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중심주의를 위한
2가지 질문

Q1.
숲에서 나무가 쓰러질 때, 
아무도 없어도 소리가 나는 것일까?

"숲에서 나무가 쓰러질 때, 아무도 없어도 소리가 나는 것일까?"
얼마전 한 사람은 고민해볼 가치도 없는 바보 같은 질문이라며 불쾌한 표정을 내게 보였다. 사람들의 이러한 반응은 객관적이고 독립적인 현실에 대한 그들의 믿음을 드러낸다.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근본적인 태도는 우리와 무관하게 그렇게 존재한다는 것이다.

사실 숲에서 나무가 쓰러질 때 발생하는 소리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소리는 어떤 과정을 거쳐 생성되는 것일까? 초등학교 고학년 과학 시간에 배웠던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소리는 매질의 교란에 의해 발생한다'이다. 일반적으로 매질은 공기다. 숲에서 나무가 쓰러질 때 공기는 빠르게 진동한다.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도 이를 감지할 수 있다. 공기가 초당 5~30회로 진동할 때, 그들의 민감한 피부는 분명하게 느낀다.

그렇다면 나무가 쓰러질 때 우리가 실질적으로 감지하는 대상은 공기의 진동이다. 과학적 설명에 따르면, 크고 작은 공기압의 변화는 두뇌와 귀로 이뤄진 청각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을 때에도 지속된다.

이제 나무가 쓰러지는 상황을 자세히 살펴보자. 누군가 근처에 있다. 그런데 두뇌 신경을 자극하기 위해서는 공기가 초당 20~20,000회 진동해야 한다. 물론 초당 15회 진동하는 파동과 30회 진동하는 파동은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후자는 들을 수 있지만 전자는 듣지 못한다. 그 이유는 두뇌 신경계가 설계된 방식 때문이다. 고막의 진동으로부터 자극을 얻은 뉴런은 전기 신호를 두뇌로 송출하고, 그러면 두뇌는 그 신호를 소리로 해석한다. 이 전체 과정은 분명하게도 공생적(symbiotic) 경험이다.

기 파동은 그 자체로 소리를 만들지 않는다. 가령 1초에 15회 진동하는 파동은 주변에 아무리 많은 사람이 있더라도 듣지 못하고 침묵 속으로 사라진다. 인간의 청각 시스템은 특정 범위의 주파수만 인식하도
록 설계됐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청각적 경험에서 관찰자의 귀와 두뇌는 공기 파동만큼 필수적인 요소다. 바로 이러한 형태로 우리의 의식은 외부 세상과 긴밀하게 얽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도 없는 숲에서 나무가 쓰러지면서 만들어내는 것은 적막한 공기의 파동뿐이다.

그럼에도 누군가 콧방귀를 뀌며 “아무도 없어도 나무는 쓰러지면서 소리를 내지”라고 주장한다면, 그건 아무도 없다는 말이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의 마음은 여전히 나무 주변을
맴돌고 있다. 그는 여전히 그곳에 있는 자신을 가정하는 것이다.


Q2.
관찰자가 없어도 
무지개는 존재할까?

좀 더 직관적인 사례로 무지개에 대해 생각해보자. 산봉우리 사이에 펼쳐진 화려한 무지개는 보는 이의 숨을 멎게 만들 정도로 아름답다. 그러나 무지개가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관찰자의 존재가 반드시 필요하다. 

여기서도 여러분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무지개는 가장 분명한 사례다. 무지개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태양과 물방울 그리고 적절한 위치에 있는 관찰자의 눈이 그것이다. 

태양을 등지고 서 있을 때, 물방울 속으로 들어간 빛은 40~42도의 각도로 반사돼 우리 눈에 들어온다.  그렇기 때문에 무지개를 보려면 굴절된 빛이 도달하는 범위 안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 또한 서로 다른 곳에 위치한 사람은 서로 다른 무지개를 본다. 다른 사람이 보는 무지개는 우리가 보는 것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완전히 똑같지는 않다. 그리고 반사하는 물방울의 크기가 클수록 색상은 선명해지고 파란색 띠는 좁아진다.

잔디밭 스프링클러처럼 물방울이 아주 가까이 있을 때에는 무지개가 보이지 않는다. 이처럼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무지개는 오직 우리 자신만이 볼 수 있다. 이제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가자. 그런데 관찰자가 없다면? 당연히 무지개도 없다. 무지개의 기하학적 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눈과 두뇌로 이뤄진 시각 시스템(또는 카메라)이 반드시 필요하다. 무지개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태양과 물방울
만큼 우리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우리는 관찰자가 없으면 무지개도 없다는 사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만일 관찰자가 조금씩 자리를 옮기면 무지개 역시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일 것이다. 이는 사변적이거나 철학적인 접근방식이 아니다. 초등학교 과학 시간에 배우는 이야기다. 하지만 무지개의 이와 같은 주관적 특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러한 사실은 동화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동화 속 무지개는 뚜렷하게 존재하는 실체다. 이와 똑같은 논리를 따른다면, 우리는 고층빌딩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경 역시 관찰자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쉽게 납득할 수 있다. 그렇게 세상을 바라볼 때, 우리는 비로소 사물의 본성을 이해하게 된다. 이제 우리는 생물중심주의의 첫 번째 원칙에 도달했다.




생물중심주의 제1원칙

우리가 생각하는 현실은 의식을 수반하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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