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연재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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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heating
1.배정일. (3)
다음날 7시에 일어났다. 아침시간을 알리는 사이렌이 부산하게 울리고 있었고 벽에 부딪치면서 윙윙거리는 울림을 만들어냈다. 멍한 눈을 비볐다. 하품을 하며 일어났을 땐 거실의 수도꼭지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방밖의 거실에서는 어머니가 뜨거운 물을 틀어놓은 채 세수하고 있었고 아버지는 나처럼 하품을 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두 분에게 인사를 했다. 거주구역의 집들은 넓은 곳이 아니어서 세 사람이 서있는 것으로도 거실은 좁게 느껴졌다.
“그래. 너도 잘 잤니?”
헝클어진 긴 생머리를 늘어트린 어머니가 세수를 마치고 손에 물기를 털어내면서 나에게 물었다.
“네. 그럼요.”
<뭐. 그저 그렇죠.>라고 말하는 것보단 오늘은 그렇게 말하는 게 낫게 느껴졌다. 좋은 뜻으로 건넨 말을 그냥 넘기고 싶진 않았다.
어머니는 코트와 넥타이를 걸치려고 방으로 들어갔고 다음 차례로 아버지가 손과 얼굴을 씻었다. 대피소에서는 비누는 매우 귀했으므로 세수는 얼굴과 손을 문질러 씻는 것뿐이었다.
세수를 마친 아버지도 나에게 잘 잤냐고 물었고 나는 똑같이 그렇다고 답했다. 내 차례가 되어서 그릇에 담겨있던 물을 조금 버리고 수도꼭지를 돌려 새물을 약간 받았다. 마음 같아선 깨끗한 새물로 그릇을 채우고 싶었지만 물은 아끼는 것이 규칙이었다.
세수를 하고 각자 코트를 챙겨 입고는 바로 식사준비를 했다. 거실 한편 서랍에 담겨있던 빵과 마른야채 그리고 설탕과 소금 통을 꺼냈다. 보건위원회의 지침에 따라서 이틀에 한 번씩 고기 통조림을 먹을 수 있는 것을 빼고는 식사는 늘 이렇게 네 가지 음식들로 이루어졌다.
“어서 먹고 가세요.”
넓은 판에 담긴 아침 치의 음식들을 세 사람의 몫에 맞게 나눠서 올려놓았다. 소금과 설탕 통을 식탁 가운데에 내려놓은 다음에 나도 식탁의 빈 오른쪽에 앉았다. 식탁의 의자는 넷이었지만 어머니와 아버지는 자식을 나 하나 밖에는 두지 않았다.
조용히 빵과 마른 야채를 물과 함께 먹었고 말을 하진 않았다. 세상이 얼어붙은 이후론 음식은 가장 부족한 것이 되었다. 내가 분명한 기억을 가지고 있을 때부터 지금까지 매일 똑같이 맛없는 음식을 먹었고 조용한 식사시간을 보냈다.
막 딱딱하고 동시에 눅눅한 빵을 입안에 넣고 물을 들이키다가 거실 천장의 갗 달린 전등을 보게 되었다. 한꺼번에 쑤셔 넣고 목이 좀 막혀서 물과 함께 넘어가게 하려고 고개를 들다가 그렇게 되었다. 언제나 전등불 아래서 식사를 했다. 빵같이 눅눅한 전등빛 아래서 궁금한 것이 생겼다.
저 바깥에 진짜 눈이 쌓이고 있을 땅은 정말 일곱 시일까? 조금 바보 같기도 했고 어찌 보면 진짜 궁금했다. 매일 사이렌이 울리면 일어났고 아침이라고 생각하면서 식사를 했다. 오늘은 어쩐지 거주구역 지침에 따라 울리는 사이렌이 미심쩍었다.
“나중에 보자.”
내가 빵 부스러기들을 식탁의 바닥에서 주워 먹고 있을 때 자리에서 일어난 두 분이 말했다. 거의 동시에 말한 건 같은 목소리처럼 들렸고 두 분은 대피소를 관리하는 보건 위원회에서 함께 관리 일을 맡고 있었다.
거주구역의 기상 시간을 일곱 시였고 교대로 하는 일이 아니라면 근무가 시작되는 시간은 여덟시였다. 학교에서 화목한 식사시간이라는 단어를 배우기는 했지만 젖을 땔 때부터 먹었던 널빤지 같은 빵으로 그런 분위기를 낸다는 것은 무리였다. 더구나 아침마다 흐르는 건 서먹한 분위기였다.
두 분은 함께 나섰다. 아버지가 현관문의 문손잡이를 잡았을 때 어머니는 다른 손을 잡았다. 두 분은 서로를 좋아했고 그건 나도 알았다. 더불어 나에게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도.
덜컥하고 낡은 문의 잠금장치가 잠기는 소리를 들었을 때 식탁위에 떨어진 마지막 빵조각을 주워 먹고 있었다. 떨어져 있는 야채 부스러기 하나까지 마저 주워 먹었는데도 여전히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일주일에 두 번씩 배급되는 식량은 늘 풍족한 편이 아니었다.
여전히 조금 배고팠다. 많이 먹을 수 있었다면 지금은 당장 기분에 속이 쑤셨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학교에서는 먹기 위해 온실에서 작물을 제배하는 게 얼음으로 덮인 속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어려운 일이고 그러니 투정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었다.
“하아-. 아직도 피곤한 것 같다. 그냥 편하게 더 자자.”
경비대의 교대 근무가 있는 세 시까지는 할 일이 없었으므로 그렇게 말하고 하품하면서 의자를 밀어 넣고 내방으로 들어갔다.
다시 코트를 벗었다. 벗어서 옷장 안 옷걸이에 걸쳐 놓고는 침대 모서리에 털썩 앉았다. 잠이나 더 자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눈은 뭔가 할 거리를 찾고 있었다. 내 방은 검게 변해버린 나무 옷장과 비슷한 나이를 먹은 책상 그리고 서랍장 하나와 침대가 있는 방이었다. 가끔씩 부족해 보였지만 거주구역의 집들은 다 그랬다.
반듯하게 의자가 들어간 책상에는 예전에 쓰던 연필과 빈 공책 그리고 칼 따위가 놓여 있었다. 유리구슬 안에 들어있는 집 모양의 장식이 보였다. 흔드니 눈이라고 생각되는 하얀 가루가 점점이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예전에 적도의 주변을 차지한 좁은 땅이 여전히 따듯할 때는 일 년 중 한 계절인 겨울을 중요하고 의미 있는 때로 여겼다고 어른들에게서 들었다. 그때는 이렇게 겨울에 눈이 내리는 모습을 흉내 낸 구슬이 멋진 장식품이었었나 보다. 눈처럼 만들어 놓은 하얀 가루들이 난 한 번도 본적 없는 지상의 집 위에 점점이 쌓여 내렸다.
유리구슬에서 시선을 땠고 원래 자리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대피소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이라곤 생존에 필요한 것들뿐이었고 이런 장식품들은 오래전 눈으로 덮이기 전으로부터 전해져 오는 귀한 것이었다.
내방 안에 있는 것들은 모두 이미 오래 전부터 보아야 했던 것이었으니까 달리 특별한 것은 없었다. 사람들은 지상의 눈을 피해 지하에서 살아있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내게는 좁고 늘 다를 것 없는 생활이었다.
다시 눈을 붙여야겠다고 생각하고 침대의 이불을 들춰내다가 이번에는 책상위에 놓여있는 한권의 책을 보게 되었다. 6월의 스케치. 내가 여덟 살이 되어 글을 완전히 배웠을 때 어머니가 선물로 준책이었다.
책은 오래전에 만들어졌고 표지는 너덜너덜해져서 두꺼운 종이는 곳곳에서 금가고 찢어져 있었다. 금이 간 책의 가운데로 나무 한 그루의 그림이 있었다. 책장을 펼쳤다.
산과 들과 살아있는 나무나 숲이라고 알고 있는 것들이 책장 안으로 가득하게 그려져 있었다. 책의 가장자리에는 몇 글자의 설명이 있었지만 어차피 실제로 그런 걸 본적이 없는 나에게는 이해도 못할 내용들이었다. 책이 상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한 장 한 장 펼쳐나갔다.
마지막에서 두 번째 장쯤 남았을 때였다. 펼쳐진 책의 한 면엔 꽃이라고 배운 식물이 있었다. 붉고 이상하게도 예쁘게 그려진 것. 수십 년이나 된 의자와 나무식탁과 상자가 식물이라고 알고 있는 나에겐 그건 너무 이상한 것이었다.
탁하고 소리가 나도록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내가 대체 뭘 하고 있는지 따져봐야 했다. 이 집과 그중에서도 내 방에 있는 건 작은 위치나 놓는 방향까지 알고 있을 정도로 잘 기억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친구나 만나봐야겠다.”
닳고 닳도록 만진 걸 다시 보는 건 좋지 않았다. 기껏해야 언젠가 한번 보았던 걸 찾게 될 뿐이었다. 나처럼 교대 근무를 배정받게 된 친구가 떠올랐고 잠시 눈을 붙이고 만나보기로 했다.
“넌 좋겠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서?”
4층의 라운지에 걸려있는 시계는 내가 막 지나쳤을 때 아홉시를 가리켰었다. 지금은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할 만한 통로의 아무 구석에나 들어가 있었고 레안나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게 좋은 거냐? 잘되다가 얼음바닥에 미끄러진 거지. 8시간 내내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고 생각해봐.”
내가 레안나의 말을 집어주었다. 신경 쓰지 말고 그냥 자라라고 내버려둔 내 머리에 비해서 레안나는 어깨로 내려오는 선에서 잘랐고 늘 빗을 가지고 다니면서 가다듬었다. 레안나가 내 대답에 인상을 찡그렸다.
“좋아. 엘렌. 하지만 내 입장을 생각해 보라고. 다른 허드렛일이라면 상관이 없겠는데 발전기에 석탄을 퍼 나르는 일이라니. 이건 너무하잖아.”
레안나가 불평으로 툴툴거렸다. 벌써 며칠 동안 해야 했던 일 때문인지 옷과 목에 검은 가루가 조금 묻어 있었다. 나는 이틀 동안 일이란 걸 하고 이번이 삼일 째였지만 레안나는 일주일이나 지났다.
“그나저나 넌 부모님이 하는 일을 맡게 된다고 하지 않았어?”
“아마 그게 여의치 않았을 걸? 그분들이라고 해도 안되는 게 있을 거 아니야. 그래도 네 말처럼 더 형편없는 일을 맡는 것보다는 낮지.”
보건 위원회라는 이름의 기관이 대피소를 만든 이후론 18살이 된 아이들은 모두 직업을 배정받게 되어 있었다. 직업을 배정받는 건 남녀를 구분하는 것도 아니었고 정해진 규칙은 없었다. 물론, 어른들은 적당히 규칙을 비켜갈 방법을 만들어 두었지만.
학교를 마치고 나머지 3년 동안은 어른들의 일을 도우면서 지내야 했다. 직업 배정은 그 다음에 시작되는 일이었다. 대피소의 일이라는 건 그때그때 빈자리를 채워놓도록 되어 있었다. 하지만 어른들은 자기네들끼리 이렇게 저렇게 주고받는 것이 있었고 나는 그걸 아주 어렸을 때부터 배웠다.
부모님은 날 낳았으니까 길러야 하는 만큼은 하셨다. 학교를 마치고 나서는 보건 위원회의 사무실에서 일하는 부모님을 따라 나도 옆에서 거들면서 배웠다. 정작 배정식의 날이 되었을 때에는 부모님이 손을 제대로 뻗치지 못해 누가 봐도 의미 없는 곳을 지키는 경비원 일을 맡게 되었지만.
“그건 그렇고 레안나. 넌 요즘 어떻게 지내? 혹시 재미있는 거라도 있어?”
“대피소에서 지내는 건 늘 같은 거야. 활활 타는 화로 안에 석탄 넣는 것 말고는 달라질 게 있겠니?”
탐탁지 않은 목소리와 함께 대답을 받았다. 거주구역의 각 층마다 있는 라운지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 이외에는 대피소에서는 다른 즐길 거리가 없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런 이야깃거리마저도 없었다.
“그럼 나중에 또 보자고.”
레안나에게 가볍게 손짓하며 인사를 한 뒤 구석에서 나왔다. 라운지에게 누군가가 듣지 않기를 바라면서 둘이서만 이야기 하려고 했던 건 간단히 끝나버리고 말았다.
직업배정이 있을 때부터 사람을 피해오기도 했고 또 마음엔 들지도 않는 경비원 일을 맡게 된 것을 이렇게 저렇게 퍼트리고 다닐 생각도 없었다. 학교 때부터 알았던 레안나를 만난 뒤 집으로 돌아왔고 3시 있는 교대를 하러갈 때까지 가만히 있었다.
복도의 벽걸이 시계를 보고 두시가 되었음을 확인했다. 철제 바닥으로 된 복도를 지나 층계참으로 향했다. 이번에도 역시 아는 사람과 마주치고 싶지 않았고 샛길로 돌아서 움직였다.
바라지도 않은 나를 낳아서 아직도 탐탁지 않아하는 부모님을 떠올리다가 레안나가 나를 부러워하고 있을 것 같다고 느꼈다. 원래 일을 배정받는 건 누구나 공정하게 주어지는 일을 받아야 하는 것이었지만 부모님이 경비원 보다 더 험한 일은 피하도록 해줬다는 건 눈치 채고 있었다. 내가 바라던 책상에 앉아서 하는 일까지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도착했어요.”
경비 담당자들의 대기실에 도착해 그렇게 인사를 했다.
처음 나를 안내해 주었던 경비 책임자 보르트는 나무 보드에 묶여 있는 몇 장의 종이를 넘기면서 신중하게 무언가를 확인하고 있었다. 그는 종이에서 시선도 때지 않고 등 뒤로 손짓하면서 방한복과 총을 챙겨서 가라고 했다. 신입자를 다루는 태도치고는 성의 같은 것은 없었다.
어떤 사람은 운도 없어서 발전소를 움직일 석탄이나 나르고 있는데 나는 너무 배부른 것은 아닌가 생각하면서 아침부터 지키고 있었을 먼저 담당자와 교대했다. 사실 탐탁지 않은 날 만든 부모님이 더 안 좋은 일이라도 배정받지 않게 해준 걸 고마워해야 할지도 몰랐다.
다시 간간히 달린 전등들이 공기 중의 습기만큼이나 눅눅한 빛을 만들어내는 통로를 바라보게 되었다. 사용되지 않는 예비 철로로 이어지는 복도는 철문 밖의 부산한 화물창하고는 다르게 근무를 서게 된 삼일 내내 다르지 않고 조용했다. 문득 단조로운 콘크리트와 철제 프레임을 바라보다가 왼쪽 벽 한편에 작은 철문하나가 나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