굳이 페이지를 넘기지 않아도 바로 볼 수 있는, 상위에 랭크된 댓글들 분위기가 저렇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같은 유수의 SNS에서 정말 쉽게 볼 수 있는 글들이 저렇다.
여기서 네 다음 개저씨 할 사람에게 말 해두자면, 포탈 댓글이나 SNS는 설문이 아니고 유의미한 통계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건 이 개저씨도 안다. 그러나 분명히 경향과 분위기는 확인 가능하다. 1000명 표본의 갤럽이나 2000명 표본의 리얼미터보다, 수 십, 수 백만 명이 보고 수 천, 만 개의 추천/비추천을 찍어대는 포탈 덧글이 현실을 훨씬 더 잘 반영할 가능성조차 있다.
돌아가서, 디제이독의 정의롭지 못한(혹은 성차별적인 또는 여혐스런, 에라이 뭐가 됐건) 가사는 바로 그 태생적 속성 때문에 약자(집단)를 특정했고, 때문에 그 중 일부는 분명히 상처를 입었다. 이 상황에서 가사의 전체적 의미니, 대의니, 맥락이니 하는 소리는 공허하고 무게 없다. 허울조차 없다.
애당초 도대체 뭣 때문에 광화문에 앉아 있는 건데? 박근혜가 미워서? 새누리 까면 재미있어서? 일베충 쳐바르려고?
SNS와 뉴스, 포탈을 보면 전부 정의로운 세상을 위해서 촛불을 들었다던데, 그 정의란 건 도대체 어떤 종류의 가치란 말인가?
그냥 그들이 생각하는 정의란 어떤 것일까를 궁금해하며 끝내는 게 낫겠다. 개저씨라 더 나가면 지금보다 더 한 훈계질만 장황하게 이어질테니. 그래도 이 말까지는 해야겠다.
내가 마초남성우월주의개저씨라 그런 것이겠다만, 내겐 이 일이 논란이 된다는 자체가 슬프다. 만약 성차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견과 그 담론의 입장차로 생긴 논란 같은 거창한 것이었다면 안 그랬겠지만.
가장 기본적인 정의의 실현에 논란이란 개념이 낄 데가 어디 있다는 건지 나이 헛 먹었나 싶을 만큼 혼란스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