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4년 13일 15사이드
지금 아무로의 전투함 중 그 세 번째인 Nadesico는 지구권 15사이드에 있었다. 제국 전투함의 특징인 쐐기형의 선체를 기본바탕으로 하고 뒷부분에는 위쪽으로 브릿지가 튀어나온 형태였다. 이곳은 분명히 지구권 한공화국 영토였지만 이 공화국에는 ‘사기’로 불리는 이 공포의 제국전투함의 행로를 방해하는 공화국함선은 이상하게도 존재하지 않았다.

“텐카와. 자네의 고향은 분명히 한공화국이라고 했던가?”

“그렇습니다. 사령관님. 저는 원래 한공화국 함대에 말단 사병으로 있었습니다만 22차 코루스칸트 회전에서 운이 없게도 제가 탄 배가 격침되면서 저는 우주의 유랑아가 되었습니다.”

로엔그람 제국사령관의 물음에 텐카와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으나 그 어조에는 분명히 장난기가 어려 있었다. 로엔그람이 미소를 지으며 그에 대답했다.

“그게 운이 없다고 할 수 있겠나? 자네는 그 덕분에 지금 자네 부인도 얻고 공화국으로 ‘금의환양’하고 있지 않은가?”

로엔그람이 창 밖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코렐리아 성계와 코루스칸트 성계의 다수의 유인행성이 존재하는 것과는 달리 이 지구권에는 지구에 가장 가까운 화성만이 그나마 사람이 살 만 했다. 하지만 화성을 지구처럼 만드는데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시간이 필요했는데 그 예상시간만 해도 1만년에 달했다. 이 시간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나 정부는 존재할 수가 없었다. 결국 유인행성은 지구에 만족하고 있었으나 지구의 상태도 그다지 좋지 않은 것이 지구의 평균기온이 12만년전과 비교하면 무려 섭씨 5도나 떨어져 있어 드디어 빙하기가 오고 있다는 것을 지구인들은 새삼 느끼고 있었다. 실제로 지구의 한대지방은 이미 빙하로 뒤덮혔으며 한공화국의 수도인 북경에서도 이미 여름은 400여년 전에 사라졌다. 한 때는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면 ‘초록색의 별’이라고 불렀던 시대가 있었다고 거의 전설처럼 들려왔지만 적어도 지구는 ‘푸른색의 별’은 몰라도 ‘초록색의 별’은 이미 아니었다.

덕분에 추운 지구보다는 우주공간으로 나가려는 인구가 점차 늘어났고 결국 초기 제국시대에 7개의 사이드로 운영되었던 스페이스 콜로니는 지금 20여개의 사이드로 늘어나 수백억의 인구를 수용하고 있었다.

각각의 콜로니가 비록 자급자족의 콜로니는 아니더라도 한 개의 사이드는 몇 개의 자급자족 공동체를 가지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단일행성의 지구보다도 이들의 자급자족력은 훨씬 강하다고 볼 수 있었다.

“금의 환양이라니요. 그건 아닙니다. 원래 저는 3사이드 12번치 출신입니다. 학교도 공부도 별로 흥미가 없었고 해서 9학년 졸업 후에 바로 군대에 입대했습니다. 원래는 장교가 되려고 했는데 지금은 이렇게 군인 아닌 군인이 되어 버렸지요. 어떻게 제가 금의환양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하하. 자네들의 그런 여유있는 점이 마음에 들어.”

로엔그람이 웃었다. 텐카와도 입에 미소를 띄었고 옆에 있던 이석현이 말했다.

“하지만 사령관님. 이렇게 갑자기 공화국이 망하리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을 겁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네.”

함장이 슬쩍 끼어들며 말했다. 그의 말투에는 이 대화에 끼어들고 싶어하는 욕구가 다분했다.

“함장님 갑자기 끼어드시면 곤란하십니다. 뭐 어쨌든 상관없죠. 아셀로즈 던가 그 구 공화국의회의 반전파의 선두였던 자가 갑자기 혁명을 일으켜 단숨에 의회와 총통관저를 제압해버리다니요. 이 사건을 함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실 아셀로즈의 그런 돌출행동은 우리가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네. 정보부에서 내려온 보고에 따르면 몇 년 전 공화국 102대 총선에서는 반전파로 분류된 의원들이 대다수의 의석을 차지했네. 정확한 숫자가 342석이던가. 그에 비해 주전파는 겨우 120여석을 차지하는데 그쳤네. 공화국 내에서도 제국원정을 중단하라는 국민의 바램이 컸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

잠시 듣고 있던 로엔그람이 말했다.

“그래. 원수께서도 제대로 말씀하셨고 내가 덧붙이자면 342석이면 공화국 총 820석의 의석 중 1/3이 넘는 숫자라서 저 정도면 총통에 대한 탄핵 시도가 가능하고 실제로 그들은 총통을 탄핵하려고 했지만 아셀로즈가 한번에 의회를 실력으로 장악해 버려 헛일이 되었지만 말일세.”

533년 150일 경에 벌어진 한공화국의 첫 번째 군사혁명은 500여년 동안 유지되었던 한공화국을 완전히 뒤집어 버렸는데 그 원인은 실권을 잡은 아셀로즈 의원이 한공화국에 대한 국명을 파기하고 새로운 국명을 가진 국가를 건설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좋든 싫든 지금 공화국은 존재하지 않으며 앞으로 등장할 새로운 국가가 한공화국이 차지하고 있던 위치를 이어받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굳이 국명을 바꿀 필요가 있겠느냐는 비판의 목소리와 그런 비 경제적인 일을 벌이는 목적이 뭐냐는 비난도 쏟아졌지만 아셀로즈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로 인해 그 목소리는 묻혀버렸다.

아셀로즈는 12사이드 8번치 출신으로 그는 공화국 최고의 북경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하여 당연한 듯이 공화국 의회 의원선거에 출마했다. 공화국에서는 피선거권이 26세부터 주어지는데 아셀로즈는 놀랍게도 27세에 선거에 도전했으며 그가 처음 도전한 지역구는 1사이드의 B구역이었고 그는 놀랍게도 그 선거에서 경쟁자에게 매우 아깝게 패했다. 그렇지만 그는 4년 뒤 벌어진 선거에서 결국 승리를 해냄으로써 1사이드 B구역의 의원이 되었고 겨우 30대 초반의 그의 젊은 나이는 공화국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줬다.

그 젊은 나이라는 무기를 최대한 활용해 스스로 소장파 의원의 마지막을 자처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그의 부친은 12사이드의 36번치, 바로 산업콜로니의 최고책임자로 상당한 부를 쌓고 있었고 그런 부친의 부는 아셀로즈에게도 큰 힘이 되어 그의 활동에 대단한 힘을 실어줬다. 그는 물심양면으로 공화국민들에게 큰 인상을 심겨주었고 일부에서는 벌써 그를 차기 총통이나 의회 의장으로도 거론하고 있었다.

공화국법에 따르면 의원의 출마제한횟수은 없었다. 그는 당연히 선거에 출마해 계속 당선되었으며 공화국 의회에서 최고로, 신임과 국민적인 인기를 가진 의원이 되었다.

“놀라운 것은 아셀로즈가 상당히 현명하게 혁명을 진행했다는 것이네. 총통의 지지도가 겨우 20퍼센트에 머물고 있었을 무렵 한 여론기관에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그의 국민적 지지도는 70퍼센트에 달했네. 840명의 공화국의원 중 한명에 불과한 그를 모르는 자가 공화국내에 거의 없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는 실상 총통보다도 더욱 총통다운 자라고 할 수 있겠지. 물론 인기상으로 보면 말이야. 결국 그는 적당한 시기를 잡아 일을 벌였고 그를 따르는 많은 반전파 의원들의 지지와 국민의 지지를 받아 지금 공화국은 생각외로 안정된 상태라네. 물론 주전파 의원과 일부 ‘양심적인’ 의원들, 그리고 사회각계 계층에서는 그에 대한 테러를 시행하고 있지만 국민의 마음이 이미 아셀로즈에게 있네. 고로 이번 혁명은 정권을 장악하는 실질적 측면과 국민의 마음이라는 필수적인 측면을 모두 갖춘 완벽한 것이라고 볼 수 있네.”

로엔그람이 말했다. 그에게 배달된 홍차를 잠시 마시는 사이에 텐카와가 말했다.

“저희 부모님께서도 그런 의원이 없다고 말씀하셨지요. 사실 그는 쭉 1사이드에서만 맴돌았습니다만 그의 인기는 사이드를 초월했습니다. 위치상으로만 보면 1사이드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있는 3사이드에도 그의 명성이 자자했단 말이죠. 제 기억이 맞다면 아마 반전파의 일부 의원들은 그의 명성에 빌붙기 위해 반전의 성격을 띄었을 겁니다. 아셀로즈가 그의 ‘오로라당’을 만들었을 때 중립파의 절반이 넘는 의원들이 아셀로즈의 ‘오로라당’에 들었거든요.”

“텐카와의 설명이 적절하군 그래.”

아무로가 대꾸했다. 이석현은 공화국 사정에 대해서는 그다지 밝지 않았던 터라 약간 이해가 안되는 표정을 지었다.

“거기까지는 알겠습니다. 하지만 공화국 군대의 지휘권은 총통에게 있지 않습니까? 군대를 지휘할 수 없는 혁명이 어떻게 성공했습니까?”

함교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로엔그람이 말했다.

“이것은 확실하지 않네. 우리 정보부에서도 70퍼센트 정도의 신뢰도로 평가하는 정보에 따르면 이 혁명은 공화국원수 올페우스 토그라가 아셀로즈와 함께 손잡고 벌인 일이라고 하네.”

“토그라 원수 말씀이십니까? 그 사람 죽었잖아요?”

이석현이 놀라서 말했다.

“죽은 사람이 되살아난 것이겠지. 미안하네만 거기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할 수 없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로엔그람이 강하게 나오자 이석현이 찝찝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지만 그는 일단 여기서는 지위를 존중해주기로 했고 그는 함교를 떠나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텐카와와 그의 부인이 그의 뒤를 따랐다.

“굳이 숨길 것이 있겠나?”

“원수님. 저는 이 Nadesico의 승무원들을 매우 좋아하지만 지켜야 될 것은 지켜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원수님께는 죄송하지만 말입니다.”

로엔그람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항해는 계속되었다. 아무로의 명령에 따라 40속도의 느린 속도로 항해가 지속중이었다.

534년 14일 5사이드
500여년 전에 대규모 전투가 벌어진 5사이드는 당연히 그때의 흔적은 눈을 씻고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었지만 Nadesico의 함장은 창가에 서서 이곳을 감회가 새로운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500여년 전에 이곳에서 그와 매우 친하게 지내던 동지를 잃어버렸던 것이다. 그 당시 그의 위에 있던 무능력한 자들때문에!

그는 잠시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는 필요할때는 매우 냉정할 수도 있는 성격이었지만 그가 행동하는 대부분의 시간들에서 그는 매우 사교적이었으며 어떻게 보면 쑥맥이라고도 볼 수 있을 정도로 아랫사람들에게 당했다. 한 척 배를 지휘하는 함장이라는 직위에 걸맞지 않게.

“뭐하십니까? 이런곳에서.”

“화기관제장인가? 자네도 잘 알겠지. 여기가 5사이드야. 옛날 나의 친구가 죽은 곳이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함장님은 그 친구분 말고는 전혀 친구가 없으신 듯이 말씀하시는 군요.”

약간 농담기어린 목소리로 말을 하는 그녀에게 함장이 피식 웃고는 대답했다.

“하긴 그게 사실일지도 몰라. 근데 자네야말로 이렇게 늦은 시각에 안자고 뭐하는 것인가? 물론 밤낮을 알 수는 없지만 지금은 잘 시각이네. 불면은 피부건강에 안좋아.”

텐카와 부인은 한 순간 얼굴에 미소를 띄는 듯 하더니 정색을 하고 말했다.

“궁금합니다. 지난 이제르론 공방전이 끝난 후에 칼리마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겁니까? Nu Nautilus도 파괴되고 부함장님께서도 돌아가시고...”

함장은 얼굴에 전혀 표정없이 대꾸했다.

“그게 그렇게 궁금한가..별로 대단한건 아니지만 미안하지만 지금은 가르쳐 줄 수 없네. 이런 식으로 3년을 끌었지만...미안하지만 그 궁금증, 조금만 더 참아주게. 내가 조만간에 모두 말해줄테니.”

함장의 말투속에 담겨져있는 진지함을 느낀 그녀는 절도있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야. 5사이드는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드일세. 내일이면 우리는 북경에 도착할 것이고 이제 본격적인 화평협상이 시작되겠지.”

아무로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유리카는 그가 하고싶은 말이 있음을 눈치채고 기다렸다. 역시나 아무로가 입을 열었다.

“뭐 좀 쓸데없는 말을 해보자면 나는 토그라가 이 혁명을 실질적으로 지휘하고 있다고 확신하네. 그냥 아셀로즈와 손을 잡은 정도가 아닌 아셀로즈를 뒤에서 조종하고 있을것이 뻔하네. 토그라의 개입에 대해서 정보부에서는 70퍼센트의 신뢰도라고 말했지만 사실 토그라가 여기에 개입하지 않고는 혁명이 성공할 수가 없네. 그가 개입하지 않으면 아셀로즈가 아무리 인기가 높더라도 공화국 함대 장병들이 따르지는 않을것일세. 만약 내 생각이 맞다면 군사적으로 지원한 토그라가 지금 아셀로즈를 조종한다는 것은 누구나 생각할 수 있네.”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토그라는 혁명을 진압하기 위해 코루스칸트에서 급히 와 혁명군과 전투를 벌이다 전사한 것으로 되어 있지 않습니까?”

구 공화국 임시정부에서는 분명히 올페우스 토그라 원수가 전사했다고 알려왔다. 그들의 공식적인 발표에 따르면 그들의 봉기를 지구에 주둔중이던 몇 개 함대에 알렸고 연락을 받은 몇 몇 함대가 혁명을 도와 혁명이 성공했다고 했다. 그리고 진압하기 위해 돌아오던 토그라의 함대를 기습해서 토그라를 전사시키자 그의 휘하에 있던 함대가 항복을 했다는 것이 임시정부의 발표였다. 하지만 조금만 상식을 가지고 생각하더라도 토그라가 왠만해서는 패배하지 않을 군인이라는 것은 그 누구도 의심치 않을 것이고 아무래도 조작된 감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문이 약간씩 제기되자 임시정부는 토그라 원수의 기함 SEII' Slayers의 잔해와 몇몇 생존자를 통해 토그라가 기함에 있다 전사했다..라는 증언을 얻어냄으로써 의심을 종식시켰다. 그렇지만 토그라원수가 사망했다고 알려지더라도 사람들은 그것을 믿고 싶어 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의 정보는 누구나 조작할 수 있네. 물론 그 토그라 기함 생존자 중 토그라의 부관을 하던 자도 있었지만 사실 그것이 토그라가 원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 자가 거짓말 정도는 간단히 할 수 있지 않겠나?
문제는 왜 토그라와 혁명 정부가 토그라가 사망한 것으로 처리했냐는 것이네. 토그라와 아셀로즈가 손을 잡았다는 것이 국민에게 알려지만 이 혁명은 완전한 성공을 거두는 것이네. 실제로 최근에 이들 임정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아셀로즈에 대한 지지도가 혁명 이전보다 떨어진 것을 알 수 있지.“

여기까지 말한 아무로가 잠쉬 쉬고 말을 이었다. 유리카는 뭔가 생각에 골똘히 잠긴 모습이었다.

“정보부의 또다른 자료를 인용하자면 아셀로즈의 ‘오로라당’에서 혁명 이틀 전에 30명에 달하는 의원이 탈퇴했다고 하지. 결국 아셀로즈는 비교적 성공한 혁명을 수행했지만 새롭게 선출된 총통이 전 총통에게 권력을 이어받듯이 자연스럽지는 못했다는 것이네. 작으나마 의견충돌이 있었다는 것이지.
그런데 여기에 만약 토그라가 아셀로즈의 손을 들어준다면 이 혁명은 선거에 의한 자연스러운 권력이양 정도까지도 평가될 수 있을 것이네. 그 만큼 토그라의 인기는 공화국에서 절대적이기 때문이지. 민중이 지지한다면 공화국내에서는 그걸로 끝나는 것이네. 그게 바로 공화제니까.”

아무로가 말했다. 그는 토그라는 절대 전장에서 죽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전장에서, 함대전을 통해서는 적어도 그에게 죽음을 주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 만큼 그의 함대지휘는 뛰어났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지금 이상하게도 죽었다.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그 말은 아셀로즈가 권력을 잡았다는 것에 환멸을 느낀 사람도 많았다는 것이겠군요. 그런데도 토그라가 살아있다고 가정할 때 토그라가 왜 아셀로즈와 협력하지 않았을까요”

“그것이 나도 궁금한 점이네. 과연 토그라와 아셀로즈가 뭘 목적으로 하고 있는지는 도저히 모르겠어. 내가 모른다면 저 정보부의 부장께서도 역시 모르겠지만 말이야.”

아무로가 웃었다. 유리카 역시 얼굴에 웃음기를 띄었다.

“그럼 실례했습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오케이. 쉬어두게. 내일부터는 좀 바빠질거야.”

534년 14일 1사이드 1번치
1번치는 북경에서의 수도이전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결국 인류의 고향 지구는 그 어쩔 수 없는 변화 때문에 인류에게 버림아닌 버림을 받게 되었다. 물론 지구쪽에서는 상당히 기꺼워할 일이겠지만.

1사이드 1번치는 그 숫자만으로도 상당한 상징이 존재했다. 우주에서 가장 처음 만들어진 콜로니였고 벌써 20번이나 대규모 공사를 하여 유지되고 있었다. 콜로니의 특성상 내용물을 죄다 바꾼다느 것은 말도 안되었으므로 이 콜로니를 겉에서만 본다면 누더기 같은 모습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 콜로니는 연례 평가에서 보여주듯이 다른사이드의 그것과 같은 1급의 판정을 받았으므로 절대 안전했다. 이렇게 역사가 긴 콜로니답게 공화국 우주함대 사령부나 공화국 재정관리국, 공화국 최고사법위원회 등의 핵심기관들이 다수 위치해 있었다. 그리고 공화국에서 가장 중요한 의회도 이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 의회 3층에서는 현재 정권을 잡은 아셀로즈와 토그라가 독대중이었다.

“전 총통께서는 지나친 제국정벌로 인해 망하셨습니다. 의원께서는 그런 일이 없으시리라 저는 확신합니다.”

토그라의 말에 아셀로즈는 잠시 움찔했고 그것을 눈치챈 토그라가 계속 말을 이었다.

“새롭게 만들어질 국가는 제국과 화평을 취해야합니다. 물론 이것이 제가 의원과 손을 잡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당연히 알고 계시겠지요?”

푸른색 머리칼의 소유자는 은근히 아셀로즈를 위협했다. 실상 토그라는 그가 지휘할 수 있는 수십만척의 전투함을 가지고 있었고 이 함대의 승무원들은 토그라를 왕처럼 받들고 있었다. 만약에 토그라가 딴 마음만 먹는다면 이 혁명의 최종 우승자는 토그라가 될 수도 있었지만 그는 정치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알고 있습니다. 사령관. 그래서 현재 제국과 화평을 하기 위해 현재 제국의 로엔그람이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방금 전 5사이드를 막 빠져나갔다는 연락이 들어왔습니다. 아마 내일쯤이면 지구에 도착할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 점에 대해서는 의원을 전적으로 믿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국명은 정하셨습니까? 혁명이 있은 후 언 150일이 지났지만 우리에게는 국명이 없습니다. 국명을 바꾸는 제안은 의원께서 하지 않으셨습니까?”

토그라가 아셀로즈를 쏘아보았다. 아무래도 아셀로즈는 토그라에게 큰 빛을 진 상황이라서 토그라에 대해서는 절대로 큰소리를 칠 수 없었다.

“그것은 제가 생각해둔 것이 있습니다. 제국과의 협상중에 제가 말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걱정놓아주십시오. 그리고 구 공화국 함대감축에 대해서 할 이야기가 있으니 오후 3시까지 참석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어차피 제국과 화평을 하면 더 이상 새 국가에게는 대규모 전투함대가 필요없어진다. 순군사적으로는 치안유지정도의 소형함대만 운영하더라도 충분할 것이고 경제적으로는 군사비의 부담이 줄어듦으로써 이익이 될 것이다. 구 한공화국의 국내총생산의 10%가 군사비로 항상 나가고 있었으므로 함대의 대규모 감축은 새 국가의 재정부에서도 환영할 것이다. 그렇지만 문제는 있었다. 함대가 지금의 거의 1/100수준으로 감수할 것이고 그럼 수천만의 실직자가 생기게 되었다. 이들을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물론 새 국가의 재정부나 인적관리부에서는 함대의, 최대한 완만한 감소를 통해 부작용을 완화하려고 하겠지만 당장 퇴출당할 몇 명의 고위장교들의 반발이 있으리란 것은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있었다.

혁명 후 사회는 극심하게 혼란스러웠지만 지금은 거의 혁명 이전의 상태로 돌아갔다. 콜로니, 사이드 간의 물류이동이나 각종 생필품무역 등 국가가 돌아가는 것에 필요한 모든 것이 지금 정상적으로 가동되고 있었다. 물론 지금은 임시로 국명을 써야 한다면 ‘구 한공화국’으로 표기하고 있었다. 조만간에 완전히 고쳐지리라.

아셀로즈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토그라가 차를 다 마시고 일어섰다. 가볍게 인사를 하는 토그라에게 아셀로즈가 답례를 했고 토그라는 군모를 들고 방문을 나섰다.
전술 차원에서의 우연은 전략 차원에 있어서의 필연이 남긴 잔광(殘光)의 파편에 불과하다. --- 자유행성동맹 이제르론 방어사령관 겸 함대지휘관 양 웬리 퇴역원수 -출처 : 은하영웅전설 10권 낙일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