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링커 1979년 - 작가 - 요한(windkju)
글 수 29
링커
6.
열차는 3일째 달려가고 있다. 낡아빠진 증기기관차는 독일 수도의 베를린을 지나쳐갔다. 나치 우월론자들은 베를린의 지하로 숨어들었고, 덕분에 연합군은 베를린을 폐쇄했다. 그러니까 베를린은 어둠이 묵인된 땅이었다. 열차는 오래되어 타버린 건물을 배경으로 스쳐지나갔다. 부서진 건물위로 피어오른 담쟁이덩굴은 채 6년이 되지 않은 것일테다. 듬성듬성 꽂혀있는 침묵의 폐허가 전쟁의 막바지를 연상케한다.
열차는 폴란드로 향하고 있었다. 오. 폴란드. 난 폴란드를 발음할때마다 신의 가호를 느낀다. 유대인의 땅 폴란드. 오. 폴란드. 이 곳이 바로 연금술사들에게도 유대교도들에게도 허용된 신의 땅이다. 금기와 속박을 벗고 연금술이 공공연하게 드러난 땅. 독일의 공세에 한번 무너졌지만, 다시금 새로 세운 나라. 오 폴란드. 나의 제2의 조국. 어느 연금술사건 간에 폴란드를 고향으로 여긴다.
그러나 창밖을 바라보았을 때 나는 충격을 받았다. 민스크에 가장 높은 증기탑을 건설하고 있다는 소문은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저렇게 커다랗게 솟아있을 줄이야. 건설자가 ‘무어’라고 했던가. 민스크는 거대한 시계의 도시로 거듭나고 있었다. 도시 전체를 거대한 증기탑에 연결된 부속으로 이리저리 얽어놓은 구조는 시계를 연상케 한다. 심장부에서 하얗게 타오르는 증기탑은 바벨처럼 우뚝 솟아있다. 나는 그것이 발전인지, 신에게 도전하는 야욕인지 분간할 수 없다.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5년도 채 지나지 않아 부서질 건물을 높이도 세워놓는군.」
니나의 투덜거림이 들려왔다. 그녀의 말에는 가시가 돋혀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보다 그녀의 말이 담고 있는 의미에 놀라움을 금치못했다. 미래. 그녀는 미래를 보고 있는 것일까?
「무슨 말입니까?」
「아차. 네가 있었군.」
전혀 놀라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내가 듣기를 바란다는 듯 그녀의 표정에는 한껏 조소가 담겨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대해 알고 싶었다. 연금술사가 아니라고 했지만, 어쩌면 그녀는 위대한 연금술사일지 모른다. 미래를 알수도 있을 만큼. 위대한. 나의 호기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니나는 여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탑의 이름은 별탑이지. 하지만 별명이 있어. 바벨.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것이겠지. 저렇게 높이 솟아있는 탑을 보면 바벨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겠지. 뭐 ‘무어’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가 지은 건물은 바벨을 참 많이 닮아있어. 그런데 말야. 바벨이 무너진 시간이 얼마나 걸렸는지 알아?」
「그게 무슨 말입니까? 당신은 바벨을 보았습니까?」
「흥. 내 말을 제대로 듣지 않고 있잖아? 뭐 대답은 해주지. 바벨이야 참 많이 보았지. 한 1000번쯤. 저게 벌써 30번째쯤 되는 바벨이야. 뭐 저것도 늘 그렇듯이 무너져버리고 말테지만.」
「그건 말이 안됩니다. 30번째인데 어떻게 1000번을 보았다는 겁니까. 설마......당신은 미래를 볼 수 있는 겁니까?」
「미래?」
나의 말에 그녀는 우습다는 듯 되물었다. 그녀가 말하는 미래라는 단어에는 깊은 조소가 담겨있었다. 그녀는 씁쓸한 표정으로 나를 보더니 순간 표정을 굳혔다. 그러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미래를 보는 것은 불가능해. 왜냐고? 미래는 없으니까. 그러니까 난 과거밖에 보지 못하는거야.」
미래가 없는 소녀는 씁쓸하게 다시 말했다.
「내가 종말이니까.」
더 이상 말을 이을수 없었다.
7.
열차는 빠르게 폴란드를 벗어났다. 폴란드에 새로 깔린 선로는 낡은 열차로 하여금 2배에 가까운 속도를 내게 만들었다. 오히려 덜컹거림은 덜했다. 니나는 그 대화를 이후로 죽은듯이 잠자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 있던 들꽃은 어느새 낙엽처럼 말라서 떨어졌다. 빽빽하던 사람들은 민스크에서 꽤나 많이 내려서 이젠 좀 넉넉한 편이었다. 아직 봄이라 러시아 서부의 장이 폴란드쪽으로 넘어온 모양이었다. 다투던 두 사람은 여전히 서로 투덜거리고 있었지만, 더 이상 누리살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 있었다. 호기심은 빠르게 사그라 들었다.
관계자일 것이 분명한 두사람에게 강요하듯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랬다가는 내가 연금술사라는 것을 밝혀야할지도 모르니까. 그러고 보면 잘도 나는 니나에게 연금술사라는 것을 은연중에 밝혀버렸다. 왜일까. 이유는 알 수 없다.
메리에게 편지를 써서 차장편에 맡겨두었다. 벌써 4일째이다. 그녀는 잘 지내고 있을까. 음식과 담배를 파는 여인네들 덕분에 식사는 거르지 않고 잘하고 있었다. 오히려 그녀가 걱정이다.
8.
폴란드를 벗어나 러시아에 들어서자, 갑자기 사람들이 소란스러워졌다. 마치 깨어나는 봄처럼 한껏 기지개를 키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대화는 단연 게이트에 관련된 것이었다. 다섯 개의 게이트. 요한이 만든 다섯 개의 게이트는 기적에 가까운 것이었다. 공간을 뛰어넘는 기술은 요한이 사라진 뒤에도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었다. 놀라운 기술임에 틀림없다.
예전에 게이트의 구조가 궁금해진 나는 그 설계도를 받아본적이 있었다. 기본 설계구조는 둥글다는 것 외에 가정집문과 별차이가 없었다. 어떤 구조로 어떻게 움직여지는지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숨겨져있는 탓도 있지만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더 많았다.
천재의 솜씨임에 틀림이 없다.
「슬슬 게이트로군. 그런데 열차강도는 나오지 않겠지? 요즘 여러 국가들이 잡으려고 난리지만 아직 잡지 못했다잖아.」
「불길한 소리 하지 마시게. 그래봐야 도적들일 뿐인데 어련하려고.」
「하지만 코인마스터가 있잖아.」
웅성거리는 소리중에 유명한 열차강도의 이름이 들려왔다. 나도 그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이건 비단 연금술사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들어왔던 소문일 것이다. 유명한 열차강도는 두조직이 있다. 그 둘이 유명한 이유는 단 한가지. 아무도 그들을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열차가 중요한 운송수단이므로 국가들-특히 러시아-의 경비가 삼엄함에도 불구하고 둘은 그 경비를 뚫고 열차를 털었다.
코인마스터와 링마스터.
둘은 연금술사의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국가에 소속된 연금술사들이 둘을 잡으려고 노력했지만, 그 들을 잡을 수는 없었다. 그 들의 연금술은 뛰어났다. 그들의 연금술이 요한에게 비롯되었다는 소문도 있었다. 내가 생각할때는 그건 헛소문이라고 생각되었다. 사람들은 유명한 열차강도 이야기로 수선을 떨고 있었지만, 나는 별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다른 인물이 나의 관심을 끌고 있었다.
어젯밤이었다. 특별한 일이 하나 있었다. 열차가 한밤중에 멈춰서고 차장이 3등석 칸으로 와서 사람들에게 말했다. 선로에 나무가 쓰러져서 사람들이 내려서 치워달라는 것이었다. 1등석 손님을 시킬수는 없을 테니, 3등석 손님들을 이용하자는 것일테다. 남자들이 모두 내려서 열차의 앞으로 갔다.
화려한 1등석의 불빛이 밝게 열차를 빛내고 있었다. 열차창의 조각난 빛을 따라 열차 앞으로 수십명의 사람들이 걸어갔다. 거대한 나무를 발견했을 때, 나는 난감함을 느꼈다.
생각보다 나무는 거대했다. 수령이 100년은 족히 넘어 보이는 나무가 쓰러져 있었다. 그 나무를 둘러싸고 사람들이 밧줄로 나무를 둘러 힘껏 밀어내보았지만, 힘에 부쳤다. 그때 나는 나의 옆에 선 사람을 보았다. 그는 모자를 푹 눌러쓴 사람이었다. 그의 손에는 붕대가 둘둘 감켜있었다. 근처에 앉아있던 사람이라 확실히 알수 있었다.
「다치셨으면 물러나 계시는게 낫지 않겠습니까?」
나의 말에 그가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의 얼굴의 절반 가량이 가면에 덮여있었다. 베네치아의 가면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투박한 맛이 있는 나무가면이 그의 얼굴의 절반을 덮고 있었다. 그는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
「친절한 분이군요. 걱정하지 마시오. 이건 다친것이 아니니.」
「손에 붕대를 감고 계시지 않습니까. 다치신게 아닙니까?」
「어쩔수 없는 사정이 있다오.」
그는 슬픈 눈으로 고개를 돌려 밧줄을 움켜쥐었다. 나는 깨달았다. 그의 몸이 어떤 상태인지를...... 피치못할 사정으로 그의 몸에 흉터가 깊은 상처가 있을 것이다. 얼굴마저도 망가져서 가면을 쓰고 있는 듯 했다. 그러니까 붕대는 가리기 위해 감고 있는 것이다. 나의 배려는 오히려 놀림에 가까운 것이었다. 나는 그에게 미안해졌다. 그에게 사과하려 했을 때 나는 그의 팔이 꿈틀거리는 것을 보았다.
째깍.
그 순간 시계 소리를 들었다. 꿈틀거리는 그의 팔에서 작지만 시계소리가 들려왔다. 째깍.째깍.째깍. 태엽기계장치. 그것은 일종의 시계같은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시계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왔다.
-탈칵.
걸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나무는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옆으로 스륵 움직였다.
「오오! 움직인다! 힘내시오!」
사람들이 모두 달라붙어서 밧줄을 끌어당겼다. 나무는 잔가지를 흩뿌리며 철로 바깥으로 미끄러졌다. 선로 바깥으로 나무를 끌어내고 사람들이 자신의 칸으로 돌아갔다. 나는 걸어가며 그에 대해서 생각했다.
나는 분명 들었다. 그의 팔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시계소리를. 나는 보았다. 붕대의 틈으로 살짝 보인 기계장치의 흔적을. 그의 팔에는 정체를 알수 없는 기계장치로 구성되어있었다. 그 정도 기술은 일반적인 과학기술로는 불가능했다. 팔과 똑같이 움직이는 태엽기계장치라니. 그것이야 말로 연금술이지 않는가.
「게이트다!」
누군가의 외침에 생각에서 깨어났다. 사람들이 빼꼼히 창가에 붙어있었다. 나 역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넑은 들판이 펼쳐져있고 햇살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기적이 있었다.
그것은 설계도 이상이었다. 머릿속에서 그려보았던 게이트의 모습은 추상적일 뿐이었지만 그것은 현실이었다. 은빛으로 빛나는 두 개의 첨주가 서로 고개를 숙이고 머리를 잇닿고 있었다. 첨주를 둘러싼 수만가지의 기계장치는 연신 기동하고 있었고, 정체를 알수 없는 장치가 삐걱대며 피스톨 운동을 하고 있었다. 짙은 증기로 휩싸인 그 게이트의 홀은 빛나는 물결같이 번뜩이고 있었다. 그것은 기적이었다.
요한의 게이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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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연재하기 참 좋네요. 왠지 두근두근 한다는...
6.
열차는 3일째 달려가고 있다. 낡아빠진 증기기관차는 독일 수도의 베를린을 지나쳐갔다. 나치 우월론자들은 베를린의 지하로 숨어들었고, 덕분에 연합군은 베를린을 폐쇄했다. 그러니까 베를린은 어둠이 묵인된 땅이었다. 열차는 오래되어 타버린 건물을 배경으로 스쳐지나갔다. 부서진 건물위로 피어오른 담쟁이덩굴은 채 6년이 되지 않은 것일테다. 듬성듬성 꽂혀있는 침묵의 폐허가 전쟁의 막바지를 연상케한다.
열차는 폴란드로 향하고 있었다. 오. 폴란드. 난 폴란드를 발음할때마다 신의 가호를 느낀다. 유대인의 땅 폴란드. 오. 폴란드. 이 곳이 바로 연금술사들에게도 유대교도들에게도 허용된 신의 땅이다. 금기와 속박을 벗고 연금술이 공공연하게 드러난 땅. 독일의 공세에 한번 무너졌지만, 다시금 새로 세운 나라. 오 폴란드. 나의 제2의 조국. 어느 연금술사건 간에 폴란드를 고향으로 여긴다.
그러나 창밖을 바라보았을 때 나는 충격을 받았다. 민스크에 가장 높은 증기탑을 건설하고 있다는 소문은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저렇게 커다랗게 솟아있을 줄이야. 건설자가 ‘무어’라고 했던가. 민스크는 거대한 시계의 도시로 거듭나고 있었다. 도시 전체를 거대한 증기탑에 연결된 부속으로 이리저리 얽어놓은 구조는 시계를 연상케 한다. 심장부에서 하얗게 타오르는 증기탑은 바벨처럼 우뚝 솟아있다. 나는 그것이 발전인지, 신에게 도전하는 야욕인지 분간할 수 없다.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5년도 채 지나지 않아 부서질 건물을 높이도 세워놓는군.」
니나의 투덜거림이 들려왔다. 그녀의 말에는 가시가 돋혀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보다 그녀의 말이 담고 있는 의미에 놀라움을 금치못했다. 미래. 그녀는 미래를 보고 있는 것일까?
「무슨 말입니까?」
「아차. 네가 있었군.」
전혀 놀라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내가 듣기를 바란다는 듯 그녀의 표정에는 한껏 조소가 담겨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대해 알고 싶었다. 연금술사가 아니라고 했지만, 어쩌면 그녀는 위대한 연금술사일지 모른다. 미래를 알수도 있을 만큼. 위대한. 나의 호기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니나는 여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탑의 이름은 별탑이지. 하지만 별명이 있어. 바벨.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것이겠지. 저렇게 높이 솟아있는 탑을 보면 바벨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겠지. 뭐 ‘무어’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가 지은 건물은 바벨을 참 많이 닮아있어. 그런데 말야. 바벨이 무너진 시간이 얼마나 걸렸는지 알아?」
「그게 무슨 말입니까? 당신은 바벨을 보았습니까?」
「흥. 내 말을 제대로 듣지 않고 있잖아? 뭐 대답은 해주지. 바벨이야 참 많이 보았지. 한 1000번쯤. 저게 벌써 30번째쯤 되는 바벨이야. 뭐 저것도 늘 그렇듯이 무너져버리고 말테지만.」
「그건 말이 안됩니다. 30번째인데 어떻게 1000번을 보았다는 겁니까. 설마......당신은 미래를 볼 수 있는 겁니까?」
「미래?」
나의 말에 그녀는 우습다는 듯 되물었다. 그녀가 말하는 미래라는 단어에는 깊은 조소가 담겨있었다. 그녀는 씁쓸한 표정으로 나를 보더니 순간 표정을 굳혔다. 그러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미래를 보는 것은 불가능해. 왜냐고? 미래는 없으니까. 그러니까 난 과거밖에 보지 못하는거야.」
미래가 없는 소녀는 씁쓸하게 다시 말했다.
「내가 종말이니까.」
더 이상 말을 이을수 없었다.
7.
열차는 빠르게 폴란드를 벗어났다. 폴란드에 새로 깔린 선로는 낡은 열차로 하여금 2배에 가까운 속도를 내게 만들었다. 오히려 덜컹거림은 덜했다. 니나는 그 대화를 이후로 죽은듯이 잠자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 있던 들꽃은 어느새 낙엽처럼 말라서 떨어졌다. 빽빽하던 사람들은 민스크에서 꽤나 많이 내려서 이젠 좀 넉넉한 편이었다. 아직 봄이라 러시아 서부의 장이 폴란드쪽으로 넘어온 모양이었다. 다투던 두 사람은 여전히 서로 투덜거리고 있었지만, 더 이상 누리살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 있었다. 호기심은 빠르게 사그라 들었다.
관계자일 것이 분명한 두사람에게 강요하듯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랬다가는 내가 연금술사라는 것을 밝혀야할지도 모르니까. 그러고 보면 잘도 나는 니나에게 연금술사라는 것을 은연중에 밝혀버렸다. 왜일까. 이유는 알 수 없다.
메리에게 편지를 써서 차장편에 맡겨두었다. 벌써 4일째이다. 그녀는 잘 지내고 있을까. 음식과 담배를 파는 여인네들 덕분에 식사는 거르지 않고 잘하고 있었다. 오히려 그녀가 걱정이다.
8.
폴란드를 벗어나 러시아에 들어서자, 갑자기 사람들이 소란스러워졌다. 마치 깨어나는 봄처럼 한껏 기지개를 키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대화는 단연 게이트에 관련된 것이었다. 다섯 개의 게이트. 요한이 만든 다섯 개의 게이트는 기적에 가까운 것이었다. 공간을 뛰어넘는 기술은 요한이 사라진 뒤에도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었다. 놀라운 기술임에 틀림없다.
예전에 게이트의 구조가 궁금해진 나는 그 설계도를 받아본적이 있었다. 기본 설계구조는 둥글다는 것 외에 가정집문과 별차이가 없었다. 어떤 구조로 어떻게 움직여지는지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숨겨져있는 탓도 있지만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더 많았다.
천재의 솜씨임에 틀림이 없다.
「슬슬 게이트로군. 그런데 열차강도는 나오지 않겠지? 요즘 여러 국가들이 잡으려고 난리지만 아직 잡지 못했다잖아.」
「불길한 소리 하지 마시게. 그래봐야 도적들일 뿐인데 어련하려고.」
「하지만 코인마스터가 있잖아.」
웅성거리는 소리중에 유명한 열차강도의 이름이 들려왔다. 나도 그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이건 비단 연금술사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들어왔던 소문일 것이다. 유명한 열차강도는 두조직이 있다. 그 둘이 유명한 이유는 단 한가지. 아무도 그들을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열차가 중요한 운송수단이므로 국가들-특히 러시아-의 경비가 삼엄함에도 불구하고 둘은 그 경비를 뚫고 열차를 털었다.
코인마스터와 링마스터.
둘은 연금술사의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국가에 소속된 연금술사들이 둘을 잡으려고 노력했지만, 그 들을 잡을 수는 없었다. 그 들의 연금술은 뛰어났다. 그들의 연금술이 요한에게 비롯되었다는 소문도 있었다. 내가 생각할때는 그건 헛소문이라고 생각되었다. 사람들은 유명한 열차강도 이야기로 수선을 떨고 있었지만, 나는 별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다른 인물이 나의 관심을 끌고 있었다.
어젯밤이었다. 특별한 일이 하나 있었다. 열차가 한밤중에 멈춰서고 차장이 3등석 칸으로 와서 사람들에게 말했다. 선로에 나무가 쓰러져서 사람들이 내려서 치워달라는 것이었다. 1등석 손님을 시킬수는 없을 테니, 3등석 손님들을 이용하자는 것일테다. 남자들이 모두 내려서 열차의 앞으로 갔다.
화려한 1등석의 불빛이 밝게 열차를 빛내고 있었다. 열차창의 조각난 빛을 따라 열차 앞으로 수십명의 사람들이 걸어갔다. 거대한 나무를 발견했을 때, 나는 난감함을 느꼈다.
생각보다 나무는 거대했다. 수령이 100년은 족히 넘어 보이는 나무가 쓰러져 있었다. 그 나무를 둘러싸고 사람들이 밧줄로 나무를 둘러 힘껏 밀어내보았지만, 힘에 부쳤다. 그때 나는 나의 옆에 선 사람을 보았다. 그는 모자를 푹 눌러쓴 사람이었다. 그의 손에는 붕대가 둘둘 감켜있었다. 근처에 앉아있던 사람이라 확실히 알수 있었다.
「다치셨으면 물러나 계시는게 낫지 않겠습니까?」
나의 말에 그가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의 얼굴의 절반 가량이 가면에 덮여있었다. 베네치아의 가면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투박한 맛이 있는 나무가면이 그의 얼굴의 절반을 덮고 있었다. 그는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
「친절한 분이군요. 걱정하지 마시오. 이건 다친것이 아니니.」
「손에 붕대를 감고 계시지 않습니까. 다치신게 아닙니까?」
「어쩔수 없는 사정이 있다오.」
그는 슬픈 눈으로 고개를 돌려 밧줄을 움켜쥐었다. 나는 깨달았다. 그의 몸이 어떤 상태인지를...... 피치못할 사정으로 그의 몸에 흉터가 깊은 상처가 있을 것이다. 얼굴마저도 망가져서 가면을 쓰고 있는 듯 했다. 그러니까 붕대는 가리기 위해 감고 있는 것이다. 나의 배려는 오히려 놀림에 가까운 것이었다. 나는 그에게 미안해졌다. 그에게 사과하려 했을 때 나는 그의 팔이 꿈틀거리는 것을 보았다.
째깍.
그 순간 시계 소리를 들었다. 꿈틀거리는 그의 팔에서 작지만 시계소리가 들려왔다. 째깍.째깍.째깍. 태엽기계장치. 그것은 일종의 시계같은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시계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왔다.
-탈칵.
걸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나무는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옆으로 스륵 움직였다.
「오오! 움직인다! 힘내시오!」
사람들이 모두 달라붙어서 밧줄을 끌어당겼다. 나무는 잔가지를 흩뿌리며 철로 바깥으로 미끄러졌다. 선로 바깥으로 나무를 끌어내고 사람들이 자신의 칸으로 돌아갔다. 나는 걸어가며 그에 대해서 생각했다.
나는 분명 들었다. 그의 팔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시계소리를. 나는 보았다. 붕대의 틈으로 살짝 보인 기계장치의 흔적을. 그의 팔에는 정체를 알수 없는 기계장치로 구성되어있었다. 그 정도 기술은 일반적인 과학기술로는 불가능했다. 팔과 똑같이 움직이는 태엽기계장치라니. 그것이야 말로 연금술이지 않는가.
「게이트다!」
누군가의 외침에 생각에서 깨어났다. 사람들이 빼꼼히 창가에 붙어있었다. 나 역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넑은 들판이 펼쳐져있고 햇살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기적이 있었다.
그것은 설계도 이상이었다. 머릿속에서 그려보았던 게이트의 모습은 추상적일 뿐이었지만 그것은 현실이었다. 은빛으로 빛나는 두 개의 첨주가 서로 고개를 숙이고 머리를 잇닿고 있었다. 첨주를 둘러싼 수만가지의 기계장치는 연신 기동하고 있었고, 정체를 알수 없는 장치가 삐걱대며 피스톨 운동을 하고 있었다. 짙은 증기로 휩싸인 그 게이트의 홀은 빛나는 물결같이 번뜩이고 있었다. 그것은 기적이었다.
요한의 게이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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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연재하기 참 좋네요. 왠지 두근두근 한다는...
그렇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