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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문학관 - 작가 : nitrocity1
글 수 40
달그락.
내 앞에 놓인 그릇을 바라본다. 희멀건 야채죽이 그릇 밑바닥에 약간 깔려있다.
"후루룩! 쩝쩝쩝!"
내 옆에 앉은 아이들을 바라본다. 이 맛도 영양가도 없는, 음식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것을 마치 진수성찬이라도 되는 것처럼 허겁지겁 먹어댄다.
"네이딘, 배가 고프지 않은 거니? 그래도 조금이라도 먹어두어야지."
내게 친절한 미소를 띄우며 상냥하게 말을 건네는 원장 수녀를 바라본다. 중년에서 할머니로 넘어가는 나이. 자신이 원한다면 그럭저럭 괜찮은 시설이 갖춰진 수녀원에서 편히 지낼수도 있겠지만, 끝끝내 고아원에 남아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지독한 가난이 이곳을 지배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나 세월의 시달림은 젊었을 적엔 아름다웠을 그녀의 모습을 백발의 주름진 할머니로 바꾸어 놓았다.
"아, 아니요... 잠시 딴 생각을 하느라구요.."
최대한 예의바르게 대답하며 나도 허겁지겁 내 앞에 놓인 그릇에 달려든다. 내가 마법사였을 때 먹었던 것에 비하면 정말 형편없지만, 그래도 굶어죽지 않으려면 할 수 없지.
숟가락을 부지런히 움직이며 달력을 본다. 이 마을에 들어온지도 벌써 2년째. 조금만 더 버티면 마력이 돌아올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이 지긋지긋한 생활과도 안녕이다.
처음에 마을에 들어왔을 때, 내 눈에 가장 먼저 띈 것은 관할 교구에서 운영하는 고아원이었다. 개간 농장이란,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엄청난 사람들이 죽어가기 마련이고, 그렇게 죽은 사람들 중에는 자식들만 남겨놓고 먼저 세상을 뜨는 무책임한 부모들도 있기 마련이어서, "신의 뜻에 따라 연약한 생명들을 보살필 의무가 있는" 교직 당국으로서는 고아원 건립과 운영이 기본 의무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실무를 맡고 있는 고위 성직자들 또한 바보는 아니어서,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한다"는 격언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 때문에 이상과 현실의 사이에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내렸고, 그 결과 고아원의 껍데기만 잔뜩 만들어놓고 실질적인 도움은 거의 주지 않으며 명분만 챙기는 관할 교구가 절대 다수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위선에 가득찬 성직자 중에서도 진심으로 신의 뜻에 따라 사랑을 전파하려는 사람은 나오기 마련이고, 특히 견습 수녀나 신입 승려들과 같은 하위 성직에 종사하는 사람들 중에 이 비율이 급격히 높아서, 불행인지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보급 제로에 가까운 이러한 고아원에서도 아이들이 기구한 생명을 그럭저럭 유지시켜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신의 뜻에 따라 사랑을 전파하려는 수녀 눈에, 도움을 필요로 하는 어린아이는 도저히 버릴 수 없는 존재인지라, 내가 엉엉 울며(실제로는 우는 시늉이었다) 가짜 이름을 대며(네이딘은 내가 기르는 고양이 이름이었다) 연이은 흉년과 질병으로 부모를 잃고 이리 저리 떠돌다 도착했다는 거짓말을 하자, 별 의심도 않고 철썩같이 믿었고, 별 도움도 안되는 짐을 하나 더 떠맡는 일을 기꺼이 행한 것이다.
그리고 그 후 2년. 이 빌어먹을 개간 마을은 도무지 발전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겨우겨우 농사를 지어놓으면 마법사들의 전쟁으로 인해 불바다가 되어버리고, 강대국끼리 저주를 주고 받는 여파로 인해 퍼진 흑사병은 약소국에 속한 마을인 이곳까지 번졌다. 남은 사람들은 남고 싶어 남은 사람들이 아닌, 이제 더 이상 이주할 기운도 남아있지 않아 그저 절망적인 삶을 이어갈 뿐인 살아있는 시체들.(그렇다고 진짜 시체라는 소리는 아니다.)
지독한 가난에 견디다 못해 내 탑에 숨겨둔 보물을 약간 가져올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그러다 잘못해서 마스터 타워를 감시하는 적들의 눈에 걸리는 날에는 그대로 저승행이 될 것이 뻔했다.
"자, 다 먹었으면 일하러 나가자꾸나"
아무리 연약한 아이라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해야한다. 나이어린 아이들은 약초나 열매를 채집하러 산으로 올라가고, 좀 머리가 굵은 아이들은 채소밭을 일구는 데 동원된다.
그리고 이런 이유로 해서, 나도 죽을 힘을 다해 곡괭이질을 하고 있다. 황무지를 개간하는 일이 이렇게 힘들 줄이야. 십여명의 아이들이 죽어라 노력해도 1에이커의 땅도 제대로 개간하지 못한다. 마스터 타워에서 편히 앉아 명령만 내리면 몇백 에이커라도 척척 들어오던 때가 꿈처럼 여겨진다.
"퍽, 퍽, 퍽!"
따가운 햇살 아래 어린 몸으로 땅을 개간하는 고아들. 나는 그래도 이전에 익혀둔 호흡법과 수련 덕분에 최소한의 힘으로 가장 효과적인 활동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은 채 몇시간도 지나기 전에 녹초가 되어 쓰러지기 십상이었다. 그 결과, 점심때가 가까워 올 무렵까지 버티고 있는 사람은 나와, 늙은 몸에도 불구하고 뭔가 해보겠다고 안간힘을 쓰는 원장 수녀, 단 두사람 뿐.
"네이딘, 이제 그만 들어가서 점심을 먹자꾸나. 너무 무리하면 안돼요."
"괘, 괜찮아요. 전에 고생을 많이 해봐서 이정도쯤은..."
쩝. 고생이야 많이 했지. 괴팍한 성질의 늙은 네크로맨서 밑에서 수련이랍시고 했던 것에 비하면 이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암, 그렇고 말고.
"이쪽 끝까지만 다 파놓고 들어갈께요, 먼저 들어가세요."
최소한 밥값은 해야 한다는 것이 내 신조니까.
"아이구, 착하기도 하지. 그럼 우리 같이 해서 빨리 끝내도록 하자."
늙은 몸을 이끌고 무리하다가 쓰러지기라도 하면 일거리만 더 는다는 사실을 알고 저러시는 건지..
내가 속으로 걱정하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힘차게 곡괭이질을 시작하....다가 넘어지는 원장님. 내 그럴 줄 알았다니까.
"괜찮으세요? 그래서 제가 먼저 들어가시라고 했잖아요."
"아니, 힘들어서 그런 게 아니라, 땅 속에 커다란 돌이 있는지, 곡괭이에 충격이 와서 그런 거야. 걱정하지 말거라."
땅을 보니, 무언가 반짝이며 빛나는 것이 묻혀 있었다.
"수녀님, 돌이 아니라 무슨 금속 같은데요?"
그 주위의 땅을 파내면 파낼수록, 반짝이는 것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건, 무슨.... 철 같은데....왜 이런 것이 묻혀있는 걸까?"
"아마 전쟁터에서 썼던 방패나, 그런 것 아닐까요?"
그러나 방패라고 하기엔 그 철 덩어리는 너무나 컸다. 다른 아이들까지 모두 불러 땅을 파내려 갔지만 점점 더 큰 실체를 드러내는 거대한 철 덩어리. 결국엔 마을 사람들까지 모두 모여 땅을 파기 시작했다. 아마도 고철을 팔아먹으면 뭔가 한푼이라도 받을 수 있을거라는 생각에서겠지.
그리고 한밤중이 다 되어서야 그 물체는 자신의 온전한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 인간 형태의, 무려 12피트에 이르는 거대한 몸집을 가진 아이언 골렘.
"세상에, 이게 뭐야!"
"괴, 괴물 아니야?"
마을 사람들이 놀라서 수근거리고, 겁 많은 몇몇 아이들은 벌써 집 안으로 도망쳤다.
"아니예요, 이건 아이언 골렘이라고 하는 마법사들의 유물이랍니다. 전에 공부를 하면서 몇번인가 그림을 본 적이 있어요. 하지만 이렇게 클 줄은..."
원장 수녀가 말하자 그제서야 얼마간 진정하는 사람들. 놀라움과 공포가 사라지자 현실이 다가온다.
"그런데, 이거 비싼겁니까?"
굶주린 농부들이 희망에 찬 눈빛으로 물었다.
그러나,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지.
"만약 이 골렘을 움직일 수 있다면 비싸겠지만, 땅 속에 이렇게 오랫동안 묻혀있던 걸로 봐서는 단순한 고철 덩어리에 지나지 않아요."
그럼, 그렇구 말구. 역시 원장 수녀가 제대로 알고 있다. 골렘은 주인 말 외에는 아무것도 듣지 않거든.
"그, 그래도 고철값이라도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마지막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는 마을 사람들. 꿈 깨라구.
"아이언 골렘을 녹이려면 특수한 용광로가 필요해요. 그렇다면 그런 용광로가 있는 나라까지 저걸 옮겨야 하는데, 고철값을 받으려고 저 거대한 골렘을 움직일 필요가 있을까요?"
백번 천번 지당한 말씀이지. 마을 사람들도 그제야 실망한 눈초리로 집에 돌아가기 시작한다.
"그나저나 큰일이네요... 밭 한가운데 이렇게 장애물이 생겨버렸으니..."
지금까지 개간한 밭이 모두 물거품이 되어버릴 판이군.
"걱정하지 말아요, 네이딘. 모든 것은 신의 뜻이니까. 앞으로도 신께서 우릴 도와주실테니 걱정하지 말아요. 자, 이제 그만 들어가서 자야지?"
신의 뜻...이라... 솔직히 말해 테라의 신들이 갖고있는 실체를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군.만약 신들의 의지가 그대로 이 세상에 실현되는 '기적'이 그렇게 밥먹듯이 일어난다면 내가 흑마법을 할 리가 없잖아. 모두들 백마법에만 매달리겠지.
하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네, 원장 수녀님"
착한 아이인 척 하는 것 뿐. 마법력이 돌아올 때까지는 이 생활을 계속 하는 수밖에 없다. 그나저나... 며칠간 죽어라 파놓은 밭이 무용지물이 되어버리다니.
마을 세개정도를 초토화 시키며 주민들을 학살할 때도 흘러나오지 않았던 눈물이 나올것만 같았다.
신들이 고아들을 불쌍히 여겨 아이언 골렘을 치워주는 기적을 행할리는 없었기에, 나는 한창 더 암담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음날.
내 앞에 놓인 그릇을 바라본다. 희멀건 야채죽이 그릇 밑바닥에 약간 깔려있다.
"후루룩! 쩝쩝쩝!"
내 옆에 앉은 아이들을 바라본다. 이 맛도 영양가도 없는, 음식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것을 마치 진수성찬이라도 되는 것처럼 허겁지겁 먹어댄다.
"네이딘, 배가 고프지 않은 거니? 그래도 조금이라도 먹어두어야지."
내게 친절한 미소를 띄우며 상냥하게 말을 건네는 원장 수녀를 바라본다. 중년에서 할머니로 넘어가는 나이. 자신이 원한다면 그럭저럭 괜찮은 시설이 갖춰진 수녀원에서 편히 지낼수도 있겠지만, 끝끝내 고아원에 남아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지독한 가난이 이곳을 지배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나 세월의 시달림은 젊었을 적엔 아름다웠을 그녀의 모습을 백발의 주름진 할머니로 바꾸어 놓았다.
"아, 아니요... 잠시 딴 생각을 하느라구요.."
최대한 예의바르게 대답하며 나도 허겁지겁 내 앞에 놓인 그릇에 달려든다. 내가 마법사였을 때 먹었던 것에 비하면 정말 형편없지만, 그래도 굶어죽지 않으려면 할 수 없지.
숟가락을 부지런히 움직이며 달력을 본다. 이 마을에 들어온지도 벌써 2년째. 조금만 더 버티면 마력이 돌아올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이 지긋지긋한 생활과도 안녕이다.
처음에 마을에 들어왔을 때, 내 눈에 가장 먼저 띈 것은 관할 교구에서 운영하는 고아원이었다. 개간 농장이란,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엄청난 사람들이 죽어가기 마련이고, 그렇게 죽은 사람들 중에는 자식들만 남겨놓고 먼저 세상을 뜨는 무책임한 부모들도 있기 마련이어서, "신의 뜻에 따라 연약한 생명들을 보살필 의무가 있는" 교직 당국으로서는 고아원 건립과 운영이 기본 의무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실무를 맡고 있는 고위 성직자들 또한 바보는 아니어서,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한다"는 격언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 때문에 이상과 현실의 사이에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내렸고, 그 결과 고아원의 껍데기만 잔뜩 만들어놓고 실질적인 도움은 거의 주지 않으며 명분만 챙기는 관할 교구가 절대 다수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위선에 가득찬 성직자 중에서도 진심으로 신의 뜻에 따라 사랑을 전파하려는 사람은 나오기 마련이고, 특히 견습 수녀나 신입 승려들과 같은 하위 성직에 종사하는 사람들 중에 이 비율이 급격히 높아서, 불행인지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보급 제로에 가까운 이러한 고아원에서도 아이들이 기구한 생명을 그럭저럭 유지시켜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신의 뜻에 따라 사랑을 전파하려는 수녀 눈에, 도움을 필요로 하는 어린아이는 도저히 버릴 수 없는 존재인지라, 내가 엉엉 울며(실제로는 우는 시늉이었다) 가짜 이름을 대며(네이딘은 내가 기르는 고양이 이름이었다) 연이은 흉년과 질병으로 부모를 잃고 이리 저리 떠돌다 도착했다는 거짓말을 하자, 별 의심도 않고 철썩같이 믿었고, 별 도움도 안되는 짐을 하나 더 떠맡는 일을 기꺼이 행한 것이다.
그리고 그 후 2년. 이 빌어먹을 개간 마을은 도무지 발전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겨우겨우 농사를 지어놓으면 마법사들의 전쟁으로 인해 불바다가 되어버리고, 강대국끼리 저주를 주고 받는 여파로 인해 퍼진 흑사병은 약소국에 속한 마을인 이곳까지 번졌다. 남은 사람들은 남고 싶어 남은 사람들이 아닌, 이제 더 이상 이주할 기운도 남아있지 않아 그저 절망적인 삶을 이어갈 뿐인 살아있는 시체들.(그렇다고 진짜 시체라는 소리는 아니다.)
지독한 가난에 견디다 못해 내 탑에 숨겨둔 보물을 약간 가져올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그러다 잘못해서 마스터 타워를 감시하는 적들의 눈에 걸리는 날에는 그대로 저승행이 될 것이 뻔했다.
"자, 다 먹었으면 일하러 나가자꾸나"
아무리 연약한 아이라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해야한다. 나이어린 아이들은 약초나 열매를 채집하러 산으로 올라가고, 좀 머리가 굵은 아이들은 채소밭을 일구는 데 동원된다.
그리고 이런 이유로 해서, 나도 죽을 힘을 다해 곡괭이질을 하고 있다. 황무지를 개간하는 일이 이렇게 힘들 줄이야. 십여명의 아이들이 죽어라 노력해도 1에이커의 땅도 제대로 개간하지 못한다. 마스터 타워에서 편히 앉아 명령만 내리면 몇백 에이커라도 척척 들어오던 때가 꿈처럼 여겨진다.
"퍽, 퍽, 퍽!"
따가운 햇살 아래 어린 몸으로 땅을 개간하는 고아들. 나는 그래도 이전에 익혀둔 호흡법과 수련 덕분에 최소한의 힘으로 가장 효과적인 활동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은 채 몇시간도 지나기 전에 녹초가 되어 쓰러지기 십상이었다. 그 결과, 점심때가 가까워 올 무렵까지 버티고 있는 사람은 나와, 늙은 몸에도 불구하고 뭔가 해보겠다고 안간힘을 쓰는 원장 수녀, 단 두사람 뿐.
"네이딘, 이제 그만 들어가서 점심을 먹자꾸나. 너무 무리하면 안돼요."
"괘, 괜찮아요. 전에 고생을 많이 해봐서 이정도쯤은..."
쩝. 고생이야 많이 했지. 괴팍한 성질의 늙은 네크로맨서 밑에서 수련이랍시고 했던 것에 비하면 이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암, 그렇고 말고.
"이쪽 끝까지만 다 파놓고 들어갈께요, 먼저 들어가세요."
최소한 밥값은 해야 한다는 것이 내 신조니까.
"아이구, 착하기도 하지. 그럼 우리 같이 해서 빨리 끝내도록 하자."
늙은 몸을 이끌고 무리하다가 쓰러지기라도 하면 일거리만 더 는다는 사실을 알고 저러시는 건지..
내가 속으로 걱정하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힘차게 곡괭이질을 시작하....다가 넘어지는 원장님. 내 그럴 줄 알았다니까.
"괜찮으세요? 그래서 제가 먼저 들어가시라고 했잖아요."
"아니, 힘들어서 그런 게 아니라, 땅 속에 커다란 돌이 있는지, 곡괭이에 충격이 와서 그런 거야. 걱정하지 말거라."
땅을 보니, 무언가 반짝이며 빛나는 것이 묻혀 있었다.
"수녀님, 돌이 아니라 무슨 금속 같은데요?"
그 주위의 땅을 파내면 파낼수록, 반짝이는 것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건, 무슨.... 철 같은데....왜 이런 것이 묻혀있는 걸까?"
"아마 전쟁터에서 썼던 방패나, 그런 것 아닐까요?"
그러나 방패라고 하기엔 그 철 덩어리는 너무나 컸다. 다른 아이들까지 모두 불러 땅을 파내려 갔지만 점점 더 큰 실체를 드러내는 거대한 철 덩어리. 결국엔 마을 사람들까지 모두 모여 땅을 파기 시작했다. 아마도 고철을 팔아먹으면 뭔가 한푼이라도 받을 수 있을거라는 생각에서겠지.
그리고 한밤중이 다 되어서야 그 물체는 자신의 온전한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 인간 형태의, 무려 12피트에 이르는 거대한 몸집을 가진 아이언 골렘.
"세상에, 이게 뭐야!"
"괴, 괴물 아니야?"
마을 사람들이 놀라서 수근거리고, 겁 많은 몇몇 아이들은 벌써 집 안으로 도망쳤다.
"아니예요, 이건 아이언 골렘이라고 하는 마법사들의 유물이랍니다. 전에 공부를 하면서 몇번인가 그림을 본 적이 있어요. 하지만 이렇게 클 줄은..."
원장 수녀가 말하자 그제서야 얼마간 진정하는 사람들. 놀라움과 공포가 사라지자 현실이 다가온다.
"그런데, 이거 비싼겁니까?"
굶주린 농부들이 희망에 찬 눈빛으로 물었다.
그러나,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지.
"만약 이 골렘을 움직일 수 있다면 비싸겠지만, 땅 속에 이렇게 오랫동안 묻혀있던 걸로 봐서는 단순한 고철 덩어리에 지나지 않아요."
그럼, 그렇구 말구. 역시 원장 수녀가 제대로 알고 있다. 골렘은 주인 말 외에는 아무것도 듣지 않거든.
"그, 그래도 고철값이라도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마지막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는 마을 사람들. 꿈 깨라구.
"아이언 골렘을 녹이려면 특수한 용광로가 필요해요. 그렇다면 그런 용광로가 있는 나라까지 저걸 옮겨야 하는데, 고철값을 받으려고 저 거대한 골렘을 움직일 필요가 있을까요?"
백번 천번 지당한 말씀이지. 마을 사람들도 그제야 실망한 눈초리로 집에 돌아가기 시작한다.
"그나저나 큰일이네요... 밭 한가운데 이렇게 장애물이 생겨버렸으니..."
지금까지 개간한 밭이 모두 물거품이 되어버릴 판이군.
"걱정하지 말아요, 네이딘. 모든 것은 신의 뜻이니까. 앞으로도 신께서 우릴 도와주실테니 걱정하지 말아요. 자, 이제 그만 들어가서 자야지?"
신의 뜻...이라... 솔직히 말해 테라의 신들이 갖고있는 실체를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군.만약 신들의 의지가 그대로 이 세상에 실현되는 '기적'이 그렇게 밥먹듯이 일어난다면 내가 흑마법을 할 리가 없잖아. 모두들 백마법에만 매달리겠지.
하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네, 원장 수녀님"
착한 아이인 척 하는 것 뿐. 마법력이 돌아올 때까지는 이 생활을 계속 하는 수밖에 없다. 그나저나... 며칠간 죽어라 파놓은 밭이 무용지물이 되어버리다니.
마을 세개정도를 초토화 시키며 주민들을 학살할 때도 흘러나오지 않았던 눈물이 나올것만 같았다.
신들이 고아들을 불쌍히 여겨 아이언 골렘을 치워주는 기적을 행할리는 없었기에, 나는 한창 더 암담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음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