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 8년 만에 대대적인 이사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이사를 이리저리 다니기보다는 그냥 눌러앉아 살아오기만 했기 때문에 경험이 없어서..
정작 이사를 결심하고 준비하다보니 이렇게 번거롭고 돈이 많이 드는 지 꿈에도 몰랐습니다.
제대로 써 본 적도 없는 돈이 그냥 길바닥에서 짐을 오르고 내리는데 날라간다고 생각하니...
제가 잘 몰라서 심하게 느끼는 것인지는 몰라도 솔직히 어이없고 기가막힐 따름입니다.
   
무엇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책"입니다.
결혼하기 전에 모았던 책들은 모두 부모님이 시골집으로 가지고 내려가셨는데,
이번 기회에 평생 살아갈 집으로 이사가면서 죄다 다시 제가 가지고 오기로 했습니다.
더불어 결혼해서 살아온 8년의 세월 동안 꾸준히 사 읽어 온 책들도 곁에 쌓일만큼 쌓였고,
학술 서적의 경우에는 원서는 돈 주고 샀지만 국내 서적은 출판사로부터 기증받은 게 많았죠.
   
이번에 이사 견적을 뽑고 이삿짐 센터와 치열하게 네고하는 과정에서,
그 동안 한 번도 제대로 헤아린 적이 없었던 장서 규모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이삿짐 센터에 시골집의 책을 촬영한 사진을 바탕으로 책 수량을 어림잡아 계산하고,
지금 살고 있는 집에 방문해서 눈으로 헤아린 책 권 수를 제게 알려주더군요.
  
의외로 시골집에 책이 꽤 많았습니다.
저 혼자서 책을 모은 게 아니라 어머니께서도 상당한 독서광이셨기 때문에,
지금 현재 시골집에 쌓여 있는 책들이 대략 3,800 권 정도로 추산되더군요.
여기에 신혼살림을 차리고 살아 온 18평 아파트에 쌓인 책이 1,200 권 정도...
합쳐서 5,000 권 정도이니, 거실 전체에 가구와 TV 없이 책만 놓아야 합니다.
   
이 때문에 무엇보다 이사 견적이 너무 크게 나오더군요,
시골에서는 가구 하나 없이 오로지 책과 책장만 옮기기로 했는데,
놀랍게도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이사가는 비용보다 책만 옮기는 게 더 짐이 많고 훨씬 비쌌습니다.
시골집에 책이 너무 많아서 큰 트럭이 두 대가 가야 하므로, 비용이 크게 나올 수 밖에 없다고 합니다.
이사도 하루에 끝내기 어려워서 다른 날 책만 옮기는 작업을 별도로 해야 하니 시간도 많이 깨지고,
그 비용을 지불하느니 그냥 아무것도 없는 집에서 새로 책을 모으는 게 더 싸지 않을까 싶을 정도...
   
이제 책도 이사가는 집으로 옮겨지고,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어머니께서도 옮겨오십니다.
아이들과 함께 책에 묻혀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그건 꽤 기쁜 일이기는 한데,
이사 과정에서 이렇게 큰 돈을 잡아먹으리라고 미리 예상하지 못해서...
책은 그 존재만으로 공간과 비용을 소모하는 돈 잡아먹는 하마라는 것을 이번 기회에 다시 깨달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