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센 모래폭풍은 이너스피어로부터도, 클랜으로부터도 멀리 떨어진 이곳 마이누스 성계의 4번째 행성 아이탈록스 에서는 무척이나 흔한 일이다. 행성 전체를 휘감는 건조하고 불안정한 대기는 언제라도 지표의 자성 모래를 하늘로 불러올렸고, 그럴때마다 약 200여년전 이 행성에 정착했다는 영광된 '노블 페데럴 익스플로러'의 자손들은 전자 레인지의 오동작으로 저녁식사를 설익은 오트밀로 때워야만 했다.

"길고 지루한 밤이 될것 같아."

메이는 모래폭풍이 좋았다. 사실 모래폭풍이야 불지 않는 날보다 부는 날이 더 많았고, 모래폭풍이 부는 날이면 실끝잡듯이 간신히 들리는 라디오 채널도, 발전기도, 바로 옆집과의 전화선 조차도 마비되어 버리기에 다음 아침까지 무척 지루하고 심심하긴 했지만, 모래폭풍이 불지 않는날이면 어김없이 벌어지는 데거 엣지스 끝자락에 위치한 메이의 작은 퍼브에서의, 클랜과 이너 스피어의 전쟁과도 같은 소란스러운 포도주 파티는 메이로서는 그것이 비록 돈이 된다고는 해도 지겨운 일이였다.
"길고 지루한 밤이 될것 같아. 호키. 그렇지?"
테이블 아래에서 한가로이 먼지덩이를 가지고 놀던 작은 번치스 베넘 캣 한마리가 메이의 어깨위로 가볍게 뛰어 올랏다. 스모크 재규어가 힘과 전쟁의 상징이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이 번치스 배넘 캣은 가히 애교와 뇌살의 상징이라고 해도 좋을만큼 우아하고 가벼운 몸짓이였다. 그러나 아무리 번치스 배넘 캣이 우아하고 아름답다고 해도 그것을 애완동물로 기르는 사람은 이곳 대거 엣지스 - 아니 아이탈록스 행성 전체뿐 아니라 이너 스피어 전체를 뒤져도 메이 한사람뿐일 것이다.-적어도 흔치는 않을 것이다. 귀엽고 자그마한 자태와는 달리 송곳니 뒷쪽에 강력한 맹독을 분비하는 주머니가 있기 때문이다. 메이역시 그 위험한 독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호키가 적어도 자기 자식을 죽이려 드는것이 아닌한 메이를 절대 물지 않을 것이라는것도 메이는 잘 알고 있었다.
"길고 지루한 밤이 될것 같아. 호키. 그렇지?" 지난 4시간 동안 단 세마디의 말을, 그것도 같은 말을 세번이나 하고 나서 메이는 촌장님의 권유대로 결혼이라도 해볼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부모님이 도적단의 습격으로 돌아가신지도 3년째, 똑똑하고 눈치빠른 메이는 부모님이 남겨주신 이 작은 퍼브를 무척 잘 이끌어 나가고 있었다. 간혹 술취한 남자들의 잠자리 요구에 응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때문에 처참한 기분에 빠지곤 했지만, 그녀는 그녀와 하룻밤을 보내고 나서 마치 그녀의 주인인듯 행세하는 남자들을 떨쳐버릴수 있는 충분한 지혜와 -그리고 이제와서는 숙련된 노우하우가 있었다. 거기에 덧붙여 그 남자의 아내들이 행패를 부릴때에 어떻게 하면 되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이 두가지 기술에 맛있게 스튜를 끓이는 기술 한가지만 더 가지고 있으면, 데거 엣지스 유일의 퍼브가 잘 운영되지 않을리 없었다. 사실, 술에 잔뜩 취한 남자들은 스튜만 맛있다면, 간혹 새로 통을 개봉한 포도주라는 술에서 공업용 알콜 냄새가 나도 그다지 개의치 않았다. 요는 맛있는 스튜를 안주삼아 술에 취하면 되는 일이였다. 게다가 공업용 알콜이란 포도주에 비해 절대적으로 저렴한 것이였다.
그런 그녀도 이제는 스물셋. 보통의 여자들이 열 여섯 일곱 정도면 큰 농장에 팔려나가듯 결혼을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메이는 결혼이 무척 늦은 셈이였다. 이제와서, 그녀와 결혼을 하겠다는 남자들의 생각은 십중팔구는...
"내 퍼브가 탐나는 걸꺼야. 그렇지. 호키?" 메이는 피식 웃으며 결혼에 대한 생각을 접어 버렸다. 그리고 다시, 지루한 밤이 찾아왔다.
"길고 지루한 밤이 될것 같아. 호키. 그렇지?" 작은 번치스 베넘 캣이 메이의 어깨에서 퍼브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번치스 베넘 캣에게 지루하다는 건 없어 라는듯 경쾌한 몸놀림이였다. 번치스 베넘 캣 넘어로 잔뜩 지저분해진 가죽 부츠가 보였다. 오 세상에... 이런 모래폭풍을 뚫고 누군가 와인을 마시러 온 것이다!!!

"하룻밤 묵을수 있겠소?" 모래와 태양열에 새까맣게 쪼들린 모습의 작고 외소한 사내였다. 아무렇게나 자란 수염에 군데군데 썩어들어가는 이빨때문에 다만 저 깊고 고요한 눈빛이 아니였다면, 메이는 하마터면 조리용 식칼을 던질뻔 했다.
"아니아니, 식칼 말고 빈방 말이오. 묵을수 있소?"
"당신... 돈은 있나요?"
남자는 가만히 자기 허리춤을 두들겼다. 차랑차랑하는 경쾌한 소리에 메이는 머리위로 치켜든 식칼을 내려놓고 객실의 열쇠를 꺼내어 들었다.
"근데 당신 뒤 저 사람은...?"
하얗고 고운 피부. 대단한 미인이였지만, 이마의 문신은 분명 노예의 것이였다.
"당신 건가요?"
"아... 예."
"저건 내 퍼브에 들이지 말아요."
"하지만, 모래폭풍이 이렇게 심한데... 50셀을 더 낼테니 어떻게 안 되겠소?"
"100셀을 낸다면 축사에서 내 돼지들과 같이 자게 해 주지. 그렇지만 저 더러운 손으로 내 돼지들은 만지지 말라고 해요."
남자가 뭐라고 다시 말을 하려고 하자 뒤에 서있던 노예가 가만히 그를 잡아당겼다. 감히 노예가! 하긴 모래폭풍이 분다고 방에서 노예를 재워야겠다는 물러빠진 주인이니 노예가 주인을 우습게 볼만도 하다. 메이는 구역질이 날려고 했다.
"이봐요. 내게 아주 성능좋은 일레쇼크 채찍이 있는데,"
"...?"
"당신 노예 버릇좀 가르칠 것이 아니라면, 그만 돈 내고 그 노예는 축사로 보내는게 어때?"
"알겠소. 기분 상하게 해 미안하오."
"알긴 아는군. 축사는 저쪽에, 재갈은 이쪽에."
"도망가진 않을거요."
"내가 기분 나빠요. 묶어놔요."
남자는 하는수 없다는 듯 재갈을 챙겨들고 문을 나섰다. 메이는 남자의 뒷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그 남자의 저녁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일어섰다. 비록 데거 엣지스에서 본적이 없는 사람이였지만, 그가 누군지, 그의 식성이 어떤지는 알 필요도 없었고, 알고 싶지도 않았으므로, 그를 위한 저녁식사는 맛있는 오트밀에 공업용 알콜이 잔뜩 섞인 포도주면 될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