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옹이의 글터
"여긴 어디지?"
그가 눈을 뜬 곳은 어딘가 실험실 같아 보이는 허름한 창고였다.
"크흐흐흐 눈을 떴구나. 네놈은 이 곳 감옥에 갖혀 실험체로 분해될 것이다. 주인님께서 네놈을 마계로부터 불러내셨으니 네 놈의 모든 것들은 다 주인님의 것이지."
정지욱은 눈 앞에서 말하고 있는 파리를 유심히 들여다 보았다.
"파리가 말을 한다."
"파리가 아니라 페어리다! 이 마족놈아!"
"하지만 파리를 말을 하지 못하지."
"페어리라니까 이 마족놈이!"
"그러니까 이건 뭔가 착각일 거야. 이건 그냥 파리가 틀림없어. 난 머리를 부딛혀서 잠깐 헛것이 들리는 거고."
정지욱은 다시 눈 앞의 파리를 자세히 보았다. 그것은 틀림없이 파리였다. 그 파리는 앵 하고 어디론가 날아갔다.
"그런데 누가 날 붙잡은 거지? 왜 이런 곳에 있는 것일까?"
정지욱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는 자신의 손발을 감싸고 있는 노끈을 보았다. 그것은 노란 빛을 내고 있었고 꽤 질겨 보였는데 마침 주머니에 있던 주머니칼을 시험하기에 적합해 보였다. 지욱은 칼을 꺼내 그것들을 잘라내고는 방 밖으로 나왔다. 퀴퀴한 냄새가 가득한 건물 밖으로 나오자 햇빛에 눈이 부셔 그는 눈을 찌푸렸다.
"어? 해가 두개인가?"
하늘에는 번쩍이는 빛이 두개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해가 두개일 리는 없지. 빛의 난반사라든가 뭔가 빛나는 물체가 하늘에 잠시 떠 있을 뿐일 거야."
과연 그의 말대로 하늘엔 하나의 태양만 존재하고 있었다.
그는 핸드폰 신호가 잡히지 않아 불만을 터뜨렸다.
"이놈의 헬스케이디! 기지국을 제대로 안 까니까 이렇게 신호가 안 터지는 거 아닌가!"
그는 GPS도 안 잡히자 다시 분통을 터뜨렸다.
"이거 핸드폰도 불량인건가. 마음에 안 드는걸."
그가 핸드폰과 통신사를 욕하는 사이 세계에는 큰 혼란이 찾아왔다. 하늘을 비추는 두개의 태양중 하나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놀란 신관들과 마법사들이 원인을 조사했지만 돌아온 답은 참담한 것이었다.
'때가 되었다. 모든 것의 멸망. 신들의 통금시간이 다가왔다'
이 신탁을 조사하기 위해 즉시 가장 강한 신성력을 가진 신성기사와 사제, 그리고 최연소 8서클 마법사와 엘프족 정령술사등으로 이루어진 탐사단이 조직되었다. 그들은 이 모든 재앙의 시작이라고 알려진 한 지점에 급파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지점에서 하얗게 늙어서 죽어있는 마녀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 마녀는 분명 동쪽 늪의 주인인 조마리칸자가 틀림 없어요. 그녀는 마법으로 수명을 늘려 200살의 나이에도 젊음을 유지하고 있었죠."
"모습을 보건데 마력이 고갈되어 죽은 게 틀림없어요."
"끔찍한 모습이군. 신의 섭리를 거스른 댓가는 참혹해."
"그런데 이 늪의 마력을 송두리채 끌어다 쓰는 마녀가 대체 어떻게 하면 마력을 고갈당해 죽을 수 있는 거지?"
엘프족 정령술사의 말에 모두는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그들은 끔찍하게 변한 늪의 모습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늪은 마력을 모두 잃어버리고 고인 썩은 물의 형태로 변해 있었다.
"마력이 완전히 사라졌어."
"마왕이라도 강림한 것인가."
"마기도 존재하지 않아. 완전히 혼이 빠져나갔어."
그들은 난생 처음 보는 끔찍한 광경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때 늪에서 개구리를 잡고 있던 정지욱이 그들을 발견했다.
"아! 사람이다!"
그 순간 엘프 정령술사는 비명을 지르며 하얗게 불타더니 인간으로 변해버렸다.
"내.. 내가 인간이 되다니!"
그는 혀를 깨물더니 그대로 혼절해 쓰러졌다.
"무슨 짓을 한 거냐! 상황 여하에 따라 너를 살려두지 않겠다!"
"그만둬요 팰러딘 오하라. 저 사람은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존형기 사제, 하지만 신탁에서 지목한 이곳에 평범한 사람이 있을 리는 없잖아요!"
"신의 이름으로, 죄악은 멸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뭘 해야 하는지는 다시 생각해 봐야 해요."
"좋다. 거기 너! 대체 우리 동료에게 무슨 저주를 건 거냐! 당장 풀지 못할까!"
잔뜩 긴장한 성기사가 칼을 들고 입으로는 기도문을 읊조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어.. 그 칼좀 치우고 이야기 해요!"
"빨리 말해라! 신의 단죄에는 주저함이 없으니!"
성기사가 칼을 휙휙 휘두르며 외쳤다.
"아저씨 무슨 사이비 종교단체에서 나온 거에요? 왜 말끝마다 신은 들먹여요?"
"이 무엄하고도 불경한 마족같으니! 존형기 사제! 들었습니까? 저 자의 불경한 말을? 신을 부정하다니."
"잠깐! 포교도 좋은데 혹시 휴대폰 가진 분 계세요? 경찰에 연락좀 하고 싶은데요."
"그게 뭐지?"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지껄이는 정지욱의 태도가 의심스러웠다.
"이럴 필요 없소. 마력의 힘으로 놈을 잠재우고 그를 데려가 마법사의 탑에 감금하겠소. 그러면 아무 문제 없겠지. 놈이 뭔가를 하고 있는 건 틀림없으니 일단 놈을 잡아갑시다. 아브라 카타브라~~ 잠들어라!"
정지욱은 잠시 졸린 듯 고개를 떨구더니 다시 눈을 번쩍 떴다.
"아우. 왜 이렇게 졸리지?"
"마법 저항력! 저 놈은 역시 보통 놈이 아니오. 체내에 반마법 에너지가 강하게 흐르고 있는 듯 하군. 마력으로 공격해서 쓰러뜨릴 수 있는 상대가 아니오!"
"공격 마법을 쓰세요!"
"자 받아라! 파이어 볼!"
"어? 저 아저씨 손에서 불이 나오네? 손에 가스노즐이라도 달려 있는 건가?"
그 순간 마법사는 비명을 질렀다. 자신의 몸에 맴돌던 마력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것을 알아챈 것이다. 그도 혀를 깨물고는 거품을 물고 뒤로 쓰러져 버렸다.
"어굴라지경!"
"이제 남은 건 신의 힘 뿐이군! 신이시여 성스러운 힘을 나투소서!"
존형기 사제는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성물을 머리 위로 들어 간절히 신께 기도했다.
갑자기 하늘이 번쩍 열리더니 하얀 빛이 내리쬐기 시작했다. 하얀 비둘기들이 날아오고 날개가 달린 천사들이 나팔을 들고 내려와 장엄한 음악을 연주하는 가운데 빛 그 자체에 휩싸인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이 하늘에서 천천히 내려오기 시작했다.
최고위사제, 그 중에서도 가장 신실한 믿음을 가진 사제만이 가능하다는 절대신성력의 시전된 것이다.
수천 수만명의 사람들을 모아두고 이 절대 신성력을 시전하면 그들 모두를 교화시키는 것이 가능하다는 전설적인 신성력이었다.
"어! 이거 뭐지? 비둘기가? 뭔가 퍼레이드라도 하는 건가?"
"보고도 모르느냐! 신께서 강림하신 거다!"
성스러움에 압도당에 땅에 오체투지하여 눈물을 흘리던 성기사가 어이없다는 듯 외쳤다.
"저는 신 안 믿는데요."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하늘의 빛도 거룩한 음악도 모두 다 사라져 버렸다.
"아아아악!!! 신의 음성이! 신의 음성이!!"
존형기 사제도 피를 토하며 그 자리에 혼절해 버렸다.
남은 것은 오하라 성기사 뿐이었다.
"이 고약한 놈!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아니 내가 뭘!"
"태양을 없애고! 엘프를 인간으로 만들고! 마력을 고갈시키고! 신의 성스러움을 소멸시키고도 모른단 말이냐!"
"그런 게 어디있어! 말도 안되는 소리!"
"네놈을 베겠다!"
그 순간이었다.
"이건 틀림없이 꿈일거야. 아주 고약한 꿈이 틀림없어."
오하라 성기사가 칼을 휘둘렀지만 정지욱은 피를 흘리지도 쓰러지지도 않았다.
"거 봐. 안 아픈 걸 보니 꿈이 틀림없어."
오하라 성기사는 정지욱이 노려보자 갑자기 개미가 되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아.. 진짜 재미없는 꿈이네. 근데 왜 깨지 않는 걸까."
애초에 세상의 창조자와 같은 존재를 소환해 그 힘을 얻으려 한 마녀의 시도가 얼마나 위험한 것이었는가 하는 것은
정지욱에겐 아무 관심도 없었다. 자신이 휘두르고 있는 파괴적인 에너지가 어떤 건지는 생각지도 않은채로 무심하게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차례차례 파괴해 나가고 있었다.
세상은 원래 비정한 법이야.
오, 살아있는 이매진 브레이커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