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기시감>은 일종의 우주 탐사물입니다. 주인공은 석아찬이라는 젊은이인데, 어느 날 우연한 계기로 게이츠 우주선에 탑승합니다. 일련의 학술 탐사대가 머나먼 우주 저편의 다른 종족을 찾아가기 위해 게이츠를 이용했고, 아찬은 수학자로서 탐사대에 참가했죠. 뭐 그리 대단한 수학자는 아니고, 이런저런 어른의 사정이 겹친 깍뚜기 신세입니다. 어쨌든 깍두기라도 우주선의 수학자이자 탐사대원임은 분명하죠. 하지만 지구를 떠난 게이츠에 모종의 괴현상이 발생했고, 아찬은 기이한 사고를 체험합니다. 결국 게이츠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다고 외치며 낯선 행성에 불시착합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친숙하면서도 이상한 문명이 자리잡았고, 아찬을 비롯한 승무원들은 그들과 관계를 맺고 행성의 비밀을 파헤칩니다. 소설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게이츠의 항해를 다룬 1부, 낯선 행성의 정착 생활을 다룬 2부입니다. 1부가 전형적인 우주 탐사물이라면, 2부는 행성 로망스에 가깝죠. 그런데 이 소설에서 중요한 건 우주 탐사가 아닙니다.


<기시감>은 인공지능 로가디아의 탄생으로 시작합니다. 로가디아는 게이츠의 운영 및 관리를 맡은 인공지능입니다. 소설 초반부에는 학자와 기술자들이 어떻게 로가디아를 만들고, 어떻게 이걸 우주선에 장착하는지 열심히 설명합니다. 그리고 소설 후반부에 또 다른 인공지능이 등장하는데, 벨레로폰이라고 부릅니다. 로가디아가 게이츠의 인공지능이라면, 벨레로폰은 외계 행성 거주민들의 인공지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석아찬은 벨레로폰과 접촉하고, 그 와중에 커다란 사건이 벌어지면서 결말로 달려갑니다. 내용 누설이기 때문에 더 자세한 설명을 못 하겠지만, 어쨌든 1부의 로가디아, 2부의 벨레로폰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기시감>은 로가디아로 시작해서 벨레로폰으로 끝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게다가 이 소설의 가장 중점적인 주제도 인공지능과 연관성이 높습니다. <기시감>은 어떤 존재가 환경 및 다른 대상을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논합니다. 그리고 인공지능이 인간과 세상을 대하는 과정을 통해 존재의 인식론을 비유합니다. 설정 및 내용이 꽤 하드한 책이라서 제가 제대로 짚었는지 모르겠네요.


어쨌든 책의 중심 주제가 존재의 인식론이라는 해석은 오류가 아닐 겁니다. 실제로 아찬은 로가디아와 수 차례 논의하고, 인식론을 끊임없이 설명합니다. 작중에 '아찬은 그토록 재미난 토론에 빠져들었다' 운운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게 바로 인식론을 설명하는 부분이었습니다. 비단 작품의 내적 해석만 아니라 작품의 외적 해석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소설의 작가가 평소에 논의하는 내용을 보면, 존재가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는가, 선험지에 따라 인식 방법은 어떻게 달라지는가, 특이점의 발달은 어떠한가 등등을 논합니다. 즉, 작가의 평소 관심 분야가 그것이고, 로가디아와 게이츠를 통해서 그게 나타났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단적으로 말한다면, <기시감>은 인공지능을 중요시하는 책입니다. 그런데 포장지는 우주 탐사물입니다. 우주선이 지구를 떠나 다른 종족의 행성으로 항해하던 중 사고가 일어나고, 낯선 행성에 불시착하고, 거기서 희한한 문명과 조우합니다. 이런 우주 탐사 및 행성 로망스 역시 소설의 상당 부분을 차지합니다. 그러니까 <기시감>의 메인 요리는 인공지능이지만, 중요 향신료와 양념, 전체 요리, 후식 등은 우주 탐사물인 셈입니다.


흠, 어쩌면 <기시감>에는 게이츠가 안 나와도 될 겁니다. 어쩌면 <기시감>에는 외계 종족이 안 나와도 될 겁니다. 타키온 드라이브 항해, 각종 초인들, 승무원들의 내부 갈등, 우주 전쟁 등의 소재는 필수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세상을 인식하는 내용이 골자니까 저런 것들은 없어도 될 겁니다. 그렇다면 우주 탐사와 행성 정착 내용을 죄다 빼고, 그냥 인공지능 이야기만 하는 게 좀 더 깔끔할 수 있죠. 아찬이 지구에서 방황하는 내용, 게이츠 내부에서 벌어지는 사건들, 아찬과 낯선 문명의 조우와 갈등, 인류의 생존 등을 죄다 삭제하면, 이야기가 좀 더 명료하고 분명할 수 있습니다. 아, 물론 게이츠의 그 사건은 인공지능의 인식론을 살펴보는 계기로 작용합니다. 타키온 드라이브가 아니라면, 인공지능의 인식 방법을 그렇게 논하기 힘들 겁니다. 타키온 드라이브는 우주 탐사에 적합하고, 따라서 <기시감>은 우주 탐사물이 되어야 할 운명일 수 있습니다. 만약 이런 우주 여행과 괴현상이 아니었다면, 인간과 인공지능의 인식 차이를 그처럼 흥미롭게 살피기 어려울 겁니다.


그렇다고 해도 우주 탐사는 인공지능을 논하기 위한 필수 장치가 아닙니다. 타키온 드라이브와 괴현상 덕분에 로가디아의 인식 방법을 새롭게 살필 수 있었지만, 그게 아니라도 다른 방법이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굳이 우주를 여행하지 않고, 그냥 지구에서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겁니다. 우주 여행과 관련된 수많은 이야기를 제외하면, 내용 전개와 주제 전달이 좀 더 깔끔하겠죠. 설사 타키온 드라이브가 로가디아를 설명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소설적 장치였다고 해도 게이츠 항해는 단지 그런 수준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게이츠 항해는 그 이상의 함의를 품었습니다. <기시감>은 소설이지 논문이나 설명문이 아닙니다. 비록 중심 주제는 인공지능의 인식론이지만, 그 외의 다른 이야기들도 곁가지로 곁들일 수 있습니다. 소설은 알맹이만 뚝딱 설명하고 끝내는 설명문이 아닙니다. 여러 가지 서사와 풍부한 함의를 곁들이고 장대한 이야기를 펼치는 게 소설의 장점이자 특기입니다. <기시감>도 마찬가지입니다. 게이츠 항해는 로가디아와 인간의 인식 차이를 흥미롭게 보여주지만, 단지 거기에민 머물지 않습니다. 석아찬은 지도 교수와 면담하면서 “그냥 우주가 좋았다”거나 "아무도 가보지 못한 곳을 가보고 싶다"고 말합니다.


즉, 이 소설의 우주 탐사는 인공지능 논의를 넘어 로망 달성이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따지고 보면, 알맹이만 뚝딱 설명하는 소설도 많지만, 풍부한 내용 전개를 보여주는 소설도 많습니다. <백경> 같은 소설은 오히려 그 때문에 찬사를 받습니다. <백경>의 중심 줄거리는 포경선 피쿼드가 대항할 수 없는 향유고래에게 덤볐다가 대판 깨지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허먼 멜빌은 그것 이외에 온갖 잡다한 이야기와 상징과 주제를 집어넣었습니다. 사실 고래 고기가 문명의 야만성을 상징한다거나, 고래 머리에서 칸트 철학이 튀어나오거나, 피쿼드 승무원들이 이상적인 시민 결합을 어떻게 반영하는지 등은 굳이 나올 필요가 없습니다. 멜빌 평론가들이 말하는 소위 '고래학장'은 내용 전개와 주제 전달에 하등 도움이 안 됩니다. 그럼에도 <백경>은 그 잡다한 에피소드 덕분에 '장대한 서사시'를 펼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차이나 미에빌이 쓴 <퍼디도 스트리트 정거장>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퍼디도 정거장>은 과학자 일행이 절지류 괴물을 추격하는 내용이지만, 그것 이외에 진짜 별 시시콜콜한 내용까지 들어갔습니다. 그럼에도 수많은 찬사를 받았죠. 이 소설은 일종의 '스팀펑크 도시 탐사물'이거든요. (<퍼디도 정거장> 이야기는 나중에 또 길게 하고 싶네요.)


그렇다면 <기시감>도 <백경>이나 <퍼디도 정거장>와 마찬가지 아닐까요. 소설에는 서사가 있습니다. 장대한 서사는 그 자체만으로 독자의 심금을 울리기 충분합니다. 거대한 우주선에 몸을 싣고, 지구를 떠나고, 막막한 우주를 여행하고, 최첨단의 안락한 선내 생활을 즐기고, 여러 외계 종족과 만나고, 외계 문명과 충격적으로 조우하고, 그런 와중에 우주 속에서 인간의 위상을 돌아보고 등등…. <기시감>의 항해 이야기는 한 편의 여행기로서 가치가 있습니다. 소설은 그저 주제를 전달하는 매개체가 아니죠. <해저 2만리>가 '원대한 탐사물'의 물꼬를 튼 이후 수많은 SF 소설들은 탐사를 이야기했습니다. 기술 발달은 언제나 인류 문명의 확장으로 이어졌습니다. (물론 그런 확장 때문에 크나큰 비극도 벌어졌죠.) 머나먼 밀림, 황량한 사막, 붕괴한 도시, 혹독한 극지, 깊고 깊은 지하 등등. 원대한 탐사는 SF 소설의 두드러진 특징이고, SF 소설은 탐험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기 좋습니다. 사이언스 픽션은 그런 장르입니다. 얼마 전에 완역본이 나온 <스타타이드 라이징>을 보세요. 그 소설의 진짜 주제는 바이오펑크지만, 포장지는 우주 탐사물입니다. 우주 탐사라는 한 편의 서사가 바이오펑크와 맞물려서 더욱 큰 감동을 선사했죠. <기시감>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인공지능은 우주 항해와 관련이 없어도 우주 탐사는 SF의 로망입니다. <기시감>은 픽션으로서 로망을 실현한 미덕을 보여줬습니다. 만약 우주 항해 부분이 빠졌다면, 내용 전개는 좀 더 깔끔할지라도 SF 소설로서의 로망은 대폭 줄었을 겁니다. 픽션은 이상향이나 로망을 실현할 의무(?)가 있다고 봅니다. 픽션이 하지 못하면, 그걸 누가 하겠습니까. 게다가 우주 탐사는 인간과 인공지능의 돈독한 관계를 강조할 수 있습니다. 로가디아는 그냥 인공지능이 아닙니다. 벨레로폰도 그냥 인공지능이 아닙니다. 작중 등장인물의 대사처럼 로가디아는 오직 인간을 위한 인공지능입니다. 따라서 망망대해, 아니, 막막한 우주에서 승무원들을 돕는 로가디아는 인간의 하인 혹은 동반자로서 존재감을 어필할 수 있어요. 만약 우주가 아니었다면, 로가디아가 인간을 보살핀다는 이미지가 팍 줄었을 겁니다. 벨레로폰은…. 음, 내용 누설이라서 뭐라고 말을 못하겠네요. (사실 로가디아와 게이츠 이야기만큼 벨레로폰과 외계 행성 이야기도 많이 해야 하지만, 내용 누설과 지면 관계상 생략하겠습니다.)


어려운 책을 설명하려니까 머리에서 스팀 나오는군요. 제 설명에 오류와 헛점이 많겠지만, 전반적인 요점은 이겁니다. <기시감>은 인공지능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인공지능과 우주 항해는 별 연관이 없습니다. 우주 여행이 안 나오는 인공지능 작품들도 많으니까요. <기시감>에서 타키온 드라이브는 인공지능의 인식론을 강조했지만, 이 소설의 우주 항해는 단지 그런 역할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우주 항해는 원대한 탐사를 논하는 SF의 로망으로서, 그리고 막막한 우주 속의 인간과 동반자를 돋보이게 하는 장치로서 필요했다 하겠습니다. 석아찬은 우주가 무턱대고 좋다고 말했고, 그게 이 책이 우주 탐사물이 된 진짜 이유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