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습니까?”

회색 스트라이프 정장을 입은 백유석 옆에서 F1 레이싱 재킷을 입은 조가 물었다.

백유석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조가 B4 계획의 추진을 승인한 이래 반 년 만에 본 결실이었다. 서울에서 한 시간 떨어진 곳에 위치한 회사의 수사 시설을 플랜트로 리모델링한 것이었다. 세균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것 같은 금속성의 인공적인 공간의 실험실에는 커다란 유리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엄청난 건평 위에 깔끔하게 조경이 된 잔디밭과 수영장이 딸린 플랜트의 입구부터 위압당했던 백유석은 건물 안으로 들어와 사무실과 연구실을 둘러 본 다음 실험실에 들어 와서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설계 과정부터 백유석의 의견이 십분 반영되어 상당한 조율과정을 거쳤지만 플랜트의 완성을 두 눈으로 보는 것은 모니터 속의 설계도를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 동안 제대로 된 지원도 없이 종합 병원의 일개 연구실에서 깨작대던 것과는 비할 수 없었다. 단일 프로젝트에 투입되는 건물로서는 최대 규모, 최고의 시설이었다.

“감격스럽습니다. 정말... 말이 안나오는군요.”

“백 선생이 만족하시니 다행입니다.”

“만족이 아니라... 대단합니다. 감사합니다.”

“이건 일이니까요. 업무입니다.”

“그렇긴 합니다. 솔직히 엄청난 연구비가 걱정스럽습니다.”

“사실 연구비를 회사에서 전부 감당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인간을 복제해 급속 성장시키는 B4 계획을 추진하는데 필요한 예산은 모두 음성적으로 지원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조는 B4 계획을 추진하기 위해 박문기 의원의 후원이 필요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만일 박 의원에게 손을 더 벌리게 되면 조가 회사 운영을 전권을 장악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지원은 최소한에 그치도록 노력했다. 게다가 백유석은 병원에서도 진료 분야에 무관심해서 금전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아웃사이더였기 때문에 병원에서 예산을 지원받기 어려웠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승인하지 않은 계획을 일개 대형 사립 병원이 지원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사안의 정치적, 사회적, 윤리적 특성상 B4 계획을 비밀리에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병원에는 자금 배정의 의사조차 타진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제가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제약 회사 쪽에 줄을 대도 되겠습니까?”

“기브 앤 테이크가 이루어져야 할 텐데 그러면 백 선생은 무엇을 내놓으실 생각입니까?”

조는 생각한 바가 있었지만 먼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B4 계획 상용화의 독점권을 내놓을까 합니다만... 아버지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백유석은 조가 생각한 바를 진작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자신감이 있었지만 말투는 조심스러웠다. 조는 자신보다 연상인 남자에게 아버지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것에 이제 익숙해져 있었다.

“좋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그럼 진행하겠습니다.”

조는 자신이 원한 바를 백유석이 먼저 제안하자 선선히 응낙했다. 백유석은 결혼식 때 보았던 것보다 더욱 흡족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오늘같이 기쁜 날 괜찮으시다면 아버지께 술 한 잔 대접해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술 안 마십니다.”

“그러면 식사라도...”

“백 선생은 결혼하셨죠?”

“네.”

“요즘에 집에는 잘 들어가십니까?”

“아뇨... B4 계획 때문에 바빠서...”

“아이도 있으시죠?”

“네, 딸입니다. 아내와 꼭 닮았죠. 아직 돌도 안 지났습니다. 백일 잔치에도 못가고...”

“오늘은 집에 일찍 들어가서 가족과 함께 저녁을 드시죠.”

조는 정면을 응시한 채 백유석은 거들떠보지 않았지만 오늘 대화에서 가장 정감 어린 말투로 말했다. 백유석도 조의 진심을 수용했다.

“예, 알겠습니다.”

“참, 첫 번째 연구는 무엇부터 인지 알고 계시죠?”

“예, 일전에 말씀하신 그것을 벌써 진행하고 있습니다. 빠르면 6개월 이내에 성체를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조는 여전히 백유석의 얼굴을 보지도 않고 무표정하게 정면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백유석은 옆에 있는 사내에게서 그 어떤 표정의 변화도 읽을 수 없었다. 항상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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