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상황이 어느정도는 나아지는 것 같다.
막사건물들은 시온에서 재 가공된 규격화 된 물자들로 다시 지어졌고 각종 식량도 어느정도 재배 될수 있게되었다. 물론 아직도 버섯과 곰팡이류가 주식이지만 특별한 날만 소량 재배된 채소를 먹을수가 있게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개인 거주지역도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매트릭스 접속 시간은 하루중 6시간으로 늘었고 공통 접속시간 이외의 시간은 작업에 지장을 주지 않는 한도내에서 개인이 접속시간대를 조절할수 있게되었다. 그러나 미스터 모건 사건 이후로 나는 가급적 필요한 경우 이외에는 매트릭스에 접속하는 것을 자제했다.

"알렉스씨 공통 접속시간입니다. 서둘러 접속하시죠"
행정관 쾨니히 블로비치가 숙소에서 이것저것 생각하던 나에게 와서 말을 걸었다.
시온에서의 물자 공급량 증가와 모건씨 사건으로 위생적인 매트릭스 접속이 강조되어 개인별 접속장치가 공급되어졌다.

공통 접속시간은 시온의 홍보성뉴스와 각 지역별 작업량 보고, 그리고 행정관 들과 시온의 정부 각료가 모여서 별도의 회의를 갖는 시간이기도 했다.

"각 지역별 프로그래머는 앞으로 자신이 개발한 프로그램에 대한 등록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현재 각 '정착지'에 음성적인 불법 프로그램이 사용되어지고 있어 매트릭스의 운영에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특히 건전한 인류의 정신을 망치는 각종 성인용 프로그램 및 폭력성 전투 프로그램들에 대해서는 철저한 단속을 할것임을 주지하시기 바랍니다."

공통 접속시간에 이곳 정착지에서 접한 불법 프로그램 개발 제제 뉴스는 하루이틀 들어온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전에 메인 프로그램 하나에 의해 유기적으로 다루어지던 매트릭스라는 거대한 시스템이 몇십명의 인간 프로그래머가 매달려서 겨우겨우 돌아간다는 것 자체도 기적일뿐더러 시스템도 유지하기 힘든 상황에서 불법 프로그램을 단속한다는 것 자체도 어불성설이었던 것이다.

물론 '네오'가 메인 프로그램을 대체했다고는 하나 '해방'이후 인간이나 프로그램이나 아무도 '그'를 보지 못했다. 혹자는 메인소스화 된 네오는 더 이상 '의지'가 존재하지 않는 프로그램 코드가 됐다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혹자는 프로그램들 사이에 숨어서 시온정부의 행동을 감시한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들의 억측을 더욱 부풀리는 것은 시온정부의 행동이었다.

"어제부로 매트릭스상의 47구역부터 53 구간까지 삭제 재정리 작업에 들어간다고 '네오'로부터 통보를 받았습니다. 이는 시온정부와 협의하에 이루어지는 작업으로 매트릭스상의 해당 지역의 접근을 자제해주시기 바랍니다."

매트릭스상의 아나운서 프로그램의 건조한 목소리가 울려퍼지자 누군가 질문을 하기시작했다.
"도대체 매일 마다 삭제, 재정리 작업을 하는데 그 이유가 뭡니까? 그리고 재정리 된 지역에는 무엇이 생기는 겁니까?"

"그것은 현재 시온정부의 비밀 계획입니다. 아직은 말씀드릴수 없읍니다만 때가 되면 아시게 될겁니다. 이상으로 공통 접속시간을 마칩니다."

2.
나는 공통 접속을 마치기 직전 매트릭스상에서 의사와 법무부 4급 서기관 루이스 밀러(vol. 5참조)급히 무언가 의논하는 것을 보았다.

이 의사라는 인물은 이름이 알려진바 없다. 그냥 '의사'라고만 불리울뿐 누구도 이름을 불러본적이 없다. 그러나 '의사'라는 직책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의사'와 가까이 하려하지 않는다. 이유는 모르나 다들 치료는 받으면서도 '의사'의 분위기가 꺼림칙하다는 이야기였다.

다들 꺼려하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일부러 의사와 친해지기로 했다.

"선생님은 '안'에서 나오셨습니까 아니면 원래 '밖'의 분이셨습니까?"

나는 가벼운 찰과상을 핑계로 병원에 들러서 '의사'에게 말을 걸었다.

"..........찰과상이면 이약을 바르세요, 그리고 가벼운 상처로 병원을 들르시는 일은 삼가주셨으면 합니다. '해방' 이후 인구증가로 의료약품이 부족합니다."

나는 의사의 구박에도 불구하고 한번 씩 웃고서는 의약품을 받고서 병실을 나서다 루이스 밀러와 마주치게 되었다.
"어이쿠, 이게 누구신가? 알렉스 선생님 아니신가요? 아 이젠 평등한 시온이니까 알렉스 씨라고 해야 맞겠군요, 그런데 무슨일로 병원까지 오셨나요?"

"네, 그냥 찰과상 때문에......."

나는 마주하기 싫어서 고개만 숙인채 간신히 대답을 하고 병원을 빠져나왔다.

3.
"이봐 행크, 부탁좀 들어줘"

행크 말론, '정착지'에서 처음 사귄 '밖' 사람이다. '해방전쟁' 때 처와 큰 딸을 잃고 지금은 여덟살난 아들과 같이 숙소에서 산다. 행크는 원래 '프로그래머' 였는데 '해방전쟁'이전에도 논란의 소지가 많은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만든적이 많이 있어서 제제를 많이 받았었고 '해방전쟁'이후에는 거의 쫓겨나다시피 이곳 '정착지'로 오게된 사람이다.

"세상은 '기브엔 테이크'야, 자네가 증권일을 했었다면 잘 알텐데......"

나는 씨익 웃으며 뒷춤에 숨기고 있었던 장난감 자동차를 꺼냈다. 지난번 도시발굴 작업때 줏은 것을 행크한테 써먹으려고 보관중이었다. 행크는 마치 자기 장난감이라도 찾은듯이 눈이 둥그래 지더니 싱글벙글 웃으며 말을했다.

"그래, 뭔데?"

"실은 성인용 프로그램 하나만 만들어줘, '의사'한테 써먹을 거거든"

나는 애써 태연한척 하며 '의사'라는 단어를 입밖에 냈다.

"나더러 그 기계같은 인간 취향의 여자를 만들어달라고? 차라리 내가 남자를 사귀고 말지...."

행크는 안색이 싹 바뀌면서 나의 말을 받아쳤다.

"그래서 부탁하는거 아니야, 자네 눈치라면 의사 취향에 어느정도 맞는 여자 정도는 만들 수 있을거 같은데? 게다가 의사가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면 그게 곧 자네실력을 입증하는거 아니야?"

나는 주머니춤에 있던 담배 한갑을 꺼내어서 행크에게 건냈다.

"아니, 이 '금지된 물품'은 또 어디서 났어? 확, 시온당국에 신고해버릴까? 유해기호품 소지로 말이야"

나는 말없이 행크의 주머니에 담배갑을 쑤셔 넣었다.

"다른건 필요없고 의사랑 접촉하게 되면 그순간 나에게 그사실을 알려주고, 그리고 의사랑 10분만 시간을 끌다가 자동 삭제되면 돼, 걸릴 위험도 없쟎아, 안그래?"

행크는 양미간을 찌푸리면서 나에게 되물었다.

"도대체 왜그러는데?"

"이유는 묻지말고, 그냥 불쌍한 '안'의 사람 구제한단 생각으로 좀 해줘"

내가 불쌍한 표정을 지으면서 부탁을하자 행크는 한숨을 푹 쉬면서 대답을 했다.

"알았어, 그런데 이제 앞으로 내 앞에서 '안'이니 '밖'이니 하는 말 하지마, 듣기 지겨우니까 말이야......"

4.
나는 의사의 병원 앞을 지나치면서 의사의 일상을 관찰하기 시작했고 대강 의사가 접속할만한 시간대를 추측하게 되었다.

"당신, 부탁이 무언가요? 당신 바램이라면 다 들어줄수 있을 것 같은데....."

'흠, 이게 행크가 생각하는 의사 취향이군, 좀 강인한듯한 인상의 여자, 아름답긴 한데 어딘가 전사같은 분위기가 느껴지는군, 혹시 행크 취향 아니야?'

나는 눈앞에 서있는 행크의 프로그램을 감상하다가 시간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재빨리 지시사항을 이야기했다.

"여기 이 사진 보이지(실은 매트릭스상에서 합성한 사진이다.)? 이 사진의 아저씨랑 이야기좀 해봐, 의사거든, 혹시 누가 보냈냐고 물어보면, 그냥 친한 친구라고만 하고, 알았지?"

"나는 당신이 더 마음에 드는데......"

성인용 프로그램은 판에 박힌 말을 나에게 내 뱉고는 '정착지'내 매트릭스에서 의사의 위치를 검색하더니 나에게 말한마디를 던지고 갔다.

"당신이 시킨거니까 질투하지 마요, 나 지금 의사 찾았거든요, 그럼 의사 만나러 갈께요...."

나는 매트릭스의 접속을 끊고 병원으로 뛰어가 의사의 사무실을 조심스럽게 뒤지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의사는 까운을 벗어두고 나갔고, 의사의 까운에는 소형 보이스 레코더가 들어있었다.

나는 보이스 레코더를 켰다.

"프로젝트 스미스, 실험 진행 양호, 피실험자 사망자료를 의뢰인에게 발송, 대뇌 피질의 만족감 조절 부위, 파장 조절 성공, 이틀후 공통 접속시 전 '정착지' 주민에게 사용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