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공포의 제국>의 일부분 내용 누설 있습니다. 다만, 내용 누설 좀 해도 별로 상관없는 책이라고 봅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야기 흐름이 아니라 작가의 주장이거든요.


소설 <공포의 제국>은 클라이튼 작품 중 가장 논란거리라고 합니다. 무엇 때문인고 하니, 21세기 제일 큰 화두인 지구 온난화가 소재이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지구가 뜨거워지니까 환경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상식적으로 퍼진 지구 온난화 이론을 반대하는 쪽이죠. 지금까지 우리는 잘못 알았고, 널리 알려진 이론들은 엉터리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당연히 이 책을 읽고, 학계와 대중과학계는 들썩거렸다고 합니다. 소설은 허구지만, 마이클 클라이튼이 누굽니까. 별별 최신 이론들을 파도처럼 밀고 들어와 엄정한 (혹은 그렇게 보이는) 논리를 펴죠. 실제로 책 속에 나오는 자료는 실재한다고 하네요. 이를 바탕으로 하는 주장 역시 소설 속 허구라고 치부할 수 없죠. 거기서 그치지 않고, 아예 소설 말미에 작가의 확고한 주장을 써놨습니다. 여러 과학 서적과 논문을 뒤져봐도 지구 온난화를 입증할 수 없으며, 기후 변화에 관한 사고를 바꿔야 한다고요.


책을 펼쳐 든 독자는 꽤 당황스러울 겁니다. 이산화탄소 배출 때문에 지구 온도가 올라간다는 거야 이미 수 차례 떠든 소리니까요. 요즘에는 초등학생도 지구 온난화가 뭔지 대충 알 겁니다. 그런데 그런 지식이 모두 가짜이며, 실제 지구 온도는 예전이나 마찬가지고, 빙하가 녹는다는 말도 거짓이라고 몰아붙입니다. 이런 대목을 접하면 누구나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죠. 작중 주인공인 변호사 피터 에반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재벌 의뢰인의 법적 절차를 처리하는 에반스는 환경 단체들과 친근합니다. 의뢰인이 좋은 일 한다면서 각종 환경 단체에 거금을 기부하거든요. 당연히 환경 보호 운동도 다수 접했고, 지구 온난화가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죠. 그러던 어느 날, 의뢰인 주변에 수상쩍은 인물들이 나타납니다. 그들은 국가 안보를 담당한다고 주장하며, 뜬금없는 폭탄 발언을 꺼내요. 지구 온난화는 날조고, 교묘한 사기극이며, 증거도 없고, 돈벌이를 위한 캠페인에 지나지 않는다는 발언이죠.


피터 에반스는 어리둥절한 독자를 대변하는 입장입니다. 책을 읽으면, 에반스와 함께 환경 보호 운동의 실체를 목격하게 되죠. 상식이며 진리라고 믿었던 것이 산산이 부서집니다. 그 뒤에 숨은 진실과 추악한 이면이 떠오르고, 결국 그 뒤에는 자본과 권력이 남아요. 당연하겠지만, 읽는 내내 찝찝하고 기분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사기꾼한테 뒤통수 맞았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는 느낌이죠. 철썩 같이 믿었던 환경 운동이 새빨간 거짓말이라니. 피터 에반스는 그럴 리 없다며 강하게 부정하지만, 상대는 조목조목 근거를 듭니다. 그냥 이론만 떠드는 게 아니라, 온도 변화에 관한 그래프를 줄줄이 보여줘요. 아마 클라이튼 소설 중 이만큼 그래프가 많이 나오는 것도 없을 듯하네요. 피터 에반스는 절대적인 믿음이 깨지자 혼돈의 카오스로 빠져들고, 이때쯤이면 독자도 비슷한 심정일 겁니다. 21세기 지구촌 최대의 화두가 그저 돈벌이를 위한 핑계에 지나지 않다니, 해도 너무하죠.


제목 ‘공포의 제국’은 이러한 날조가 공포를 퍼뜨린다고 해서 붙였습니다. 사람들 관심을 돌리려면 예나 지금이나 공포 분위기 조성이 최고니까요. 정치권에 불만이 많아지면, 다른 사건으로 시민의 눈을 돌리는 거야 어디서나 써먹는 수법이죠. 대통령이 비리를 저질러도 적국이 도발행위를 하면 다들 거기에만 신경 쓰니까요. 주변에 겁줄만한 요소가 있는 한 정치인의 인기는 식지 않겠죠. 지구온난화 이론도 딱 그런 식이라는 겁니다. 시민들의 질서를 바로 잡고, 돈을 뜯어낼 구실이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권력자들은 여러 수단을 동원하는데, 2000년대 들어서 새롭게 부상한 것이 환경 운동이에요. 지구가 더워진다고 겁을 주면, 다들 벌벌 떨며 환경 단체에 기부한다는 소리죠. 솔직히 여기까지 오면, 기분이 찝찝한 걸 떠나 슬슬 열이 받기 시작합니다. 이 책을 읽는 감성 변화는 어리둥절함, 놀라움, 찝찝함 그리고 분노로 이어지는 식이죠. 자기 자신을 향한 분노도 좀 있고.


흔히 지구 온난화를 반대하면, 거대 기업의 첩자라는 반박이 많습니다. 작중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환경 단체와 관련된 여러 인물들이 나와 지구 온난화는 엄연한 현실이며 위기라고 강조해요. 지구 온난화에 반대하는 주장은 대기업의 로비라고 하죠. 그러나 실제로 로비 따위는 없으며, 과학자들의 관찰과 측정만 있다고 지속적으로 강조합니다. 오히려 진실을 왜곡하는 쪽은 환경 단체입니다. 지구 기온도 변화가 없고, 빙하가 녹지도 않으니까 학자들을 꼬드겨 학술 보고를 모호하게 처리해요. 환경 운동가란 작자들은 어디서 주워들은 풍월로 대중을 현혹하고요. 진짜 학자들 앞에서는 입도 뻥긋 못하죠. 환경 보호가 중요하다고 외치지만, 실상 제대로 아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저 깃털처럼 가벼운 동정심으로 지구 보호를 외칠 뿐, 과학적 근거에 기반을 둔 행동이 아니죠. 환경 보호를 강조하면서 정작 본인들은 호의호식하는 리무진 리버럴 역시 수시로 도마에 오릅니다.


나중에는 아예 교토 의정서를 부정적으로 봅니다. 극단적으로 간추리자면, 사실상 이산화탄소 방출은 식물 생장에 도움이 되니까 살기 좋아진다는 식이에요. 그리고 DDT 금지가 희대의 바보짓이라며 까기도 합니다. DDT는 말리리아 확산을 막는 방지책인데, 환경 운동가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난리법석을 피웠다고 해요. 그래서 저걸 금지하자 도리어 말라리아 전염이 늘어났다는 결론을 짓습니다. 당연히 작중의 환경 운동가들은 철저하게 난도질 당합니다. 보고 있기가 불쌍할 정도로 코너에 몰려요. 이 책에 나오는 운동가들은 대부분 '머리에 든 것도 없으면서 감정적으로 무모하게 움직이는 지식인의 전형'이거든요. 순수하게 환경을 위해 일하는 자들도 있지만, 대부분 멍청하거나 위험하기 짝이 없죠. 자기들 목적을 위해서 살인까지 아무렇지 않게 저지를 정도로요. 그저 소설에서 희화화했다고 볼 수도 없는 게 실제로 저런 인종들이 폭력배처럼 설치니, 원.


읽으면서 다른 테크노 스릴러 계열인 <레인보우 식스>가 떠올랐습니다. 둘 다 극단적인 환경주의자가 나온다는 점이 비슷하죠. 그 놈들이 환경 변화를 걱정하느라 인류를 해친다는 줄거리고 그렇고요. 다만, <공포의 제국>이 <레인보우 식스>보다 설득력 있습니다. <레인보우 식스>는 설정이 너무 공상적이라고 해야 하나. 현실에도 환경 테러리스트가 나오는 마당이니, 그런 소재를 택한 건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환경 문제는 심각한 화두인데, 그저 힘세고 짱센 레인보우 부대를 자랑하느라 그런 화두를 얼렁뚱땅 넘어간 감이 있어요. 밀리터리 소설에서 환경 문제 논하는 것도 이상하겠지만, 그럴 거면 아예 소재로 삼지 말든가. 반면, <공포의 제국>은 각종 과학적 근거를 동원해 고정관념을 파괴하는 쪽입니다. 적어도 작가의 진심이 느껴지긴 해요. 책 말미에 자기 주장을 확실하게 정리했다는 것도 주목할 점이고요. 애초에 톰 클랜시는 밀리터리 덕후고, 클라이튼은 과학과 시사에 관심이 많다는 차이가 있지만.


어쨌든 책을 읽는 내내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그간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들을 이렇듯 산산조각 내다니요. 논란이 엄청났다고 하던 평가도 고개를 끄덕일만 해요. 다만, 클라이튼도 환경 관리가 아예 필요 없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직 제대로 된 지식이 없으니까, 한층 조심하자는 의견입니다. 환경 보호는 필요하지만, 방법론을 정하기 위해 심사숙고하자는 거죠. 일주일 날씨도 자주 틀리는 마당에 몇 백 년 이후의 기후를 예상하는 건 말이 안 된다면서요. 작가의 주장은 알겠는데, 지구 온난화가 한낱 날조라는 걸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이게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참 엇갈리는 논쟁거리니까요. 제가 알기로 주류 학계 입장은 '지구 온난화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하던데요. 인류 활동 때문에 가스가 발생하는 것까지는 모두 동의하는데, 그 다음부터 해석이 천차만별이죠. 최신 과학에 무지한 독자 입장에서는 헛갈리기만 합니다. 여하튼 꽤 혼란스럽지만, 다분히 클라이튼다운 지식과 재미로 결합한 책이네요.