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탐사물에는 전문가 집단이 자주 등장합니다. 우주 탐사를 비롯한 각종 탐험물에서는 4~10명 수준의 인물들이 팀을 이루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작 한두 명이 여정을 떠날 수 있지만, 인원이 적으면 뭔가 탐사한다는 느낌이 부족하죠. 낯선 환경을 조사하려면, 되도록 여러 분야를 섭렵하는 게 낫지 않겠어요. 낯선 행성에서 아무리 간단한 연구를 하더라도 천문, 물리, 화학, 생물을 비롯한 각 분야의 박사나 학자들이 필요할 겁니다. 만약 외계 문명을 만난다면, 자연 과학자만 아니라 심리와 역사, 철학 등 인문학자도 긴요하겠죠. SF 탐사물에서는 자연스럽게 지식인들이 토론을 벌이고, 서로 다른 분야의 지식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면서 지적인 쾌감을 선사합니다. <라마와의 랑데부>처럼 거대 우주선을 조사하든, <거기 누구요?>처럼 남극 기지에서 외계인을 만나든, <블라인드 사이트>처럼 기이한 조우를 준비하든 말입니다. 심지어 <별의 계승자>처럼 학술 토론회로 사건 전개를 대신하는 사례까지 존재합니다.


저런 전문가 집단에도 당연히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아무리 똑똑한 박사님들이 널렸어도 결국 누군가가 책임을 지고 사태를 좌우해야 합니다. 머리만 좋다고 긴급 상황을 수월하게 해결하는 건 아니거든요. 탐사대가 난데없이 이상한 외계 도시에서 길을 잃었다면, 그들이 제아무리 수재들이라도 당황하지 않겠습니까. 당황하면 머릿속에 든 지식을 제대로 써먹을 수 없고, 인간적인 한계를 드러내며 내분을 겪기 마련이겠죠. SF 탐사물에는 그런 공황과 갈등으로 무너지는 탐사대가 적지 않게 등장하고요. 그러니 각종 학자와 탐사대원과 무장 병력을 하나로 통합하고, 적재적소에 활용하고, 갈등을 누그러뜨릴 대장 내지 지도자가 중요합니다. 모두를 이끌만한 인물을 적어도 한 명은 뽑아야 합니다. 탐사대장이라고 해서 꼭 지식이 뛰어날 필요는 없을 겁니다. 학식보다 중요한 건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고 연결시킬 수 있는 능력일 겁니다. 일종의 통합적인 활용 능력이라고 할까요. 대장은 탐사대원의 좁은 시선을 넓게 확장시킬 수 있어야 하겠죠.


그러니까 탐사대장은 그 자신도 뛰어난 과학자인 동시에 시야가 넓은 지식인이어야 합니다. 음, 이런 걸 가리키는 전문 용어가 존재하는지 모르겠군요. 아마 융합 과학이 제일 비슷한 용어가 아닐까 싶습니다. 흔히 말하는 통섭이 여기에 들어가죠. 각종 과학 분야는 너무 전문적이고 세분화되었는데, 융합과학은 이런 것들을 결합, 통합, 응용하자는 취지입니다. 비단 자연과학만 해당하는 게 아니라 인문과학은 물론이요, 예술까지 끌어안는가 봅니다. 실제로 융합과학은 각종 지상 과제에 도전하는 프로젝트를 자주 꾸린다고 들었습니다. 오늘날 지구상에 대두하는 문제는 어느 한 분야가 해결하기에는 너무 거대합니다. 수많은 국가와 조직이 행성 전체에 영향을 미치니까요. 그래서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힘을 합치고 지식을 교환하고 해답을 도모하죠. 이런 융합 과학과 비슷한 모습이 SF 탐사물에 종종 나옵니다. 위에서 말했듯이 탐사대장은 일련의 융합 과학자가 되어야 할 겁니다. 그래야 대원들의 지식을 통솔해서 위기를 넘기겠죠.


저런 융합 과학자를 제일 잘 드러낸 책이 <스페이스 비글>이라고 봅니다. 주인공 엘리엇은 종합 과학자이며, 특화된 여러 분야를 연계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엘리엇이 대장이라는 건 아니지만, 괴물을 퇴치하는 건 거의 이 양반 몫입니다. 직책은 별 거 아니지만, 활약상은 사실 대장이나 마찬가지죠. 어렸을 적에 저 책을 보면서 종합 과학자라는 개념이 퍽 인상적이었습니다. 모든 학문 분야를 총괄하는 과학자가 꽤나 참신한 발상이라고 생각했네요. 지금도 그런 생각은 변함이 없고요. 물론 우주 탐사물만 아니라 19세기 비경 탐험물에도 네모 선장 같은 인물이 등장합니다. 네모 선장은 생태학자이자 물리학자이자 화학자이자 공돌이이자 문예 비평가이기도 합니다. 다만, 네모 선장은 천재일 뿐 뭔가 융합 과학이라는 분야를 응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만물 박사에 지나지 않으며, 과학의 통합을 꾀하지 않았어요. <해저 2만리>에 그런 학문 분야를 전망하는 내용이 나오지 않았고요.


물론 <스페이스 비글>은 얄팍한 책입니다. 21세기 학계에 활용할만한 전망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종합과학이라는 게 뭔지 뚜렷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엘리엇의 활약 역시 여타 괴물 장르에 나올만한 과학자랑 큰 차이가 없어요. 진짜 융합과학을 제대로 묘사한 작품이라면, 차라리 <유리알 유희>가 낫습니다. 헤르만 헤세가 쓴 <유리알 유희>에 융합 과학 비슷한 개념이 나옵니다. 소설 제목인 '유리알 유희'가 온갖 학문의 정수를 뒤섞고 이를 응용하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유희 명인은 온갖 학문에 두루 능통해야 합니다. <유리알 유희>보다 본격적인 SF 소설을 언급한다면, 심리 역사학이 괜찮겠네요. <파운데이션>의 심리 역사학은 현대의 사회 과학과 유사하죠. 현대의 사회 과학은 수학부터 심리학까지 각종 학문을 고찰하고요. <스페이스 비글>은 저런 작품들에 비한다면, 그저 모험물에 불과합니다. 다만, 1940년대라는 시기에 저런 개념을 작품에 도입했으니, 나름대로 작가의 눈이 높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종합 과학이란 것도 통섭의 일종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