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연재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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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콜로니>
3화. 당착... (당착 : 앞 뒤가 서로 맞지 않음. 모순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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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5년 3월 1일 화요일 2
오후가 되자 영내를 빠져나갔던 간부들이 부대로 돌아왔다. 일단 먼저 도착한
것은 통신하사였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모든 간부가 행정반으로 모여있었다.
아직 날씨가 쌀쌀한 탓에 막사내 난방은 계속 가동되고 있었다. 일단 다음날
있을 내 취임식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행정반 문이 활짝
열리더니 한 명의 여성 하사관이 경례를 붙이고는 행정반 안으로 들어왔다.
"오, 통신하사 왔구만. 잘 쉬다가 왔어?" 먼저 김중사가 반기었다.
"윤하사, 마침 시간 맞추어 잘 왔네. 근데 2소대장은 왜 이렇게 안와?"
중대장이 짜증섞인 목소리로 이렇게 질문하자 통신하사가 질문에 답변했다.
"제가 조금 일찍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신임 부소대장이신가요?"
"그렇습니다. 인사들 나누시지요. 새로 온 이정훈 하사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쪽은 우리 중대의 통신을 담당하고 있는 윤아라 하사입니다."
이번에도 1소대장이 대신 소개를 해줘서 말을 많이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이정훈이라고 합니다." / "반가워요. 저는 윤아라에요."
내가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자 옆에 있던 김중사가 나를 툭 치며 말했다.
"우리 부대의 유일한 홍일점이라네. 갑자기 여기 분위기가 환해진 것 같지?"
"잡담하지 말고 이야기에나 집중해. 그리고 윤하사도 자리에 앉아."
한켠에 다리를 꼬고 앉은 부중대장이 역시나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김중사
때문에 나까지 피해를 입는 것 같다. 그냥 얌전히 앉아 있는게 좋을 것 같다.
통신하사는 내가 보기에도 충분히 미인이다. 여자임에도 키가 크고, 군복을
입어서인지 약간 통통해 보인다. 그리고 염색한 머리를 틀어올린 후 핀으로
고정시키고 있다. 다시 보니까 예쁘다는 것 보다는 귀엽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그러면 이상으로 다음과 같이 결정하겠습니다. 먼저 내일 오전 9시부터..."
어느새 이 회의를(회의라고는 하지만 그냥 얘기를 나누다가 어느새 이렇게까지
돌변한 모양이다.) 주관하고 있는 1소대장이 오늘 결정한 사항들을 다시 한번
행정반 안의 간부들에게 읽어주고 있었다. 중대장은 연신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턱을 괴고 있었고, 부중대장은 관심없다는 듯이 의자에 기대어서 시계를 보고
있다. 김중사는 연신 통신하사를 흘끔 쳐다보기에 바빴고, 통신하사는 고개를
숙이고 뭔가를 열심히 쓰고 있다. 이제 회의가 막 끝나갈 무렵 행정반의 문이
열리면서 누군가가 들어왔다. 소위 계급장을 단것을 보아 2소대장인가 보다.
"아니 왜 이렇게 늦게 온거야? 회의도 다 끝났잖아. 이거야 원, 참."
"죄송합니다, 중대장님. 내일 준비할 물건을 사느라 조금 늦어졌습니다."
중대장은 마음이 안드는지 고개를 가로 저었으며 자리를 일어섰으며 그 외에
부중대장과 1소대장은 뭔가 얘기를 하면서 행정반 밖으로 나갔다. 김중사는
통신하사에게 커피를 마시자면서 같이 밖으로 나갔다. 순식간에 행정반에는
나와 2소대장만이 남았다. 지금 내 옆에 서있는 2소대장은 안스러울 정도로
당황한 표정이었다. 이렇게 된 바에야 내가 먼저 말을 거는 수 밖엔 없겠다.
"안녕하십니까? 새로 부임한 이정훈이라고 합니다."
그제서야 2소대장은 내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듯 돌아보면서 말을 했다.
"아! 신임 부소대장이시군요. 이거 실례했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예. 그런데 성함이?" / "아차, 이런. 저는 2소대장 정승철이라고 합니다."
보기에도 약간은 정신이 빠진 사람처럼 보인다. 이 사람과 같이 1개 소대를
꾸려나가야 한다. 과연 내가 잘 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곳 간부들 중에
유일하게 안경을 낀 이 사람은 큰 키에 마른 체격이다. 아마도 통신하사와
거의 비슷한 몸매로 보일 정도이다. 하지만 얼굴 가득히 기쁜듯한 표정을
띄고 있어서 그런지 나를 제일 반기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랄까?
"그런데 이거 어떻게 하죠? 잠깐 1소대장님하고 나눌 얘기가 있는데요."
"괜찮습니다. 상관하시지 말고 볼일 보시죠." / "예, 그럼."
2소대장은 그렇게 황망히 행정반을 나가더니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뭐 잊으신 물건이라도?" / "아니요. 혹시 오늘 저녁에 시간 있으십니까?"
"저녁에 별일 없습니다만. 그런데 무슨 일이라도?"
"별거 아닙니다. 그냥 할 얘기가 있어서요. 그럼 제가 숙소로 찾아가죠."
그리고는 2소대장은 서둘러서 행정반을 나가버렸다. 원 싱거운 사람 같으니.
밖으로 나가 숙소로 향하는데 모퉁이 뒤에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그곳에는
통신하사가 서 있었다. 아마도 커피를 마시는 듯 손에는 종이컵을 들고있다.
"혹시 커피 한잔 안하시겠어요?" / "아뇨, 전 괜찮습니다."
"예. 아까 정식으로 인사를 드리지 못해서 실례가 많았습니다."
정식적인 인사? 그러면 어떻게 해야 정식적으로 인사를 하는거란 말인가?
"아마 이곳까지 오시느라 많이 피곤하셨죠? 숙소도 변변치 못했을텐데."
"아닙니다. 그런데 제게 무슨 할 말이라도?"
"훗. 단도직입적이네요. 아마도 이곳에 계신 누군가와는 많이 다르군요."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건지?" / "아니에요, 그냥 웃자고 한 이야기에요."
그리고는 뭐가 그리 좋은지 통신하사는 연신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참내.
"그런데 혹시 준사관 몇기세요? 젊으신 것 같은데, 혹시 193기 아니에요?"
그러니까 꼴지의 위아래를 가리겠다는 거군. 이런게 정식 인사란 말인가?
"저는 해병대 준사관 출신입니다. 육군 출신이 아니라 기수가 다르죠."
"아, 그러셨군요. 보기에는 안그런데. 그런데 언제 준사관을 지원하셨죠?"
그러면 어떻게 보인단 말인가. 정말로 작정을 한 듯 꼬치꼬치 캐 묻는군.
"93년 5월입니다." / "어머, 저도 5월에 준사관 지원했는데. 동기로군요."
동기라는 사실에 통신하사는 너무도 좋아하는 것 같다. 적어도 나보다는.
계속 여기에 있다간 언제까지 추운 날씨속에서 있어야 할지 모르겠다. 이럴
바에야 내가 먼저 얘기를 끝내는 편이 낫겠다. 얘기가 길면 골치아프니까.
"그런데 별 일이 없으시다면 먼저 돌아가 보겠습니다."
"훗. 상당히 바쁘신 모양이네요. 부임한지 이제 하루도 안 지났는데 말이죠."
하마터면 '그래요.'라고 대답하고 싶은 것을 간신히 속으로 삶켜버렸다.
"농담이에요. 아무튼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어색하게 손을 내밀었고 결국은 어색한 악수를 나누고 말았다.
"너무 부담같지 마세요. 나도 군인이니까. 그런데 이제보니 미남이시네요?"
그리고는 인사를 하고 막사로 사라져버렸다. 이건 대체 무슨 꼴이란 말인가.
아무튼 또다른 문제로 막 골치가 아프려고 할때 누군가가 내 어깨를 쳤다.
"이하사, 여기서 뭐하는가? 그런데 아까 통신하사랑 무슨 얘기를 했어?"
내 뒤에는 김중사가 서있었다. 아마도 아까 상황을 뒤에서 지켜본 모양이다.
"별 내용 없었습니다." 나는 아무 생각없이 이렇게 대답해 주었다.
"그랬나? 흠. 그런데 내가 볼때는 저여자 체격이 좋은 남자를 좋아하더군."
"네?" 갑자기 뜬금 없는 말을 하고는 김중사는 통신하사가 간 막사쪽으로
황급히 걸어갔다. 정말로 도대체 일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건지 원.
"똑똑똑..."
할일없이 침대에 누워 얼마동안이나 멍하게 있었을까? 갑자기 누군가가 내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아마도 아까 오겠다고 한 2소대장이겠지.
문을 열자 2소대장이 반갑다는 표정으로 밖에 서 있었다. 그리고 왼손에는
무언가 들어있는 검은 봉지를 들고 있었다. 나는 일단 방 안으로 안내했다.
들어오자마자 2소대장은 방 한가운데 자리를 잡고 앉더니 봉지 안에 들어
있던 물건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간단한 마른안주와 맥주캔, 과일이 있었다.
그리고 그밖에는 접시와 작은 과도도 들어있었다. 좀 세심하다고 해야할지
아니면 소심하다고 해야할지. 아무튼 순식간에 조촐한 술자리가 만들어졌다.
"별거 아니에요. 빈손으로 찾아오기는 좀 뭐하고." / "아, 예. 뭐 이런거까지."
"아무튼 부소대장직이 공석으로 있어서 저 혼자 모든 소대원들을 통솔하려고
하니 여간 힘든게 아닙니다. 이때 마침 부소대장이 와줘서 얼마나 기쁜지."
"별 말씀을. 그런데 부소대장직이 공석이라니요? 저는 오늘 처음 듣는데요."
"아, 혹시 다른 간부들에게 이야기를 듣지 않았나요?" / "금시초문인데."
"그렇군요. 뭐 다른 간부들도 그 얘기를 꺼내기 꺼려하니까요. 특히 누구보다
부중대장이 싫어하는 것 같더군요. 어쩌면 모르시는게 더 낳을지도 몰라요."
"뭐, 말씀하시기 싫으시다면 안하셔도 상관은 없습니다만." / "예. 뭐..."
갑자기 2소대장의 안색이 눈에 띄게 어두워지는 것 같다. 과연 어떤 문제가
있길래 모든 간부들이 이야기 하기를 꺼려한다는 말인가. 점점 궁금해졌다.
나는 일단 다른 곳으로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애매한 분위기는 질색이니까.
"그런데 이곳 생활은 어떻습니까? 지낼만 하신가요?"
그러자 2소대장의 분위기는 더욱더 나빠진 것 같다. 게다가 한숨까지 내쉬는
것을 보니까 아무래도 이거 화제를 잘못 돌린 것 같다. 정말로 미치겠구만.
"글쎄요. 사실 처음 사관학교를 나와서 이곳으로 막바로 부임해 온 탓인지
아무래도 적응하기가 쉽지는 않군요. 초짜라고 중대장님도 별로 신임하시진
않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1소대장님만큼이나 믿음직스럽지 못하다는 거겠죠.
그러고보면 1소대장님은 완벽하신데 말이죠. 게다가 부중대장도 나를 약간은
무시하는거 같고 말이죠. 그리고 1소대 부소대장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습니다. 소대원들도 달갑지 않은 것 같고. 게다가 전임 부소대장과는 약간
마찰이 좀 있었죠. 뭐 처음 와서 그런지는 몰라도 나름대로의 신고식일까요?"
아마도 이 소위가 쌓였던 것이 많은가 보다. 그저 내 한마디에 마치 터진 제방
마냥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오늘 저녁에도 일찍 자기는 다 틀린 것 같군.
"그런데 전임 부소대장과는 무슨 이유로 그렇게 다투셨나요?"
"그게 말입니다. 아마도 자기는 이곳에서 오랫동안 생활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많은 조언을 해줬지만 시간이 갈수록 소대를 장악하려고
하더군요. 처음에는 그냥 그러려니 했지만 나중으로 갈수록 자꾸 저를 무시하고
그러다가는 아예 멋대로 일을 처리해서 두 세번 말다툼을 하기까지 했습니다.
결국 중대장님과 상의해 보았지만 오히려 부소대장 하나 제대로 못다룬다면서
오히려 핀잔만 듣고 말았죠. 1소대장님은 딱딱하신 분이라 이런 이야기를 몇번
해봐도 별 도움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냥 이렇게 죽 지내게 된거죠."
뭐 그런 줄거리였군. 뻔한 줄거리다. 아마도 이 일이 좀 커져서 결국 부소대장이
전출을 갔겠지. 어쩐지 아까 중대장도 2소대장을 별로 못미더워하더니. 아무튼
내가 보기에 내 앞에 있는 2소대장 정소위는 나쁜 사람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조금 순하다고나 할까? 하지만 이런 곳에서 생활할 인물은 아닌거 같다.
둘이서 한 2시간동안 술을 마셨을까? 정소위는 나에게 정말로 많은 말들을 했고,
특히나 이곳에 관련된 많은 것들을 알게 해주었다. 예를 들자면 중대장은 아직도
독신이고, 1소대장은 현 중대장과 함께 무려 3년동안이나 같은 부대에서 근무를
했었으며, 또 이미 들었지만 부중대장이 상처했다는 것과, 김중사가 통신하사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 등이다. 사실 김중사 일은 어느정도 예감 했었지만 그래도
정말로 우습지 않을 수 없다. 특히 통신하사가 근육질을 좋아한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다니는 것만 봐도 말이다. 아마 정소위는 나를 많이 믿고있는 것 같다.
그러면 이제 어느정도 술을 좀 먹었으니 내가 궁금했던 점들을 물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아까 내무실을 둘러보던 중에 이상한 점이 있더군요."
"이상한 점이라니요?" / "별건 아닌데 관물대에 무슨 검은 리본이 달려있더군요."
"아, 그거요? 3개월 전에 병사 1명이 사고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달았놨던 겁니다. 마침 그렇지 않아도 떼려고 했었는데, 그것을 보셨나 보군요."
"아, 예. 그런데 왜 숨졌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그러자 정소위는 뭔가 주춤거리더니 결국은 나에게 이야기를 해 주었다.
"아까 전임 부소대장 일에 관한 말을 했었죠? 그 일과도 관련이 깊답니다."
결국 결론은 한 곳으로 모아지는군. 나는 바싹 긴장해서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러니까 약 3개월 전쯤 일입니다. 이곳 한주 콜로니는 상당히 넓지만 그것을
방어하는 우리 중대의 병력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따라서 순찰을 다니는데도
2인 1조나 3인 1조 형식으로 무려 10개조가 동시에 경계 구역을 순찰하는 형편
입니다. 인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병사들끼리도 조가 편성되곤 하죠.
사고가 난 당일에도 평소와 마찬가지로 부소대장은 병사를 데리고 순찰을 돌러
나갔고 저는 부대에서 일직 근무를 맡고 있었죠. 그렇게 평온하기만 하던 그때
갑자기 본부로 무선이 들어오더군요. 그래서 들어보니 바로 부소대장과 함께
순찰을 나갔던 병사의 비명소리가 들리더군요. 그리고는 잠시 후 교신이 끊기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즉각 경계태세를 발령하고 자는 병사들을 깨워서 기동
순찰조를 편성했습니다. 당시 부소대장은 우리가 편의상 나눠놓았던 구역들 중
제 13구역을 순찰중이었습니다. 그래서 즉시 기동 순찰조가 13구역으로 출동을
했습니다. 저는 행정반에서 기다렸지만 정말로 초조해서 못견디겠더군요. 그날
따라 눈도 많이 내리더군요. 이렇게 한 1시간 정도가 지났을까? 급파되었던 기동
순찰조가 부대로 복귀했습니다. 하지만 표정들이 침울한 것을 보고서 아무래도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요. 아니나다를까, 부소대장과 그 같이 간 병사는 행방불명
되었는데, 13구역 근처의 계곡 사이의 바위틈에서 모자와 총등을 발견했답니다.
그들을 찾으려고 근처에서 수색을 했지만 쉽지 않았고, 게다가 눈이 많이 내리는
관계로 발자국마저 남아있지 않아서 결국 수색을 포기하고 돌아왔답니다. 그리고
시체 주위에 있던 무전기는 망가질대로 망가져 있었습니다. 아마도 커다란 돌로
눌렸던 것 같답니다. 결국 상급부대까지 이런사실이 알려졌고 감찰부에서 조사가
나왔는데, 그날 눈이 많이 온 관계로 마침 계곡 옆쪽에 있던 눈과 돌들이 굴러서
떨어지면서 그 옆을 지나던 순찰조를 덮친것으로 결론짓고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최근까지 이 지방에 눈이 많이 내렸던 관계로 이들의 시체 인양은 아무래도 눈이
녹을때까지는 기다려야 할겁니다. 정말로 믿지 못할 일이였습니다. 특히 아직도
죽은 병사가 생각나는군요. 부대 내에서 제일 운동을 잘하는 청년이었는데."
아무래도 사고가 있었던 모양이로군. 어느정도 부대 분위기가 가라앉었던 것도
다 이해가 갔다. 게다가 정소위는 부임하자마자 이러한 일들이 벌어졌으므로 마음
고생이 더 했겠지. 이제는 자연 재해와도 싸워야한다니 나도 앞으로의 고생문이
눈에 선할 따름이다. 그런데 정소위는 아직 내게 할 말이 남아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아직도 이상한 점이 있어요. 어느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곰곰히 따져봤는데 무언가 설명하기 힘든 모순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모순점이라니, 대체 무엇을 말씀하시는거죠?"
"글쎄, 내가 처음 행정반에서 무전을 들었을때는 비명소리밖에 들리지 않았죠.
즉 눈사태 소리는 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보통 무선은 상급자가 하게 되 있죠.
전임 부소대장은 그런것은 잘 지켰는데 말이죠. 그게 아직도 석연치 않습니다."
뭐 사실 눈사태 소리야 순식간의 일이니 못들었을 수도 있고, 만약에 부소대장이
먼저 죽었다면 어쩔수 없이 병사가 무선을 날릴 수 밖에. 일단 오늘은 이정도로
마시기로 했다. 내일 행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소위가 마지막에 했던 말이
왠지 가슴에 걸린다. 설명할수는 없지만 마치 미궁에 빠진듯한 느낌이 들었다.
3화. 당착... (당착 : 앞 뒤가 서로 맞지 않음. 모순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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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5년 3월 1일 화요일 2
오후가 되자 영내를 빠져나갔던 간부들이 부대로 돌아왔다. 일단 먼저 도착한
것은 통신하사였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모든 간부가 행정반으로 모여있었다.
아직 날씨가 쌀쌀한 탓에 막사내 난방은 계속 가동되고 있었다. 일단 다음날
있을 내 취임식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행정반 문이 활짝
열리더니 한 명의 여성 하사관이 경례를 붙이고는 행정반 안으로 들어왔다.
"오, 통신하사 왔구만. 잘 쉬다가 왔어?" 먼저 김중사가 반기었다.
"윤하사, 마침 시간 맞추어 잘 왔네. 근데 2소대장은 왜 이렇게 안와?"
중대장이 짜증섞인 목소리로 이렇게 질문하자 통신하사가 질문에 답변했다.
"제가 조금 일찍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신임 부소대장이신가요?"
"그렇습니다. 인사들 나누시지요. 새로 온 이정훈 하사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쪽은 우리 중대의 통신을 담당하고 있는 윤아라 하사입니다."
이번에도 1소대장이 대신 소개를 해줘서 말을 많이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이정훈이라고 합니다." / "반가워요. 저는 윤아라에요."
내가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자 옆에 있던 김중사가 나를 툭 치며 말했다.
"우리 부대의 유일한 홍일점이라네. 갑자기 여기 분위기가 환해진 것 같지?"
"잡담하지 말고 이야기에나 집중해. 그리고 윤하사도 자리에 앉아."
한켠에 다리를 꼬고 앉은 부중대장이 역시나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김중사
때문에 나까지 피해를 입는 것 같다. 그냥 얌전히 앉아 있는게 좋을 것 같다.
통신하사는 내가 보기에도 충분히 미인이다. 여자임에도 키가 크고, 군복을
입어서인지 약간 통통해 보인다. 그리고 염색한 머리를 틀어올린 후 핀으로
고정시키고 있다. 다시 보니까 예쁘다는 것 보다는 귀엽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그러면 이상으로 다음과 같이 결정하겠습니다. 먼저 내일 오전 9시부터..."
어느새 이 회의를(회의라고는 하지만 그냥 얘기를 나누다가 어느새 이렇게까지
돌변한 모양이다.) 주관하고 있는 1소대장이 오늘 결정한 사항들을 다시 한번
행정반 안의 간부들에게 읽어주고 있었다. 중대장은 연신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턱을 괴고 있었고, 부중대장은 관심없다는 듯이 의자에 기대어서 시계를 보고
있다. 김중사는 연신 통신하사를 흘끔 쳐다보기에 바빴고, 통신하사는 고개를
숙이고 뭔가를 열심히 쓰고 있다. 이제 회의가 막 끝나갈 무렵 행정반의 문이
열리면서 누군가가 들어왔다. 소위 계급장을 단것을 보아 2소대장인가 보다.
"아니 왜 이렇게 늦게 온거야? 회의도 다 끝났잖아. 이거야 원, 참."
"죄송합니다, 중대장님. 내일 준비할 물건을 사느라 조금 늦어졌습니다."
중대장은 마음이 안드는지 고개를 가로 저었으며 자리를 일어섰으며 그 외에
부중대장과 1소대장은 뭔가 얘기를 하면서 행정반 밖으로 나갔다. 김중사는
통신하사에게 커피를 마시자면서 같이 밖으로 나갔다. 순식간에 행정반에는
나와 2소대장만이 남았다. 지금 내 옆에 서있는 2소대장은 안스러울 정도로
당황한 표정이었다. 이렇게 된 바에야 내가 먼저 말을 거는 수 밖엔 없겠다.
"안녕하십니까? 새로 부임한 이정훈이라고 합니다."
그제서야 2소대장은 내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듯 돌아보면서 말을 했다.
"아! 신임 부소대장이시군요. 이거 실례했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예. 그런데 성함이?" / "아차, 이런. 저는 2소대장 정승철이라고 합니다."
보기에도 약간은 정신이 빠진 사람처럼 보인다. 이 사람과 같이 1개 소대를
꾸려나가야 한다. 과연 내가 잘 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곳 간부들 중에
유일하게 안경을 낀 이 사람은 큰 키에 마른 체격이다. 아마도 통신하사와
거의 비슷한 몸매로 보일 정도이다. 하지만 얼굴 가득히 기쁜듯한 표정을
띄고 있어서 그런지 나를 제일 반기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랄까?
"그런데 이거 어떻게 하죠? 잠깐 1소대장님하고 나눌 얘기가 있는데요."
"괜찮습니다. 상관하시지 말고 볼일 보시죠." / "예, 그럼."
2소대장은 그렇게 황망히 행정반을 나가더니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뭐 잊으신 물건이라도?" / "아니요. 혹시 오늘 저녁에 시간 있으십니까?"
"저녁에 별일 없습니다만. 그런데 무슨 일이라도?"
"별거 아닙니다. 그냥 할 얘기가 있어서요. 그럼 제가 숙소로 찾아가죠."
그리고는 2소대장은 서둘러서 행정반을 나가버렸다. 원 싱거운 사람 같으니.
밖으로 나가 숙소로 향하는데 모퉁이 뒤에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그곳에는
통신하사가 서 있었다. 아마도 커피를 마시는 듯 손에는 종이컵을 들고있다.
"혹시 커피 한잔 안하시겠어요?" / "아뇨, 전 괜찮습니다."
"예. 아까 정식으로 인사를 드리지 못해서 실례가 많았습니다."
정식적인 인사? 그러면 어떻게 해야 정식적으로 인사를 하는거란 말인가?
"아마 이곳까지 오시느라 많이 피곤하셨죠? 숙소도 변변치 못했을텐데."
"아닙니다. 그런데 제게 무슨 할 말이라도?"
"훗. 단도직입적이네요. 아마도 이곳에 계신 누군가와는 많이 다르군요."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건지?" / "아니에요, 그냥 웃자고 한 이야기에요."
그리고는 뭐가 그리 좋은지 통신하사는 연신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참내.
"그런데 혹시 준사관 몇기세요? 젊으신 것 같은데, 혹시 193기 아니에요?"
그러니까 꼴지의 위아래를 가리겠다는 거군. 이런게 정식 인사란 말인가?
"저는 해병대 준사관 출신입니다. 육군 출신이 아니라 기수가 다르죠."
"아, 그러셨군요. 보기에는 안그런데. 그런데 언제 준사관을 지원하셨죠?"
그러면 어떻게 보인단 말인가. 정말로 작정을 한 듯 꼬치꼬치 캐 묻는군.
"93년 5월입니다." / "어머, 저도 5월에 준사관 지원했는데. 동기로군요."
동기라는 사실에 통신하사는 너무도 좋아하는 것 같다. 적어도 나보다는.
계속 여기에 있다간 언제까지 추운 날씨속에서 있어야 할지 모르겠다. 이럴
바에야 내가 먼저 얘기를 끝내는 편이 낫겠다. 얘기가 길면 골치아프니까.
"그런데 별 일이 없으시다면 먼저 돌아가 보겠습니다."
"훗. 상당히 바쁘신 모양이네요. 부임한지 이제 하루도 안 지났는데 말이죠."
하마터면 '그래요.'라고 대답하고 싶은 것을 간신히 속으로 삶켜버렸다.
"농담이에요. 아무튼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어색하게 손을 내밀었고 결국은 어색한 악수를 나누고 말았다.
"너무 부담같지 마세요. 나도 군인이니까. 그런데 이제보니 미남이시네요?"
그리고는 인사를 하고 막사로 사라져버렸다. 이건 대체 무슨 꼴이란 말인가.
아무튼 또다른 문제로 막 골치가 아프려고 할때 누군가가 내 어깨를 쳤다.
"이하사, 여기서 뭐하는가? 그런데 아까 통신하사랑 무슨 얘기를 했어?"
내 뒤에는 김중사가 서있었다. 아마도 아까 상황을 뒤에서 지켜본 모양이다.
"별 내용 없었습니다." 나는 아무 생각없이 이렇게 대답해 주었다.
"그랬나? 흠. 그런데 내가 볼때는 저여자 체격이 좋은 남자를 좋아하더군."
"네?" 갑자기 뜬금 없는 말을 하고는 김중사는 통신하사가 간 막사쪽으로
황급히 걸어갔다. 정말로 도대체 일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건지 원.
"똑똑똑..."
할일없이 침대에 누워 얼마동안이나 멍하게 있었을까? 갑자기 누군가가 내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아마도 아까 오겠다고 한 2소대장이겠지.
문을 열자 2소대장이 반갑다는 표정으로 밖에 서 있었다. 그리고 왼손에는
무언가 들어있는 검은 봉지를 들고 있었다. 나는 일단 방 안으로 안내했다.
들어오자마자 2소대장은 방 한가운데 자리를 잡고 앉더니 봉지 안에 들어
있던 물건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간단한 마른안주와 맥주캔, 과일이 있었다.
그리고 그밖에는 접시와 작은 과도도 들어있었다. 좀 세심하다고 해야할지
아니면 소심하다고 해야할지. 아무튼 순식간에 조촐한 술자리가 만들어졌다.
"별거 아니에요. 빈손으로 찾아오기는 좀 뭐하고." / "아, 예. 뭐 이런거까지."
"아무튼 부소대장직이 공석으로 있어서 저 혼자 모든 소대원들을 통솔하려고
하니 여간 힘든게 아닙니다. 이때 마침 부소대장이 와줘서 얼마나 기쁜지."
"별 말씀을. 그런데 부소대장직이 공석이라니요? 저는 오늘 처음 듣는데요."
"아, 혹시 다른 간부들에게 이야기를 듣지 않았나요?" / "금시초문인데."
"그렇군요. 뭐 다른 간부들도 그 얘기를 꺼내기 꺼려하니까요. 특히 누구보다
부중대장이 싫어하는 것 같더군요. 어쩌면 모르시는게 더 낳을지도 몰라요."
"뭐, 말씀하시기 싫으시다면 안하셔도 상관은 없습니다만." / "예. 뭐..."
갑자기 2소대장의 안색이 눈에 띄게 어두워지는 것 같다. 과연 어떤 문제가
있길래 모든 간부들이 이야기 하기를 꺼려한다는 말인가. 점점 궁금해졌다.
나는 일단 다른 곳으로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애매한 분위기는 질색이니까.
"그런데 이곳 생활은 어떻습니까? 지낼만 하신가요?"
그러자 2소대장의 분위기는 더욱더 나빠진 것 같다. 게다가 한숨까지 내쉬는
것을 보니까 아무래도 이거 화제를 잘못 돌린 것 같다. 정말로 미치겠구만.
"글쎄요. 사실 처음 사관학교를 나와서 이곳으로 막바로 부임해 온 탓인지
아무래도 적응하기가 쉽지는 않군요. 초짜라고 중대장님도 별로 신임하시진
않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1소대장님만큼이나 믿음직스럽지 못하다는 거겠죠.
그러고보면 1소대장님은 완벽하신데 말이죠. 게다가 부중대장도 나를 약간은
무시하는거 같고 말이죠. 그리고 1소대 부소대장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습니다. 소대원들도 달갑지 않은 것 같고. 게다가 전임 부소대장과는 약간
마찰이 좀 있었죠. 뭐 처음 와서 그런지는 몰라도 나름대로의 신고식일까요?"
아마도 이 소위가 쌓였던 것이 많은가 보다. 그저 내 한마디에 마치 터진 제방
마냥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오늘 저녁에도 일찍 자기는 다 틀린 것 같군.
"그런데 전임 부소대장과는 무슨 이유로 그렇게 다투셨나요?"
"그게 말입니다. 아마도 자기는 이곳에서 오랫동안 생활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많은 조언을 해줬지만 시간이 갈수록 소대를 장악하려고
하더군요. 처음에는 그냥 그러려니 했지만 나중으로 갈수록 자꾸 저를 무시하고
그러다가는 아예 멋대로 일을 처리해서 두 세번 말다툼을 하기까지 했습니다.
결국 중대장님과 상의해 보았지만 오히려 부소대장 하나 제대로 못다룬다면서
오히려 핀잔만 듣고 말았죠. 1소대장님은 딱딱하신 분이라 이런 이야기를 몇번
해봐도 별 도움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냥 이렇게 죽 지내게 된거죠."
뭐 그런 줄거리였군. 뻔한 줄거리다. 아마도 이 일이 좀 커져서 결국 부소대장이
전출을 갔겠지. 어쩐지 아까 중대장도 2소대장을 별로 못미더워하더니. 아무튼
내가 보기에 내 앞에 있는 2소대장 정소위는 나쁜 사람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조금 순하다고나 할까? 하지만 이런 곳에서 생활할 인물은 아닌거 같다.
둘이서 한 2시간동안 술을 마셨을까? 정소위는 나에게 정말로 많은 말들을 했고,
특히나 이곳에 관련된 많은 것들을 알게 해주었다. 예를 들자면 중대장은 아직도
독신이고, 1소대장은 현 중대장과 함께 무려 3년동안이나 같은 부대에서 근무를
했었으며, 또 이미 들었지만 부중대장이 상처했다는 것과, 김중사가 통신하사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 등이다. 사실 김중사 일은 어느정도 예감 했었지만 그래도
정말로 우습지 않을 수 없다. 특히 통신하사가 근육질을 좋아한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다니는 것만 봐도 말이다. 아마 정소위는 나를 많이 믿고있는 것 같다.
그러면 이제 어느정도 술을 좀 먹었으니 내가 궁금했던 점들을 물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아까 내무실을 둘러보던 중에 이상한 점이 있더군요."
"이상한 점이라니요?" / "별건 아닌데 관물대에 무슨 검은 리본이 달려있더군요."
"아, 그거요? 3개월 전에 병사 1명이 사고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달았놨던 겁니다. 마침 그렇지 않아도 떼려고 했었는데, 그것을 보셨나 보군요."
"아, 예. 그런데 왜 숨졌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그러자 정소위는 뭔가 주춤거리더니 결국은 나에게 이야기를 해 주었다.
"아까 전임 부소대장 일에 관한 말을 했었죠? 그 일과도 관련이 깊답니다."
결국 결론은 한 곳으로 모아지는군. 나는 바싹 긴장해서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러니까 약 3개월 전쯤 일입니다. 이곳 한주 콜로니는 상당히 넓지만 그것을
방어하는 우리 중대의 병력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따라서 순찰을 다니는데도
2인 1조나 3인 1조 형식으로 무려 10개조가 동시에 경계 구역을 순찰하는 형편
입니다. 인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병사들끼리도 조가 편성되곤 하죠.
사고가 난 당일에도 평소와 마찬가지로 부소대장은 병사를 데리고 순찰을 돌러
나갔고 저는 부대에서 일직 근무를 맡고 있었죠. 그렇게 평온하기만 하던 그때
갑자기 본부로 무선이 들어오더군요. 그래서 들어보니 바로 부소대장과 함께
순찰을 나갔던 병사의 비명소리가 들리더군요. 그리고는 잠시 후 교신이 끊기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즉각 경계태세를 발령하고 자는 병사들을 깨워서 기동
순찰조를 편성했습니다. 당시 부소대장은 우리가 편의상 나눠놓았던 구역들 중
제 13구역을 순찰중이었습니다. 그래서 즉시 기동 순찰조가 13구역으로 출동을
했습니다. 저는 행정반에서 기다렸지만 정말로 초조해서 못견디겠더군요. 그날
따라 눈도 많이 내리더군요. 이렇게 한 1시간 정도가 지났을까? 급파되었던 기동
순찰조가 부대로 복귀했습니다. 하지만 표정들이 침울한 것을 보고서 아무래도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요. 아니나다를까, 부소대장과 그 같이 간 병사는 행방불명
되었는데, 13구역 근처의 계곡 사이의 바위틈에서 모자와 총등을 발견했답니다.
그들을 찾으려고 근처에서 수색을 했지만 쉽지 않았고, 게다가 눈이 많이 내리는
관계로 발자국마저 남아있지 않아서 결국 수색을 포기하고 돌아왔답니다. 그리고
시체 주위에 있던 무전기는 망가질대로 망가져 있었습니다. 아마도 커다란 돌로
눌렸던 것 같답니다. 결국 상급부대까지 이런사실이 알려졌고 감찰부에서 조사가
나왔는데, 그날 눈이 많이 온 관계로 마침 계곡 옆쪽에 있던 눈과 돌들이 굴러서
떨어지면서 그 옆을 지나던 순찰조를 덮친것으로 결론짓고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최근까지 이 지방에 눈이 많이 내렸던 관계로 이들의 시체 인양은 아무래도 눈이
녹을때까지는 기다려야 할겁니다. 정말로 믿지 못할 일이였습니다. 특히 아직도
죽은 병사가 생각나는군요. 부대 내에서 제일 운동을 잘하는 청년이었는데."
아무래도 사고가 있었던 모양이로군. 어느정도 부대 분위기가 가라앉었던 것도
다 이해가 갔다. 게다가 정소위는 부임하자마자 이러한 일들이 벌어졌으므로 마음
고생이 더 했겠지. 이제는 자연 재해와도 싸워야한다니 나도 앞으로의 고생문이
눈에 선할 따름이다. 그런데 정소위는 아직 내게 할 말이 남아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아직도 이상한 점이 있어요. 어느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곰곰히 따져봤는데 무언가 설명하기 힘든 모순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모순점이라니, 대체 무엇을 말씀하시는거죠?"
"글쎄, 내가 처음 행정반에서 무전을 들었을때는 비명소리밖에 들리지 않았죠.
즉 눈사태 소리는 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보통 무선은 상급자가 하게 되 있죠.
전임 부소대장은 그런것은 잘 지켰는데 말이죠. 그게 아직도 석연치 않습니다."
뭐 사실 눈사태 소리야 순식간의 일이니 못들었을 수도 있고, 만약에 부소대장이
먼저 죽었다면 어쩔수 없이 병사가 무선을 날릴 수 밖에. 일단 오늘은 이정도로
마시기로 했다. 내일 행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소위가 마지막에 했던 말이
왠지 가슴에 걸린다. 설명할수는 없지만 마치 미궁에 빠진듯한 느낌이 들었다.
여러분 모두 제다이 마스터 되세요...
앞으로도 재미있게 써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