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80 하면 밀리터리 관련 계열에서도 전설적 아이템으로 나름 유명한 물건입니다. Small Arms for 80's, 80년대의 소화기(불 끄는 그거 말고요!)라는 이름이 붙었고 동일한 설계를 기반으로 L85 소총(미국이 Military의 M을 붙이고 우리나라는 Korea의 K를 붙이듯 영국은 지상군 무기에 Land Service를 의미하는 L을 붙입니다) 및 L86 기관총, L22 카빈, L98 훈련용 소총의 4종류를 포함하는 일련의 개인화기들입니다. 워낙 군부의 삽질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유명한 물건이니 국내에서도 호비스트 같은 데서 꽤 다뤄줬고 웹 검색만 하면 관련 자료를 쉽게 찾을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씁니다. 클럽에 좀 긴 글 쓰는 것도 워낙 오래됐다 싶어요.


 각설하고, SA80 전설...의 시작은 2차 대전 직후로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2차 대전은 인류 역사상 전례를 찾기 어려운 규모의 전쟁이었고 수많은 인적 재산적 피해를 낳았지만 동시에 그만큼 중요한, 피로서 배운 전훈을 많이 낳기도 했던 전쟁이기도 합니다. 1차 대전 수준의 볼트액션식이나 반자동 소총으로 무장하고 있던 각국 군대들은 2차 대전 이후로 개인화기는 너무 멀리 사격 가능하도록 강력한 탄약을 사용할 필요가 별로 없고, 되도록 자동사격이 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죠. 그래서 소련에서는 그 유명한 AK47이 태어나게 됩니다. SA80과는 정반대점에서 전설이 된 총이지만, 오늘 할 이야긴 그게 아니니 패스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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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는 No.9. Rifle이란 이름으로 정식 채용에 이르렀지만 59정만 생산되고 다시 취소되어버린 비운의 소총, EM-2. 아래는 같은 탄약을 쓰는 브렌 건 기반의 탄띠급탄식 경기관총으로 개발되었으나 역시 EM-2와 함께 사라져버린 Tanden.

이 무렵 영국군은 EM-1에 이어서 EM-2라는 이름의 차세대 소총을 개발하고 있었습니다. 탄창이 방아쇠 뒤에 위치하는 불펍식 설계에 20발짜리 탄창으로 자동사격이 가능하고, 280 브리티쉬라는 새롭고 좀 더 약한 탄약을 사용할 예정이었던 이 총은 비록 AK47만큼은 아니었지만 보수적인 영국군치고는 꽤나 혁신적인 설계였습니다. 비상용 가늠자가 있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무배율 광학 조준경(위 사진 잘 보시면 운반손잡이 위에 작은 고깔 같은 게 보일 겁니다)을 이용해 조준하도록 되어 있었고 개념상으로도 기관단총과 소총 둘 다를 동시에 대체하는 돌격소총의 개념이었으며, 같은 탄약을 사용하는  탄띠급탄식 경기관총까지 개발하고 있었죠. 지금 기준으로 보자면 280 브리티쉬는 흔히 M16이나 K2소총이 쓰는 5.56mm 탄약보다 조금 강한 정도로서 아마 채택되었더라면 지금까지도 나쁘지 않게 사용될 수 있을 법한 물건이란 평가를 듣습니다. 최근 들어서 5.56mm가 약하다고 6.5mm 그렌델이나 6.8mm SPC 같은 탄약이 조금씩 나오고 있는데, 그런 녀석과 비슷한 정도였거든요. 허나 문제는 이런 무기체계 선정에 관련된 일은 단순히 기술적 요소로만 판단되지 않는다는 거였더랩니다.

서방 진영의 군사적 주축이었던 미국은 M1 개런드가 2차 대전에서 이뤄낸 성과에 잔뜩 취해서 소총은 반자동에 강력한 한 방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시험으로 280 브리티쉬를 몇 번 쏴보고는 이런 약한 탄약은 곤란하다고 주장해버립니다. 영국은 조금 더 강력한 7x49mm를 개발합니다만 역시 그것조차도 너무 약하단 평가를 듣습니다. 거의 양산 직전에 올라 있었던 EM-2와 280 브리티쉬는 결국 폐기되어버리고, 나토라는 새로운 군사적 동맹 하에 미국과 사용 탄약을 통일시킬 필요가 있었던 영국은 어쩔 수 없이 미국이 채택한, M1 개런드가 쓰던 30-06과 사실상 별로 차이가 없는 7.62x51mm를 제식 탄약으로 채택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말은 7x49mm가 사실상 설계상 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탄약이었던 EM-2 역시 차기 소총으로 채택될 수 없었다는 뜻이 되죠. 할 수 없이 영국은 벨기에에서 FN FAL의 설계도를 사다가 L1A1 SLR(Self-Loading Rifle, 그냥 반자동 소총이란 뜻입니다.)이라 이름붙이고 쓰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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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지에 30년도 넘는 기간 동안 영국군이 운용하게 되어버린 L1A1 SLR. 몇 군데 사소한 차이점 이외엔 원본인 FN FAL과 대동소이합니다만 7.62x51mm의 강력한 반동을 고려해 자동사격 기능이 아예 없고 단발로만 쓸 수 있습니다. 호주나 말레이시아 등에서도 이 모델을 영국 따라서 그대로 운용하게 되지요.


물론 다들 아시다시피 미국은 15년쯤 지난 뒤에 베트남에서 M14 좀 써보고는 어 이거 좀 아닌데? 하고는 7.62x51mm를 내다 버리고 5.56x45mm라는 신규격의 보다 약한 탄약으로 순식간에 갈아타 버립니다. 미국 애들이 새 총이자 미래지향적으로 생겨먹은 M16을 신나게 자랑해대자 SLR 열심히 쓰고 있는 영국은 잔뜩 억울해집니다. 근데 어쩌겠어요. 이미 물 건너 간 일인데. 아무튼 상황이 어렇게 된 이상 1969년, M16이 갓 미국의 제식 소총으로 채택될 무렵 영국도 새로운 소총의 개발을 시작합니다. 4.85x45mm라는 새로운 탄약을 기반으로 돌격소총과 경기관총을 개발한다는 계획이었고 결국은 SA80으로 이어지게 되는 물건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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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종류의 실험용 탄약들. 다 적으려면 글이 너무 길어지고 그럴 필요도 없으니까...제일 왼쪽에 있는 물건이 5.56mm NATO에 탄두만 다르게 물린 녀석이고 위에서 언급한 4.85x45mm는 오른쪽에서 세 번째입니다. 크기가 거의 차이가 없다는 걸 보실 수 있는데요, 잘 알려진 M16의 5.56x45mm 탄약에서 탄두 크기만 조금 줄여서 반동을 감소시켜보려는 물건이었습니다. 탄도학적으로는 223 레밍턴을 능가했지만 FN의 SS109보다는 딸린다는 평가를 받았고, 아마 탄두가 작아서 저지력 부족 문제도 있었으리라 생각되긴 합니다.

SA80은 EM-2와 내부 구조적으론 많이 다릅니다만. 기본적으로 광학 조준경을 장착했고 불펍식이라는 점에서 기본적 아이디어는 계승한 물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내부 구조는 AR-18의 영향을 받았다고 흔히들 이야기하는데 사실 그 정도를 넘었죠. 아말라이트 관계자가 전시회에 나온 SA80의 프로토타입을 분해해보고 AR-18 부품을 그냥 사서 썼다는 걸 발견했다는 이야기까지 있으니까요. 문제는 아말라이트에 정식으로 설계 개념 넘겨달라고 한 적은 없고 영국의 스털링사에서 라이센스 생산하던 걸 몰래 따와 기반으로 만들기 시작했던 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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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말라이트 AR-18. 이 녀석도 따지자면 비운의 녀석입죠. 아말라이트는 M16을 콜트에 팔아먹고 난 뒤로 쭉 내리막이었습니다.

AR-18 자체는 아말라이트가 M16 저작권을 콜트에 팔아먹고 난 뒤로 손가락만 빨고 있을 수는 없어서 개발한 좀 더 저렴하고 단순하며 가스피스톤 방식을 사용하는, 뭐랄까, 좀더 AK스러워진 M16쯤 되는 물건입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제3세계의 낙후된 기술력으로도 쉽게 양산 가능하게 만들어 그만큼 쉽게 팔 수 있도록 한다는 개념으로 만든 총이었습니다. 덕분에 신뢰성이나 정밀도가 조금 떨어졌고 용접과 철제 프레스를 이용한 단순한 구조를 가졌지만 나쁜 물건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그 덕에 제대로 팔아먹지 못했고 어느 나라 군대에도 제대로 채택되지 못한 비운의 물건이었을 뿐입죠. 위에서 언급했듯 이미 영국의 스털링 사에서 AR-18을 면허 생산하고 있었기에 영국군측이 이 녀석을 불펍식으로 개조하는 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론상으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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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털링 SAR-87. AR-18을 기반으로 스털링사가 영국군 차기 소총으로 한 번 밀어보고자 열심히 개발했던 물건입니다. 영국군은 이미 SA80을 개발 중이니 그런 건 필요 없다고 말하죠. 그 말을 후회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모른 채...결국 스털링은 1988년 부도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집니다.

원판이 이미 충분히 완성된 물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설계 과정에서 SA80은 많은 문제점들을 겪었습니다. 첫 시제 모델이 만들어졌지만 가혹 테스트를 제대로 이겨내지 못하고 명중률 역시 나빴습니다. 시간을 두고 문제점들을 잡아나갔더라면 나아졌겠지만 5.56mm 탄약이 사실상의 절대적 대세가 된 판국에서 설계 역시 4.85mm탄을 기반으로 하던 기존의 것을 급히 새로운 탄약에 맞추어 수정해야 하게 됩니다. 설상가상으로 지금으로선 실패한 경제정책 취급받는 대처주의를 외치던 마가렛 대처 총리가 정권을 잡아 민영화와 작은 정부론을 외쳐대고 있었고 SA80을 개발하던 왕립 조병창(Royal Ordinance)을 대폭 축소하느냐는 게 어떻냐는 이야기를 내놓습니다. 14년 동안 5억 파운드라는 어마어마한 개발비를 잡아먹은 긴 설계 기간 동안 개발진은 최소 세 번은 바뀝니다. 프로젝트란 게 뭐든 그렇지만 개발 기간이 길어지고 개발비가 늘어날수록 빨리 끝내버리란 압박은 커져만 갑니다. 그런 프로젝트 치고 좋은 결과 내는 건 정말 드물다는 건 당연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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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80의 개발과정에서 나온 프로토타입 중 하나인 L64/65. 생긴 것부터 SA80 시리즈의 냄새가 잔뜩 납니다만, 이 녀석은 4.85mm탄을 쓰는 모델이었습니다.

1985년, 이런저런 프로토타입들이 나오며 삽질을 반복한 긴 개발기간 끝에 SA80 패밀리가 완성되어, 정확히 말하자면 완성되었다고 평가되어 소총 버전은 L85A1으로, 기관총 버전은 L86A1이란 이름으로 영국군에 제식 채택이 되게 됩니다. 허나 양산 공정에까지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초기분 SA80의 생산은 1812년 설립된, 그 유명한 영국 엔필드의 왕립 소화기 공장(RSAF, Royal Small Arms Factory)에서 이뤄집니다. 문제는 아까 이야기했던 그 대처주의의 결과로 1984년에 해당 공장이 민영화되고 1987년에는 폐쇄될 예정이었다는 거죠. 해고 소식을 맞이한 공장원들의 조업 수준은 가히 최악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당시 공장을 방문했던 한 기자는 그 분위기를 대충 바이스에 부품 물려놓고 쑤셔 박으며 언제 작업량 다 채우나 투덜대는 수준이었다고까지 이야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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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쪽이 L85A1 IW(Infantry Weapon), 아래는 L86A1 LSW(Light Support Weapon). 미군이나 국군의 경우는 처음에 M16이라 이름을 붙이고 그걸 개량하면 M16A1, M16A2가 되지만 영국은 그냥 처음에 A1부터 시작합니다. SLR도 개량 한 번 한 적 없는데 L1이 아니라 L1A1이었죠.

결과적으로, 1985년 10월 출고 기념식에서 온갖 기대와 희망을 받으며 등장한 초도물량의 L86A1 LSW들은 기본 장착된 양각대가 제대로 고정이 안 되는 바람에 검은 절연 테이프를 감고 등장합니다. 앞으로 다가올 문제점들의 불길한 전주곡이었던 셈이죠. 당연하게도 새 소총을 쓰기 시작한 일선 부대에서는 배치 초기부터 불만이 잔뜩 나오게 됩니다. 초창기에 제시되었던 문제점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무엇보다 중요한 신뢰성 문제. 이건 좀 있다 이야기하죠. 완성도가 어느 정도였냐면, 양산 모델의 발사속도가 설계보다 분당 100발 가량 느렸습니다.

2. 쓰기 불편한 구조. 장전손잡이가 총 오른쪽 뒷부분에 있었습니다. 따라서 왼쪽 어깨에 견착하고 쏠 수가 없었죠. 국군은 총을 무조건 오른손으로만 쏘라고 시키니 별 문제가 아니다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사실 실내에서 모퉁이 너머로 총 내밀고 쏘거나 하는 상황에선 오른손잡이라도 왼손으로 쏘는 게 더 편하거든요. 이건 애초에 탄창이 개머리판에 들어가는고 탄피도 개머리판에서 튀어나와야 하는 불펍식 소총에서는 당연히 하기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1970년대 초에 나온 슈타이어 AUG만 해도 이런 걸 고려해서 탄피 배출 방향을 180도 돌리는 게 가능했는데 SA80은 그런 거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또 조정간과 탄창멈치의 위치가 견착해 사격준비를 한 자세에서 간단히 조작할 수 없는 불편한 곳에 있었습니다. 게다가 탄창멈치는 견착하면 가슴에 바로 닿는 위치에 있어서 잘못하다간 눌려서 탄창이 그냥 빠져버릴 수도 있었죠. 물론 이런 구조라는 건 개인차가 있고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나아지는 거긴 한데요...

3. 무게. 30발 탄창 꽂으면 무게가 거의 5킬로그램이었고 기존에 쓰던 L1A1 SLR보다 딱 80그램 가벼웠습니다. M16A1이 탄창 꽂으면 3.6킬로그램, M16A2가 4.5킬로그램 정도인 걸 감안하면 총은 불펍식이라서 더 짧은데 무겁기는 월등히 더 무거워진 셈이죠. 총 자체도 좀 무거운 편이었고, 기본적으로 결코 가볍지 않은 쇳덩어리 수준의 4배율 SUSAT 조준경을 장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게다가, 무게 배분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뒤쪽의 총몸이 철제였으며 앞쪽은 플라스틱이었기 때문에 뒤쪽에 무게가 몰려 있었죠. 이 경우 연사할 때 총이 쉽게 위로 들리는 단점이 있고 또 장기간 파지하고 있기에 피곤합니다. 총 자체의 높이도 꽤 높은 편이라 불안했고요.


4. LSW란 개념 그 자체. LSW는 기관총이란 이름에도 불구하고 30발짜리 탄창을 쓰며 총열 교체도 불가능해 발휘할 수 있는 화력에 한계가 심했습니다. 사실 30발 탄창식 기관총이란 개념은 2차 대전 이후론 거의 퇴색된 물건이었죠. 설계도 좋은 편이 아니라 개머리판의 어깨받침 위치 등이 불편했고 가스블럭에 달려있던 양각대의 위치 때문에 2점사를 반복하면 첫 발은 조준한 곳 오른쪽 위에, 그 다음 발은 왼쪽 아래에 몰려서 박히는 이상한 탄착군이 생기기도 합니다. 결국 양각대는 총구쪽으로 옮겨지게 되지요.



양산이 시작된 후로도 테스트는 계속 이어지고 이런저런 문제점이 계속 나옵니다. 영국군 측에선 신뢰성 테스트를 하면서 사수가 해결할 수 있는 ‘사소한’ 기능고장은 세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사수가 탄창 좀 툭툭 치고 장전손잡이 당겨서 해결할 수 있는 거라면 기능고장으로 취급하지도 않았다는 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SA80의 신뢰성은 결코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사소한 것까지 친다면 L85는 탄창 두 개, L86는 탄창 한 개 분량 쏠 때마다 문제가 생긴다는 수준이었거든요. 사막 테스트는 세 차례나 치렀지만 통과 근처도 가지 못했습니다. 노르웨이의 극한지와 정글 숲속에서 이뤄졌던 테스트까지 거치며 더 많은 문제점들이 튀어나옵니다. 사실 멀쩡한 부분이 거의 없다고 봐도 좋을 정도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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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80의 총검. 손잡이에 소염기 기능을 하라고 커다란 구멍을 뚫어놓은 게 보이실 겁니다. 시대에 맞춰 대검집에 톱도 들어가고 철사절단기도 넣고 했지만...

1. 총검. 쉽게 부러지거나, 제대로 고정이 안 되거나, 철사절단기가 휘어버리는 등의 내구성 문제. 이외에도 SA80의 총검은 특이하게도 총검 손잡이에 구멍이 뚫려있고 검날이 한쪽 구석에 몰려 있어서 총구에 그냥 꽂고 쓰는 방식이었는데요, 그럼 총검 손잡이를 통해 총알이 나가게 되는 거고 때문에 손잡이에 소염기용 구멍까지 나 있는데, 손잡이가 금속재질이라서 총열이 달아오르면 손잡이도 같이 뜨거워지는 문제가 생깁니다.

2. 공포탄 어댑터. 쏘고 난 뒤에 안에 탄매가 끼어서 쉽게 빠지지 않고 힘주어 빼려다가 나사산이 망가짐.

3. 양각대. 접힌 상태로 고정이 안 되거나 고정 나사가 빠짐.

4. 총몸 분해핀. 안 빠지거나 너무 쉽게 빠짐.

5. 노리쇠뭉치. 쉽게 부식되고 이물질에 대단히 취약함.

6. 개머리판. 총끈을 잡아당기면 고정나사가 쉽게 빠짐.

7. 총끈 조임쇠. 고정부위가 쉽게 부러짐.

8. 수입장비. 내구성이 대단히 약해 꼬질대가 잘 부러지거나 총강솔 고정이 제대로 안 되거나 강중유 병 뚜껑이 안 닫히고 기름이 새거나 청소용 솔의 올이 풀리거나...

9. 야시 조준경. 헬멧을 쓴 상태로 조준하기 힘듬.

10. 탄피배출구 덮개. 극한지에서 얼어붙거나 부서짐.

11. 차개. 극한지에서 얼어붙거나 부서짐. 배출 방향이 멋대로라서 사수의 얼굴 방향으로 탄피를 배출하거나 튀어나온 탄피가 장전손잡이에 맞고 다시 약실로 들어가 끼어버리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덕분에 일부러 탄피배출구를 크게 만들었는데, 탄피가 그럭저럭 잘 튀어나가게 되긴 했지만 대신 이물질도 그만큼 잘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12. 공이. 연발 사격시 끝 부분이 쉽게 닳아버리거나 부러짐. 스프링의 내구성이 약함.

13. 가스마개. 쉽게 탄매가 끼어 안 빠지는 경우가 생기며 180도 회전된 잘못된 위치로도 삽입이 가능함. 이 경우는 다시 뺄 수가 없으며 총도 사격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드릴로 제거하는 수밖에 없음.

14. 가스피스톤. 스프링이 약하고 쉽게 휨.

15. 총열덮개. 극한지에서 쉽게 깨짐. 모기 기피제가 묻으면 녹아내림. 초기의 SA80에 사용된 플라스틱은 전반적으로 저질이고 연약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다만 모기 기피제 건은 재질의 문제라기보다는 모기 기피제의 문제였다고 하는군요.

16. 가늠쇠. 고정나사가 쉽게 부러지고 충격을 받으면 금이 감.

17. 탄창멈치. 고정이 불안정함. 가슴에 맞닿는 위치라 견착시 몸에 눌려서 탄창이 멋대로 빠질 가능성이 있음. 극한지에서 쉽게 얼어붙음.

18. 총구마개. 고정이 전혀 안 됨. 극한지에선 총구에 그대로 얼어붙음.

19. 총끈 고리. 쉽게 휘거나 빠짐.

20. SUSAT 조준경. 조절 나사가 제대로 고정이 안 되거나 제대로 작동이 안됨. 내부에 김이 쉽게 서림. 장착용 레일은 용접이 제대로 안 되었고 녹이 쉽게 생김.

21. 총열 윗덮개. 고정장치가 불안해서 저절로 열리고 결국 테이프로 고정하는 경우. 연세 먹을 만큼 먹은 우리 나라 예비군 카빈도 아니고!

22. 방아쇠뭉치. 방아쇠 당긴 후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는 경우. 공이치기가 휘거나 부러지고, 안전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

23. 탄창. 스프링이 약해 원래 규격인 30발을 다 넣지 못하고 25~28발만 넣어야 했으며 외피가 쉽게 휘어 탄걸림을 일으키기도 함.

24. 총몸. 재질이 너무 얇고 약해서 밟으면 쉽게 흠집이 남. 옆에서 강한 압력이 가해진 상태로는 총몸 외벽이 휘어 노리쇠가 걸려서 움직이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생김.

이외에도 전체적 구조가 복잡해서 정비가 어렵고 부품 손망실이 쉽다는 것까지 추가해서, 결과적으로 정말 잘 닦고 정말 기름칠 잘 해서 정말 조심스럽게 다루지 않는 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거였고, 저질 재료와 저질 생산공정, 저질 설계의 합작품이 만나 최악의 총을 탄생시킨 것이었지만 영국군 상부에서는 그래도 문제는 시간 있으면 해결되겠지 하는 아주 낙관적인 전망을 갖고 있었습니다. SA80 이전까지 영국군의 개인화기들은 신뢰성 하난 매우 좋은 물건들이기도 했고, RSAF의 폐쇄 이후로 새로운 공장에서는 보다 나은 생산공정으로 더 좋은 품질의 총을 생산할 거라는 기대 역시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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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80 시리즈 중 하나인 L98 생도 훈련용 소총(Cadet Rifle)을 소개합니다. 영국군엔 사관 생도학교 비슷한 개념의, 하지만 엄밀히 말해 군사 학교는 아닌 독특한 Combined Cadet Force라는 조직이 있고 이 소속 학생들이 훈련용으로 쓰는 소총입니다. 외양상 L85와 차이점은 거의 없지만 자동 사격이 불가능하고 가스시스템도 막아놔서 한 발 쏘고는 손으로 장전손잡이 당겨줘야 재장전이 되죠. 한편으로 영국군은 교리상 소총의 명중률을 무척 중시했고, 이는 값비싼 4배율의 SUSAT 조준경을 소총에 기본 장착한 데서도 드러납니다. SA80의 명중률 하난 초기 물량부터 꽤 좋은 편이었다고 합니다만, 조준경이 워낙 비싼 덕에 아끼느라고 훈련시에거나 후방 비전투요원일 경우 이렇게 M16과 유사하게 생긴 가늠자가 장착된 운반손잡이를 대신 달기도 합니다.

1987년, 군부는 첫 생산분이 드러낸 이러한 문제점에도 무시하고 양산을 다시 개시한다는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그리고 1990년, 모래투성이의 이라크 사막이라는 극한상황이 SA80을 맞이하게 되죠. 사실 SA80은 사막이 아니어도 충분히 신뢰성 없는 물건이었으니, 예상대로 걸프전에서 SA80의 활약은 가히 대단한 수준이었습니다. SA80은 보통 30발(아니, 25발!) 탄창 하나를 다 쏘기도 전에 무조건 문제가 생긴다는 게 실제 사용하는 병사들의 인식이었고, 소총인 L85A1은 왠지 자동으로 사격하면 고장이 덜 나고 기관총인 L86A1 LSW는 단발로 쏴야 고장이 안 난다는 이야기까지 돌았습니다. 말이 쉬워 탄걸림이 잦다는 거지, 코 앞에서 적이랑 마주쳤는데 방아쇠 당겼더니 철컥 소리만 나더라 하면 얼마나 끔찍하겠습니까. 이런 총을 갖고 전쟁 치르러 가는 병사들의 기분은 저로선 상상만 할 수 있을 뿐이네요. 다행히도 걸프전에선 이라크군이 지리멸렬했기 때문인지 이런 문제 때문에 직접적으로 사망자가 났다는 기록은 없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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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목숨 걸고 싸우는 병사들에게 그딴 허접한 총을 주다니. 영국 국민들은 열받았고 정말 이런 머그컵이 팔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1992년, 영국 언론이 새어나온 보고서를 기반으로 이런 문제점들을 상세히 보도함으로서 사태는 대단히 커지게 됩니다. 국방부는 처음엔 그 문제점들이 죄다 가짜고 조작이고 사실은 별 문제 없다고 주장했다가, 대세에 밀려 천천히 진실을 인정하게 되고 결국에는 엄청난 비난을 뒤집어쓰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탄창을 멋대로 빼버리는 탄창 멈치 주변에 울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 SA80의 개량 작업은 지겹게도 이어집니다. 1993년까지만 해도 32군데를 수정하는데 2천 4백만 파운드가 들었고 1994년까지 35만 정을 생산하지만 90년대 내내 신뢰성에 대한 불만과 논란이 이어지게 됩니다. 1997년에는 나토가 자신들이 정해놓은, 나토 규격 5.56mm 탄약 시험용으로 쓸 수 있는 총기 목록에서 SA80을 아예 삭제해버립니다. 총 자체가 시험용으로 쓰일 자격이 없다고 평가한 거죠. 절망한 영국군은 보유하고 있는 30만 정의 SA80을 전량 폐기하고 M16 완성품을 사온다는 안까지 생각했다가 독일의 총기 제조사인 H&K(당시는 부도 이후로 영국의 브리티쉬 에어로스페이스사가 소유하고 있었죠)를 불러다가 개량을 맡긴다는 극단적 처방까지 내리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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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의 40mm 유탄발사기와 피카티니 레일을 장착한 L85A2. 영국군은 이거 채택하기 전까진 구식 총류탄을 썼습니다. 뭐 그래도 이제 신규 총류탄을 개발하는 일본 자위대보단 낫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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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22 카빈은 L85의 단축형으로서 전차병 등에게 지급되었습니다. 길이가 짧아진다는 불펍식 소총의 장점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물건이죠. 뒤쪽이 좀 많이 무거울 것 같지만...이 역시 최근 들어 피카티니 레일을 장착하게 된 A2 버전입니다.

2001년 10월, SA80의 생산이 개시된지 16년 만에 H&K는 L85A2와 L86A2, L22A2와 L98A2의 새로운 A2 시리즈를 내놓으며 이제 신뢰성 문제는 해결되었다고 장담합니다. 물론 세상에 공짜는 없었고, 기존에 영국군이 보유하고 있던 SA80 계열 총기 30만 정 중 10만 정은 부품용으로 분해해서 안 쓰기로 하고 20만 정만 개조하는데 또 9천 2백만 파운드가 들어가게 됩니다. 단순 비용상으로는 G36이건 M16이건 충분히 새 총 20만 정을 살 수 있는 돈이지만 영국 국방부측 주장으로는 새로운 총을 사려면 그 외의 부대 비용을 고려해 최소 5억 파운드는 들여야 하므로 기존의 SA80을 개량하는 게 이득이라는군요. 아무튼 A2에 이르러 새 탄창, 새 개머리판, 새 복좌용수철, 새 공이, 새 공이치기, 새 가스마개, 새 차개, 새 장전손잡이까지 대부분의 주요 부품이 교체되죠. 공이만 해도 첫 양산 이후로 세 번째로 교체하는 거였습니다...

아무튼, 2002년에 본격적인 개량 작업이 개시되자 영국 국방부는 야심차게 A2의 새 테스트 결과를 공개합니다. 놀랍게도 C7(캐나다 버전의 M16), G36이나 AUG 같은 다른 소총과 비교했을 때 L85A2는 신뢰성도 명중률도 압도적으로 우월하다는 거였죠. L85A2를 통상적 전장 환경(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에서 8분 40초 동안 150발씩을 사격하는 테스트를 165회 반복한 결과 24,750발을 쏴서 단 51번의 기능고장밖에 발생하지 않았고 이는 90%의 신뢰성을 보여준 것인데 반해 다른 소총들은 고작 47% 정도에 불과했다는 것이죠. 테스트 인원의 95%가 신뢰성이 우수하다고 생각했으며 100%가 명중률이 아주 좋다고 생각했고 역시 100%가 총기가 소제하기 편하다고 생각했다는 겁니다. 이어서 아프가니스탄에서는 20노트의 바람이 부는 52도의 모래 위에 총을 한 시간 얹어둔 뒤 5,400발을 쏴서 87.5%의 신뢰성을 보였다고 자랑합니다. 알래스카, 브루나이, 쿠웨이트, 영국 본토 등지에서 다양한 테스트를 거친 결과 MRBF(Mean Rounds Between Failure - 몇 발을 쏘고 나서야 심각한 기능고장이 발생하는가)는 평균 12,000발에 달하고 이는 사용 부품의 한계 수명보다도 길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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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85A1이었다면 꿈도 못 꿀 짓입니다만...

이런 식의 총기 테스트라는 건 아무래도 환경과 다양한 변수에 따라 다양한 차이가 있기는 한 편이라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는 솔직히 좀 의문이긴 합니다. SA80은 전적이 워낙에 화려하니까요. 그래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L85A2를 불안하게 받아든 영국군 병사들은 몇 번 써보고 나선 부정적 반응을 보이진 않는다는 게 사실이고, A2가 갓 배치될 무렵엔 진통이 있었지만 이제 2010년이 되었는데도 여태까지 별다른 문제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 걸 보면 문제점은 꽤 잘 해결된 것 같기는 합니다. 적어도 사람이 만든 기계면 고칠 수 없는 문제점은 없긴 한가 봅니다. 단지 거기까지 가는 게 힘들 뿐이지. SA80은 양산이 시작된 후로 20년 동안 엄청난 진통과 예산을 투입한 끝에 비로소 ‘완성’되었다고 부를 만한 물건이 나오게 된 겁니다.


한편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L86A2 LSW는 여전히 기관총으로 불합격이었고 이건 신뢰성을 벗어나 30발 탄창을 쓰며 총열 교체가 불가능하다는 기본 설계 개념 자체가 문제였기에 고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뭐, 굳이 따지자면 러시아군은 45발짜리 RPK-74를 잘 굴리고 있기는 합니다). 때문에 영국군은 결국 FN에서 미니미 경기관총을 사서 LSW를 거의 대체하고 LSW는 보조적 자동화기나 준 저격총 개념으로 운용하게 되었죠. 기관총으로 시작된 녀석이 저격총으로 끝을 맺는다는 건 참 기구한 일이긴 합니다만, 그나마 그거라도 용도가 생겨서 다행이라고 할지.

그리고도 SA80을 이야기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수출 실적이 있습니다. 2010년 현재에 이르기까지 SA80을 사가겠다는 나라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자메이카, 네팔, 짐바브웨, 모잠비크 등에 일부 무상 공여되었고 베네수엘라에서 특수부대에서 써볼까 하고로 조금 사보긴 했지만 곧 운용을 포기했고, 결과적으로 제대로 사겠다고 나선 나라가 없었고 민수용으로도 아주 소량만 생산되었을 뿐이죠. 영국 자국 특수부대조차도 C7이나 G36 쓰면 썼지 이건 못 쓰겠다고 말한 판국이고 포클랜드 방위군(FIDF, 포클랜드 정부가 운용하는 소규모 부대, 따지자면 영국군이긴 합니다)은 슈타이어 AUG가 모든 면에서 절대적으로 우월하다고 평가하고 AUG를 샀습니다. 요즘 들어서는 L85A2가 평가가 좀 나아지고 하면서 영국군 내에서도 좀 더 인기 좋게 쓰이고 있는 것 같지만 한 번 구축된 이미지란 참으로 무서운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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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85A2에는 앞으로도 보시는 것과 같은 신형의 레일 시스템과, 수명이 다 되어가는 SUSAT을 대체하는 트리지콘사의 ACOG/홀로사이트 콤보를 장착할 예정입니다. 이쯤 되면 좀 폼 나지요.


 결론적으로, SA80은 어마어마한 문제점을 안고도 당당히 영국군이란 이름 있는 군대의 주력 화기로 선택되는 전설적인 물건이 된 셈입니다. 물론 제일 처음에 이야기했듯이, 영국은 애초에 우리가 EM-2 만들었을 때 미국이 7.62mm를 고집하지 않았더라면 이 모든 삽질이 다 필요 없었을 텐데! 하고 몇 번이고 외쳤을 법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문제점이란 게 그렇듯이, 처음에 길을 잘못 들었더라도 언젠가 중간에 어떻게든 그 문제점에서 벗어날 기회가 몇 번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이유와 무사안일함 덕에 문제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결국 오점으로서 남게 되고 만다는 사실을 증명해주기도 했죠. 군 조직이라면 반면교사를 말할 수 있을 테지만, 저 같은 외부 관찰자로선 역사는 그래서 재밌는 거다 하고 말하는 수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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