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 Market.


 2.기만.


 다 자라지도 않은 새끼일 때였다. 셰퍼드는 개와 사람의 잡종이었고 개보다도 당연히 덩치가 컸다. 비록 개의 것을 반 넘게 따르기는 했지만 셰퍼드는 인간의 속도로 자랐고 성장했다. 그러니까 내가 막 뒷발로 일어서게 되었고 개로서는 가장 배우기 힘든 인간의 언어를 알아듣기 시작했을 때의 일이었다.

 “켕. 케, 케엥. 엄... 마.”

 어미라는 더 고급스럽고 셰퍼드를 설명하는데 있어 적절한 단어를 배우게 된 것은 훨씬 후의 일이었다. 휘어있는 뒷발로 일어서는 연습을 하게 된지 두어 달쯤 지났을 때 나는 엄마라는 단어를 며칠 전 갓 배운 상태였다. 그때 나는 인간의 말로 어미를 불렀었다.

 “넌 앞으로 그 존귀한 분들에게 덤비지 말고, 그분들처럼 행동해서도 안 돼, 반드시 이 어미가 일러주는 대로 셰퍼드답게 행동해야 한다. 넌 사람을 물어서도 안 되고, 함부로 대들어서도 안 되고, 명령을 어겨서는 더더욱 안 돼.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어미의 말은 갑작스러웠다. 숨가빴으며 또한 그 속에는 먼지만한 틈 하나 뺄 수 없는 철저한 규칙이 담겨있었다.

 셰퍼드는 분명 개의 일종이었고 그래서 인간의 말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알아듣는 것도 그보다 나을 것이 없었다. 나에게 어미의 말은 분명한 압박이었다. 나는 세 네 살 때에도 말이라는 것이 인간이라는 존귀한 존재들이 사용하는 것임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게 쏟아지는 어미의 말은 심장을 짓누르는 것이 되었다.

 당시에는 그냥 무섭고 겁이 났었다. 아직 정상적으로 여물지 못한 셰퍼드의 머리는 분명히 그렇게 느꼈다. 어미 셰퍼드가 말했던 가슴을 짓누르는 그 말이, 혹여 이제 말을 시작한 새끼가 인간에게 미움을 받아 헤쳐지지 않을까하는 공포에서 나온 것이라는 건 정말 나중에 알았던 것으로 기억했다.

 착잡하고 조용한 느낌이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긴 공백 속에 있다는 것은 말이다. 주위사방은 모두 어두웠다. 그러나 그것은 잠을 자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꿈도 꾸지 못했고 내가 잠들었다는 자각조차도 인식하지 못했다.

 쾅. 쾅.

 그 암흑 속에서 처음으로 소리를 느꼈다. 소리는 아주 느렸고 무한에 가까이 다가간 듯 길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느리게 시간의 흐름을 느꼈다. 조금씩 조금씩 산속의 수원에서 더 큰 아래로 내려가듯이 소리는 점점 빠르고 깊어졌다.

 쾅.쾅. 쾅.쾅.

 갑자기 소리의 흐름이 격류가 되었다.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격류는 사방으로 퍼지며 물을 튀겼고 갑자기 온몸이 뜨거워졌다. 격류에서 튀어나온 물기가 용암이라도 됐는지 나는 그렇게 느껴야 했다.

 그리고, 깨어났다.

 너무 아팠다. 갑자기 밀려들어온 충격은 그 말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꺼억. 꺼억. 하면서 칼이 박힌 오른쪽 가슴께에 손을 얹었다. 눈은 어느새 맑아져 있었고 태어날 때부터 이물질이 들어오는 것을 싫어했던 몸은 폐를 찌르고 있는 칼날을 빼내야 한다고 했다.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그러나 깨어났고 감각은 살아있었지만 실제로 내 몸이 어떻게 상황을 헤쳐 나갔는지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집채만 한 돌덩이에 짓눌려 있는 듯한 괴로움에 빠져있는 동안 칼은 어느새 빠졌고 심장 근처의 상처는 피를 쏟았다.

 밖으로 나갔다. 본능은 그렇게만 하라고 가르쳐 주었다. 발앞꿈치로 일어선 것이나 다름없이 셰퍼드의 굽은 발은 지금 이 순간만큼은 부정확했다. 두꺼운 뼈와 근육으로 지탱되면서 빠르고 유연한 동작을 만들어내야 할 발이 지금 순간에는 비틀거렸다.

 열려진 현관문 사이로 빠져나왔다. 1층 바닥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지 않은 건 기적이었다. 비틀거리며, 피를 쏟으며 창백한 하늘위로 한두 점의 구름이 지나가는 정원으로 나왔다.

 정원의 파란 햇살은 꼭 성화의 빛만 같았다. 내리쳐지는 밝은 햇살 속에서 눈부셔 멎어버릴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정원사이로 수 갈래씩 뻗어있는 보도 깔린 길을 걸었다. 가는 곳마다 피는 한가득 떨어지면서 길고 붉은 흔적을 만들어냈다.

 눈앞에 사람들이 보였다. 본능은 사람에게 한번 배신당하고도 다시 그들에게로 향하라고 했다. 나는 막지 못했는데 아직도 깔려있는 돌덩이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머리는 아득했기 때문이었다.

 10명쯤의 사람이었다. 한층 더 분명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통증은 짓누르는 고통이 아니라 칼날로 변했다. 그래서 정확한 숫자를 봤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가슴으로만 피를 쏟는 게 아니라 이젠 입으로도 그리고 혈관들이 터져나간 눈으로도 피를 흘리고 있다고 생각했을 때 인간 여자를 보았다.

 인상? 차가워 보인다. 느낀 것은 그뿐이었다. 그 여인의 갈색 머리가 코트의 엉덩이 부분까지 내려와 있음을 보았을 때 나는 울컥 하며 내속에 있는 것들을 토해냈다. 여인의 앞에 떨어진 건 시뻘겠다.

 내가 그들이 모두 차륜식의 혹은 회전식의 기계장치를 장비한 소총을 겨누고 있다는 걸 안건 아주 늦은 일이었다. 순간 깨어나서 득달같이 움직였던 힘은 이제 다 쏟아져 나온 피만큼이나 떨어져 버렸다. 나도 모르게 무릎이 꿇렸고 여인 앞의 바닥에서 무너져 버렸다.

 쾅. 가슴에 충격과 함께 쓰러졌을 때 나는 바닥에서 미를 나를 맞이하기라도 하듯이 낡은 보도의 틈틈마다 가득채운 액체를 느꼈다. 내 피였다. 이미 감사관과 책임자의 간계로 가슴에 사람의 식은 피를 뒤집어썼음에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적어도 방금 쏟아져 나온 내 피는 따듯했다.

 마지막으로 나는 다시 눈을 감으면서 하늘대신 색다른 푸른색을 보았다. 밤하늘 같은 짙은 푸른색의 눈을 한 여자가 냉담한 시선으로 날 내려다보았다.


 “이 녀석이 어떻게 실토하게 만들까?”

 소리를 들었다.

 “때려? 아님 꼬리라도 잘라버려? 아, 그러면 저 녀석이 아프다고 도로 죽어버릴지도 모르겠구나.”

 소리는 한동안 가시지 않고 내 주위를 맴돌았다.

 켁. 케헥.

 힘겹게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한참만에야 눈을 뜰 수 있었다. 셰퍼드인 나는 죽지 않아있었고 분명하게 살아서 방안을 바라보게 되었다.

 “저것이 내 소리를 들었구나.”

 뚱하고 엎지른 물을 주워 담지 못하는 대는 통달했다는 목소리였다. 회색의 벽지가 잔뜩 발라진 벽을 보았고 그 어느 중간에 의자를 놓고 앉아있는 여인이 있었다.

 “그래, 운 좋게도 살아났구나. 내가 몇 번밖에 사람 죽는 장면을 보지 못했지만 서도 너처럼 그렇게 가슴을 찔리고도 살아난 녀석을 본적이 없어. 역시, 때때로 사람목숨보다 천한 짐승목숨이 더 질기다는 말이 틀린 게 없단 말이지.”

 갑자기 깨어나느라 머리가 어지러웠고 시야에 잡히는 여자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해하기란 더 어려웠다. 가슴이 심하게 답답해서 <케헥-.>하고 숨을 내쉬려다가 급작스럽게 찢어져오는 통증을 느꼈다. 시야는 점점 맑아졌지만 아직은 보통 개들과 다를 바 없는 희미한 흑백이었다.

 “자, 이제 정신을 차려야지. 이 관대한 내가 네 어지럼증을 덜어주기 위해 간단히 설명해주마. 넌 그날 정원의 한구석에서 처박힌 다음에 나와 내 친구들에게 구조되어서 치료를 받았다. 아직은 몸이야 당연히 움직일 수 없겠지만 넌 그래도 낫는 중이라 이렇게 침대에 누워있지.”

 친절한, 설명이었다. 묘하게 조소 깃든 목소리를 들으니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해 좀 더 이해가 갔다. 나는 머리를 받치고 있는 베게와 회색빛 이불의 감촉을 느꼈다. 그리고 여자가 나에게 요구할 것이 무엇이든지 미리 준비해야 할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실 내가 여기서 친절하게 널 간호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야. 귀찮아서 응접실에서 카드놀이나 하고 있었다고 하면 거짓말은 아니겠지만, 아무튼 내가 혹은 우리모임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게 널 구하고 치료해준 대는 다 이유가 있어.”

 난 온 세상의 것들은 다 비꼬는 듯한 목소리가 순식간에 쇠사슬처럼 단단히 조여 오는 질문으로 바뀌는 것을 들었다. 더불어 희미하던 시선은 진한 흑백이 되었고 마지막으로 약간의 색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음험한 표정을 지은 여인은 자줏빛의 코트에 붉은 리본 끈을 매고 있었다.

 “자, 네가 겪었을 사건의 전모가 어떤지 한번 들어나 볼까?”

 갈색머리의 여자는 번개같이 빠른 속도로 코트의 안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냈다. 분홍빛의 벽지가 발라진 방에서 총구의 끝이 약간 빛났다.

 자주빛 코트의 여자는 내 머리 정 가운데에 정확히 총구를 겨눴다. 그리고 나는 그때 생각할 수 있었다.

 역시, 인간은 믿을만한 것이 못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