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작품 게시판 - 영화/애니/만화/소설/드라마/다큐멘터리
슈퍼 로봇 이야기, 괴수/괴인/초인 이야기 외에... 다양한 작품과 장르를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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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 오페라, 밀리터리 SF, 외계침공물 중 어디에 속할까요.]
세상에는 수많은 SF 소설, 영화, 게임이 있습니다. 평론가들은 편의상 자주 쓰이는 전형이나 공식을 찾아내고, 비슷한 작품을 묶어 울타리를 만들죠. 그게 바로 장르입니다. 어떤 작품을 고를 때 장르는 필수 요소일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독자한테는 재미가 우선이고, 취향에 따라 원하는 작품을 골라 보면 그만이죠. 하지만 취향의 세계는 깊고도 오묘합니다. 어떤 작품에 한번 빠지면, 그걸 끝까지 파고들기 마련이에요. 그러다가 그 작품과 비슷한 이웃사촌까지 찾게 됩니다. 그럴 때 장르는 요긴한 분류법입니다. 그런데 이 장르라는 게 항상 딱딱 맞아 떨어지는 게 아닙니다. 어떤 작품은 여러 장르에 발을 걸치기도 하고, 어떤 장르는 이건지 저건지 헛갈리기도 합니다. 창작가들이 워낙 다양한 작품을 쏟아내다 보니, 경계선이 희미한 것도 있습니다. 어차피 서로 비슷한 장르라면, 취향도 따라가기 마련이므로 별 상관 없습니다만. 그래도 자세히 살펴봐서 나쁠 건 없겠죠.
장르 구분이 애매한 사례의 대표는 스페이스 오페라와 행성 로맨스일 겁니다. 언뜻 보면, 둘은 비슷합니다. 기술 수준이 높아서 행성 이동을 밥 먹듯이 합니다. 아무리 먼 행성은 물론이고, 항성간 여행도 문제 없이 다녀옵니다. 상대성 이론에 따른 시간 제약이나 그런 고민 안 합니다. 가끔 우주 구석에 박혀있는 행성이 골치를 썩이지만, 우주선만 좋다면야 별 문제가 아니죠. 초광속 항해나 초공간 도약, 워프 이동 등등이 자주 쓰이거든요. 게다가 우주 여행만 보편화된 게 아닙니다. 인류 말고도 우주 곳곳에 지성체들이 가득합니다. 어떤 이들은 피부색만 다른 인간입니다. 어떤 이들은 두 발로 걷는 동물입니다. 가끔 희한한 괴물이나 징그러운 거대 절지류도 출몰합니다. 신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악마나 신도 존재하죠. 인류는 외계인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거나, 동료가 되거나, 심지어 결혼까지 합니다. 아, 사람만큼 똑똑하고 활동적인 로봇도 빼놓으면 곤란하겠네요.
이처럼 비슷한 구석이 많은데도 두 장르는 살짝 울타리가 다릅니다. 그 이유는 공간 배경 때문일 겁니다. 스페이스 오페라는 말 그대로 우주 전체를 무대로 사용합니다. 가령 이런 식입니다. 주인공은 사막 행성에서 사건을 목격하고, 밀림 행성에서 범인을 찾아내고, 우주 공간에서 전투를 벌인 다음, 얼음 행성에서 마무리를 짓습니다. 이렇게 행성과 우주를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 날아다니면 스페이스 오페라가 되는 거죠. 반면, 행성 로맨스는 이름 그대로 무대가 특정 행성으로 못 박혀있습니다. 아무리 멀리까지 우주 여행이 가능해도 시점이 그 행성을 벗어나는 일이 별로 없어요. 다른 곳에서 온 손님들이 방문하거나 떠날 뿐이죠. 그래서 행성의 국가 관계나 경제, 생태계 등을 자세히 논합니다. 그렇다고 지구 이야기를 줄창 한다고 행성 로맨스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특정하게 무대로 삼을 만큼 독특한 곳이라야 합니다. 전부 사막이나 밀림이거나 얼음으로 덮이거나.
[밀리터리 SF라고 해서 꼭 전쟁 비중이 클 이유는 없습니다.]
외계인 이야기가 나온 김에 사례 하나를 더 이야기하죠. 밀리터리 SF와 외계침공물도 유명한 짝꿍입니다. 두 장르의 기술 수준은 스페이스 오페라나 행성 로맨스와 대개 비슷합니다. 우주 여행이 가능하고, 로봇이나 사이보그, 유전 공학 등도 옵션으로 따라 붙습니다. 그러므로 스페이스 오페라나 행성 로맨스의 하위 장르라고 봐야 하겠죠. 이름부터 전쟁 뉘앙스를 풍기므로 대립 세력이 등장합니다. 세력 갈등은 두 가지로 나뉘는데, 서로 대등하게 치고 받거나,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입니다. 덕분에 전쟁 이야기가 자주 나오며, 우주선이 포격하거나, 전차와 보행병기가 맞붙거나, 서로 레이저 총을 쏴대거나 하는 묘사가 흔하게 나오죠. 스페이스 오페라나 행성 로맨스는 그냥 정치나 무역, 사랑 이야기로 흘러가기도 합니다. 꼭 전쟁이 필수적이지 않아요. 그러나 밀리터리 SF와 외계침공물은 어떻게든 싸움이 빠질 수 없습니다. 주인공이 싸움을 못해도 전투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죠.
여기서 중요한 게 싸움의 주체입니다. 밀리터리 SF는 주인공이 군인이거나 그에 준하는 인물입니다. 군인이므로 당연히 병영 생활을 할 테고, 병영 묘사가 어떻게든 들어갑니다. 심지어 아예 전쟁이 터지지 않고, 주구장창 병영 이야기만 해댈 수도 있습니다. 전쟁 안 난다고 해도 갈등 세력은 존재하며, 따라서 군대는 계속 유지해야 하니까요. 한마디로 전쟁보다 군대 내부의 비중이 높거나 비슷하다면, 밀리터리 SF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연히 주인공은 군인 신분이 많고요. 하지만 외계침공물은 주인공의 신분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군인으로 싸우기도 하지만, 그냥 민간인이라서 생존 위주로 흘러갈 수도 있습니다. 진짜 화두는 지구 혹은 인류의 보금자리 밖에서 무시무시한 적이 쳐들어왔다는 겁니다. 그 놈들이 우리를 몰아내고, 영토를 꿀꺽 삼키려고 하죠. 인류는 온힘을 다해 맞서지만,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침공'을 다룰 뿐, 전쟁 자체는 비중이 약할 경우도 많습니다.
외계인과 우주 전쟁에서 시점을 돌려 다른 장르를 살펴보면, 시간여행과 타임슬립도 있겠네요. 시간여행과 달리 타임슬립은 우리나라 말로 번역하기가 좀 껄끄럽습니다. 두 장르 모두 주인공이 과거로 돌아가거나, 미래로 앞서서 겪는 모험이죠. 대개 과거 이야기가 많습니다. 아무래도 사람은 누구나 과거를 회상하는 마음이 있으니까요. "그때 그랬다면 어땠을까?" 같은 질문은 한 번쯤 던져 봅니다. 그래서 과거로 돌아가 현재를 바꾼다는 플롯이 흔하게 퍼졌죠. 이와 반대로 미래는 현재를 비판하기 위해 여행하는 때가 잦습니다. 현재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데, 너무 거시적이라서 당장 논하기가 어색합니다. 따라서 그런 문제의 결과를 보여줄 요량으로 주인공에게 미래 여행을 떠맡기는 거죠. 그렇다고 미래 여행이 항상 현재 비판적인 건 아닙니다. 때로는 장밋빛 앞날을 조명하기 위해 떠나기도 해요.
[이런 정신 없는 모험은 시간여행보다 타임슬립에 어울리겠죠.]
시간여행은 통상 기계 장치를 이용할 때가 많습니다. 과학자가 뚝딱뚝딱 만들어서, 그걸 타고 과거나 미래로 돌아간다는 식이죠. 모양도 갖가지인데, 고정형 캡슐도 있고, 우주선이나 항공기, 자동차처럼 탑승물일 수도 있습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양자역학이나 웜홀이나 기타 여러 가지 이론을 제안합니다. 요즘에는 평행세계가 무난하기 때문에 자주 쓰이는가 봐요. 타임슬립은 대개 초능력입니다. 무슨 원리로 시간을 거스르는지 모르겠지만, 본인의 능력이 좌우합니다. 그래서 과학자나 기계가 없어도 과거나 미래로 잘만 이동합니다. 그래서 골치 아픈 양자역학 따위 듣지 않아도 됩니다. 문제는 기계가 없는 대신 통제하기도 힘들다는 겁니다. 시간여행자들은 진득하게 생활합니다. 미래로 갔다면, 거기서 한동안 머물거나 혹은 아예 말뚝 박기도 하죠. 타임슬립 초인들은 때때로 원하지 않게 움직입니다. 갑자기 백 년 전으로 떨어져서 영문도 모르고 고생하다가 난데없이 몇 십 년 앞으로 훌쩍 넘어가는 식이죠.
재난물과 포스트 아포칼립스도 한데 묶이는 편이죠. 설명하기 편하다는 이유 때문에 아예 두 장르를 같은 것으로 취급하는 경우도 있더군요. 일단 공통점은 광대한 재난이 발생하고, 사람들이 공항에 빠지고, 세계가 멸망할 지경에 이른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재난은 허리케인이 불어서 도시 한두 개가 날아가거나, 질병이 퍼져서 사람 몇 백 명 죽은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럴 경우도 있지만, 때로 그걸 넘어 지구 전체로 혼란의 도가니가 번져 나갑니다. 인류의 종속이 달린 문제에요. 혹여 재난이 그만큼 퍼지지 않더라도 언제고 인류가 끝장날 수 있음을 암시하죠. 재난이라고 하면, 폭풍이나 화산 폭발, 해일, 지진 같은 자연 재해를 흔히 떠올립니다. 그러나 그 외에도 숱한 종류가 있는데, 유행병이 퍼지거나, 대규모 전쟁이 벌어지거나, 운석이 떨어지거나, 갑자기 환경이 변할 수도 있습니다. 가끔 외계인과 결합하는데, 이러면 외계침공물과 재난물 성향을 둘 다 드러냅니다.
재난물과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결정적인 차이는 (포스트라는 단어처럼) 재난 시기입니다. 재난물은 재난이 벌어지는 과정을 다룹니다. 비록 위기에 몰렸지만, 아직 인류는 멸망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고, 빠져나갈 기회를 모색하죠. 이에 비해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재난이 지나간 다음을 묘사합니다. 해일이든, 전쟁이든, 질병이든 재난은 엄청난 상처를 남기고 지나갔습니다. 사람들이 그 상처를 어떻게 견디고 살아가는지 설명하죠. 재난물은 사람들이 살아남으려고 버둥거리기에 상당히 동적입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그 많던 사람이 죄다 죽어서 비교적 고요하고 정적이죠. 아예 생존자 하나만 달랑 나올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런 경계선이 언제나 뚜렷한 건 아닙니다. 어떤 이에게는 진행 중인 재앙이, 다른 이에게는 지나간 것일 수도 있습니다. 재난물이 포스트 아포칼립스로 이어지거나 혹은 포스트 아포칼립스가 또 다른 재난을 낳을 수도 있어요. 예를 들어, 핵폭탄이 터지고 전쟁이 끝났어도 낙진과 방사능 피해가 남아있다면 여전히 재난물일 수 있죠.
[소설은 포스트 아포칼립스인데, 영화는 그냥 재난물에 가깝습니다.]
스팀펑크와 바이오펑크도 헛갈리는 축에 속할 겁니다. 두 장르는 겉보기에 전혀 다릅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한쪽의 지배 기술은 증기 기관이고, 다른 한쪽은 생물 공학이니까요. 증기 기관과 생물 공학을 헛갈리는 게 오히려 이상할 겁니다. 문제는 두 장르가 18~19세기에 태동했다는 겁니다. 그것도 서구권(미국과 유럽)에서요. 실제로 그 당시 과학 기수리 전에 없이 발달했고, 당연히 창작가들도 이를 반영했죠. 그래서 종종 스팀펑크와 바이오펑크가 동종 취급을 받거나, 한데 어울릴 수도 있습니다. 스팀펑크의 시대 배경은 대부분 19세기 유럽입니다. 그런데 바이오펑크의 선구적인 소설들, 그러니까 <프랑켄슈타인>, <모로 박사의 섬>, <투명인간>, <지킬 박사와 하이드> 등도 모두 19세기 영국에서 나왔습니다. 성격은 서로 다르지만, 하필이면 비슷한 시기와 장소에서 등장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둘을 뒤섞는 경우가 잦고, 두 장르가 비슷한 것으로 헛갈릴 수 있다는 겁니다.
공장 굴뚝의 매캐한 연기, 석탄과 전기를 이용한 선박, 태엽으로 움직이는 로봇 등은 기괴한 실험실에서 태어난 인조인간이나 인조 생명체와 잘 어울리는 한 쌍입니다. 스팀펑크와 바이오펑크는 쌍둥이입니다. 서로 닮지 않았지만, 함께 태어난 이란성 쌍둥이인 셈이죠. 그러니 고전 바이오펑크를 보고, 이게 스팀펑크라고 오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시대 배경이 문제인지라 20세기를 넘어서면 이런 오해는 금방 풀립니다. 어차피 스팀펑크는 19세기 유럽에 갇히고,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와 달리 바이오 펑크는 21세기가 지난 이후에도 여전히 든든한 인기를 자랑하죠. 오히려 세월이 지날수록, 생명 공학이 발달할수록 각광 받습니다. 유전 공학 회사들이 유전자 조작으로 공룡이나 괴물 만드는 걸 보고 스팀펑크라고 오해하는 독자는 없죠. 그러므로 저런 오해는 19세기 한정이라고 하겠습니다.
몬스터, 크리쳐, 괴수 장르도 헛갈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셋 모두 비슷한 의미로 쓰이지만, 엄연히 각자 특성이 있거든요. 몬스터는 흉측하고 무서운 걸 죄다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형태와 종류를 가리지 않아서 범위가 제일 넓어요. 프레데터는 하나의 종족이지만, 동시에 무서운 몬스터도 될 수 있죠. 이에 비해 크리쳐는 보다 동물에 가까운 것, 동물과 비슷하게 생긴 걸 가리킵니다. 뭐가 ‘동물적’이냐 하는 점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요. 게다가 적대적이지 않고 우호적일 수도 있습니다. 펀 행성에 사는 유사 드래곤처럼요. 괴수는 그보다 더 좁은 개념인데, 동물이면서도 크기(!)가 커야 합니다. 그것도 50m는 기본이고, 100m를 훌쩍 넘기는 초대형 개체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일본산 대형 개체들을 주로 괴수라고 불렀는데, 요즘에는 국적을 안 가리고 크기만 크다면 전부 괴수 목록에 넣는 듯합니다. 사실 괴수는 너무 비현실적인 몸집 때문에 매니악했는데, 요즘에는 보다 대중화되었어요.
[몬스터이자 크리쳐입니다만, 괴수라고 부르는 게 제일 낫겠죠.]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장르라는 것들은 깔끔하게 나뉘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이 어디에 속하는지 혼동할 수 있죠. 다시 강조하자면, 위에서 말한 요소들은 장르의 대체적인 성향입니다. 어차피 장르라는 게 주관적인 기준으로
나누는 만큼, 정확한 분류는 기대할 수 없죠. 제일 좋은 방법은 장르 같은 거 따지지 말고, 모든 작품을 골고루 읽는 것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