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링커 1979년 - 작가 - 요한(windkju)
글 수 29
링커
14.
나는 고민해야 했다. 그녀가 묻는 말에 어떻게 답해야 할까. 나의 이름? 그런것은 아닐테다. 아마도 연금술사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그럴 것이다. 나는 대답했다.
「조슈. 연금술사입니다.」
「조슈? 정말 조슈? 가명이나 그런게 아니라 정말 조슈인가?」
그녀의 질문은 좀 이상했다. 내가 조슈일 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아니 내가 조슈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게다가 연금술사라고 밝혔음에도 그녀는 전혀 놀라고 있지 않았다. 내가 연금술사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나는 침착함을 가장하여 대답했다.
「조슈입니다.」
「글세. 제레미는 네가 드미트리라고 하던데. 이봐. 속이려고 하지 말란 말이야. 알았어? 나는 네가 드미트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 속여봐야 소용없지. 어차피 나는 드리트리 외에는 필요가 없으니까.」
그녀의 말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했다. 드미트리가 아니라면 죽인다. 라는 것이다. 나는 고개를 돌려 주위를 보았다. 주위에 세명 정도가 서 있었다. 그들은 우리의 대화에 관심이 있는지 유심히 듣고 있었다. 그러다 그들 중 한명과 눈이 마주치자 그는 잔인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머리 굴리지마. 드미트리. 난 네가 꼭 필요하단 말이야. 알겠어? 그런데 확실히 네가 드미트리여야만 해.」
나는 답답함을 느꼈다. 그때 문이 열리고 아까의 남자가 들어왔다. 그런데 그는 다른 사람과 동행하고 있었다. 나와 같이 포로인 것인지 몸이 묶여있었다. 그런데 그의 모습은 낯이 익었다. 한참을 생각하다가 떠올랐다. 다비드의 별. 그의 어깨에는 다비드의 별이 붙어있었다.
「제레미가 왔군. 이봐. 제레미 어떻게 된거지? 이자는 자신이 드미트리가 아니라고 하는데?」
제레미는 나를 힐끗 바라보더니 중얼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드미트리가 확실합니다. 나와 같이 열차를 타고 왔으니 분명할 거 아닙니까.」
「거짓말! 난 드미트리가 아냐!」
난 발악하듯 외쳤다. 그러나 그때 발치에 파박하고 박히는게 있었다. 나는 움직일 겨를도 없이 몸이 굳었다. 그것이 없었으면 나는 제레미에게 달려들었을 것이다. 나의 발 앞에는 5펜스 동전이 꽂혀있었다.
「움직이지마. 다음번엔 가슴으로 날아갈테니.」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의자에 편안하게 몸을 기대었다. 나른함을 느낀 것인지 하품을 하고는 손을 까닥였다. 그러자 남자가 들고 있던 물건을 그녀에게 내려놓았다. 나의 가방도 그 속에 있었다. 그녀는 정확하게 나의 가방을 열어서 뒤적거렸다. 그녀의 손이 가방 밖으로 빠져나왔을 때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녀의 손에 들려있는 것은 ‘빛나는 보석’이었다.
「이것은 누구것이지? 아무래도 네것 같은데?」
나는 눈을 뜨고 그녀의 손을 보았다. 주먹보다 약간 작은 그 보석은 몇 년전 발굴해낸 것이다. 지중해연안의 무인도에 있던 그 보석은 평범한 보석이 아니었다. 그러나 연금술사가 아닌 사람에게는 고작 토파즈일 뿐이었다. 아니 고작이 아니었다. 저정도 크기의 보석은 이미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일테니. 그녀는 눈이 부시다는 듯 그 보석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아름다워. 매우 아름답지.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것이 일반적인 보석인 것 같지 않단 말이야. 나는 이런 토파즈는 본적이 없어. 토파즈가 이런 크기로 나올 수 있는건가?」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저것을 발견한뒤로 계속 매진했지만, 그것을 깰수 없었다. 요한의 연금술이 있다면 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몽골로 가고 있었다. 그런데 빼앗겨버리고 말았다. 되찾을 수 있을까? 나의 고민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는 다시금 말했다.
「이건 네것이지?」
「.......제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이지? 일반적인 보석이 아닌거야. 그치?」
「그것은......‘창조의알’입니다.」
창조의알. 생명이 그곳에서부터 만들어졌다고 하는 전설중에 하나이다. 나는 그것에 대해 조사하던 중에 지중해연안의 무인도에서 저것을 발굴해냈다. 저것을 깰수 있다면 창조를 볼 수 있었다. 생명의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그녀는 나의 말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되물었다.
「이것이 창조의알? 그것은 전설 아니던가? 이거 이거. 다른 의미로 너의 정체가 궁금해지는데? 정말 드미트리가 아닌건가. 도대체 너의 정체는 뭐야?」
「나는.....조슈입니다.」
그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15.
어두운 지하실에서 생각했다. 도망쳐야 한다. 그러나 어떻게? 방법이 없었다. 다행히 발은 다시 묶지 않았다. 적어도 지하실 안에서는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러나 주위를 돌아다니면서 확인해 본 결과, 벽은 온통 돌이었다.
그러니까 바닥의 암반을 깍아서 만든 지하실인듯 했다.
쓸모있는 물건이라도 있을까 보았지만 전혀 그런 것은 없었다. 고작 낡아빠진 나무의자와 몇가지 잡동사니들 뿐이었다. 그것으로는 무기도 만들 수 없었다. 홀러에 대한 아쉬움이 더했다. 그것이 제대로 작동되고 내 손에 쥐어져있다면. 빌어먹을. 방법이 없었다.
「믿어주세요. 그는 정말 악마입니다.」
제레미의 격앙된 목소리가 위에서 들려왔다.
「난 상관없는데?」
「무,무슨! 당신은 미카엘을 돕고 있잖아! 그는 악마란 말이야!」
뭔가 제레미는 자신을 변호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도대체 저것은 무슨 말이지? 게다가 그는 왜 나를 드미트리라고 말했을까. 그리고 왜 그는 혼자밖에 없을까? 설마하니. 정말 잡아먹은 건가. 피로 흥건한 육체를 씹어먹은.......그럴 리가 없겠지.
「난 상관없다니까. 내가 필요한건 두 사람뿐이야. 너와 드미트리. 그런데......드미트리는 어디간거지?」
「.......」
제레미의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소리가 너무 작았다. 확실히 코인마스터도 내가 드미트리가 아닌것을 안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렇다는 것은 나에게 아무 이용가치가 없다는 것일테다. 난 죽을 것이다. 그러니 빨리 도망쳐야 한다.
「믿을 수가 없군.」
「믿어야 합니다! 그 약을 먹은 사람들은 모조리 그렇게 변해버리고 맙니다. 제발 절 믿어주세요. 미카엘에게 나를 넘겨주면 난 죽는단 말이야!」
「아 그건 내 상관할바 아니지만. 그 약이라는 것에는 흥미가 동하는군. 그래. 그 약이 그런 위력이 있단 말이지?」
둘의 대화를 들으며 나는 다시한번 지하실 안을 둘러보았다. 적어도 묶여있는 팔을 풀만한 도구가 필요했다. 날카로운 것. 그러나 발견할 수 없었다. 고작 밧줄더미 하나를 발견한 것이 수확이라면 수확이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어찌한단 말인가. 몸을 여러번 묶기라도 할건가.
「아 일단. 미카엘이 오면 확인이 되겠지. 이봐 잘 지켜.」
「안돼! 미카엘이 오면! 제발!」
삐걱.
다시 지하실의 문이 열리고, 저항하던 제레미가 나가떨어졌다. 제레미를 민 듯한 남자는 물끄러미 서있는 나를 힐끗 바라보고는 문을 닫아버렸다. 나는 불쾌한 마음이 들었지만, 제레미에게 다가갔다. 그는 바닥에 엎어진채 움직이지 않았다.
「이보세요.」
「말 걸지마.」
그의 음울한 음성에 나는 그에게서 물러섰다. 하지만 그도 묶여있었다. 그가 나를 공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약간의 동정심을 발휘해서 그에게 다시 다가갔다. 그는 무엇인가를 계속 중얼거리고 있었다. 유심히 들어보니.
「달아나야해. 달아나야해. 달아나야해. 달아나야해......」
「이보세요. 제레미.」
그가 나를 돌아보았다. 그의 눈에는 절망감이 뚝뚝떨어지다 못해, 암흑처럼 퀭하게 보였다. 동정심이 들었다. 같이 갇혀있는 입장이었지만, 그는 이 상황을 더욱 심하게 느끼고 있는 듯했다. 어쩌면 내가 적절한 반응을 하지 못하는 건지도. 그때 나의 눈에 그의 어깨에 찬 다비드의 별이 보였다. 다비드의 별. 그 모서리는 꽤 날카로워 보였다.
16.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나의 계획을 들은 그도 나에게 공감해 주었다. 밤이 되면 몰래 밧줄을 풀고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그리 힘든일은 아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건물은 높은 바위에 잇닿게 세워진 건물이라고 했다. 근처에 두어건물이 더 있었지만 밖으로 빠져나가면 눈보라가 치고 있으니까, 충분히 어둠과 눈보라를 틈타 멀리 달아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밤이되는 것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위에서 비쳐지는 불빛이 어두워지기를 기다렸다. 혹시 모르니 사람의 목소리가 없어지는 시간을 노려야했다.
기다리는 동안 나는 그에게 물었다.
「왜 나를 드미트리라고 말한 겁니까?」
「어쩔수 없었소. 빌어먹을. 드미트리는 죽어버렸으니까. 그런데 저 놈들이 죽었다고해도 믿어주지를 않으니.......미안합니다.」
「아니 괜찮습니다. 그나저나 왜 저들은 당신을 찾고 있었던 거지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저들은 당신들을 찾기 위해 열차를 턴것 같은데......」
그는 잠시 망설였다. 나는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한참 후에 그가 침묵을 걷어내며 속삭였다.
「말해줄 수가 없군요. 단지......의뢰를 받았을 겁니다. 미카엘이라는 사람에게.」
「그렇군요. 그런데......아니 솔직히 고백하겠습니다. 당신들의 대화를 엿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당신들은 누리살에 대해 이야기 하더군요. 예전에 그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당신은 그것에 대한 관계자입니까?」
그의 눈빛에 경계심이 흘렀다. 한참을 바라보던 그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저는 도망자입니다.」
「네?」
「저는 누리살에서 도망나왔지요. 그들은 그래서 나를 찾고 있습니다. 이미 들었다면 아시겠지만.......전 나치차일드입니다.」
나치차일드. 히틀러의 아이들과 같은 말이었다. 그들이 자신을 나치차일드라고 부른다는 것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 실험에서 살아남은 사람이었다. 호기심이 다시 불붙듯 일어났다. 나는 흥분된 마음을 감추려 노력하며 그에게 물었다.
「도대체 누리살에서 어떤 일이 있었던 겁니까?」
나의 물음에 그의 얼굴에 공포가 스쳐지나갔다. 두려움. 공포. 그는 바들거리는 자신의 몸을 주체할 수 없는지 몸을 더욱 움츠렸다. 밧줄 때문에 여의치 않았던지 그는 아예 몸을 푹 숙여버렸다. 그의 눈빛을 볼 수 없었지만, 아마도 검게 타들어가고 있을 것 같았다. 그는 몸을 숙인채로 음울하게 말했다.
「지옥이었습니다. 그곳은......」
그 뒤로 그는 말을 잇지 않았다. 그리고 나도 더 이상 물어볼 수 없었다. 한참을 침묵에 잠겨있는 시간이 지나갔다. 나는 고개를 들어 시간을 가늠해보았다. 사람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육감적으로 밤이 늦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남아있던 마지막 밧줄을 마저 끊었다. 혹시나 들킬까봐 남겨두었던 밧줄이었다. 다비드의 별 모서리는 생각보다 튼튼해서 밧줄은 쉽게 끊어졌다. 그의 밧줄도 풀어주며 말했다.
「제레미. 빨리 달아납시다.」
「조,좋아요. 빌어먹을 곳에서 빨리 벗어납시다.」
살그머니 지하실의 문으로 다가갔다. 위로 열리게 되어있는 지하실의 문틈을 통해 밖을 바라보았다. 시야는 좁았지만, 시야에 걸리는 사람들은 없었다. 모두 자러간 것일 확률이 높았다. 마음속으로 여러번 고민하며 문을 슬며시 들었다.
정면에는 아무런 사람도 없었다.
모닥불이 타고 있었지만, 어두워져 가는 모닥불은 새 장작을 넣은지 꽤 오래되어 보였다. 내가 문을 열고 망설이고 있자 뒤에서 제레미가 속삭였다.
「아무도 없으면 빨리 나갑시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밖으로 조심스레 나갔다. 그러나 고개를 돌렸을 때 나는 심장이 떨어지는 기분을 느꼈다. 한사람이 의자에 앉아있었다. 그러나 곧 나는 그가 움직일 수 없는 상황임을 깨달았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자고 있었다. 아마도 보초를 서고 있는 모양이었다. 만약 그가 잠들지 않았다면 어쩔뻔 했을지 생각하기도 끔찍했다. 나는 제레미에게 신호를 주어 사람이 있음을 알렸다. 그도 알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조심스레 밖의 창을 바라보았다. 먼지가 잔뜩낀 창에는 밖이 전혀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어두컴컴한 탓에 집안이 반사되어서 더욱 그러했다. 운을 믿고 나가보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원래 계획은 창문으로 나가는 것이었지만, 겹창이라 열리지 않았다. 다행히 문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양쪽으로 집 두채가 있었지만 두 집 역시 불이 꺼져있었다. 보초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나 눈보라도 없었다.
나와 제레미는 어두운 밤을 벗삼아 몸을 숙이고 걸어갔다. 귀신들이 솟아날 것 같은 어두운 밤에는 별하나 보이지 않았다. 구름이 잔뜩 끼여서 안개처럼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한참을 걸어나오자, 우리는 우리의 운에 감사를 보냈다. 그들의 시야에서 완전히 벗아났다. 이제는 달려가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나 그때 나는 달려갈 수 없었다.
창조의알.
그것이 있어야 했다.
「미쳤소? 다시 그곳에 들어가기라도 한단 말입니까?」
그의 말에 백배공감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버려두고 올 수 없었다. 나의 필생의 염원. 그것이 없다면 죽느니만 못했다.
「도대체 그게 무엇이길래 그럽니까? 목숨과 바꿀만큼 소중한 것입니까?」
「그것은...... 생명 그자체입니다. 당신에게 도와줄 것을 요구하지 않겠습니다. 당신은 먼저 떠나세요. 저는 그것을 가지고 다시 나오겠습니다.」
그는 난감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에게 고개를 숙이고 몸을 돌렸다. 그때 그가 나를 다시 불렀다. 내가 멈추지 않자, 그는 나에게 달려와 나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나의 손에 무엇인가를 쥐어주었다.
「이것은 나의 목숨을 살려준 빚 때문에 주는 것입니다. 위급한 순간에 이것을 먹으세요. 그러나 먹고 난뒤 10초안에 반드시 붉은 색 약을 먹어야 합니다. 10초입니다. 10초. 순서가 바뀌어도 안됩니다. 알겠습니까? 꼭 지킨다면 다시는 나를 만날일이 없을 겁니다.」
그는 몇가지 상세한 이야기를 덧붙였다. 나는 그 약의 효능에 놀라워하며 되물었다.
「이것이 그 약이군요.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약.」
「그 따위 것이 아니오. 이것은 악마의 약입니다. 제발 부탁이니 꼭 10초안에 먹으시요. 그 시간을 넘겨버리면 당신도 왜 그 약이 악마의 약인지 알게 될 겁니다.」
그는 재차 주의를 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의 손을 꼭 부여잡고 말했다.
「고맙습니다. 제레미.」
「행운을 빕니다.」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다. 그러나 그 때는 앞으로의 일을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그와 어떻게 다시 만나게 되고, 또 어떤 필연적인 일을 겪게 되는 것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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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계속합니다.
읽어주시는 분들 감사드립니다. ^^;;
14.
나는 고민해야 했다. 그녀가 묻는 말에 어떻게 답해야 할까. 나의 이름? 그런것은 아닐테다. 아마도 연금술사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그럴 것이다. 나는 대답했다.
「조슈. 연금술사입니다.」
「조슈? 정말 조슈? 가명이나 그런게 아니라 정말 조슈인가?」
그녀의 질문은 좀 이상했다. 내가 조슈일 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아니 내가 조슈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게다가 연금술사라고 밝혔음에도 그녀는 전혀 놀라고 있지 않았다. 내가 연금술사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나는 침착함을 가장하여 대답했다.
「조슈입니다.」
「글세. 제레미는 네가 드미트리라고 하던데. 이봐. 속이려고 하지 말란 말이야. 알았어? 나는 네가 드미트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 속여봐야 소용없지. 어차피 나는 드리트리 외에는 필요가 없으니까.」
그녀의 말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했다. 드미트리가 아니라면 죽인다. 라는 것이다. 나는 고개를 돌려 주위를 보았다. 주위에 세명 정도가 서 있었다. 그들은 우리의 대화에 관심이 있는지 유심히 듣고 있었다. 그러다 그들 중 한명과 눈이 마주치자 그는 잔인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머리 굴리지마. 드미트리. 난 네가 꼭 필요하단 말이야. 알겠어? 그런데 확실히 네가 드미트리여야만 해.」
나는 답답함을 느꼈다. 그때 문이 열리고 아까의 남자가 들어왔다. 그런데 그는 다른 사람과 동행하고 있었다. 나와 같이 포로인 것인지 몸이 묶여있었다. 그런데 그의 모습은 낯이 익었다. 한참을 생각하다가 떠올랐다. 다비드의 별. 그의 어깨에는 다비드의 별이 붙어있었다.
「제레미가 왔군. 이봐. 제레미 어떻게 된거지? 이자는 자신이 드미트리가 아니라고 하는데?」
제레미는 나를 힐끗 바라보더니 중얼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드미트리가 확실합니다. 나와 같이 열차를 타고 왔으니 분명할 거 아닙니까.」
「거짓말! 난 드미트리가 아냐!」
난 발악하듯 외쳤다. 그러나 그때 발치에 파박하고 박히는게 있었다. 나는 움직일 겨를도 없이 몸이 굳었다. 그것이 없었으면 나는 제레미에게 달려들었을 것이다. 나의 발 앞에는 5펜스 동전이 꽂혀있었다.
「움직이지마. 다음번엔 가슴으로 날아갈테니.」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의자에 편안하게 몸을 기대었다. 나른함을 느낀 것인지 하품을 하고는 손을 까닥였다. 그러자 남자가 들고 있던 물건을 그녀에게 내려놓았다. 나의 가방도 그 속에 있었다. 그녀는 정확하게 나의 가방을 열어서 뒤적거렸다. 그녀의 손이 가방 밖으로 빠져나왔을 때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녀의 손에 들려있는 것은 ‘빛나는 보석’이었다.
「이것은 누구것이지? 아무래도 네것 같은데?」
나는 눈을 뜨고 그녀의 손을 보았다. 주먹보다 약간 작은 그 보석은 몇 년전 발굴해낸 것이다. 지중해연안의 무인도에 있던 그 보석은 평범한 보석이 아니었다. 그러나 연금술사가 아닌 사람에게는 고작 토파즈일 뿐이었다. 아니 고작이 아니었다. 저정도 크기의 보석은 이미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일테니. 그녀는 눈이 부시다는 듯 그 보석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아름다워. 매우 아름답지.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것이 일반적인 보석인 것 같지 않단 말이야. 나는 이런 토파즈는 본적이 없어. 토파즈가 이런 크기로 나올 수 있는건가?」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저것을 발견한뒤로 계속 매진했지만, 그것을 깰수 없었다. 요한의 연금술이 있다면 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몽골로 가고 있었다. 그런데 빼앗겨버리고 말았다. 되찾을 수 있을까? 나의 고민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는 다시금 말했다.
「이건 네것이지?」
「.......제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이지? 일반적인 보석이 아닌거야. 그치?」
「그것은......‘창조의알’입니다.」
창조의알. 생명이 그곳에서부터 만들어졌다고 하는 전설중에 하나이다. 나는 그것에 대해 조사하던 중에 지중해연안의 무인도에서 저것을 발굴해냈다. 저것을 깰수 있다면 창조를 볼 수 있었다. 생명의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그녀는 나의 말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되물었다.
「이것이 창조의알? 그것은 전설 아니던가? 이거 이거. 다른 의미로 너의 정체가 궁금해지는데? 정말 드미트리가 아닌건가. 도대체 너의 정체는 뭐야?」
「나는.....조슈입니다.」
그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15.
어두운 지하실에서 생각했다. 도망쳐야 한다. 그러나 어떻게? 방법이 없었다. 다행히 발은 다시 묶지 않았다. 적어도 지하실 안에서는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러나 주위를 돌아다니면서 확인해 본 결과, 벽은 온통 돌이었다.
그러니까 바닥의 암반을 깍아서 만든 지하실인듯 했다.
쓸모있는 물건이라도 있을까 보았지만 전혀 그런 것은 없었다. 고작 낡아빠진 나무의자와 몇가지 잡동사니들 뿐이었다. 그것으로는 무기도 만들 수 없었다. 홀러에 대한 아쉬움이 더했다. 그것이 제대로 작동되고 내 손에 쥐어져있다면. 빌어먹을. 방법이 없었다.
「믿어주세요. 그는 정말 악마입니다.」
제레미의 격앙된 목소리가 위에서 들려왔다.
「난 상관없는데?」
「무,무슨! 당신은 미카엘을 돕고 있잖아! 그는 악마란 말이야!」
뭔가 제레미는 자신을 변호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도대체 저것은 무슨 말이지? 게다가 그는 왜 나를 드미트리라고 말했을까. 그리고 왜 그는 혼자밖에 없을까? 설마하니. 정말 잡아먹은 건가. 피로 흥건한 육체를 씹어먹은.......그럴 리가 없겠지.
「난 상관없다니까. 내가 필요한건 두 사람뿐이야. 너와 드미트리. 그런데......드미트리는 어디간거지?」
「.......」
제레미의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소리가 너무 작았다. 확실히 코인마스터도 내가 드미트리가 아닌것을 안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렇다는 것은 나에게 아무 이용가치가 없다는 것일테다. 난 죽을 것이다. 그러니 빨리 도망쳐야 한다.
「믿을 수가 없군.」
「믿어야 합니다! 그 약을 먹은 사람들은 모조리 그렇게 변해버리고 맙니다. 제발 절 믿어주세요. 미카엘에게 나를 넘겨주면 난 죽는단 말이야!」
「아 그건 내 상관할바 아니지만. 그 약이라는 것에는 흥미가 동하는군. 그래. 그 약이 그런 위력이 있단 말이지?」
둘의 대화를 들으며 나는 다시한번 지하실 안을 둘러보았다. 적어도 묶여있는 팔을 풀만한 도구가 필요했다. 날카로운 것. 그러나 발견할 수 없었다. 고작 밧줄더미 하나를 발견한 것이 수확이라면 수확이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어찌한단 말인가. 몸을 여러번 묶기라도 할건가.
「아 일단. 미카엘이 오면 확인이 되겠지. 이봐 잘 지켜.」
「안돼! 미카엘이 오면! 제발!」
삐걱.
다시 지하실의 문이 열리고, 저항하던 제레미가 나가떨어졌다. 제레미를 민 듯한 남자는 물끄러미 서있는 나를 힐끗 바라보고는 문을 닫아버렸다. 나는 불쾌한 마음이 들었지만, 제레미에게 다가갔다. 그는 바닥에 엎어진채 움직이지 않았다.
「이보세요.」
「말 걸지마.」
그의 음울한 음성에 나는 그에게서 물러섰다. 하지만 그도 묶여있었다. 그가 나를 공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약간의 동정심을 발휘해서 그에게 다시 다가갔다. 그는 무엇인가를 계속 중얼거리고 있었다. 유심히 들어보니.
「달아나야해. 달아나야해. 달아나야해. 달아나야해......」
「이보세요. 제레미.」
그가 나를 돌아보았다. 그의 눈에는 절망감이 뚝뚝떨어지다 못해, 암흑처럼 퀭하게 보였다. 동정심이 들었다. 같이 갇혀있는 입장이었지만, 그는 이 상황을 더욱 심하게 느끼고 있는 듯했다. 어쩌면 내가 적절한 반응을 하지 못하는 건지도. 그때 나의 눈에 그의 어깨에 찬 다비드의 별이 보였다. 다비드의 별. 그 모서리는 꽤 날카로워 보였다.
16.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나의 계획을 들은 그도 나에게 공감해 주었다. 밤이 되면 몰래 밧줄을 풀고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그리 힘든일은 아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건물은 높은 바위에 잇닿게 세워진 건물이라고 했다. 근처에 두어건물이 더 있었지만 밖으로 빠져나가면 눈보라가 치고 있으니까, 충분히 어둠과 눈보라를 틈타 멀리 달아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밤이되는 것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위에서 비쳐지는 불빛이 어두워지기를 기다렸다. 혹시 모르니 사람의 목소리가 없어지는 시간을 노려야했다.
기다리는 동안 나는 그에게 물었다.
「왜 나를 드미트리라고 말한 겁니까?」
「어쩔수 없었소. 빌어먹을. 드미트리는 죽어버렸으니까. 그런데 저 놈들이 죽었다고해도 믿어주지를 않으니.......미안합니다.」
「아니 괜찮습니다. 그나저나 왜 저들은 당신을 찾고 있었던 거지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저들은 당신들을 찾기 위해 열차를 턴것 같은데......」
그는 잠시 망설였다. 나는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한참 후에 그가 침묵을 걷어내며 속삭였다.
「말해줄 수가 없군요. 단지......의뢰를 받았을 겁니다. 미카엘이라는 사람에게.」
「그렇군요. 그런데......아니 솔직히 고백하겠습니다. 당신들의 대화를 엿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당신들은 누리살에 대해 이야기 하더군요. 예전에 그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당신은 그것에 대한 관계자입니까?」
그의 눈빛에 경계심이 흘렀다. 한참을 바라보던 그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저는 도망자입니다.」
「네?」
「저는 누리살에서 도망나왔지요. 그들은 그래서 나를 찾고 있습니다. 이미 들었다면 아시겠지만.......전 나치차일드입니다.」
나치차일드. 히틀러의 아이들과 같은 말이었다. 그들이 자신을 나치차일드라고 부른다는 것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 실험에서 살아남은 사람이었다. 호기심이 다시 불붙듯 일어났다. 나는 흥분된 마음을 감추려 노력하며 그에게 물었다.
「도대체 누리살에서 어떤 일이 있었던 겁니까?」
나의 물음에 그의 얼굴에 공포가 스쳐지나갔다. 두려움. 공포. 그는 바들거리는 자신의 몸을 주체할 수 없는지 몸을 더욱 움츠렸다. 밧줄 때문에 여의치 않았던지 그는 아예 몸을 푹 숙여버렸다. 그의 눈빛을 볼 수 없었지만, 아마도 검게 타들어가고 있을 것 같았다. 그는 몸을 숙인채로 음울하게 말했다.
「지옥이었습니다. 그곳은......」
그 뒤로 그는 말을 잇지 않았다. 그리고 나도 더 이상 물어볼 수 없었다. 한참을 침묵에 잠겨있는 시간이 지나갔다. 나는 고개를 들어 시간을 가늠해보았다. 사람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육감적으로 밤이 늦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남아있던 마지막 밧줄을 마저 끊었다. 혹시나 들킬까봐 남겨두었던 밧줄이었다. 다비드의 별 모서리는 생각보다 튼튼해서 밧줄은 쉽게 끊어졌다. 그의 밧줄도 풀어주며 말했다.
「제레미. 빨리 달아납시다.」
「조,좋아요. 빌어먹을 곳에서 빨리 벗어납시다.」
살그머니 지하실의 문으로 다가갔다. 위로 열리게 되어있는 지하실의 문틈을 통해 밖을 바라보았다. 시야는 좁았지만, 시야에 걸리는 사람들은 없었다. 모두 자러간 것일 확률이 높았다. 마음속으로 여러번 고민하며 문을 슬며시 들었다.
정면에는 아무런 사람도 없었다.
모닥불이 타고 있었지만, 어두워져 가는 모닥불은 새 장작을 넣은지 꽤 오래되어 보였다. 내가 문을 열고 망설이고 있자 뒤에서 제레미가 속삭였다.
「아무도 없으면 빨리 나갑시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밖으로 조심스레 나갔다. 그러나 고개를 돌렸을 때 나는 심장이 떨어지는 기분을 느꼈다. 한사람이 의자에 앉아있었다. 그러나 곧 나는 그가 움직일 수 없는 상황임을 깨달았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자고 있었다. 아마도 보초를 서고 있는 모양이었다. 만약 그가 잠들지 않았다면 어쩔뻔 했을지 생각하기도 끔찍했다. 나는 제레미에게 신호를 주어 사람이 있음을 알렸다. 그도 알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조심스레 밖의 창을 바라보았다. 먼지가 잔뜩낀 창에는 밖이 전혀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어두컴컴한 탓에 집안이 반사되어서 더욱 그러했다. 운을 믿고 나가보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원래 계획은 창문으로 나가는 것이었지만, 겹창이라 열리지 않았다. 다행히 문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양쪽으로 집 두채가 있었지만 두 집 역시 불이 꺼져있었다. 보초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나 눈보라도 없었다.
나와 제레미는 어두운 밤을 벗삼아 몸을 숙이고 걸어갔다. 귀신들이 솟아날 것 같은 어두운 밤에는 별하나 보이지 않았다. 구름이 잔뜩 끼여서 안개처럼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한참을 걸어나오자, 우리는 우리의 운에 감사를 보냈다. 그들의 시야에서 완전히 벗아났다. 이제는 달려가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나 그때 나는 달려갈 수 없었다.
창조의알.
그것이 있어야 했다.
「미쳤소? 다시 그곳에 들어가기라도 한단 말입니까?」
그의 말에 백배공감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버려두고 올 수 없었다. 나의 필생의 염원. 그것이 없다면 죽느니만 못했다.
「도대체 그게 무엇이길래 그럽니까? 목숨과 바꿀만큼 소중한 것입니까?」
「그것은...... 생명 그자체입니다. 당신에게 도와줄 것을 요구하지 않겠습니다. 당신은 먼저 떠나세요. 저는 그것을 가지고 다시 나오겠습니다.」
그는 난감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에게 고개를 숙이고 몸을 돌렸다. 그때 그가 나를 다시 불렀다. 내가 멈추지 않자, 그는 나에게 달려와 나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나의 손에 무엇인가를 쥐어주었다.
「이것은 나의 목숨을 살려준 빚 때문에 주는 것입니다. 위급한 순간에 이것을 먹으세요. 그러나 먹고 난뒤 10초안에 반드시 붉은 색 약을 먹어야 합니다. 10초입니다. 10초. 순서가 바뀌어도 안됩니다. 알겠습니까? 꼭 지킨다면 다시는 나를 만날일이 없을 겁니다.」
그는 몇가지 상세한 이야기를 덧붙였다. 나는 그 약의 효능에 놀라워하며 되물었다.
「이것이 그 약이군요.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약.」
「그 따위 것이 아니오. 이것은 악마의 약입니다. 제발 부탁이니 꼭 10초안에 먹으시요. 그 시간을 넘겨버리면 당신도 왜 그 약이 악마의 약인지 알게 될 겁니다.」
그는 재차 주의를 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의 손을 꼭 부여잡고 말했다.
「고맙습니다. 제레미.」
「행운을 빕니다.」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다. 그러나 그 때는 앞으로의 일을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그와 어떻게 다시 만나게 되고, 또 어떤 필연적인 일을 겪게 되는 것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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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계속합니다.
읽어주시는 분들 감사드립니다. ^^;;
흥미유발도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