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 미에빌이 쓴 <이중 도시>는 제목대로 도시와 도시 이야기입니다. 소설에는 두 도시가 등장하는데, 각각 베셀과 울코마입니다. 남한과 북한이 원래 하나였던 것처럼 베셀과 울코마는 원래 한 도시였습니다. 우리나라 수구 꼴통들이 맨날 빨갱이 타령하듯 두 도시의 분리주의자들도 서로를 그렇게 바라봅니다. 하지만 과거에 뭔가 기이한 사건이 벌어졌고, 그 사건 이후로 도시가 갈라졌습니다. 각 도시의 시민들은 서로 불가지 상태, 그러니까 상대를 의식적으로 의식하지 않는 상태에서 살아갑니다. 상당히 골 때리는 상황이죠. 문제는 두 도시가 갈라지기 이전에 무슨 사건이 벌어졌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겁니다. 그 누구도 어째서 베셀과 울코마가 분리되었는지 몰라요. 두 도시의 지하에는 분리 이전 시대의 유물이 잔뜩 들었지만, 그 유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유물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것 이외에도 골 때리는 요소가 하나 더 있는데, 그게 바로 침범국입니다. 베셀과 울코마 시민들이 상대를 의식한 채 바라보거나 상대 영역으로 넘어가면, 어디선가 귀신처럼 침범국 요원들이 나타나서 그 시민을 취조실로 끌고 갑니다.


그러니까 <이중 도시>에는 뭔가 도시 전설 같은 요소가 세 가지 존재합니다. 아무도 베셀과 울코마 분리 이전의 역사를 모릅니다. 아무도 과거 시대의 유물 정체를 모릅니다. 아무도 침범국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어떻게 신출귀몰해서 시민들을 잡아가는지 모릅니다. 당연히 소설 주인공은 이런 설정들에 의문을 던지며 사건을 진행합니다. 마치 음모론을 분쇄하는 것처럼 주인공 티아도어 형사는 고대 사건과 비밀스러운 도시와 침범국의 정체를 하나씩 까발립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희한한 의문점과 매번 부딪힙니다. 과거 유물은 외계인의 오파츠처럼 보이고, 기이한 도시는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듯하며, 침범국은 흡사 초인 집단처럼 보일 지경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누설할 수 없지만, 저런 의문들을 조사하고 밝히는 게 소설의 주된 내용입니다. 주인공은 형사지만, 사실 형사보다 무슨 오컬트 집단의 고고학자나 신비학자 같습니다. 이렇게 보면, <이중 도시>는 어반 판타지 혹은 기이한 SF 같습니다. 실제로 어반 판타지나 기이한 SF 소설은 그럴 듯한 현실을 바탕으로 흡혈귀, 늑대인간, 외계인, 초능력자 등을 집어넣으니까요.


문제는 <이중 도시>가 그런 도시 판타지나 SF 소설과 전혀 다르다는 점입니다. 차이나 미에빌은 독자가 원하는 걸 쓰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걸 독자에게 주겠다고 말하는 작가인데요. <이중 도시>는 도시 판타지를 바라는 독자의 바람을 산산조각 깨부수는 책일 겁니다. 한마디로 떡밥은 무수히 깔리지만, 그 중에서 속 시원하게 까발리는 게 없습니다. 떡밥은 어디까지나 떡밥일 뿐이며, 그 자체로 아무 작용을 하지 않습니다. 만약 이게 러브크래프트 소설이라면, 지하의 과거 유물은 사실 고대 외계인의 흔적이고, 침범국은 외계 신을 섬기는 사교 집단으로 등장할 겁니다. 하지만 차이나 미에빌은 그런 방법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독자가 떡밥을 풀 수 있는 실마리조차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작가가 떡밥 회수 능력이 부족하다거나 설정 구멍이 뚫린 건 아닙니다. 작가 인터뷰를 읽으면, 미에빌이 아예 처음부터 이렇게 떡밥을 뿌리려고 작정한 듯합니다. 차이나 미에빌은 이런 구조가 독자를 괴롭히는 방법이라고 말하더군요. 도시 판타지를 바라는 독자의 바람을 깨부수고, 그와 동시에 독자에게 충격을 주는 수법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이 책을 읽은 독자는 <이중 도시>가 과연 판타지인지 SF인지 아니면 그냥 형사물인지 헛갈립니다. 고대 유물과 희한한 도시와 침범국은 판타지와 SF 설정처럼 보이지만, 정작 작가가 오파츠나 오버 테크놀로지, 초능력자 이야기를 꺼내지 않습니다. 즉, 이 소설의 설정은 SF로 변할 듯하지만, 결국 현실의 영역에 머무릅니다. 그렇다고 아예 현실에 안주하는 것도 아니며, 기회만 되면 언제든지 SF 영역으로 튀어나갈 것 같습니다. 만약 고대 도시 유물이 외계인의 흔적이라고 해도 별로 어색하지 않을 겁니다. 차이나 미에빌 역시 이 점을 의식하며 소설을 썼다고 인터뷰했습니다. 그야말로 경계 소설(?)인데, 그냥 하드 보일드도 아니고 SF 장르도 아니고 어디에 속하는지 알쏭달쏭합니다. 뭐, 미에빌 본인은 이 책이 얼마든지 판타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봅니다. 왜냐하면 베셀과 울코마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공간이기 때문이죠. 두 도시는 단순한 픽션을 넘어 판타지에 가깝습니다. 비록 마법이나 오버 테크놀로지는 안 나오지만.


사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판타지나 SF에는 상상력이 들어갑니다. 하지만 <이중 도시>는 장르적인 발상을 거부했습니다. 장르적인 발상은 희미한 흔적만 남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하드 보일드에 머물 뿐 사이언스 픽션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떤 독자들은 '판타지가 되려다가 말았다는 이유' 때문에 이 소설을 싫어한다고 들었습니다. 베셀과 울코마의 관계를 유럽과 이슬람의 갈등으로 해석하는 독자도 있어요. 한국 독자들은 수구 꼴통들의 빨갱이 타령을 떠올리기 쉬울 겁니다. 보이면서 안 보인다고 타령하다니…. 그만큼 기발하기는 기발한 책입니다. 판타지 장르가 언제나 마법으로 이루어지는 건 아니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